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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143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31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143화

“무슨 말인지 알았어. 하지만 오래 기다릴 순 없어. 천운이 직접 가서 최대한 빨리 처리하고 돌아와.”

그녀는 장천운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항상 곁에 두고 싶었다.

사절방을 공격하러 갔을 때도 겉으로 표를 내진 않았지만, 그가 없으니 마음이 불안해서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오죽하면 꿈속에 모습이 보여서 업어달라고 졸라댔다. 달려들어서 강제로 입을 두어 번 맞추었는데…… 그 생각만 하면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래도 그때의 황홀한 기분은 잊히지가 않았다.

장천운이야 모르겠지만.

겨우 하루 떠난 것만으로도 그랬는데, 이번에 가면 며칠이 걸릴지 모른다.

열흘이 걸릴지, 보름이 걸릴지…….

그러나 독왕을 만나려면 다른 사람으로 대처할 수가 없으니 어쩔 수가 없다.

“알았습니다, 소성주.”

장천운도 구천성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응축된 긴장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철무와 구양명만으로 공손백과 나극의 흉계를 막을 수 있을까?

그들의 실력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때로는 실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있다.

문제는, 자신이 가지 않으면 독왕을 찾아낸다 해도 왕규의 목숨을 구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조심해.”

“제가 돌아올 때까지 부상과 무공수련을 핑계로 외출을 최대한 자제하세요.”

“아예 지하수련실에 콱 처박혀 있을까?”

“그럼 좋긴 한데, 아마 소성주를 나오게 하려고 별의 별 수단을 다 쓸 겁니다.”

“좌우간 빨리 돌아와. 늦으면 송하 데리고 지하수련실에 처박혀서 안 나올 테니까.”

그 말에 장천운의 눈초리가 살짝 치켜 올라갔다.

“송하는 왜 또 끌어들입니까?”

“나 혼자 있으면 심심하잖아.”

“그럼 류화를 데리고 들어가세요.”

순간, 한쪽에서 영문도 모른 채 듣고만 있던 류화가 장천운을 째려보았다. 얼굴의 상처 때문인지 살벌함이 배는 더 했다.

“아마 돼지 같은 구산이 알게 되면 가만 안 있을 걸요?”

“그건 그렇군. 그래도 송하는 안 됩니다, 소성주.”

잠깐 동안의 농담 같은 대화로 얼어붙었던 분위기가 많이 풀어졌다.

사마경의 표정도.

“싫으면 빨리 돌아와.”

“알았습니다. 최대한 서두르죠.”

장천운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하자, 사마경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류화, 잠깐 나가 있어.”

“예? 예, 소성주.”

멈칫했던 류화는 사마경과 장천운을 슬쩍 살펴본 후 방을 나갔다.

탁.

류화가 나가고 방문이 닫히자, 사마경이 장천운을 향해서 몸을 날렸다.

그녀는 한 마리 나비처럼 그의 품안으로 날아들었다.

장천운은 평상시처럼 생각하고 가만히 서서 손만 자연스럽게 뻗었다. 떠나기 전에 사마경의 마음을 안심시켜주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했다.

그런데…… 이전과 달리 그녀의 얼굴이 곧장 정면으로 다가왔다.

장천운의 눈이 커졌다.

‘흡!’

 

***

 

구천무전을 나선 장천운은 무화원으로 향했다.

어느새 석양이 지고 어스름이 밀려들고 있었다.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뿌연 안개가 깔리면서 왠지 모르게 스산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분위기가 그런데도 장천운은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왕규를 구하기 위해 독왕을 만나러가는 일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를 본 무사들의 힐끔거리는 눈길 때문도 아니었다.

조금 전, 사마경의 급습(?)에 당한 충격 때문이었다.

여자와 입술이 부딪친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우연이 아니라 고의에 의한 부딪침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당한 것일 수도 있고.

‘사람의 입술이 그렇게 부드럽다니…….’

오늘에서야 확실하게 알았다. 입술이 부딪치면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뛴다는 것도.

“후우.”

한숨을 내쉰 그가 무화원을 이십여 장쯤 남겨놓았을 때였다.

“장천운.”

누군가가 뒤에서 불렀다.

걸음을 멈춘 장천운은 뒤를 돌아다보았다.

백리우진이 건물의 어두운 그림자 속 기둥에 어깨를 기댄 채 서 있었다.

