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152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09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152화
“우리 힘이 점점 강해져서 선창 쪽으로 세력을 넓히니까, 그 개새끼들이 본보기를 보인답시고 홍설루의 창기 얼굴을 칼로 긁어버렸지 뭐냐.”
“죽을 짓을 했군요.”
술과 창기는 흑월회의 밥줄이다.
뒷골목 인생에게 밥줄은 목숨만큼이나 중요한 것이었다.
밥줄이 끊기면 굶어죽거나, 다른 먹거리를 찾기 위해서 피 튀기는 싸움을 벌여야 했다.
얼굴이 긁힌 기녀야 더 말할 것도 없고.
“그런데……. 정말 구천성의 무사가 된 거냐?”
씩씩거리던 강무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구천성의 무사는 흑도에게 하늘이다. 함부로 대하다가는 목이 잘려도 할 말이 없다. 전에는 자신 밑에 있던 똘마니였다 해도 구천성 무사가 되었다면 말조심하는 게 오래 사는 길이었다.
“그렇게 됐습니다. 부담 갖지 마십시오. 무산 형은 어쨌든 제가 형이라고 불렀던 분 아닙니까?”
“이거 쑥스러운데?”
강무산이 뒷머리를 박박 긁으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장천운이 마주 미소를 지으며 본론을 꺼냈다.
“그보다 좀 도와주었으면 할 일이 있습니다.”
“내가? 뭘? 말해봐라. 할 수 있는 일이면 뭐든 할 테니까.”
“우리를 따라다니는 꼬리가 있습니다. 몇 놈이나 되는지 알아봐 주십시오. 너무 가까이 가면 위험하니 조심해야 합니다.”
“흐흐흐, 그런 일이라면 걱정 마라. 홍구로 안에 있으면 그 자식 뱃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도 알아낼 수 있으니까.”
“단혈방과 혈수문은 제가 손을 좀 봐놓겠습니다.”
강무산의 눈이 커졌다.
“그래?”
그들만 정리하면 무창에서는 흑월회에게 덤빌 흑도 놈들이 없는 것이었다.
강무산은 아직 장천운이 어떤 존재인지 모르고 있지만, 홍구로의 귀호가 한 말이기에 흥분해서 입안이 바짝 말랐다.
“무창의 흑도를 정리할 생각입니다.”
이어진 장천운의 말에 주먹을 불끈 쥔 강무산의 얼굴이 벌게졌다.
장천운은 말 몇 마디로 무창의 흑도를 뭉개버리고 왕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당 노인을 만나고 오면 선배가 이곳에 남으십시오.”
왕규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을 발했다.
그는 구천성의 구석에 처박혀 있는 것보다 이런 뒷골목에서 대장 노릇하는 게 훨씬 마음에 들었다.
“그럴까?”
“아는 사람이 있으면 데려와서 조용히 정리하고, 무력과 정보망을 최대한 키워보쇼.”
왕규는 그 말을 듣고서야 장천운의 계획을 짐작했다.
장천운은 단순히 무창의 흑도를 장악하기 위해서 정리하려는 게 아니었다. 사람들이 미처 생각지 못한 곳에서 만에 하나 벌어질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겠다는 뜻이었다.
누가 무창의 흑도세력을 이용해 구천성의 허를 찌를 거라 생각할 수 있겠는가.
“어느 정도까지 키우면 되겠나?”
“십이지부 중 하나를 상대할 수 있는 정도면 됩니다.”
왕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구천성 십이지부가 어디 촌구석의 그렇고 그런 삼류문파인 줄 아나?
그런데 장천운이 한마디 덧붙였다.
“호 형에게도 인원을 청할 거요.”
천은방의 정예를 무창으로 불러들이겠다고?
그렇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십이지부와 힘을 겨룰 정도는 아니어도 한 동안 버틸 힘은 갖춰질 것이었다.
“제길, 한 동안 발바닥에 땀 좀 나겠군.”
“일단 단혈방과 혈수문부터 처리해 놓죠.”
***
해가 질 무렵, 장천운은 왕규와 함께 단혈방을 방문했다.
일개 흑도 방파에게 두 사람은 사신이었다.
정문으로 태연히 들어간 장천운은 보이는 족족 때려눕혔다.
침을 찍 뱉으며 꼬나보는 놈은 머리를 후려갈겼고, 다리를 건들거리는 놈은 다리를 부러뜨려버렸다.
특히 주제도 모르고 무기를 휘두른 놈은 팔다리가 다 부러져서 다리 잘린 풍뎅이처럼 바닥을 뱅뱅 돌며 비명을 질렀다.
그가 지나간 뒤 달려 나온 자들은 왕규 차지였다.
왕규는 오랜만에 마음껏 기분을 풀었다.
“그래, 오늘 아니면 언제 또 손맛을 보겠냐!”
단혈방 무사들이 보기에는 가볍게 동료들을 때려눕히는 장천운보다 무지막지하게 손을 쓰는 왕규가 훨씬 더 고수처럼 느껴졌다.
