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17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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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17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177화
“뭐? 살해범? 내가?”
“반항하면 구천률에 따라 처리할 것인 즉, 순순히 따르도록 하시오.”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냐? 나는 그들과 약간 다투기만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본 일이오. 변명은 나중에 하도록 하시오.”
“멈춰! 내가 그들을 패긴 했지만 멀쩡했단 말이다! 그런데 그들이 왜 죽어?”
“자시 무렵에 두 사람이 시체로 발견되었소. 사인은 구타에 의한 장파열과 머리손상이오.”
“무슨……?”
“뭐하는가? 독고 공자를 포박하라!”
벽호당 무사 넷이 굳은 표정으로 독고민에게 다가갔다.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라!”
독고민이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뒤로 주르륵 물러났다.
그때 독고민의 뒤쪽에서 몇 사람이 나타났다.
“독고민, 구천성의 무사를 죽이고 어디로 도망가려고 하느냐?”
독고민은 뒤를 돌아다보았다.
벽호당의 무사뿐만 아니라 장로 중 한 사람인 적두도 있었다.
“순순히 따르지 않으면 팔다리를 부러뜨려서 데려갈 거다. 선택은 네가 해라.”
독고민은 술이 확 깼다.
‘아냐, 난 그냥 몇 대 패기만 했을 뿐이야.’
조금 많이 패긴 했다. 그래도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적어도 자신의 판단으로는 그랬다. 술이 너무 취해서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뭔가 이상해. 난 안 죽였어!’
***
경혼당 무사 둘을 죽인 독고민이 도주하려다가 적두에게 잡혀서 벽호당의 뇌옥에 갇혔다는 소문이 구천성을 달구었다.
구천무원에 있던 장천운은 연송하에게서 그 이야기를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게 치근대더니 결국 더럽게 끝나네요.”
연송하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장천운은 아무 말대꾸도 하지 않고 주름이 그어지도록 미간을 좁혔다.
“왜 그래요?”
“뭔가 이상해서.”
“뭐가요? 독고민이 두 사람을 죽이는 광경을 본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던데요?”
“죽인 게 아니라 두들겨 팼지.”
“그게 그거잖아요. 독고민 같은 고수가 패면 몸이 버틸 수 있겠어요? 더구나 술을 머리꼭대기까지 퍼마셔서 제정신도 아니었을 텐데.”
“그야 물론 그 일만 보면 독고민이 확실히 의심스럽지. 그런데 묘한 시기에 묘한 일이 벌어졌어.”
“설마…… 누가 독고민을 궁지에 몰아넣으려고 그랬다는 거예요?”
“독고민이 아니라 독고태가 목적이겠지.”
“아!”
연송하는 바로 그의 말을 알아듣고 눈을 크게 떴다.
“자식을 잡아가두면 아버지는 함부로 할 수 없을 거 아냐?”
“독고 단주님이 소성주님 편을 드니, 그것 때문에 독고 공자를 옭아매려는 것이란 말이죠? 독고 단주님을 압박하려고요?”
“우리 송하는 누구와 달리 정말 똑똑해서 말하기가 좋아.”
그때였다.
“흥! 그럼 나는 멍청해서 말하기가 어려워?”
방 안쪽에서 나오던 사마경이 가볍게 코웃음 치며 입을 삐죽였다.
“누가 멍청하다고 그랬습니까? 소성주님도 제 말을 들었으면 바로 알아들었을 겁니다.”
“그럼 조금 전의 그 ‘누구’는 누굴 말한 거지?”
“그야 저쪽 사람들이죠. 말이 안 통하잖습니까.”
재빠른 장천운의 말돌리기에 사마경의 표정이 바로 풀어졌다.
“설명만 제대로 하면 나도 천운의 말을 바로 알아들을 수 있어.”
누가 뭐랬나?
“근데 독고민이 뇌옥에 갇혔다는 건 무슨 소리야?”
결국 연송하가 이각 전에 벌어진 일을 다시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방안에서 장천운과 나눈 이야기도.
“……오빠는 그 일이 대령주가 독고 단주를 옭아매려고 벌인 수작이라고 보시나 봐요.”
사마경은 역시 멍청한 여자가 아니었다.
“내가 봐도 그래. 천운이 독고 단주를 만나봐. 마음이 흔들릴지도 모르니까.”
***
쾅!
벌떡 일어서며 내려친 손바닥에 두꺼운 탁자가 산산이 폭발하듯이 부서졌다.
이를 악문 독고태는 눈을 부릅뜨고 전면을 노려보았다.
그의 앞에는 동백이 서 있었다. 그는 파편이 튀고 부서진 탁자의 가루가 휘날리는 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과거의 일을 잊으면 아들의 죄가 감면되도록 노력하겠다?”
