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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175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18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175화

그 후 십초 비무가 벌어졌다.

겉으로 드러난 실력은 엇비슷했다. 무공만 따지자면 십초에 날 승부가 아니었다.

승부는 경험에서 갈렸다.

실전이나 다름없는 숱한 비무, 거기다 전쟁 중 위기상황에서 생사투마저 겪은 사공명신이다.

반면 용화성은 아직 그런 경험이 부족했다.

사공명신은 찰나에 생긴 빈틈을 놓치지 않았고, 용화성은 예상치 못했던 공격에 당황했다.

사실상 승부는 그것으로 끝났다고 볼 수 있었다.

용화성이 패한 것이다.

장천운의 수하에게!

용화성은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동정일수가 일개 수하에게 지다니!

그는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 무리한 공격을 감행했다.

그 바람에 두 사람의 공세가 정면으로 충돌했고, 결국은 내상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승기를 잡았던 사공명신은 그나마 심한 내상을 입지 않았지만, 무리를 한 용화성은 제법 내상이 심했다.

“그러다 어디 부러지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장천운은 상황을 짐작하고도 모른 척 핀잔을 주었다.

용화성은 자존심이 상했지만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도 자신이 패한 것은 바뀌지 않는다.

‘빌어먹을.’

“뼈는 다치지 않았습니까?”

“괜찮네. 혈맥이 충격을 받았을 뿐이야.”

“비가 올 것 같은데,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죠.”

용화성의 기분만큼이나 짙은 구름이 하늘에 잔뜩 끼어 있었다.

“송하야, 차 좀 부탁한다.”

“알았어요.”

 

장천운이 차를 한 잔 비웠을 때였다. 무화원 입구에서 경비를 서던 수혼대 대원 하나가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부리나케 뛰어와서 말했다.

“대주,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 누군데?”

“그게…… 교왕께서 오셨습니다.”

“교왕이 왔다고?”

“그리고 대꼬챙이처럼 마른 노인도 함께 왔는데, 아무래도 환마 우곡 같습니다.”

옆에서 듣던 용화성은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교왕 둔가부는 전설이나 다름없는 오왕 중 하나다. 환마 우곡은 천중십마에 속한 절대고수고.

두 사람이 동시에 찾아왔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정말 교왕과 환마란 말이오?”

오죽하면 수혼대원에게 그렇게 물었을까.

그런데 장천운이 이마를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그 영감들이 뭐 하러 찾아왔지?”

그 영감들?

용화성은 석고처럼 굳은 얼굴로 장천운을 바라보았다.

영감을 영감이라고 하는데 뭐라고 하랴마는, 천하에서 교왕과 환마를 대놓고 영감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자 몇이나 되겠는가.

“잠깐 갔다 올 테니, 용 형은 여기서 운공조식으로 몸이나 다스리고 있으쇼.”

장천운이 그렇게 말했지만, 용화성은 운공조식이나 하고 있을 기분이 아니었다.

“함께 가세.”

 

***

 

교왕 둔가부는 사웅이 메고 있는 가마에 타고 있었다. 우곡은 그 옆에 서 있었는데 표정이 묘했다.

장천운이 다가가자 둔가부가 가마에서 나왔다.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어쩐 일은? 자네에게 볼 일이 있어서 왔지.”

“그럼 안으로 들어가시죠.”

장천운은 둔가부와 우곡을 소천전 일층에 있는 전청으로 안내했다.

연송하가 눈치 빠르게 차를 준비했다.

“저놈은 뭐냐?”

둔가부가 투실투실한 턱을 흔들며 말했다. 그의 살집에 숨겨진 눈이 용화성을 향하고 있었다.

“광양산장의 용화성 공자십니다.”

“광양산장? 그럼 용 늙은이의 손자란 말이냐?”

그제야 용화성이 정신을 차리고 포권을 취했다.

“용화성이라 합니다, 노선배님.”

“용태경의 손자가 왜 여기서 저 꼴로 앉아 있는 거지? 어디서 되게 얻어맞은 것 같은데?”

용화성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결국 장천운이 말하는 수밖에.

“흑월대 조장하고 비무하던 중에 살짝 내상을 입었을 뿐입니다.”

“용 늙은이가 알면 발끈하겠군. 손자가 구천성의 일개 조장에게 깨졌다고 말이야.”

용화성의 얼굴이 벌게졌다.

‘제길, 꼴이 말이 아니군.’

장천운이야 그 말에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사실 사공명신도 무림십룡 중 하나가 아니던가. 아직 정체를 드러내지 않아서 몇 사람 외에는 모르지만.

“그런데 무슨 볼일이 있어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왜, 내가 온 것이 싫으냐?”

