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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173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16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173화

어차피 장천운도 더 공격할 의사가 없었다.

의도된 도발의 목적은 이룬 상태. 일격이면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소란을 피워서 죄송합니다, 대령주. 제가 욕먹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다보니 참지를 못했습니다.”

공손백은 굳은 표정으로 장천운을 노려보았다.

장천운이 염하를 공격하는 순간 말릴 수 있었음에도 그냥 놔두었다. 장천운의 진실된 실력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

그런데 염하를 단 일격에 낭패한 꼴로 만들어버리다니.

짐작했던 것보다 더 강하다.

빌어먹을!

“바쁠 텐데, 그만 가봐라.”

장천운은 담담한 표정으로 포권을 취한 후 다시 방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머리가 좀 아플 거다, 공손백. 앞으로 나를 죽이고 싶어질 때마다 고민 좀 해야 할 걸?’

 

***

사밀령 무사들은 일만 평이 넘는 장로원 안팎을 쥐구멍까지 들쑤셨다.

어찌나 열심히 돌아다녔는지 석양이 질 무렵쯤에는 안 만나본 사람이 없었다.

아마 경비무사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글로 쓴다면 책으로 몇 권은 나올 듯했다.

하지만 그 중에서 관심을 가질 만한 이야기는 서너 가지밖에 안 되었다.

먼저 삼령주 백오가 보고했다.

“장로원의 경비무사 중 노 장로의 거처 근처를 지키던 자의 말에 의하면, 노 장로가 아침에 나갔다 했소. 하지만 그 시간에 외곽을 지키던 경비무사들은 노 장로가 나간 것을 보지 못했다 하오.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소이다.”

“팔문에서 확인해 봤습니까?”

구천성에는 문이 총 여덟 개다. 나갔다면 누군가는 봤을 것이다.

“애들 둘을 보내 확인해 봤는데 아무도 보지 못했다 하오.”

확인할 것도 없다. 장로원의 경비무사가 거짓말을 했을 것이다.

이미 입을 맞췄겠지.

두 번째로 사령주 초광이 말했다.

“석양이 질 무렵에 구정물을 실은 마차가 장로원에서 나오는 것 본 사람이 있소. 평소보다 조금 많은 듯 보였는데, 그때만 해도 그러려니 했다고 하오.”

“어느 쪽으로 나갔는지 확인해 봤습니까?”

“조금 전에 사람을 보냈으니 곧 알아올 거요.”

세 번째는 일령주 위곤이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진철평 장로가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그날따라 경비무사들이 노 장로 방 근처에 유난히 많았다고 하더군.”

적검수사 진철평은 구평추, 가유덕, 서두향과 함께 소성주를 따르는 몇 안 되는 장로 중 하나다. 그라면 나름대로 냉정하게 판단했을 것이다.

경비무사들이 노회현의 거처 쪽에 많이 있을 이유가 뭐겠는가. 그만큼 경계를 강화했다는 것은 누군가가 접근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는 뜻.

“그렇다면 그때 당했을 가능성이 크군요.”

“죽인 후 마차로 빼냈을지도 모르네.”

장천운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빛을 번뜩였다.

“보통 구정물 마차는 하인들이 끌겠지요?”

“아무래도 그러겠지.”

“사령주, 하인들은 만나봤습니까?”

“그게…….”

초광이 머뭇거렸다. 하인들까지 만나볼 생각은 못해본 것이다.

“가서 하인들을 만나보십시오.”

“알겠소.”

 

허드렛일을 하는 하인들의 거처는 장로원 뒤쪽 구석진 곳에 지어져 있었다.

초광이 사밀령 무사 셋과 함께 하인들의 거처로 다가가자, 하인들이 두려움에 질린 표정으로 눈치만 봤다.

싸늘한 표정, 차가운 눈빛. 눈가에 상흔마저 있는 초광의 인상은 힘없는 하인들에게 두려움을 주고도 남았다.

초광은 두려움에 질려서 눈치만 보는 하인들을 일일이 붙잡고 말을 붙여보았다.

눈에 힘을 잔뜩 주고 다그치듯 물어봤지만 그날 쓰레기를 치운 마차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상하군. 왜 아는 사람이 없지?’

초광도 나름대로 사건을 파고들어가는 능력만큼은 남에게 뒤지지 않았다.

사밀령 사령주 자리를 가위바위보로 따지는 않은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일단 돌아가기로 했다. 어느덧 석양이 서산으로 완전히 넘어가서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 인간에게 말하면 알아서 하겠지.’

그런데 그가 돌아섰을 때였다.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이 그의 옆을 지나가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척산의 농장에 가보슈.”

초광은 노인을 슬쩍 쳐다보았다. 노인은 그의 시선을 의식하지 못한 듯 잰 걸음으로 멀어졌다.