그를 본 순간 장천운은 싱숭생숭하던 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무슨 일이지?”

“잠깐 이야기 좀 할까?”

“난 너와 할 이야기가 없는데?”

“너에게도 해가 되지는 않을 거다.”

“난 네 얼굴 보는 걸만으로도 피해를 본 느낌이야.”

‘저 자식이……!’

백리우진이 속에서 욱하니 올라왔지만 오늘의 목적을 생각하고 참아냈다.

“내가 너를 어떻게 할 거라고 생각하나? 겁이 나나 보지?”

장천운의 입꼬리가 비틀리며 올라갔다.

“겁을 내? 내가 너를? 설마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겁이 안 나면 이야기 나누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아?”

장천우은 백리우진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평소의 그답지 않았다. 자신만만하던 그의 눈에도 원인 모를 불만이 가득했다.

“좋아, 그냥 가면 또 무슨 헛소리를 할지 모르니 이야기를 들어주지.”

“여기서 이야기하기는 좀 그렇군. 따라와라.”

 

백리우진은 철혈단 옆의 음침한 곳으로 안내했다.

주위를 둘러본 백리우진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장천운. 우리 휴전하는 게 어떠냐?”

“휴전?”

“그래, 휴전. 지금은 격변의 시기다. 격변은 기회를 주지. 더 이상 쓸데없는 신경전은 너나 나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아.”

장천운의 입가에 조소가 떠올랐다.

“신경전이라는 말은 나와 전혀 상관이 없는 말이군. 너는 나를 신경 쓰는지 몰라도, 나는 너를 신경 쓰지 않거든.”

그는 백리우진을 건드린 적이 없었다. 그저 소가 닭 보듯 할 뿐.

백리우진이 위협적으로 생각했다면 그것은 자신 혼자만의 생각일 뿐이다.

그러나 장천운을 항상 천적으로 생각하고 견제하고 있던 백리우진은 그렇게 생각지 않았다.

자존심을 굽히고 찾아왔거늘, 자신을 경쟁자 취급도 하지 않다니.

그는 분노가 치밀었지만 가까스로 억눌렀다. 원대한 목적을 위해서라면 잠깐의 굴욕쯤은 참아야 한다.

“그래도 내가 적으로 있으면 너도 좋을 것 없을 텐데?”

“그건 그렇지.”

“휴전을 하겠다면 너에게 정보를 하나 주지.”

“정보? 말해 봐.”

그냥 툭 던진 말이었다. 그런데 백리우진이 의외로 순순히 입을 열었다.

“무림맹을 움직인 건 대령주이다. 대령주가 사람을 시켜서 무림맹 쪽에 소성주의 움직임을 알렸지.”

장천운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직접 확인하니 분노가 치밀었다.

“솔직히 말해봐라. 왜 그런 정보를 알려주는 거지?”

“그 일을 나와 숙부께는 말해주지 않았다. 그 바람에 우리도 죽을 뻔했지. 대답이 됐나 모르겠군.”

“그럭저럭.”

목숨의 위협을 받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공손백이 최근 문인동을 곁에 둔 후 백리호를 홀대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팽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잔머리를 굴리는 것일지도…….

백리우진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놈이다.

그러나 장천운은 굳이 토를 달지 않았다. 구천성을 떠나 있어야 하는 그로선 백리우진이 헛짓만 안 해도 신경 쓸 일이 그만큼 줄어들 테니까.

‘아마 그 사실을 알면 머리를 쥐어뜯으며 후회하겠지.’

백리우진은 장천운이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생각했는지 보다 편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 년. 어떠냐? 그 동안은 너를 건들지 않으마. 그리고 내가 다칠 일만 아니면 괜찮은 정보도 건네주지.”

그 말에 장천운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번뜩였다.

백리우진도 나름대로 계산하고 하는 말이겠지만, 일 년이라는 기간에는 큰 의미가 있다.

임시 성주가 정식 성주로 바뀌는 시간.

“바라는 것은?”

“나를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조직을 만들려고 한다. 아마 흑월대처럼 대(隊)정도 될 거다. 물론 대주는 나지. 소성주께서 허가해주시도록 말 좀 해주면 좋겠어.”

“허가하지 않아도 이미 존재하는 걸로 아는데? 백천회(白天會)라던가?”

백리우진이 구천성 간부들의 자식들로 이루어진 조직을 이끌고 있다는 건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와 함께 다녔던 곽도선과 강조도 당연히 백천회에 속해 있었다.

