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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149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27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149화

63장: 잃은 것과 얻은 것

 

 

남사명은 왕규의 몸에 독인지 해독제인지 모를 약물을 차례대로 투여했다.

어느 날은 비명이 들렸고, 어느 날은 신음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장천운은 왕규가 처한 상황을 짐작하고도 남았다.

아마 신음소리조차 나지 않았을 때가 더 괴로웠을 것이다.

그래도 효과는 있어서, 닷새가 지나자 왕규의 얼굴에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무려 일곱 가지나 되는 약물을 실험한 후의 일이었다.

장천운도 그 동안 두 사발의 피를 뽑아냈는데, 남사명의 표정이 밝은 걸 보니 아직도 자신의 피에 해독 효과가 남아 있는 듯했다.

그렇게 칠일 째가 되었을 때, 남사명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단 당가 놈의 독은 최대한 중화가 되었다. 여독이 조금 남긴 했는데, 당장은 없앨 방법이 마땅치 않다.”

왕규가 불안해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여독을 없애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지옥을 넘나드는 고통을 참았는데도 해독이 되지 않다니.

하지만 남사명은 크게 걱정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특별한 해는 없는데, 내 생각대로라면 머리가 다 빠질 거다.”

“예?”

대머리가 된다고?

그뿐이 아니다.

“아마 털이란 털은 다 빠질지도 모른다.”

설마…… 아래쪽도?

“그래도 목숨에는 지장이 없으니 안심해라.”

“저기…… 그 여독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초당은 없앨 수 있습니까?”

“당가 놈도 지금 남아 있는 여독은 없애기 힘들 거다. 독의 성질이 완전히 다르게 변했거든.”

사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독왕이 해독하려고 손을 썼다는 걸 알아보면 왕규를 죽이려 할 것이다.

“귀독마종의 독에 당하고도 목숨을 건졌으니 어딥니까? 너무 상심 마십시오.”

장천운이 왕규를 달랬다.

하지만 그 정도 말로는 왕규의 마음이 풀어지지 않았다.

지금 상심하지 않게 생겼어?

늦장가라도 들어서 자식을 만들어볼 생각인데, 나이 먹은 대머리를 어떤 여자가 좋아해?

‘지미, 절에 들어가면 편하겠군. 머리를 깎지 않아도 되니까.’

왕규가 자괴감에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남사명이 그나마 한 가지 희망을 안겨주었다.

“대신 앞으로 삼십 년은 거뜬히 남자구실을 할 수 있을 거다.”

“예?”

“너에게 먹인 약 중에 그쪽으로 아주 좋은 것이 들어갔거든.”

그 정도까지 말해줬는데 무슨 말인지 모른다면 정보장사꾼 왕규가 아니다.

축 처졌던 그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눈빛도 되살아났다.

“정말이죠?”

“내가 네놈에게 왜 거짓말을 해?”

히죽, 왕규의 표정이 밝아졌다.

하나를 얻기 위해서 하나를 잃을 때가 있다.

머리카락, 아니 털을 잃은 대신 정력을 얻었으니 손해라곤 할 수 없었다.

‘어쩐지 오늘 아침에 그것이 유난히 단단하게 서더라니…….’

장천운도 남사명의 말뜻을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넌지시 물어보았다. 별 관심 없다는 듯 담담한 표정으로.

“저, 그게 무슨 약인데……?”

“새파란 놈이 알아서 뭐하게?”

툭, 쏘아붙인 남사명이 대답도 들려주지 않고 몸을 돌렸다.

 

***

 

다음 날, 장천운은 계곡을 떠나기 위해서 간단한 준비를 마쳤다.

남초초가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주 놀러올게.”

“정말요?”

“그러어엄. 내 동생이 있는 곳인데.”

남초초는 발그레하니 상기된 얼굴로 밝게 웃었다.

“알았어요.”

장천운과 왕규는 남사명과 절룩거리는 남초초의 환송을 받으며 기문진을 통과했다.

남초초는 기문진 앞에서 손을 흔들며 작별하고, 남사명이 계곡 입구까지 따라갔다.

묵묵히 따라가던 그는 계곡이 거의 다 끝나갈 즈음에서야 입을 열었다.

“귀독마종을 어떻게 할 생각이냐?”

“그에게서 받아내야 할 답이 있습니다. 죽이는 것은 그 다음이 될 겁니다.”

