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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146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10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146화

죽음의 길이 될지 모르는 데도 천은사호와 호위무사들은 망설이지 않고 그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가히 호양청에 대한 수하들의 신뢰를 엿볼 수 있는 상황.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장천운은 새삼스런 눈빛을 반짝였다.

‘흠, 수하들이 목숨을 아까지 않고 따른다는 게 쉽지는 않은 일인데…….’

왕규도 감탄한 표정이었다.

“호오, 제법인데?”

그 사이 설가장과 호양청 일행이 뒤엉켰다.

어둠 속에서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와 비명이 터져 나왔다.

 

강호는 천은공자를 평할 때 무공보다 학문을 더 높이 평가했다. 평소 그가 무공실력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바람에 십룡을 논할 때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항상 제외시켰다.

그러나 호양청의 무공은 세상에 알려진 것보다 더 강했다.

검설당주 동철도 수주 일대에서 알려진 고수였지만 호양청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단 몇 번의 공방 만에 얼굴을 일그러뜨린 동철은 눈을 치켜뜨고 악을 썼다.

“이제 보니 세상을 속이고 있었구나!”

“속이긴 누가 속였단 말인가!”

호양청은 냉랭히 소리치고 더욱 거세게 몰아붙였다.

그의 검은 빠르고 변화무쌍했다. 어둠 속에서는 감각으로 상대의 공세변화를 감지해야 하거늘, 호양청의 공격은 감각만으로 잡아내기 힘들만큼 빨랐다.

검기에 휩쓸려서 서너 군데 상처를 입은 동철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공포를 느낀 그는 전력을 다해서 방어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때였다. 검설당 무사들 뒤쪽에서 이십여 명이 나타났다.

“동 당주! 그놈은 우리가 맡겠네!”

설중석을 비롯한 장로 넷과 설가장 무사들이었다.

설중석과 장로 이고응이 호양청을 합공했다.

나머지 장로 둘과 함께 온 무사들은 천은사호를 공격했다.

팽팽하게 느껴지던 전황이 빠르게 한쪽으로 기울었다.

천은방의 호위무사들이 하나 둘 쓰러지고, 천은사호마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물러서기에 바빴다.

“소방주! 저희가 막을 테니 어서 빠져나가십시오!”

백궁이 참담한 마음으로 소리쳤다.

그러나 호양청은 듣지 못한 사람처럼 전력을 다해서 설중석과 이고응을 상대했다.

초수가 더해 갈수록 숨이 턱턱 막혔다. 진기의 흐름도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결국 나의 꿈은 헛된 망상에 불과했던가?’

스무 살, 불현 듯 다가온 깨달음으로 천지의 변화를 읽게 된 후부터 그는 혼자만의 꿈을 꾸어왔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 차분하게 준비한 세월만 칠 년. 그는 최소한 십 년 안에 자신의 꿈을 완성시킬 자신이 있었다.

아마 부친이 갑작스런 결정만 내리지 않았다면 그의 꿈은 여전히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친의 잘못된 결정 한번이 천기를 뒤틀어 놓았다.

그 바람에 자신의 운명조차도 바뀌었다.

‘아! 하늘이 나를 원치 않는 건가!’

콰과과광!

귀청을 찢는 굉음이 어둠을 뒤흔들었다.

충돌의 여파로 주르륵 물러선 설중석과 이고응은 경악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젊은 호양청을 둘이 합공한다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럼에도 도주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 자존심을 접었다.

그러나 호양청과 십여 수 겨뤄본 지금, 더 이상 자존심을 생각하지 않았다. 자존심은커녕 혼자서 상대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과연 천은공자로다!”

설중석의 입에서 짧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반면, 머리가 풀어헤쳐진 채 이 장 가량 물러선 호양청은 이를 악물고 설중석과 이고응을 노려보았다.

입안이 핏물로 가득했다. 숨을 쉴 때마다 핏물이 잇새로 흘러나왔다.

그는 마지막 남은 진기를 모조리 끌어올리고 검을 불끈 움켜쥐었다.

“내 시신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이겼다고 생각지 마시오.”

설중석은 침중한 표정으로 검을 들었다.

그는 설무곡의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수십 년 동안 친구처럼 지내온 천은방을 버리고 구천성을 택하다니.

하지만 이제 와서 검을 거둘 생각도 없었다.

‘내 마음을 이해해라, 호양청. 대신 깨끗하게 죽여주마.’

바로 그때, 세 사람 사이의 공간이 이지러지면서 검은 그림자 하나가 유령처럼 나타났다.

