무적호위 154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15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154화
왕규다운 질문이었다. 그는 그 이유가 목마를 정도로 궁금했다.
관각이 어려울 것 없다는 듯 곧바로 대답했다.
“우리가 곽교진의 아들인 곽수종을 죽였소. 그는 죽어 마땅한 죄를 지었고, 우린 분노를 참지 못하고 강호의 법을 집행했을 뿐이오.”
“죽어 마땅한 죄? 궁천도의 아들이 어떤 죄를 지었는데……?”
“술에 취한 곽수종이 내 친구인 유청엽의 딸을 간살했소. 그리고 부친인 곽교진이 있는 곳으로 도망쳤소. 그래서 그를 쫓아가 곽교진을 만나기 전에 참살한 거요.”
“곽교진이 자식의 죽음을 알고 친구인 장강수왕에게 도움을 청해서 그대들 뒤를 쫓아왔나 보군.”
왕규가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바탕으로 추론을 해냈다.
관각이 왕규의 추측을 약간 수정해주었다.
“노형의 말씀과 비슷하오. 다만 도와주겠다고 나선 쪽은 장강팔련이 먼저였을 거요. 곽교진 쪽에서는 연락할 시간이 없었으니까 말이오.”
장강팔련과 광양산장은 장강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 중인 상태였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그런데 왜 동정호 쪽으로 가지 않고 반대로 향하는 거요?”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인 듯 관각이 머뭇거리며 옆을 돌아다보았다.
광양삼절 중 첫째인 관정이 대신 대답했다.
“본래 우린 막부산자락에 살고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간 대공자를 찾아가던 길이었소. 그런데 도중에서 사건이 벌어진 거요. 그래서 곽수종을 죽인 후 다시 대공자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소.”
“대공자라면, 동정일수(洞庭一秀) 용화성을 말하는 거요?”
“그렇소.”
동정일수 용화성은 무림십룡 중 하나로 호남을 대표하는 청년고수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용화성 본인보다 그가 호남제일검이라 불리는 광양신검 용태경의 손자라는 사실에 더 큰 무게를 두었다.
“이제 대답을 들었으니 원하는 대가를 말해보시오.”
관정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때였다. 장천운이 나섰다.
“대가는 나중에 결정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관각이 눈살을 찌푸렸다.
어디서 어른들이 말하는데 새파란 애송이가 나서? 그런 표정.
관초는 자신의 기분을 직접적으로 표현했다.
“자네에게 물은 것 아니네. 물러서 있게.”
그러나 왕규는 그들의 기분을 아랑곳하지 않고 장천운에게 공을 넘겼다.
“대주가 알아서 하게.”
관정은 다른 두 사람과 달리 장천운을 차분하게 살펴보았다.
조용히 있을 때는 그저 얼굴이 조금 잘생긴 청년 정도로 보였다. 그런데 한 걸음 나서자 그 무게가 다르게 느껴졌다.
더구나 자신들이 주시했던 왕규가 결정을 장천운에게 미루자 그 무게가 더욱 크게 다가왔다.
‘내가 사람을 잘못 봤나?’
그 와중에 장천운이 말했다.
“들어줄 수 없는 일이라면, 그때 가서 다른 대가를 내놓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좀 전에 말씀하신 것처럼 돈으로 해도 좋고요.”
은자 백 냥은 결코 작은 돈이 아니었다.
네 식구가 일 년 내내 풍족하게 생활할 수 있는 금액 아닌가.
물론 그 돈보다는 광양산장과 인연을 맺어두는 게 백배는 더 이익이지만.
“그런 조건이라면 나쁘지 않군.”
관정이 결론을 내리듯 말하자, 관각과 관초도 더 이상 나서지 못했다.
“말씀해 보시죠. 우리가 뭘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우리 셋이 함께 손을 쓰면 곽교진이라 해도 쉽게 막지 못할 거네. 우리가 그를 상대하며 빠져나갈 동안만 다른 사람들을 막아주게.”
곽교진을 제외한 적의 숫자는 열 명 정도였다.
그들은 장강팔련의 무사들로, 고수라 할 만한 자들은 두세 명에 불과했다.
관정은 장천운과 왕규가 잠시 동안은 그들을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장천운이 말했다.
“차라리 이렇게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제가 궁천도를 상대할 동안 세 분이 먼저 빠져나가십시오.”
“…….”
관정은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관각과 관초는 어이가 없어서 입이 반쯤 벌어졌다.
‘저놈은 궁천도 곽교진이 누군 줄도 모르나?’
‘미친놈 아냐?’
그때 왕규가 한술 더 떴다.
