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17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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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18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179화
“아주 재미있는 제안이구려.”
“적어도 손해 볼 일은 없을 것이오.”
“파천회야 그렇겠지요. 하지만 우리는 당신들과 만났다는 것만 알려져도 엄중한 추궁을 당할 거요.”
“그거야 목적을 이룬다면 누가 뭐라고 하겠소이까?”
제갈승우가 넌지시 말하고 미소를 지었다.
문인동은 차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위험부담이 너무 크긴 하지만 저자들도 함부로 입을 열 수는 없을 것이다. 저들 역시 구천성과 손을 잡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좋을 게 없으니까.
‘정파 놈들은 원래 그렇지. 칼이 목에 들어와도 입으로는 협의 운운하는 놈들이니까.’
찻잔을 내려놓은 그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위에 말씀은 드려보겠소이다. 하지만 허락할 거라고 장담할 순 없소이다.”
“내 어찌 그걸 모르겠소이까. 허락하면 다시 연락을 주시오.”
“만약 귀하들이 한 가지 일을 해준다면 제안에 진실성이 있는 것으로 알겠소.”
“어디 말씀해 보시구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어찌 마다하겠소이까.”
“우리를 무척 귀찮게 하는 놈들이 있소. 기회를 만들 테니 그대들이 놈들을 처리해주시오.”
***
조신은 느닷없이 찾아온 사밀령 무사들에게 연행되다시피 해서 위곤을 만나러 갔다.
옆집 큰형님처럼 수더분한 인상의 위곤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잘 아는 그는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위곤 앞에 섰다.
‘제길, 괜히 말해서…….’
구산이 원망스러웠다. 별 생각 없이 한 말을 일러바쳐서 사밀령의 조사를 받게 만들다니.
하지만 구산은 멀리 있고, 위곤은 바로 앞에 있었다.
그는 위곤의 질문이 떨어질 때마다 기억을 쥐어짜서 성의껏 대답했다.
“당장 죽을 자의 목소리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상하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한 사람의 목소리였나?”
“아닙니다. 두 사람이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욕이 섞인 대화였습니다만.”
“욕을 할 정도면 크게 다치진 않았던 모양이군.”
“끙끙거리는 걸로 봐서 제법 심하게 맞은 것은 분명했습니다.”
“그래도 죽을 정도는 아니었단 말이지?”
“예, 일령주.”
“근처에 다른 사람은 없었나?”
“있긴 했습니다만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습니다. 저도 독고 공자가 경혼당 무사를 패고 있다는 걸 알았다면 가까이 가지 않았을 겁니다. 괜한 벼락은 맞고 싶지 않으니까요. 그게 전부입니다.”
물어본다 해서 더 이상 들을 말은 없을 듯했다.
위곤은 조신에게 단단히 경고를 해두었다.
“오늘 나눈 이야기는 아무에게도 하지 마라. 죽고 싶지 않다면.”
조신은 이야기할 마음이 없었다. 지금 같은 경우는 한번이면 족했다.
“걱정 마십시오. 아예 잊고 지내겠습니다.”
조신을 돌려보낸 위곤은 장천운에게 조사내용을 보고했다.
“조신을 심문한 후 사건현장을 조사해보았네. 군데군데 피가 튄 자국이 남아 있더군. 하지만 양이 많지는 않았네.”
“외상 때문에 죽은 것은 아니다?”
“그렇게 봐야할 것 같네.”
“시신은 조사해봤습니까?”
“조사해봤네. 심한 충격으로 내장이 터졌더군. 죽은 두 사람 모두.”
위곤의 말에 장천운의 눈빛이 싸늘하게 번뜩였다.
“내장이 터진 자가 욕설을 할 수 있을까요?”
“기껏해야 한두 마디겠지. 그런데 조신은 대화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말을 들었다고 했네.”
“그렇다면 부상당한 경혼당 무사에게 누군가가 재차 손을 썼을 수도 있겠군요.”
“얼마든지 가능한 이야기네. 독고민이 경혼당 무사를 팼다는 건물 뒤편은 어두컴컴해서 몰래 손쓰기에 적당했을 테니까.”
장천운은 가늘게 좁혀진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역시 독고민을 가두기 위해서 벌인 일인가?’
독고민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반드시 범인을 밝혀내야 한다.
“조사를 계속해 주십시오. 범인이 누군지 알면 왜 그런 일을 벌였는지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
“알았네.”
***
전이산은 떠난 지 나흘째 되던 날 오후 늦게 돌아왔다.
예상했던 대로 노회현은 처음부터 지원군과 함께 출발하지 않았다고 했다.
오히려 노회현이 나중에 합류하기로 했다며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단다.
결국 돼지 밥이 된 시신의 주인은 십중팔구 노회현이라고 봐야 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식사 중에 이상한 소문이 들렸다.
누군가가 이창에서 노회현을 봤다는 것이다. 급하게 어딜 가는 것처럼 보였는데, 인사를 건네도 듣는 둥 마는 둥 도망치듯 떠났다는 것이다.