“저야 좋지요. 아마 소성주께서도 좋아하실 겁니다. 다만 장로원에 계시던 분들이 갑자기 찾아오니 의아한 것뿐입니다.”

“이 우가가 물어볼 것이 있다고 해서 왔다.”

“우 노선배님이요?”

장천운이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하며 우곡을 바라보았다.

“우선 저놈부터 치워라. 남 앞에서 할 이야기가 아니니까.”

우곡이 용화성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장천운으로선 귀찮은 용화성을 자연스럽게 보낼 수 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용 형, 흑월대로 돌아가 계십시오. 송하야, 네가 모시고 가.”

천하의 환마가 가라고 하는데 버티고 앉아있을 수도 없는 일. 용화성은 불만이 많았지만 일어나는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아름다운 연송하와 함께 가는 것이어서 기분이 크게 상하진 않았다.

우곡은 용화성과 연송하가 나간 후에야 입을 열었다.

“저번에 나와 신법을 겨룰 때 네가 펼쳤던 신법 때문에 물어볼 것이 있어서 왔다.”

매우 심각한 표정이다.

장천운은 우곡의 그런 표정이 의문이었다.

“뭘 알고 싶으신 겁니까?”

“어디서 익힌 것이냐?”

“조금 비슷한 면이 없는 건 아닙니다만, 노선배님의 사문과는 절대 관련이 없을 겁니다.”

“어디서 익혔냐니까?”

“본 성의 수련장인 강련곡에서 익혔습니다.”

“농담하려고 온 것 아니다. 누구에게 배웠느냐?”

“저도 농담하는 것 아닙니다. 강련곡에서 우연히 얻었지요.”

“우연히…… 얻었다?”

우곡의 눈이 점점 커졌다. 눈초리가 잘게 떨렸는데 뭔가를 예상하고 경악한 듯했다.

“예.”

“그럼…… 누군가에게 배운 것이 아니란 말이냐?”

“아주 오래 전에 환귀자란 분이 남긴 걸 얻었습니다. 금판에 구결이 적혀 있었는데, 처음에만 해도 어떤 미친 자가 헛소리를 적어 놓은 줄 알았지요.”

끝내 우곡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지고, 꾹 닫힌 입술 끝이 파르르 떨렸다.

“왜 그러십니까?”

왜냐고?

우곡은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대답을 하려면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 이야기를 할 경우 정말 빌어먹을 일이 생길지 몰랐다.

그런데 장천운이 조금 더 자세히 말했다.

“믿으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제가 익힌 것은 신법이라기보다 환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익히고 나니 너무 신기해서 환귀자란 분을 신법의 사부처럼 생각하기로 했죠.”

“…….”

“혹시…… 제가 익힌 환술과 우 노선배님의 사문 사이에 어떤 관계라도 있습니까?

있다. 그래서 문제다.

우곡은 잠깐 고민했지만, 여기까지 온 마당에 자신을 속일 수는 없었다.

“환귀자님은 환신문을 세우신 조사님의 은인이시오. 조사님께선 환귀자님을 사부님처럼 생각하셨소이다.”

거기까지 말한 우곡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더니 갑자기 털썩 무릎을 꿇고 정중하게 엎드렸다.

“환신문 제 팔대 제자 우곡이 사조님을 뵙습니다!”

맙소사!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이람?

“뭐, 뭐야?”

둔가부의 눈이 수십 년 만에 왕방울 만하게 커졌다.

장천운도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린 그가 급히 우곡을 일으켜 세웠다.

“이, 이러지 마십시오.”

“제자가 사문의 어른께 인사를 하는 건데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우 노선배님, 계속 이러시면 저만 곤란해집니다. 어서 일어나십시오.”

그제야 우곡이 몸을 일으켰다.

장천운은 난감한 표정으로 우곡을 바라보았다.

조부 뻘 되는 사문의 제자라니.

그다지 반가운 일은 아니었다.

“환귀자란 분의 환술을 얻긴 했지만 정식 사부로 모신 건 아닙니다. 그러니 너무 부담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장천운이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우곡은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조사님께선 환귀자님의 후예가 나타나면 깍듯이 예를 다하라 하셨습니다. 환귀자님의 환술법을 익힐 수 있는 사람이 백 년에 하나 나올까말까 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리 유언을 남기신 것이지요.”

아니나 다를까 그 동안 단 한 명도 환귀자의 환술법을 익히지 못했다.

장천운이 첫 번째 제자나 다름없는 것이다.

우곡의 조사와 동급 항렬.

“그래도 이건 아닙니다. 그냥 전처럼 선후배로 지내는 게 좋겠습니다.”