장천운에게 당한 사람은 그 자리에서 꼬꾸라지는데 반해 왕규에게 얻어맞은 자들은 훌훌 날아가서 널브러졌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전신에서 뿜어지는 기운도 왕규가 더 거센 듯했고, 생김새도 그가 훨씬 더 그럴듯해 보였다.
정문에서 단혈방주의 거처까지 이십여 장. 그 거리를 가는 동안 쓰러진 자들의 숫자만 일백이 넘었다.
단혈방 진입 일각 후.
장천운은 단혈방주 만대평의 팔다리를 하나씩 부러뜨리고 무심한 어조로 주의를 주었다.
“한 번 더 흑월회에 시비 걸면 목뼈가 바삭바삭 부서질 거요. 명심하쇼.”
만대평은 학질 걸린 사람처럼 몸을 떨었다.
사혈객이라 불리며 일류고수로 대접받는 자신이 팔다리 부러질 동안 손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했다.
상대는 까마득한 경지에 올라 있는 고수일 뿐만 아니라, 눈썹 한 올 까딱하지 않고 팔다리를 똑똑 부러뜨릴 정도의 독심도 지닌 자였다.
더구나 그의 뒤에는 그보다 더한 고수로 보이는 자가 눈을 부라린 채 팔짱을 끼고 거만한 자세로 서 있었다.
말 한마디 잘못하면 목이 달아나는 건 물론이고, 단혈방도 오늘로 끝장일 것이었다.
공포에 젖은 그는 저항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공손히 말했다.
“아, 알겠소, 공자.”
“혈수문도 곧 이곳과 비슷하게 될 것이니 아쉬워할 것 없소.”
혈수문까지?
만대평의 몸이 후들후들 떨렸다. 그래도 혼자 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듣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다.
“앞으로 흑월회와 사이좋은 형제처럼 지낸다면 이전의 구역은 다스릴 수 있을 거요. 선택은 방주가 알아서 하시오. 죽어서 오물 가득한 하수구에 처박힐 건지, 아니면 배 두드리며 지금 생활을 누릴 건지.”
만대평에게 한 줄기 희망을 던져준 장천운은 왕규와 함께 단혈방을 나서자마자 곧장 혈수문으로 갔다.
장천운은 단혈방보다 좀 더 심하게 손을 썼다.
혈수문 무사들이 무창에서 제일 독종이라는 말은 사실이었다. 또한 장천운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무창 제일 흑도문파로 혈수문을 꼽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독한 놈은 더 독하게 다루어야만 말을 듣는 법.
장천운은 한 대 맞고 꼬꾸라지는 놈을 다시 몇 대 더 때려 기를 완전히 죽였다.
그런 쪽으로는 혼천수라권이 제격이었다.
왕규도 뒤지지 않겠다는 듯 피에 미친 수라처럼 무자비하게 손을 썼다.
밥 먹다 뛰어나온 혈수문주 오서는 수하 다섯과 함께 죽기 살기로 달려들었다.
장천운은 오서가 제발 살려달라고 빌 때까지 두들겨 팼다.
얼마나 두들겨 팼는지, 흑월대의 수련을 봐서 어느 정도 면역이 되어있던 왕규조차 질린 표정을 지을 정도였다.
그래도 오서는 독종답게 일각이나 버텼다.
장천운은 오서를 딱 죽지 않을 정도로, 그것도 고통스런 부분만 골라서 쉼 없이 계속 팼는데도 처음 때릴 때나 일각 후에나 표정이 똑같았다.
오서는 무지막지한 고통보다 변함없는 장천운의 무표정에 더 큰 공포를 느껴야만 했다.
장천운은 쓰러진 오서에게도 주의를 주었는데, 만대평에게 했던 말과는 조금 달랐다.
“흑월회의 말을 듣기 싫으면 지금 말해. 뼈를 하나하나 분리하고 힘줄을 모조리 뽑아버린 다음 쥐새끼들의 먹이로 던져줄 테니까.”
정신이 무너진 오서는 더 이상 독기를 부리지 못했다.
“뭐든…….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공자.”
***
밤에 포양객잔으로 장천운을 찾아온 강무산은 낮에 봤을 때와 표정이 달랐다.
설마하니 하루 만에, 아니 한 시진 만에 단혈방과 혈수문을 정리할 줄이야.
이제 무창의 흑도세력 누구도 감히 흑월회에 칼을 겨누지 못할 것이었다.
장천운은 그의 마음을 알면서도 낮에 봤을 때와 조금도 다름없는 말투로 물었다.
“알아봤습니까?”
“모두 다섯 놈이네. 한 놈만 자네 뒤를 쫓고, 나머지는 은밀하게 숨어서 감시하고 있더군.”
강무산이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계속 반말을 해야 하는지 존대를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장천운은 신경 쓰지 않았다. 어떤 말투를 쓰든 본인이 편한 게 나았다.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강무산이 손가락으로 탁자 위에 무창의 큰 거리를 대충 그리고는 포양객잔 주위의 길목을 콕콕 찍었다.
귀호도 알고 있는 곳이었다.