“조심해야 할 거다. 네가 비록 독에 대한 내성이 강하긴 하지만, 놈의 독 역시 일반적인 독이 아니니라.”

“최대한 조심할 것이니 걱정 마십시오. 저도 독에 당해서 죽고 싶진 않습니다.”

그 후 잠시 대화가 끊겼다.

왕규가 이제 대머리에 대한 아쉬움을 털어냈는지 밝은 표정으로 앞장서 걸었다.

그렇게 계곡 입구에 도착해서 헤어질 때가 되자 남사명이 말문을 열었다.

“정말 초아를 동생처럼 생각하냐?”

“물론이죠.”

“초아는 무척 외롭게 자란 애다. 장난으로 한 말이라면 지금 말해라. 나중에 충격 받게 하지 말고.”

그 말에 걸음을 멈춘 장천운이 고개를 돌려서 남사명을 바라보았다.

“외롭게 자란 것은 저도 마찬가집니다. 어쩌다 얻은 여동생이 하나 있긴 한데, 세상에 친혈육은 저 혼자뿐이죠. 그래서 오빠가 되어주기로 한 겁니다.”

“진짜 여동생으로만 생각할 거냐?”

남사명이 그답지 않게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장천운은 그 말속에 숨은 뜻을 알면서도 모른 척 대답했다.

“한번 동생은 평생 동생이라는 게 제 신조죠.”

남사명은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았지만, 일단은 외로운 남초초에게 기댈 기둥이 생겼다는 것으로 만족했다.

남녀관계야 나중에 어찌될지 누가 안단 말인가?

“좋아, 네가 정말 그런 마음이라면 내 부탁하나만 들어줘라.”

“말씀해 보십시오.”

“만약 나에게 일이 생기면…… 초아를 너에게 보내마. 잘 돌봐줘라. 불쌍한 아이니까.”

“알겠습니다. 그리고 저도 한 말씀드리겠습니다.”

“해봐라.”

“지금 당장 결정하시라고는 않겠습니다. 적당한 때, 초매와 함께 구천성으로 오십시오.”

“나는 사람이 많은 곳이 싫다.”

남사명이 단호하게 거절했다.

짐작하고 있던 대답. 하지만 장천운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구천성 외곽에는 조용한 곳이 많습니다. 그곳이 싫다면 다른 장소에 적당한 곳을 마련해 보겠습니다. 정말 초초를 생각하신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 말에 남사명의 눈빛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장천운은 모른 척하고 한마디 더했다.

“초매도 스무 살이 넘었습니다. 언제까지 사람 구경도 할 수 없는 이곳에서 노선배님과 단둘이서 살 수만은 없잖습니까? 그래도 결정을 내리시기 힘들다면 저번에 말씀하신 부탁이라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으으음……. 알았다, 한번 생각해보마.”

장천운은 그쯤에서 물러섰다. 더 밀어붙이면 역효과만 날뿐이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남사명은 장천운과 왕규가 사라질 때까지 그곳에 서서 지켜보았다.

그리고 두 사람이 완전히 사라지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쩌면 너무 내 생각만 했는지도 모르겠군. 초아도 커서 이제 어른이 됐는데…….’

 

***

 

탁자 위에는 보는 것만으로도 군침을 고이게 하는 맛깔스러운 요리가 놓여 있었다.

그런데 요리를 앞에 둔 사마경은 이것저것 깨작깨작 뒤적이기만 하다가 힘없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토라진 아이처럼 고개를 돌렸다.

“안 먹을 거야. 치워.”

“아가씨…….”

“먹고 싶지 않아. 송하야, 가져가.”

소연추는 한숨이 나오려는 걸 겨우 참았다.

사흘 전부터 식사량이 점점 줄더니, 어제부터 요리는 먹는 둥 마는 둥하고 차만 마셨다.

무공을 수련한다고 하루의 대부분을 지하연무실에서 지내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역효과만 날 뿐이다.

‘대체 왜 이러시지?’

이유를 알지 못하니 더 답답했다.

그때 가만히 서서 바라보기만 하던 연송하가 넌지시 말했다.

“소성주님, 오빠가 돌아왔을 때 볼이 홀쭉해져 있으면 보기가 안 좋을 거예요.”

사마경이 힐끔거리며 반응을 보였다.

