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178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06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17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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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천운은 위곤을 먼저 만나서 두어 가지 지시를 내린 후 벽호당으로 갔다.
벽호당주 서호는 장천운이 찾아왔다는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로선 장천운과 독고민의 만남을 허락하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러나 임시성주의 말을 전하기 위해서 왔다고 하니 막을 수도 없었다.
“만나게 해줘라. 단, 아직 조사가 안 끝났으니 일각 이상은 안 된다고 해.”
장천운은 경혼당 무사의 안내를 받아서 뇌옥으로 들어갔다.
독고민은 공력이 봉인 된 채 구석진 방에 투옥되어 있었다. 사방에 비린내가 배어 있는 뇌옥이었는데, 일반적으로 중죄인들을 가두는 곳이었다.
몸과 손이 쇠사슬로 묶인 채 벽에 매달려 있던 그는 장천운이 들어가자 이를 갈며 노려보았다.
“왜 왔지? 내가 이렇게 갇혀 있으니까 속이 시원하냐?”
“도와주러 온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닌 것 같군.”
“도와줘? 네놈이? 흥! 사마경을 만나게 해주기 싫어서 차일피일 미룬 걸 내가 모를 줄 알고?”
“지금 살인 건 때문에 여차하면 목이 잘린다는 걸 모르나?”
“걱정마라. 곧 아버님과 외조부께서 손을 쓰실 거다. 누가 감히 대장로의 손자인 나를 죽인단 말이냐?”
“대장로의 손자가 아니라 할아버지라도 살인죄가 확실하면 벗어날 수 없을 거다. 구천률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군.”
“난 안 죽였다. 난 경혼당 무사를 죽인 적 없어!”
“죽이진 않고 패기만 했단 말이지?”
“맞아! 난 때리기만 했어.”
“그럼 누가 죽였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안단 말이냐!”
소리를 빽 내지른 독고민이 몸을 흔들었다. 그가 몸을 흔들 때마다 철컹거리는 소리가 뇌옥을 울렸다.
무소불위의 힘을 지닌 부친과 외조부가 있음에도 불안한 듯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구천률은 엄격했다. 특히 동료라 할 수 있는 성의 무사를 살해한 자는 용서치 않았다.
경천단주인 아버지가, 대장로인 외조부가 정말 자신을 구해줄 수 있을까?
장천운 앞에서 큰 소리를 치긴 했지만 확률은 반반이었다.
세상 무서울 것 없이 살아온 그에게 절반의 확률은 미치도록 불안한 확률이었다.
“정말 안 죽였단 말이지?”
장천운이 은근한 어조로 다시 물었다.
불안한 표정으로 이를 악물고 있던 독고민이 멈칫했다. 그의 얼굴에는 절박함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정말이다, 장천운. 난…… 난…… 정말 안 죽였어. 소성주께 말씀 좀 잘 드려다오. 네가 그렇게만 해주면 내가 뭐든 해주마.”
힘없는 사람을 벌레 취급하며 거만하게 굴던 그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공포에 젖어서, 그 동안 누려왔던 부귀와 혜택을 잃는 걸 두려워하는 비굴한 한 인간이 있을 뿐.
장천운은 솔직히 독고민을 돕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 동안 그에게 당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더 처참한 꼴을 당해도 할 말이 없으리라.
“말씀은 드려보겠어. 결정이야 소성주께서 내리시겠지만.”
“고, 고맙다, 장천운.”
“그런데 말이야,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뭐든 물어봐라.”
“조금 전에 독고 단주를 만났어. 그런데 왠지 몰라도 독고 단주께서 그대를 구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설 생각이 없는 것 같더군. 당신이 나서지 않아도 걱정 없다는 건가? 뭔가 단단히 믿는 구석이 있으신 것 같던데 말이지. 혹시 그게 뭔지 알아?”
독고민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그럴 리가 없다. 아버님이 왜 나를 구하지 않으려 하신단 말이냐?”
당연한 반발이었다. 그러나 예상했던 것보다는 강도가 덜했다. 마치 억지로 반발하는 느낌?
“나서지 않으셔도 해결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겠지. 문제는 그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느냐 하는 건데 말이야. 나는 그걸 알고 싶어.”
“그, 그건 나도 잘 모른다.”
“비밀이면 말하지 않아도 돼. 사람에게는 누구나 간직하고 싶은 비밀이 있는 법이니까.”