그 소문은 장천운의 귀에도 들어갔다.
장천운은 그 소문을 듣자마자 곧바로 사밀령에게 명령을 내렸다.
“소문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서 진원지를 찾아보시오. 소문이 퍼진지 오래 되지 않았으니 몇 단계만 거치면 찾을 수 있을 거요.”
그리고 백리우진도 부려먹었다.
“백천대주, 놀고만 있으면 되겠어? 그쪽도 좀 뛰어다녀봐.”
그러고는 우문각을 찾아가서 비령각과 첩밀각마저 움직였다.
우문각도 이번만큼은 느긋이 지켜보기만 할 수 없었다. 소문의 실체를 밝히지 못하면 일이 묘한 방향으로 틀어질 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날 저녁부터 다음 날까지, 사밀령과 비령각, 첩밀각 무사 백수십 명이 동원되어서 소문을 들었다는 자들을 찾아 나섰다.
―어디서 들었지? 누구에게 들었느냐?
똑같은 질문이 수백 번 반복되었다.
하루 동안 소문을 역추적하고도 나온 결론은 이창에서 온 사람이 말했다는 것 정도. 그런데 처음 소문을 퍼뜨린 자는 일을 마치자마자 이창으로 다시 떠났다고 한다.
그자를 찾지 못하면 소문의 진위조차 가릴 수 없는 상황.
장천운은 그자를 찾기 위해서 전이산과 백오를 이창으로 보냈다.
사밀령 이개 령과 철기보를 움직인다면 필요한 정보를 찾아낼 수 있으리라.
사마경은 장천운의 보고를 받고 이마를 찌푸렸다.
“정말 노 장로가 이창에 나타난 것은 아니겠지?”
“헛소문입니다, 소성주.”
돼지 밥이 된 자가 어떻게 이창에 나타난단 말인가.
그러나 사마경은 만에 하나의 경우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농장에 있던 자들도 그날 돼지에게 던져준 시신이 누구인지 모른다며? 그럼 노 장로가 죽었다는 것도 확실한 것은 아니잖아?”
“십중팔구는 죽은 게 분명합니다.”
“아무리 죽은 게 확실하더라도, 시신이 없으면 사람들이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어. 그런데 노 장로를 이창에서 본 자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으니 더 많은 사람이 믿지 않을 거야.”
장천운도 그래서 고민이었다.
“지금으로선 헛소문을 퍼뜨린 자를 최대한 빨리 잡는 수밖에 없습니다.”
“백부 쪽에서 퍼뜨린 걸까?”
“그럴 겁니다.”
“노 장로가 살아 있는 것처럼 믿게 해서 조사를 방해하려고?”
“그보다는, 헛소문을 퍼뜨려서 시간을 끌겠다는 생각일 가능성이 더 큽니다.”
“무림맹이 발호할 때까지?”
“무림맹이 발호하면 소성주를 다시 출정으로 내몰 수 있을 거라 생각했겠지요.”
“소문에 대해서 조사를 마치려면 얼마나 걸릴 것 같아?”
“아무리 빨라도 사나흘은 걸릴 겁니다.”
사마경은 그 말을 듣고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겨우겨우 위기를 헤치고 나와서 어렵게 반격의 실마리를 쥐었다 싶었는데, 아차하면 모든 것이 원상태로 돌아갈 판이다.
‘흥, 당신 마음대로 되진 않을 거야.’
숨을 깊이 들이쉬며 마음을 가라앉힌 그녀는 장천운의 두 눈을 직시했다.
“천운, 우문 숙부께 내일 구천대평회의를 소집하라고 해. 사람들이 믿든 말든 일단 터트리겠어.”
장천운의 눈빛이 무심하게 가라앉았다.
싸늘하게 번뜩이는 사마경의 눈빛이 기다란 속눈썹 사이에서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
어찌 떨리지 않을까. 대격돌을 앞둔 상황에서 악재가 터져 나왔거늘.
공손백이 퍼트렸든 누군가가 잘못 본 것이든, 소문의 주체는 문제가 아니다.
그 소문이 간부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로 인해서 사마경의 주장이 힘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것이 문제다.
“반격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거셀 겁니다.”
“어쩔 수 없지. 그렇다고 이창에서 소식이 올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
“최악의 경우가 닥칠 수도 있습니다.”
“아무 것도 못해보고 쫓겨나듯 전쟁에 나가서 당하느니, 위험해도 모험을 해보겠어.”
장천운은 착잡하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사마경을 응시했다.
백척간두에 서서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그녀가 안쓰럽기만 했다.
어떤 결정을 내려도 위험할 수밖에 없는 처지. 그 상황에서 제정신으로 버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알겠습니다. 총사께 말씀드리겠습니다.”
***
우문각은 사마경의 마음을 장천운에게 전해 듣고 미간에 깊은 골이 파였다.