“아무리 그렇게 말씀하셔도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리하면 결국 조사님의 유언을 저버리는 꼴이 되지 않겠습니까?”

“말은 낮출 수 있지 않습니까?”

장천운의 그렇게 말하자, 둔가부가 후다닥 거들었다.

“그게 좋겠네. 이 친구도 그게 편하다고 하지 않는가? 자네가 사조라고 부르든, 조사라고 부르든 그거야 알아서 하고.”

그는 우곡의 친구다. 우곡이 존대를 한다면, 자신은?

그거야 말로 미칠 일 아닌가 말이다.

우곡은 한참 동안 고민하더니 조금 양보했다.

“그럼 사조께선 알아서 부르시오. 저는 저대로 알아서 하리다.”

환마의 성격이 대쪽 같다더니 잘못된 소문은 아니었다.

졸지에 늙은 제자를 두게 된 장천운은 한숨이 나왔다.

아마 공손백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자신에게 위협을 느낄 것이다. 그럴 경우 최악의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

“정말 저를 사문의 어른으로 생각한다면 한 가지 약속을 해주십시오.”

“말씀해보시오.”

 

잠시 후, 둔가부와 우곡을 장로원으로 돌려보낸 장천운은 어이가 없어서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고수가 자신의 편이 되었으니 좋은 일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나이 먹은 노인이 따라다니며 어른취급할 걸 생각하니 머리가 띵했다.

‘미치겠군. 이걸 어떡하지?’

그렇다고 도망 다닐 수도 없고.

‘에이, 모르겠다.’

머리를 흔든 장천운은 전청을 나섰다.

그때 무화원으로 들어선 무사 하나가 그를 보고는 급히 방향을 바꾸어서 달려왔다.

“대주, 총사께서 비령각으로 오시랍니다.”

 

***

 

비령각에 가자 우문각이 굳은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장천운이 앞자리에 앉자 거두절미하고 본론을 꺼냈다.

“대벽보는 이상이 없다고 하는군. 아직 눈치 채지는 못한 모양이다.”

“다행이군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문제라니요?”

“무림맹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림맹이?”

“그들이 본 성을 적으로 규정했다. 이미 구문팔가와 정파의 세력에 모두 알렸다고 하는군.”

무림맹과는 이미 한판 붙었으니 적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그들이 곧장 움직였다는 점이다.

우문각도 그 점 때문에 표정이 굳은 듯했다.

전쟁이 나면 사마경이 또 나서야만 하는 것이다.

“무림맹이 바로 전쟁을 일으킬 것 같습니까?”

“아직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다만 대령주가 보고 있지만은 않을 거라는 것 하나만큼은 확실하지.”

공손백은 전에도 암암리에 무림맹을 움직여서 사마경을 공격하게 한 전력이 있지 않은가.

“골치 아픈 문제군요. 그가 알게 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소성주님을 전쟁터로 뛰어들게끔 하려고 할 텐데 말이죠.”

“그 전에 우리가 먼저 시작해야할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독살 건을 터트리자는 뜻.

구천성의 힘이 갈라져서 위험할 수도 있지만, 자칫하면 실행도 못해보고 당할 수 있다.

“소성주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마 사마경은 그 결정을 반길 것이다.

우문각도 모르지 않았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건 네가 더 잘 알 거다.”

“어째 일거리가 줄기는커녕 더 늘어나기만 하는군요. 그런데 녹봉은 그대로이니 불공평한 거 아닙니까?”

엉뚱한 녹봉타령에 우문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무사들의 녹봉은 비령각에서 정했다. 그러니 우문각이 그 책임자라고 할 수 있었다.

그는 장천운이 긴장감을 풀기 위해서 던진 말장난이라는 걸 알고도 한번 튕겼다.

“어차피 쓸 곳도 없잖느냐?”

“그래도 모아 놓으면 나중에 쓸 곳이 생길지 모르죠.”

“알았다. 지금의 배로 올려주마.”

“고맙습니다.”

“너의 어깨가 더 무거워졌으니 매사에 조심해라.”

“당연히 조심해야죠. 능구렁이에게 당하고 싶진 않으니까요.”

장천운은 그쯤에서 일어났다.

말장난을 해봤는데도 가슴은 만근 바위가 들어찬 것처럼 무거웠다.

이길 수 있는 확률이 반이나 될까?

확실한 승산도 없이 싸움을 걸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전쟁터로 내몰릴지 모른다.

문제는 어느 하나도 풀어나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곧 무거움을 훌훌 털어냈다.

‘하긴 언제는 쉬웠나? 까짓 거, 정 안 되겠다 싶으면 미친 짓 좀 하지 뭐.’

미친 짓이라면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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