“그렇습니다, 단주. 큰 조건을 내걸겠다는 게 아닙니다. 그저 전과 같은 관계만 지속해주시면 됩니다.”
“만약 못한다면?”
“대령주께서 손을 쓰실 명분이 사라지는 거지요.”
독고태는 뭔가 모를 음침한 음모를 느꼈으나 증인이 많다고 하니 뭐라 다그칠 수도 없었다.
“으으음, 생각해보지.”
“빠른 시간 안에 결정을 내려주셨으면 합니다. 경혼당주가 분노해서 즉결처분을 주장하고 있으니까요. 워낙 화가 나서 대령주조차도 막기가 힘든 상황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경혼당주 동태국은 공손백의 말에 찍소리도 못하는 위인 아닌가.
그러나 굳이 토를 달진 않았다. 정말로 음모가 숨어있다면 어차피 씨알도 먹히지 않을 테니까.
“알았다. 가서 말씀드려라. 빠른 시간 안에 답을 드린다고.”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동백은 입가에 가느다란 냉소를 머금은 채 포권을 취하고 돌아섰다.
독고태는 주먹을 움켜쥔 채 방을 나가는 동백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공손백, 너는 아직 나를 모르는구나. 만약 내 아들의 몸에 이상이 있으면…… 절대 가만있지 않을 거다!’
공손백뿐만이 아니다. 다른 사람도 모르는 게 있다. 심지어 장인인 나극조차도.
숨을 깊이 들이쉰 그는 이를 악물고 돌아섰다.
‘흥!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이제 시작일 뿐이야.’
장천운이 독고태를 만난 것은 동백이 떠난 지 반각쯤 지났을 때였다.
경천단에 들어오기 전, 경천단을 감시하던 사밀령 요원에게 수상한 자가 다녀갔음을 들은 그는 나름대로 상황을 유추하며 독고태와 마주앉았다.
“독고 공자께서 살인사건에 연루되어서 벽호당 뇌옥에 갇혔다 들었습니다.”
“나도 조금 전에 들었네. 어리석은 놈!”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느닷없는 장천운의 말에 독고태가 이마를 찌푸렸다.
“뭘 말인가?”
“조금 전에 대령주의 사람이 왔다간 걸로 압니다만.”
“봤나?”
“뒷모습만 잠깐 봤지요.”
확인할 수 없는 이상 믿지 않을 수 없는 거짓말이다. 더구나 뚫어지게 쳐다봐도 흠 잡을 곳 없는 태연한 모습은 그 말이 진실이라고 강변하고 있었다.
“자네 말대로 사람이 왔다갔네.”
“누구였습니까?”
“동백이었네.”
“뭐라고 하던가요?”
“대령주가 그 소식을 듣고 걱정스러워서 위로 차 보냈다고 하더군.”
독고태 역시 그 말을 하면서도 안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장천운조차 그 말을 믿고 싶을 정도로 완벽한 거짓말.
두 사람 다 얼굴 가죽 두께가 세 치는 되는 듯했다.
“다른 말은 없었습니까?”
“아들의 죄가 감면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네.”
“조건이 있었겠군요.”
“별 다른 조건은 없었네.”
사실일까?
장천운은 그 말이 거짓이라는 것에 은자 백 냥도 걸 수 있었다.
“대령주께서 아무 조건 없이 도와주시겠다고 하셨단 말이지요?”
“그렇다네.”
“대령주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은 소성주께서도 하실 수 있습니다.”
“도와준다면 나야 고맙지.”
장천운은 그쯤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만약 이번 일이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독고 공자를 자극해서 벌어진 일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독고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고의적으로 민아를 자극했다? 왜? 설마 나 때문에……?”
“얼마든지 가능한 일 아닙니까?”
독고태도 오단 중 최강인 경천단을 이끄는 사람이다. 장천운의 말 속에 숨은 뜻 정도는 단번에 간파했다.
자신 역시 의문을 품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아직은 공손백과 나극의 힘이 소성주 쪽보다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증인이 열 명도 넘네. 그들이 모두 헛것을 보지 않은 이상 어쩌겠나? 그저 민아의 벌이 약해지기만 바라야지.”
“어쨌든 조사해볼 만한 이유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저희 쪽에서 한번 조사해보도록 하지요.”
“그리 신경 써주니 고맙군.”
“대신 조사를 마칠 때까지는 다른 생각을 안 하셨으면 합니다.”
“내 어찌 딴 생각을 할 수 있겠나? 걱정 말게.”
“그럼 소성주께는 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장천운은 독고태를 빤히 바라보며 포권을 취했다.