“비밀이 아니라…….”
“나중에 밝혀질 일이라면 사실 비밀이랄 것도 없지만. 아마 총사가 나서면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 없을 걸? 선택은 그대가 해. 그래야 나도 소성주께 뭐라고 할 건지, 할 말을 정리할 수 있으니까.”
“그게…….”
“따로 손잡고 있는 사람이라도 있어?”
“그게 아니라…… 아마 숙조부님을 믿고 계신 건지도…….”
“숙조부?”
독고민에게 숙조부라면 독고태에게 숙부가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독고태에게 숙부가 있었나?
그 숙부라는 사람이 구천성의 중요한 결정에 영향을 끼칠 만큼 대단한 힘을 지녔다면 모를 리가 없는데?
이상하다. 아무리 뇌리를 뒤져보아도 독고태에게 숙부가 있다는 내용은 없거늘.
“그대에게 숙조부가 있을 줄 몰랐군.”
“아주 먼 친척이어서 나도 얼굴을 본 건 어릴 때 한두 번밖에 없다.”
“어떤 분이지? 독고 단주가 의지할 정도면 대단한 분인 것 같은데.”
“나도 그분에 대해서 아는 게 거의 없으니 더 물어보아야 소용없다.”
독고민이 미리 벽을 쌓았다.
장천운도 더 묻지 않았다. 지금 다그쳐봐야 역효과만 날 뿐이다.
“뭐, 만족할 만한 답은 아니지만, 어쨌든 대답해 주었으니 나도 소성주께 말씀을 드려보지.”
“부탁한다, 장천운. 소성주께 말을 잘해주면 은혜는 잊지 않으마.”
장천운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뇌옥을 나섰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독고태의 숙부라는 자로 가득 차 있었다.
어쩌면 독고태의 달라진 모습도 그 숙조부란 자 때문일지 모른다.
누굴까? 누군데 독고태가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걸까?
왜 구천성 사람들은 독고태에게 숙부가 있다는 걸 모르는 거지?
‘좌우간 구천성에 내가 모르는 그림자가 하나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군.’
구천무원으로 돌아간 장천운은 독고민의 소원대로 사마경에게 그의 말을 잘 전해주었다.
“독고민이 소성주를 정말로 좋아하나 봅니다.”
“…….”
“말할 때마다 표정에서 그리워하는 마음이 역력하게 드러나더군요. 어떻게 할까요?”
사마경이 눈을 치켜뜨고 단호하게 답했다.
“내 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누가 뭐라고 해도 당분간 계속 가둬두라고 해.”
***
나극은 독고민이 살인죄로 갇혔다는 말을 듣고 공손백을 찾아갔다.
다른 일이었다면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 있는 외손자가 살인죄로 갇힌 것은 그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청묵전 안에서 공손백과 마주앉은 나극은 안면근육이 굳은 것처럼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대령주, 왜 나와 일언반구 상의도 없이 민아를 뇌옥에 가두었는가?”
“증인들이 너무 많아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정말 민아가 범인이라고 생각하나?”
“증인들 말이 한결 같아서 지금은 반박하기가 힘듭니다. 조용해지면 제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공손백은 독고민 체포에 대한 진실을 말해주지 않았다. 말해줄 이유가 없었다.
“경천단주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민아를 이용하려는 건 아니겠지?”
“뜻밖의 상황이긴 합니다만, 필요하다면 이용하지 못할 것도 없지요.”
나극의 이마에 파인 주름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공손백의 독함을 그가 어찌 모를까. 이보다 더한 경우라 해도 이용할 수만 있다면 이용할 자다.
“나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핏줄이네. 좀 더 신경을 써주었으면 좋겠군.”
“제가 어찌 그걸 모르겠습니까.”
공손백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온기 한 점 느껴지지 않는 그 웃음을 보고 나극은 이를 지그시 악물었다.
공손백이 내민 손을 잡은 순간부터 혼돈의 수렁에 한발 담근 셈이다.
누굴 탓할 것인가. 설령 일이 잘못되어서 핏줄이 끊긴다 해도 자업자득이다.
‘하지만 쉽게 당하진 않을 거다, 공손백.’
나극은 반 시진 만에 청묵헌을 나섰다.
나극을 문 밖까지 배웅하고 돌아온 공손백은 뒤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고 입술 끝을 비틀었다.
‘한 산에는 호랑이가 한 마리만 있으면 되는 법이라오, 대장로.’