“노인장, 잠깐만 멈추시오.”

초광이 노인을 불러 세웠다.

그러나 노인은 못들은 척하고 방문을 열었다.

“잠깐이면 되오.”

초광이 다시 불렀다.

막 방에 들어선 노인이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왠지 불안한 표정. 주위를 둘러보는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왜 척산의 농장에 가보라는 거요?”

“그날따라 구정물을 척산의 돼지농장으로 가져가는 것 같았소. 척산까지 갔다 오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서두르지 뭐요.”

“다른 때는 척산의 농장에 가져가지 않소?”

“장로원에서 나온 구정물은 닷새에 한 번씩 가져가는데, 양이 많지 않아서 대부분 중산의 농장으로 가져갔소.”

“누가 마차를 끌었소?”

“호삼이가 몰았는데, 선경대 무사 둘이 따라갔소.”

“호삼이라는 사람은 지금 어디 있소?”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불안감이 지나쳐서 공포에 질린 표정이었다.

“돌아오지 않았소.”

떨리는 목소리가 저 밑바닥으로 기어들어갔다.

그제야 초광은 마차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없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자칫하면 자신도 사라질지 모르는데 누가 말을 하겠는가.

‘호삼이란 하인까지 제거했나?’

바로 그때. 노인이 초광의 뒤를 보고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황급히 방문을 닫았다.

동시에 오싹한 느낌이 뒤에서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초광은 이를 악다물고 몸을 돌렸다.

언제 나타났는지 어둠 속에서 세 사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 중 가운데 서 있는 사람을 본 초광의 눈매가 잘게 떨렸다.

‘빌어먹을.’

강퍅한 인상에 음울해 보이는 눈빛을 한 오십대 초로인. 그는 평상시 모습을 잘 보이지 않는 장로, 암혼도객 적두였다.

오종, 언동교, 문인동, 그리고 사라진 노회현과 함께 공손백의 최측근 장로 중 하나. 자신의 힘으로 감당키 힘든 절정고수다.

“무슨 일입니까?”

“하인들이 뭘 안다고 이 밤중에 이곳까지 들어와서 소란스럽게 하나?”

“혹시나 해서 와본 것입니다.”

“가 늙은이가 뭐라고 하던가?”

“아는 것 없으니 그만 가보라고 하더군요.”

초광도 눈치가 없진 않았다. 뭔가를 들었다고 하면 노인을 가만두지 않을 게 뻔했다.

그러나 적두도 순순히 물러서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보게. 저 늙은이가 뭘 알려주었지?”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 노인장이 저에게 뭘 알려준단 말입니까?”

“말장난할 생각 없네. 호삼이에 대해서 뭘 알려주었는가?”

아무래도 자신이 노인에게 하는 말을 들었나보다.

목소리 큰 것이 죄라면 죄였다.

‘빌어먹을.’

초광은 나름대로 빠르게 머리를 굴린 다음 대답했다.

“전에 호삼이란 자를 한번 본 적 있는데, 오늘은 안 보이더군요. 그래서 어디 있냐고 물어봤더니 자신은 모른다고 하지 뭡니까?”

“그래?”

“그렇습니다. 그럼 저는 바빠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대충 얼버무린 초광이 포권을 취하고 걸음을 옮기려 하자 적두가 앞을 막아섰다.

“나도 호삼이란 자가 궁금해지는군. 한번 가 노인에게 물어봐야겠어. 확인해볼 때까지 기다리게나.”

“바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비켜주시지요?”

“비켜라? 사밀령이 크긴 컸군. 사밀령의 일개 령주가 나에게 그따위로 말하다니. 일단 버릇부터 고쳐놓아야겠군.”

조소를 지은 적두가 느닷없이 손을 뻗었다.

초광은 흠칫하며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적두도 앞으로 나아가며 뻗은 손을 흔들었다. 허공에 십여 개의 수영이 난무한다 싶더니 그 중 일수가 초광의 어깨를 쳤다.

퍽!

“큽!”

쇠망치에 얻어맞은 듯 느껴지는 거센 충격. 어깨가 통째로 떨어져 나간 듯했다.

주르륵, 뒤로 물러선 초광은 이를 악물고 적두를 노려보았다.

조소를 베어 문 적두가 초광에게 다가갔다.

“어차피 가 늙은이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는 일, 순순히 말한다면 나도 더 이상 손을 쓰지 않겠다.”

초광이 씩 웃었다. 오기라면 그도 한가락 했다.

“여태 말한 것을 똥구멍으로 들으셨습니까? 모른다고 했잖습니까?”

적두의 가느다란 눈썹이 꿈틀거렸다.

“네놈이 정녕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초광도 이판사판이었다. 안 그래도 장천운 때문에 짜증 만땅인데 무슨 말을 못해?