“일 대 이는 공평하지 못한 것 같군. 하나는 내가 맡지.”

어둠 속에서 유령처럼 나타난 그림자는 장천운이었다.

그는 말을 마친 즉시, 호양청의 대답도 듣지 않고 설중석을 향해서 오른발을 내딛었다.

그의 모습이 죽 늘어나는가 싶더니, 이 장 떨어져 있던 거리가 찰나에 좁혀졌다.

설중석은 느닷없는 방해자의 등장에 분노하며 검을 뻗었다.

“어느 놈이 감히!”

장천운은 냉소를 지은 채 검을 향해서 손을 뻗었다.

거리가 한 자 정도 떨어져 있음에도 떵!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이 튕겨나갔다.

절정의 수법인 허공탄수(虛空彈手)였다.

순간적으로 손이 저릿해진 설중석은 대경해서 뒤로 몸을 뺐다. 그러나 장천운의 움직임은 그가 생각한 것보다 몇 배나 빨랐다.

게다가 그가 뻗는 일 수, 일 권은 바위도 부술 정도로 강력했다.

설중석이 좌수를 들어서 필사적으로 방어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직접적인 충돌이 아닌, 기와 기가 다섯 치 간격을 둔 채 부딪치는 데도 팔이 부서질 것만 같았다.

그뿐이 아니었다. 팔에서 시작된 충격은 어깨를 타고 온몸으로 퍼졌다. 온몸의 뼈가 쩍쩍 갈라지는 강렬한 고통에 정신마저 나락으로 떨어졌다.

결국 혼천수라권이 삼초를 마무리 짓기 직전 쾅! 소리가 터져 나오고, 설중석이 피를 뿜으며 뒤로 날아갔다.

장천운은 날아가는 설중석을 놔둔 채 또 다른 격전 속으로 날아들었다.

 

단 한 사람이 싸움에 끼어들면서 전세가 아무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설가장 무사들은 공포에 질려서 사색이 되었다.

설중석을 쓰러뜨린 자는 인간이 아닌 듯했다. 어둠 속을 누비는 그자는 형체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거무스름한 뭔가가 지나간 곳에서는 반드시 피가 튀거나, 사지가 꺾이고,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유, 유령이다! 유령이야!”

“으아악!”

“놈이 그쪽으로 간다! 피해!”

설가장 무사들은 새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정신없이 물러섰다.

그로 인해서 포위망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뭐하는 거요?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쇼!”

장천운이 호양청을 보며 소리쳤다.

일대 일의 싸움이 되면서 이고응을 몰아붙이던 호양청이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분노도, 고맙다는 인사도 지금은 사치다.

살아서 이곳을 벗어난다는 것. 지금은 오직 그것만 생각해야 할 때다. 천은방에 남은 가족을 위해서라도.

‘빚은 나중에 갚겠소!’

입술을 깨문 그는 장천운을 슬쩍 일견하고는 구멍이 뚫린 포위망으로 몸을 날렸다.

천은사호와 호위무사 중 살아남은 자들도 혼신의 힘을 다해서 몸을 빼냈다.

그 직후, 장천운의 모습이 아지랑이 흩어지듯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피 튀기던 혈전장에는 넋이 반쯤 빠진 설가장 무사들만 남았다.

“이런…… 빌어먹을……!”

동철은 호양청이 사라진 곳을 쳐다보며 이를 갈았다.

하지만 그도 잠시 수하들을 향해 미친 듯이 소리쳤다.

“뭐하느냐? 놈들을 쫓아라!”

 

***

 

왕규는 한바탕 피바람을 일으키고 돌아온 장천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로선 장천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들을 도와줬나? 천은방은 구천성의 적이잖은가?”

―불쌍해서?

웃기는 소리다.

―다수에게 공격당하는 호양청일행이 안 되어 보여서?

지나가던 개가 들으면 하품할 말이다.

장천운은 절대 대협의 마음을 지닌 사람이 아니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그 자신이 잘 안다.

차라리 ‘악귀 같은 놈!’이라면 또 모를까.

아니나 다를까 장천운이 말했다.

“공손백에게 버림받은 사람들 아닙니까? 언젠가는 써먹을 수 있을 겁니다.”

“설마 천은방을 끌어들이겠다는 건 아니겠지?”

“못할 것도 없죠.”

지독한 놈!

“저번 전쟁에서 구천성 무사들이 그놈들에게 수없이 죽었는데, 소성주가 자네 의견을 받아들일까?”