헛소문이 돌기 전이었다면 조금도 망설일 것이 없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돌고 있는 소문이 헛소문이라는 게 밝혀지지 않은 이상 간부들의 호응을 예상했던 것만큼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꼭 내일 터트릴 생각이시더냐?”
“공손백이 출정에 대해서 말한 이후에 터트리면 효과가 반감됩니다. 출정하기 싫어서 일을 벌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테니까요.”
“그래도 너무 위험해.”
“할 수 없죠. 개똥이든 말똥이든 모조리 동원해보는 수밖에요.”
“할 수 있겠느냐?”
“어차피 전쟁이 벌어지면 출정하는 건 같습니다. 하지만 독살에 대한 걸 터트리고 가는 것과 말도 꺼내보지 못하고 가는 것은 상황이 전혀 다를 수밖에 없죠. 안 그렇습니까?”
“물론 그거야 그렇지.”
“그렇다면 한번 해보는 거죠 뭐.”
***
며칠 만에 구천대평의회가 또 소집되자 구천성 곳곳에서 술렁거림이 일었다.
대부분의 간부들이 이번에는 무림맹 때문에 대평의회를 소집하는 거라 생각했다.
노회현의 일이 중요하다 해도 무림맹의 도발에 비하면 사소한 사건 중 하나에 불과했다.
공손백과 나극도 그리 생각하고 나름대로 계획을 세운 후 구천대전으로 나갔다.
사마경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모든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때만 해도 대부분 담담한 표정이었다. 곧 날벼락이 떨어질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우문각을 비롯한 사마경 측근의 몇 명뿐.
사마경은 장내를 한번 빙 둘러보았다.
간부들의 시선에서 각양각색의 느낌이 전해졌다. 개중에는 따뜻함이 느껴지기도 했고, 뱀처럼 차가운 느낌이 느껴지기도 했다.
뒷짐 진 손을 가만히 쥐었다 펴자, 손끝에서 인 전율이 등골을 타고 뇌리까지 흔들었다.
그녀는 숨을 폐부의 저 끝까지 들이쉬고 멈췄다. 긴장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래, 이제 시작해보는 거야.
뒷짐 진 손을 다시 움켜쥔 그녀의 시선이 정면이 고정되었다.
“얼마 전 은밀하게 제보가 하나 들어왔어요.”
마침내 그녀의 입에서 맑고 차디찬 느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제보는 다름이 아니라…… 전대 성주이신 아버님께서 병에 걸려 돌아가신 게 아니라는 것이었지요.”
부스럭거리던 소리가 멈추고 장내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억지로 공손백과 나극을 쳐다보지 않았다.
굳이 쳐다볼 것도 없었다. 전신에 바늘이 꽂히는 듯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유형의 살기가 되어서 쏟아지는 것이다.
하긴 많이 놀랐겠지.
“병에 걸리신 것이 아니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오?”
육선기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사마경은 그의 두 눈을 직시하고서 또박또박 말했다.
“독에 당하셨다고 하더군요. 다시 말해서, 독살을 당하셨다는 거지요.”
“독살?”
간부들이 거의 동시에 웅성거렸다.
“무, 무슨 말이오? 독살이라니?”
“그게 사실이오?”
“맙소사, 어떻게 그런 일이…….”
웅성거림이 커질 즈음 공손백이 침잠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소성주, 전대 성주의 죽음에 대한 일은 함부로 말해선 안 되네. 전대 성주의 딸인 소성주라 해도, 증거가 없이 성을 혼란에 빠뜨리는 일은 자제하시게나.”
사마경은 이를 악물고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예상했던 것보다는 덜 떨렸다.
“대령주께서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저도 잘 알아요. 하지만 증거가 있다면 말하지 못할 것도 없지요.”
“증거가 있다고?”
“저는 그 제보를 받고 아버지께서 당한 독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조사해보았어요. 그 와중에 전 의약당주였던 황사중이 창평이란 곳에서만 산출되는 독재를 구입했다는 사실을 알아냈죠.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독재로 뇌혈산이란 독을 만들 수 있다고 하더군요.”
“뇌혈산?”
“천하에서 독왕 남사명과 천독수 당산중, 그리고 귀독마종 당초당만이 만들 수 있는 독이죠. 그래서 저는 사람을 보내 독왕과 귀독마종을 찾아보았어요. 그런데 운이 좋았는지 다행히 두 분을 찾을 수 있었죠.”
간부들이 점점 사마경의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면서 숨소리조차 잦아들었다.
공손백과 나극도 입을 꾹 다문 채 듣기만 했다.
처음보다 백배는 더 무거워진 긴장감이 장내를 짓눌렀다.
“그리고 귀독마종의 입에서, 누군가의 부탁을 받아 뇌혈산을 만들었다는 증언을 얻어냈어요.”
워낙 조용하다 보니 고요한 대전에 사마경 단 한 사람만 있는 듯했다.
그때였다.
“모시고 들어와요!”
사마경이 구천무전 입구를 향해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