“조사대원을 죽인다고? 죽여보시지. 씨발, 어디 죽일 배짱이나 있는지 한번 봐야겠네.”

적두의 눈빛이 새파랗게 번뜩였다.

초광도 전 공력을 끌어올리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자존심이 있지, 죽는 한이 있어도 순순히 무릎을 꿇긴 싫었다.

그때였다.

“누가 조사대원을 죽인다는 겁니까?”

느닷없는 목소리가 어둠속에서 들렸다.

꼴 보기 싫은 장천운의 목소리다. 그런데 오늘만큼은 그 목소리가 너무나도 반가웠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들뜬 목소리로, 침까지 튀겨가며 일러바쳤다.

“대주, 가 노인에게 뭐 좀 물어봤다고 적 장로가 저를 죽이겠는구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장천운이 내려섰다.

장천운은 적두를 싸늘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정말 초 령주를 죽이겠다고 했습니까?”

적두는 눈을 치켜뜨고 이를 갈았다.

오종과 배청이 합공을 하고도 어찌하지 못한 놈이다.

인정하자니 부담이 되고, 안하자니 자존심이 상할 일이다.

“설마 진심으로 그런 말을 하신 것은 아니시겠지요?”

장천운이 재차 다그치자 적두의 얼굴이 붉어졌다.

“난 그냥 무슨 일인가 싶어서…….”

장천운은 적두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싹둑 잘라냈다.

“초 령주, 적 장로님도 진심으로 그런 것 같진 않으니 그만 가지요. 올 때가 되었는데 안 오시기에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 줄 알았지 않소?”

장천운은 적두를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적두는 주먹을 움켜쥔 채 이를 갈며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장천운이란 놈의 뒤통수를 갈겨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순순히 맞아줄 놈이 아니다. 맞아주기는커녕 거꾸로 자신이 당할지도 모른다.

‘두고 보자, 이놈.’

그때 막 걸음을 옮기려던 장천운이 홱 고개를 돌렸다.

적두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에서 힘을 뺐다.

제기랄!

“혹시 노 장로님이 왜 죽었는지 아십니까?”

갑작스런 질문. 그러잖아도 자존심이 상해있던 적두가 툭 쏘듯이 반문했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안단 말이냐?”

“알아보는 게 좋을 겁니다. 오래 살고 싶으시면.”

슬쩍 미끼를 던진 장천운은 가 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인장, 물어볼 것이 있으니 따라오시죠.”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돌리고 걸음을 옮겼다.

가 노인은 적두의 눈치를 보며 장천운을 따라갔다.

초광도 재빨리 따라붙었다. 오늘 따라 장천운이 멋지게 보였다.

적두는 이를 갈면서도 막지 못했다.

‘흥! 어디 마음대로 해봐라. 그래 봐야 네놈들은 아무 것도 찾아낼 수 없을 거다.’

 

***

 

가 노인의 이야기를 들은 장천운은 다음 날 날이 밝자 척산농장을 방문했다.

인원수 일만에 이르는 구천성에 고기를 공급하는 주요 농장 중 하나가 척산농장이다.

그곳에서는 돼지와 닭 등을 대량으로 키웠다. 소도 이십여 마리 있었는데, 잡아먹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근의 광활한 밭을 가는 일을 위해 존재했다.

“일령주는 일꾼들을 조사해보시오. 그리고 삼령주는 농장 인근을 철저히 살펴보시오. 시체를 묻었을지도 모르니까.”

 

위곤은 척산농장에서 일하는 일꾼들을 철저히 조사해보았다.

장로원의 마차가 척산농장에 온 것은 확실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었다.

한 달에 한번 올까말까 한 장로원의 마차가 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일꾼 누구도 그 외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 사이 백오는 척산농장 인근을 이잡듯이 뒤져보았다.

그러나 사밀령 무사 오십여 명이 눈에 불을 켜고 철저히 살펴보았음에도 단서가 될 만한 것은 발견할 수 없었다.

 

“아무 것도 알아내지 못했소, 대주.”

위곤이 곤혹스런 표정으로 보고했다.

장천운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생각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마차가 노회현의 죽음과 연관 있는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조사에 전문가라 할 수 있는 사밀령 무사 오십여 명이 달라붙고도 단서를 찾아내지 못하다니.

“놈들이 마차에 싣고 나와서 바로 다른 곳으로 빼돌렸을지도 모르오.”

위곤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하지만 장천운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느낌은 한 번도 틀린 경우가 없었다.

그 느낌이 말하고 있었다. 이곳 척산농장에 수상한 뭔가가 있다고.

‘단서를 찾지 못했을 뿐 분명히 뭔가가 있어.’

그는 차가운 눈을 들어서 농장을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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