그제야 이유를 알게 된 소연추는 어이가 없었다.

‘그럼 천운이 없어서……?’

그래서 입맛이 없었나?

어쩌면 불안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러나저러나 장천운 때문인 것은 마찬가지지만.

“그냥 치워, 송하야. 입맛이 없으신가봐.”

소연추는 알고도 모른 척하며 연송하에게 말했다.

연송하가 머뭇거리자, 사마경이 슬며시 젓가락을 집었다.

“됐어. 조금만 먹지 뭐.”

소연추는 웃음이 나오려는 걸 겨우 참고 고개를 돌렸다.

조금만 먹겠다는 사마경은 한참 동안 젓가락을 놓지 않았다. 오랜만에 음식이 들어가니 그 동안 잠자고 있던 식욕이 깨어났나 보다.

그렇게 사마경이 요리를 반 정도 비웠을 때였다. 방 밖에서 영호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성주님, 백리 대주가 찾아왔습니다.”

“지금 식사 중이라고 하세요.”

소연추가 대신 대답했다.

사마경은 문 쪽을 힐끗 쳐다보고는 다시 식사에 열중했다.

이상할 정도로 짜증이 났다. 이틀 만의 제대로 된 식사를 방해하는 백리우진이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웠다.

“소성주,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급한 일이니 접견을 허락해 주십시오. 아마 장 대주가 있었다면 만나줬을 겁니다.”

이번에는 백리우진이 직접 말했다.

왠지 모르게 조급한 목소리였다. 거기다 장천운까지 들먹이지 않는가 말이다.

사마경은 입 안 가득 넣은 음식을 씹어서 삼키고는, 이마를 찌푸리며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들여보내요.”

신경질적으로 명을 내린 그녀는 입가에 묻은 음식찌꺼기를 닦아냈다.

 

백리우진은 사마경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고 침을 꿀꺽 삼겼다.

하지만 그 이상의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그녀의 미모에 맛이 간 것처럼 보여서 약점을 노출할 필요는 없었다.

“얼마나 급한 일이어서 식사하고 있는 와중에 찾아온 거지?”

백리우진은 좌우를 둘러보았다.

방 안에는 사마경과 소연추, 연송하만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그도 모르지 않았다.

어딘가에 사마경을 지키는 비밀호위사가 있을 것이다. 구천무령과 신비의 무사.

자신의 무공으로도 찾아낼 수 없는 자들.

이미 당하의 전쟁에서 그들의 가공할 무위를 접해보았지 않은가.

“대령주께서 마음을 바꾸셨습니다.”

백리우진의 간단한 말 두어 마디에 사마경의 표정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무슨 말이지? 마음을 바꾸다니?”

“상황이 불리하게 흐른다 싶으면 명분을 포기할 작정을 했습니다.”

“무력을 써서라도 나를 쫓아내겠다?”

사마경이 직설적으로 되묻자, 백리우진은 바로 대답을 못했다. 설마 그녀가 그렇게까지 직설적으로 말할 줄은 생각을 못한 것이다.

그는 숨을 고른 후에야 겨우 대답했다.

“그럴 생각입니다.”

“왜 그걸 나에게 말해주는 거지? 백리 대주는 본래 대령주의 사람 아니었던가?”

칼끝처럼 날카로운 질문이 백리우진의 고막을 후볐다.

백리우진의 눈빛이 찰나간 흔들렸다.

사마경이 쉽게 상대할 수 없는 사람이란 걸 그도 모르지 않았다. 오죽하면 공손백과 나극조차 그녀에 대한 판단을 바꾸었을까.

그런데 막상 직접 상대해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더 까다로웠다.

“잘못 아셨습니다. 저는 대령주의 사람이 아니라, 숙부님를 따르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 구천성의 주인을 따르는 사람이지요.”

“그 말, 사실이었으며 좋겠어.”

“제가 어찌 소성주께 허언을 하겠습니까?”

어차피 작정한 바다.

장천운이 없는 지금이 아니면 언제 사마경의 마음을 얻을 수 있으랴.

더구나 최근 들어서 철기보의 하후경과 풍운산장의 모후가 시간만 나면 사마경 근처에 얼쩡거리고 있었다.

자칫하면 굴러온 돌에 박힌 돌이 밀려날 판.

백리우진은 결심을 굳히고 비밀 하나를 더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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