“여기, 여기, 여기에 한 놈씩 있고, 한 놈은 홍구로에 있네. 그리고 자네 뒤통수를 노려보며 따라다니는 놈은 건너편에 있는 영산객잔 이층에 있네.”
***
‘도대체 무슨 명령을 받고 온 거지?’
사혼객 제 오대 대주인 조등은 장천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소성주 사마경의 명령을 받고 나왔을 게 분명한 놈이 흑도 건달들과 싸움질이나 하다니.
마음 같아서는 당장 놈을 붙잡아서 정확한 목적을 밝혀내고 싶었다.
살점을 뜯어내고 불꼬챙이로 전신을 쑤셔대면 놈도 입을 열 수밖에 없으리라!
하지만 마음뿐이었다.
놈은 장로들도 학을 떼며 고개를 젓는 절정고수였다. 혼자서 단혼객 십여 명을 죽인 놈.
당하의 전쟁에 출전했던 사람들은 누구도 그를 적으로 삼고 싶어 하지 않았다.
‘정말 놈이 그렇게 강할까? 아무리 봐도 특별할 것 없는 놈 같은데…….’
조등은 장천운의 손에 죽어간 자들과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며 잠깐 상념에 잠겼다.
아주 잠깐의 상념.
그런데 그가 흠칫하며 정신을 차렸을 때, 포양객잔 창문을 통해 보이던 세 사람 중 하나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장천운이.
‘응? 이 자식이 어딜 갔지?’
뒷간에 갔나?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다른 두 사람이 그대로 앉아 있는 걸 보면 그럴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는 포양객잔에서 눈을 떼지 않고 찻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때였다.
콰직.
엄청난 힘이 뒷목을 조이며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잠깐 이야기 좀 할까?”
무심한 목소리.
오싹 소름이 돋은 조등은 입을 달싹였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 없었다.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서 죽는 방법이 달라질 거다. 마차바퀴에 깔린 쥐새끼처럼 짓이겨져서 처참하게 죽느냐, 아니면 사혈을 찔려서 고통도 느끼지 못하고 깨끗하게 죽느냐.”
장천운은 조등을 어깨에 걸치고 삼층의 객방으로 올라갔다.
일층에 있는 조등의 수하는 상관이 지옥으로 끌려가고 있는 데도 포양객잔으로 들어가고 있는 젊은 여인의 엉덩이만 바라보고 있었다.
‘씰룩거리며 걷는 걸음을 보니 밤에 제법 엉덩이를 잘 돌리게 생겼군. 흐흐흐.’
그 시각. 구석진 곳의 객방으로 들어간 장천운은 조등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생긴 걸 보니 어지간해서 입을 열기 힘들 것 같군.”
조등의 눈에서 서서히 독기가 피어났다.
‘흥! 네놈은 내게 한마디도 들을 수 없을 거다.’
장천운은 조등의 눈빛을 읽어내고 입술 끝을 비틀었다.
“나도 어차피 당신이 쉽게 입을 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대령주가 입 싼 자를 보내진 않았을 테니까.”
조등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놈은 자신이 누구의 명령을 받고 왔는지 아는 듯했다.
도대체 뭐가 잘못 돼서 이 꼴이 된 거지?
“사실 입을 열지 않아도 상관없어. 나를 미행한 이유는 대충 감을 잡았으니까. 그래도 궁금한 것이 있어서 몇 가지 물어볼 생각이야. 대답하든 말든, 그건 당신이 알아서 해.”
불길한 예감이 든 조등은 이를 악물었다.
그도 고문을 많이 해보았다. 고문을 받는 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고문자가 고문을 받는 자의 고통을 신경 쓰지 않을 때였다.
그런 자들은 세상의 그 어떤 극악한 고문도 목적을 위해서라면 망설이지 않으니까.
“일단 손가락부터 시작하지. 그냥 밟아서 하나, 하나 뭉갤 테니까 말하고 싶으면 언제든 고개를 끄덕여.”
장천운은 담담히 말하고 조등의 왼손 새끼손가락을 발로 밟았다.
그러고는 정말로 우드득 소리가 나도록 살과 뼈를 동시에 짓뭉갰다.
살이 으깨지고 뼈가 바스라지면서 핏물이 발밑에서 흘러나왔다. 으깨진 손가락 끝에서 가느다란 핏줄기가 뿜어지며 장천운의 신발을 검붉게 적셨다.
‘끄아아악!’
입을 딱 벌린 조등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눈은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고, 안색은 창백하다 못해서 시퍼렇게 변했다.
“이런, 질문도 안 하고 손가락부터 없앴군.”
혀를 찰 것처럼 고개를 흔들며 나직이 말한 장천운이 조등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어차피 진기로 방을 감싸서 밖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쯤 포양객잔으로 향하는 길목에 숨어 있는 자들이 하나 둘 제거되고 있을 것이었다.
“먼저 하나 묻지. 내가 구천성에서 나온 목적을 알아내려고 뒤를 밟았나?”
“…….”
“역시 말하기 싫은가 보군.”
장천운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무명지를 밟았다.
조등의 눈이 거세게 떨렸다.
‘이 미친놈아! 아혈을 풀어줘야 말을 하든 말든 할 것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