“그건 우리끼리의 모임일 뿐이야. 난 공식적으로 허가 받은 조직을 원한다. 남이 시키는 일만 하면서 살고 싶지 않거든.”

‘공손백과 갈등이 생긴 것은 확실하군.’

보나마나 공손백이 백리우진을 심하게 다그쳤을 것이다. 사마경을 처리하지 못했다면서.

아주 치욕적으로!

자존심 강한 놈이 참기 힘들었겠지.

‘그래, 차라리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는 것도 나쁘진 않아.’

어차피 이번 전쟁으로 절검당과 거경당은 물론이고, 무혼단과 풍혼단, 천경전 역시 무사의 숫자가 확연히 줄었다.

구천성의 조직을 재편하든가, 대대적으로 무사를 모집해야 할 판이다.

하물며 이미 만들어진 조직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정식 대주가 되어서 거들먹거리는 꼴은 정말로 보고 싶지 않지만.

“좋아, 말씀드리지. 단, 이것만은 명심해라, 백리우진. 만약 약속을 어기면…… 어느 날 밤 네 머리가 몸뚱이와 분리되어 있을 거다.”

 

***

 

태양이 동산 위로 떠오를 즈음, 장천운은 구천성을 출발하기 전에 사마경을 만났다.

이른 아침인데도 사마경은 일어나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담당인 류화는 잠깐 자리를 비웠는지 보이지 않았다.

면사를 벗고 하얀 김이 피어오르는 차를 마시는 사마경은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신경이 날 서 있던 낮과 달리 조금은 뾰루퉁하고, 심술기 있으면서도 순진한 모습을 간직한 이전의 모습마저 엿보였다.

“뭘 그렇게 빤히 봐?”

예뻐서.

하지만 장천운은 말을 아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속설이 있다. 하지만 때로는 칭찬 한마디가 괴로움을 던져줄 때가 있다.

아마 그 말을 하면 사마경은 한껏 고무되어서 자신을 고난의 골짜기 속으로 빠뜨릴지도 모른다.

장천운은 은근슬쩍 이야기를 돌렸다.

“어제 무화원으로 가던 중 백리우진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사마경은 백리우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이마를 찌푸렸다.

“괜찮겠어?”

“음흉하게 암중에 숨어서 엉뚱한 일을 벌이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습니다.”

“그건 그런데…….”

“공손백도 싫어하지 않을 겁니다. 백리우진이 소성주 곁에 한 걸음 접근했다고 여길 테니까요. 그럼 몇 달은 시간을 벌 수 있죠. 백리우진에겐 이상한 짓을 벌이면 제가 목을 따버린다고 했으니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겁니다.”

그런 말에 두려움을 느낄 백리우진이 아니다.

사마경도, 장천운도 그걸 모르진 않았다.

그러나 관리만 제대로 할 수 있다면 어둠 속에 놔두는 것보다 차라리 밖으로 끌어내는 것이 나을 것이기에 그녀는 오래 고민하지 않고 시원하게 대답했다.

“알았어. 그럼 백리우진을 백천대 대주로 임명하지 뭐. 임무는 비상시에 수혼대의 뒤를 받쳐주는 것 정도면 되겠지?”

“그 정도면 됩니다.”

장천운은 이후에야 왕규의 건을 이야기했다.

“아침 식사를 마치는 대로 왕규와 함께 출발하겠습니다.”

찻잔을 내려놓은 사마경이 빤히 쳐다보았다.

“어느 정도 걸릴 것 같아?”

“늦어도 한 달이면 됩니다.”

“시간을 최대한 줄여봐.”

“알았습니다. 최대한 노력해보죠.”

“일찍 돌아오지 않으면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나도 몰라. 솔직히 지금 당장이라도 결판을 내고 싶거든.”

‘성질 좀 죽이고 조금만 참으쇼, 소성주.’

장천운은 사마경이 정말로 일을 저지를 수도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돌아가신 성주께서도 복수 때문에 구천성이 풍비박산 나는 건 원치 않을 겁니다.”

“나도 알아. 그래서 참고 있는 거야.”

“하나하나 밝혀서 대응할 틈도 주지 않고 찍소리 못하게 눌러야 합니다.”

“나도 안다니까? 알았으니까, 이리 와봐. 안 오면 내가 갈 거야?”

사마경이 은근한 어조로 말하더니 장천운을 향해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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