낯가죽 두꺼운 것만 따지면 자신보다 한 수 위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버틴 거겠지.
의아한 것은, 왠지 몰라도 이전의 독고태와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자식이 잡혀가니 사람도 변했나?’
***
사마경은 장천운의 보고를 받고 이마를 찌푸렸다.
“독고 단주가 돌아설 거라고 생각해?”
“아마 고민 중일 겁니다. 못났어도 하나밖에 없는 자식 아닙니까?”
“그럼 일단 돌아설 거라 생각해야겠군.”
“그게 마음 편하죠. 어쨌든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니 상황을 보면서 대처하는 게 좋겠습니다.”
독고태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긴 했었다.
뭐랄까, 태산이 무너져도 자신은 끄떡없을 거라는 광오한 자신감?
“독고민을 한번 만나봐.”
“예, 소성주.”
“나 때문에 살인까지 저질렀다니까 괜히 미안하네.”
정말 미안해서 하는 말일까?
그럴 리 없다. 저 조소 띤 차가운 표정을 봐라, 저 얼굴 어디에 미안한 마음이 숨어 있단 말인가.
물론 장천운은 그녀의 마음을 확인할 생각이 티끌만큼도 없었다.
그가 방을 나서자, 연송하가 따라 나왔다. 그녀도 이제 교대할 시간이었다.
마침 회랑 저쪽에서 류화가 오는 게 보였다. 구산이 두어 걸음 뒤쪽에서 쫄래쫄래 따라오며 어떻게든 말을 붙이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래도 요즘은 안 때리는 것 같던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만나기만 하면 투닥거렸다. 말이 투닥거린 것이지 구산이 일방적으로 맞았지만.
그런데 요즘에는 류화도 때리는 경우가 많이 줄어들었다. 봄기운이 완연해져서 그런지, 때리다 지쳐서 포기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거리가 가까워지자 구산이 헤벌쭉 웃으며 물었다.
“어? 대주, 어디 가는 거야?”
“독고민 만나러.”
“독고민은 뇌옥에 갇혔다며?”
“그래서 만나러 가는 거야.”
“그 자식, 꼴좋게 됐군. 그러게 왜 사람을 함부로 죽여?”
“그런데 이마는 또 왜 그래? 혹시……?”
“어?”
구산이 재빨리 오른쪽 눈두덩 위의 이마를 손으로 문질렀다.
“별 거 아니야. 우리 방 바로 바깥에 기둥이 하나 있잖아. 급하게 나오다가 받아서 그래. 류화는 아무 잘못 없어.”
사실이다. 단, 급하게 서두른 이유가 류화 때문이어서 그렇지.
본래 흑월대와 류화는 교대시간이 달랐다. 류화는 이교대고, 흑월대는 삼교대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비슷한 시간에 교대를 했다.
구산은 류화와 교대시간이 같다는 것을 알고 다급히 뛰쳐나오다가 저만치에서 류화가 먼저 가는 걸 봤다. 그 바람에 기둥이 있다는 걸 깜박했다.
당연히 류화는 아무 잘못이 없었다.
“기둥은 괜찮아?”
장천운은 구산의 눈두덩보다 기둥을 더 걱정했다. 바위처럼 단단한 구산의 이마가 벌게졌다면 기둥도 성치 않을 가능성이 컸다.
아니나 다를까, 구산이 말했다.
“금이 조금 가긴 했는데, 부러지진 않았어.”
그 말에 류화가 흘겨보며 한마디 덧붙였다.
“아마 새로 갈아야 할 거야. 저 덩치만 큰 곰이 돌덩이 같은 대가리로 받았는데 성하겠어?”
그러고는 쌩 소리가 날 것처럼 장천운을 지나쳐서 소성주의 방으로 걸어갔다.
연송하가 웃음을 참으며 돌아서서 류화를 따라갔다. 장천운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게 아쉬웠지만 인수인계를 늦출 순 없었다.
그때 류화를 따라가려던 구산이 멈칫하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독고민이 경혼당 무사를 죽인 게 확실해?”
“조사해보면 알겠지.”
“하필이면 지금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지? 수상한데?”
구산의 머리가 돌덩이처럼 단단하다 해서 멍청한 것은 아니었다.
“뭐가 수상해?”
“독고민이 죽였다는 자들, 독고민에게 두들겨 맞은 후에도 살아 있는 걸 봤다는 자가 있거든.”
“그래? 누군데?”
“철혈단에 있는 조신. 아마 대주도 알 걸? 무진년 일차 수련생으로 강련곡에서 함께 있었으니까. 그가 그러더군. 컴컴해서 자세히 보진 못했는데, 두들겨 맞은 자들이 독고민이 떠난 후 욕을 해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