“맞아, 차라리 그게 더 낫겠는데?”
65장: 궁천도(窮天刀)
광양삼절과 왕규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갈대로 우거진 강가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리고 장천운이 나섰을 때쯤에는 상선의 바닥이 강바닥에 닿을 듯 말 듯했다.
“더는 갈 수 없습니다, 나리!”
겁이 난 선장이 작은 배를 향해 소리쳤다. 작은 배는 상선과 육지 사이에 있었다.
곽교진도 수심이 낮다는 걸 알고 더 이상 선장을 다그치지 않았다.
“그 정도면 됐다!”
바로 그 즈음, 장천운이 마지막 결정을 내리고, 광양삼절은 괜한 소리를 했다고 후회하며 고개를 돌렸다.
곽교진이 상선 위를 향해 노성을 터트린 것은 그 직후였다.
“관가 놈들! 양민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으니 배에서 내려와 목을 내밀어라!”
그 말에 답하듯 배 위에서 한 사람이 몸을 날렸다. 장천운이었다.
그는 뒤로 늘어뜨린 머리카락과 옷자락을 휘날리며 단숨에 십 장을 훌훌 날아가더니 허공에서 걸음을 걷듯이 작은 배 위로 곧장 떨어져 내렸다.
곽교진은 날아드는 자가 광양삼절이 아님을 알고 눈을 치켜떴다.
십 장을 날아와서 절정고수만이 시전 할 수 있다는 능공허도(凌空虛道)를 펼칠 정도라면 절정경지에 이른 실력일 것인데 새파랗게 젊은 놈이었다.
“네놈은 또 누구냐?”
“임시 고용된 보표.”
장천운이 옆구리의 현월을 뽑았다. 그러고는 발검하던 그대로 곽교진을 향해 뻗었다.
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검첨을 중심으로 반경 석 자 허공이 이지러졌다.
장천운의 검세가 만만치 않다는 걸 직감한 곽교진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도를 뽑았다. 그러고는 허공을 향해 올려쳤다.
“이노오옴!”
시퍼런 도기가 거센 파도처럼 뻗어나갔다.
일순간, 두 줄기 강력한 기운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콰아아아아! 콰광!
응축된 기운이 폭발하자 작은 배의 선수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부서졌다.
곽교진 바로 뒤쪽에 있던 두어 명도 부서진 기파에 휩쓸려서 피를 뿌리며 뒤로 널브러졌다.
“육지 쪽으로 물러서!”
배 뒤쪽에 타고 있던 자들이 대경해서 외치며 육지 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 와중에도 장천운과 곽교진은 선수가 부서진 배 위에서 경천동지의 공방을 펼쳤다.
콰아아아아! 콰광! 콰과광!
그나마 겨우 버티던 배가 단 두어 수만에 폭발음을 내며 산산이 부서졌다.
폭포의 역류처럼 허공으로 솟구친 물보라에 두 사람의 모습이 가려졌다.
“갑시다!”
왕규가 소리치며 배를 박차고 신형을 날렸다.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져 있던 광양삼절도 왕규를 따라서 배를 떠났다.
미친놈의 헛소리로 치부했다.
애송이가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생각했다.
관정은 부끄러워서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헛소리를 한 놈도 나고, 세상을 모르는 놈도 나였구나.’
셋이면 충분히 곽교진을 상대할 수 있을 거라 말했다. 잘하면 이길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마음마저 있었다.
다 개소리였다. 망상이었다.
아마 자신들이 분노한 곽교진을 상대했다면 이삼 초식 만에 하나 정도는 당했을 거고, 십 초 이내에 둘은 쓰러졌을 것이었다.
그게 현실이었다.
곽교진의 무공을 보지 못했다면 영원히 착각했을 냉혹한 현실.
“일단 막는 놈이 있으면 밀쳐내고 무조건 이곳에서 멀어지고 봅시다.”
왕규가 관씨 삼형제를 향해 말하고는 물속에 서 있는 장강팔련 무사들을 향해 날아갔다.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관씨 삼형제는 입을 꾹 닫고 뒤만 따라갔다.
곽교진은 어이가 없다 못해 허탈감이 들 지경이었다.
십오 초식의 공방을 벌였는데도 애송이는 여전했다.
단칼에 목을 치기는커녕 이제는 자신의 패배를 걱정해야할 판이었다.
콰광!
일성 굉음과 함께 강력한 기의 충돌이 일었다.
뒤로 훌쩍 날아가서 강 위에 둥둥 떠 있는 배의 잔재를 밟고 몸을 세운 그는 상대를 노려보았다.