“이용해 먹을 곳이 많으니 무조건 마다하시지는 않으실 겁니다.”

“그래도 싫다고 하시면?”

“정 싫다고 하시면…… 그때 없애버리죠 뭐.”

왕규는 말문이 막혔다.

지독한 뿐만 아니라, 정말 징그러울 정도로 무서운 놈이었다.

‘이런 놈하고 원수가 되면 평생 가위 눌린 꿈을 꾸며 살게 될 거야.’

그가 어떻게 생각하든, 장천운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밤바람이 따뜻한 걸 보니 봄은 봄인 모양입니다. 그만 가시죠. 잠을 자야 내일 덜 피곤하죠.”

‘뭐? 봄이 어째? 미친 놈, 사람을 죽여 놓고 지금 잠이 오냐?’

아니다. 직접 자기 손으로 죽인 사람은 없다. 팔다리는 많이 부러뜨렸지만.

왕규는 그래서 더 장천운이 두렵게 느껴졌다.

‘사람 팔다리를 썩은 가지 부러뜨리듯 똑똑 꺾다니. 진짜 악귀 같은 놈이라니까!’

겉으로야 무덤덤하게 대답했지만.

“그러세. 설가장이 자네에게 당한 것도 다 지들 팔자지 뭐.”

 

 

 

62장: 또 다른 독의 고수

 

아침이 되자, 장천운과 왕규는 식사를 마치고 아침햇살을 등에 진 채 대홍산으로 향했다.

대홍산으로 가는 길은 무척 평화로웠다. 바람도 시원했다. 어제 저녁의 피 비린내는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았다.

두 사람이 대홍산 입구에 도착한 것은 그날 오시 무렵이었다.

“독왕이 사는 곳까지 가려면 얼마나 들어가야 하나?”

“백 리쯤 가야 합니다.”

“백 리? 빌어먹게도 깊이 들어가 있군.”

“세상과 단절하고 사실 작정이셨나 봅니다.”

“후우, 젠장…….”

왕규는 한숨을 쉬며 대홍산의 계곡 길로 들어섰다.

대홍산의 아름다운 풍경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고생 고생해서 찾아왔는데 독왕이 없으면 어떡하지? 해독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해독해주지 않으면?

걱정이 태산처럼 쌓였다.

그렇게 고개를 오르내리며 삼십 리 정도 들어갔을 때였다.

장천운이 걸음을 늦추더니 계곡 왼쪽을 올려다보았다.

울창하게 우거진 숲 위쪽으로 절벽이 솟아 있었다.

그런데 그가 바라본 순간 절벽 쪽에서 뭔가가 스치듯 지나갔다.

결코 짐승은 아니었다. 파란색 털을 지닌 짐승은 없으니까.

“왜 그런가?”

왕규가 고개를 틀며 물었다.

절벽 쪽을 바라보던 장천운이 이마를 살짝 찌푸렸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왜? 어디 가려고?”

“절벽 위에 올라갔다 오겠습니다.”

“절벽 위에?”

장천운은 고개만 끄덕이고 절벽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왕규는 따라가지 않았다.

왜 갑자기 절벽을 올라가?

“알았네. 그럼 나는 여기서 점심이나 먹고 있겠네.”

마침 정오가 넘어가는 시각이다. 배도 출출하니 객잔에서 사온 육포나 먹으며 기다리는 게 나을 듯했다.

 

숲이 끝나는 지점부터 위쪽으로 절벽이 솟아 있었다.

고개를 들어서 절벽 위를 바라보았다. 절벽의 중간쯤에 바위틈이 제법 넓게 벌어져 있었다.

그는 땅을 박차고 위로 솟구쳤다.

절벽은 경사가 무척 심했지만 그의 발길을 막을 정도는 아니었다.

두어 번 절벽을 차고 솟구친 그의 눈에 바위틈이 보였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 바위틈이 아니라 동굴이었다.

그는 동굴 입구에 내려서서 안쪽을 바라보았다.

동굴은 사람이 들락거릴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깊이도 무척 깊어서 안쪽이 칠흑처럼 어두웠다.

눈을 가만히 감았다 뜬 장천운은 동굴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가 다섯 걸음 들어갔을 때, 안쪽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대가 어제 우리를 구해주었소?”

걸음을 멈춘 장천운은 칠흑 같은 어둠을 쳐다보았다.

저벅, 저벅, 발걸음소리가 나더니, 곧 어둠 속에서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카락이 흐트러져 있고 안색이 창백했지만, 그의 정체를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천은공자 호양청, 바로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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