그때 인피면구를 쓴 종리성학이 그에게 다가왔다.
“장천운이 독고태와 독고민을 차례대로 만났습니다, 주군.”
공손백은 장천운의 이름만 들어도 속이 끓었다.
“흥, 그놈이 아무리 뛰어다녀봐야 이제는 소용없다. 독고태도 살인죄로 갇힌 아들을 살리려면 누가 더 도움이 되는지 잘 알 거다.”
“성주가 명령을 내려서 죄를 감해줄지도 모릅니다.”
“그럼 잘 된 일이지. 구천률에 따라서 사마경을 직접 추궁할 수 있을 테니까.”
냉랭히 대답한 공손백이 종리성학을 쳐다보았다.
“백리우진에게 말해라. 장천운, 그놈이 더 이상 설치고 다니지 못하게 하라고 해. 그 일만 제대로 처리하면 지금까지의 모든 잘못을 잊을 거라는 말도 전하고.”
“예, 주군.”
종리성학이 공손히 대답하고 돌아섰다.
인피면구를 쓴 그의 얼굴이 미미하게 씰룩였다.
백리우진은 멍청한 놈이 아니다. 경험만 조금 더 쌓이고 공손백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되면 언제든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놈.
‘놈은 그저 장천운을 사냥하는 개일 뿐이야. 개는 사냥이 끝나면 삶아지는 게 당연한 것이고.’
***
구천성에서 오십 리 정도 떨어진 산중의 작고 낡은 사찰에 손님이 열 명이나 방문했다. 모두 무사였다.
무사들이 그렇게 많이 방문한 것은 목운사가 세워진지 백 년 만에 처음이었다.
방문한 무사들이 자신들에 대한 비밀을 지키는 조건으로 은자 백 냥을 내놓았는데, 그 역시 목운사가 세워진 후 가장 큰 시주 금액이었다.
주지는 그들에게 단 하나 있는 요사채를 빌려주고, 달랑 셋밖에 없는 스님들을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했다.
그날 오후, 요사채 안에서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문인동과 제갈승우가.
두 사람은 자신의 이름도 밝히지 않았다. 어차피 헤어지면 모른 척할 사이, 서로의 정체를 알아서 좋을 것 없었다.
“무슨 일로 만나자고 한 거요?”
문인동이 주지가 내놓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물었다.
은은한 향이 목구멍을 타고 흘러들어가면서 온몸을 적셨다. 주지가 매년 오월에 따서 직접 덖은 차라고 했는데, 어느 명품 차에 비해도 뒤지지 않았다.
‘솜씨가 좋군. 갈 때 조금 얻어갈까?’
그가 엉뚱한 생각을 할 때 제갈승우가 말했다.
“공손백이 무림맹에 연락을 했더구려.”
문인동의 표정이 굳어졌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만 한 분 같은데, 시간만 흐르니 말을 돌리지 맙시다.”
제갈승우는 문인동의 겉모습을 보고 한 사람을 떠올렸다. 어쩌면 앞에 앉은 자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그일 가능성이 컸다.
적운수사 문인동, 구천성의 젊은 장로.
정말 그라면 힘들게 모든 걸 설명할 필요가 없다.
진짜 학자만큼이나 학문과 병법에 밝은 절정고수가 바로 그였으니까.
문인동도 제갈승우의 정체를 짐작했다.
제갈승우. 제갈세가 전대가주의 사생아. 제갈세가 내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능력을 지녔음에도 사생아라는 신분 때문에 주요 간부가 되지 못한 자.
오 년 전 제갈세가를 떠나 천하를 유랑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자신의 앞에 앉아 있었다.
“좋소. 나 역시 시간을 끌고 싶지 않으니까. 어디 바라는 것을 말해보시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우리와 당신들은 적이기도 하지만, 목적 하나 만큼은 같소이다. 그 목적을 이룰 동안만이라도 손을 잡읍시다.”
“적인 줄 알면서 손을 잡자? 오월동주(吳越同舟)라도 하잔 말이오?”
“그렇소이다.”
“우리가 받아들일 거라 생각하시오?”
“싫다면 강요할 생각은 없소이다.”
담담히 말한 제갈승우가 문인동의 두 눈을 직시했다.
문인동도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서 불꽃이 튀는 듯했다.
오히려 두 사람보다는 그들을 호위하기 위해서 뒤에 서 있는 네 사람이 더 긴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