놈 역시 부서진 배의 잔재 위에 내려서서 강바람에 옷자락을 휘날리고 있었다.
‘이 곽교진이 저딴 놈 하나 어쩌지 못하다니.’
그 순간, 곽교진의 눈매가 파르르 떨렸다.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삼십 년 동안 강호를 종횡한 무사의 피가 복수심보다 더 진하단 말인가. 저놈과 겨룰수록 호승심이 커지면서 자식의 죽음에 대한 복수심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상대가 원수인 광양삼절이 아니기 때문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아니, 차라리 그러면 마음이라도 편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자신이 그게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복수심이 먼저라면 도주한 광양삼절을 쫓아야 옳지 않은가 말이다.
그래서 더 가슴이 쓰렸다.
“네놈은……. 누구냐?”
“말씀드린 대로 임시 보표요. 그렇게만 아십시오.”
“천하에 너 같은 놈이 있을 줄 몰랐구나.”
“아들이 왜 죽었는지는 아십니까?”
곽교진의 눈에서 다시 살기가 꿈틀거렸다.
단 하나 있는 외아들이 죽었거늘, 이유가 뭐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수종이는 착한 놈이었다. 가끔 말썽을 피울 때도 있었지만,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은 하지 않았다. 내 관가 놈들을 절대, 절대로 용서치 않을 것이다.”
착했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다?
부모들은 자식을 대부분 그렇게 생각한다. 특히 자식을 자주 돌보지 못한 부모일수록 더 그랬다.
심지어 강박적으로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아마 곽교진도 강호를 종횡하느라 아들과 마주한 적이 많지 않을 것이었다.
아들에 대해서 모르는 게 당연할지도…….
장천운은 거친 얼굴의 곽교진이 왠지 안쓰럽게 느껴졌다.
“죽은 이유부터 알아보십시오. 복수는 그 후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흥! 네놈이 관여할 일이 아니니라! 죽은 건 내 아들이야!”
곽교진이 악을 쓰듯 외치며 장천운을 향해 날아갔다.
장천운은 더 이상 그를 상대하지 않고 뒤로 몸을 날렸다.
장강 위에 뿌옇게 낀 물안개 속으로 그의 몸이 녹아들었다. 그러고는 거짓말처럼 사람들의 눈에서 사라졌다.
“이노오오옴!”
곽교진이 노성을 내질렀다.
콰아아아!
그의 주위 이 장 이내의 물이 폭발하듯 솟구쳤다.
사라진 장천운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났다.
설마? 하는 아들에 대한 불신이 불쑥 고개를 쳐든 것이다.
‘그럴 리가 없어. 수종이가 얼마나 착한 아이였는데…….’
그가 아들과 헤어진 것은 아들이 일곱 살이었을 때다. 그리고 스무 살이 넘었을 때 다시 만났다. 그래봐야 일 년에 한두 번 보는 정도였지만.
‘흥! 광양산장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수종이를 나쁜 아이로 몰아가겠다는 건가?’
그래, 그럴 가능성이 크다.
‘좋아, 그럼 내가 확실한 증거를 찾아내서 네놈들의 더럽고 야비한 수작을 만천하에 까발려주마!’
***
장천운은 곽교진과 장강팔련 무사들이 추적해오지 않는다는 걸 확인한 후 걸음을 늦췄다.
장강에서 십 리 정도 떨어진 곳.
저 앞쪽의 숲 가장자리에 왕규와 광양삼절이 서 있었다.
장천운이 다가가자 관정이 포권을 취했다.
“고맙네. 그리고 사과하지.”
“사과요? 뭘 말입니까?”
“내 아우들이 자네를 모욕적으로 대한 거 말이네.”
“새파란 애송이에게 그 정도 말이면 많이 참으신 거죠.”
설마 그렇게 말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듯 관정이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관각은 슬쩍 고개를 돌렸고, 관초는 이번에도 직접적으로 말했다.
“솔직히 새파란 것은 사실이지 뭐.”
그래도 머쓱한 표정까지 감추지는 못했다.
장천운은 의외로 순박하게 보이는 그 모습을 보고 실소를 지었다. 그러다 문득 든 호기심에 질문을 던졌다.
“관 대협, 용화성 공자의 친구 분이 계신 곳은 어딥니까?”
그저 동정일수의 친구라는 자가 누군지 궁금해서 물어봤을 뿐이었다. 무림십룡의 친구라면 예사 인물은 아닐 테니까.
그런데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무적장(無敵莊)이네.”
“무적장?”
되묻는 왕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장천운의 눈에서도 순간적으로 섬광이 번쩍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