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17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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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14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171화
“율검당이 제 역할을 못한다면 저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총사는 이번 사건에 의문을 제기한 사람이네. 게다가 최근 들어서 둘 사이가 좋지 않다는 말이 들리더군. 그렇다면 총사가 조사를 맡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보네.”
백리호가 한마디 거들었다.
“저 역시 대령주와 같은 생각입니다. 자칫하면 조사가 감정적으로 흐를지도 모릅니다.”
그 후 장로와 간부들이 웅성거리며 제각각 의견을 내놓았다.
총사가 조사를 해야 한다는 사람들과 총사가 조사해선 안 된다는 사람들로 의견이 극렬하게 갈렸다.
웅성거림이 커지더니 당장 싸움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말이 험해졌다.
쿵!
대장로 나극이 탁자를 가볍게 치며 일어섰다.
소란이 한순간에 가라앉았다.
“아무래도 태상호법의 살해사건에 대한 조사는 율검당이 계속 하는 것이 나을 것 같네.”
그가 나섬으로써 의견의 추가 급격히 한쪽으로 기울었다.
바로 그때 사마경이 시원스럽게 말했다.
“좋아요! 여러분의 생각이 정 그렇다면 태상호법과 공 호법 살인사건에 대한 조사를 율검당에 계속 맡기겠어요.”
공손백과 나극의 표정이 풀어졌다. 강극효도 안도했는지 얼굴이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아직은 미소를 지을 때가 아니었다.
사마경이 꼬리를 달았다.
“단,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어요.”
흠칫한 백리호가 반문했다.
“해야 할 일이라니?”
“임시성주의 권한으로 율검당의 수장을 새로 선임하겠어요.”
사마경의 말이 떨어진 순간, 구천대전 안의 대기가 얼어붙었다.
율검당의 당주를 바꾼다는 것은 공손백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은 강극효였다. 벌떡 일어난 그가 붉게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소성주, 이 강모는 이십 년 전 구천성에 들어와서 목숨을 걸고 충성을 바쳤소이다! 그런데 지금 와서 내치겠다는 거요?”
“능력이 없으면 물러나야하지 않겠어요?”
“뭐요?”
“최근 이삼 년 동안 엄청난 사건이 연이어 터졌는데도 당주는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결한 사건이 없어요. 안 그런가요?”
“범인을 잡지 못한 것은 인정하겠소이다. 하지만 나도 사람인데 항상 범인을 잡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니오?”
“잡고 못 잡고가 문제가 아니에요. 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율검당은 태상호법과 공 호법의 살해사건에 대해서 제대로 조사조차 하지 않았어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는 거죠. 왜 그랬죠?”
날카로운 질책이 이어지자 강극효도 말문이 막혔다.
“그건…….”
“노력했다면 지금 즉시 가서 그 동안 조사한 내역을 가져와보세요.”
“아직 정리가 안 되어서…….”
“전에도 그랬나요? 제가 기억하기로는 작은 사건이라 해도 철저히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토록 중요한 사건을 정리도 안했다니,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시나요?”
“…….”
사마경이 날선 목소리로 다그치자, 강극효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슬쩍 공손백 쪽을 쳐다보았다.
공손백이 일어났다.
“율검당은 본 성의 율법을 관장하고, 사건을 조사해서 죄인을 잡아들인 후 형을 집행하는 곳이네, 소성주. 결코 아무나 앉혀서는 안 되네.”
“저도 알아요. 그래서 그 일에 적합한 사람을 당주로 임명할 생각이에요.”
“소성주가 생각하는 사람은 누군가?”
“전무궁 호법이면 경험이 많으시니 율검당을 훌륭하게 이끌 수 있을 거예요.”
전무궁의 이름이 나오자 간부들 중 다수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전무궁은 본래 황궁에 있었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황궁의 감찰조직을 이끌었다는 말도 있고, 황군의 교육을 총괄했다는 말도 있었다.
성격이 대쪽 같다 보니 황궁의 온갖 권모술수에 환멸을 느끼고 강호로 나온 고수.
육십이 넘은 나이가 조금 많긴 하지만, 어찌 보면 율검당을 이끌기에는 최적의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심지어 공손백도 사마경이 전무궁을 지명하자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사마경의 반격은 이제 시작이었다.
“그리고 수장의 자리가 비어 있는 천경전은 육선기 호법께서 맡아주시고, 관무독 장로께서는 수고스럽겠지만 절검당을 맡아주세요.”
사마경은 비어 있는 천경전과 절검당의 수장을 일사천리로 임명했다.
공손백은 느닷없이 뒤통수를 맞은 사람처럼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천경전이야 전부터 사마경을 추종하는 혁련광이 주인이었으니 문제될 것 없다.
그러나 절검당은 달랐다. 손득환이 자신의 사람은 아니었지만 사마경의 사람이라고 볼 수도 없었다.
그런데 관무독이 당주가 되면 완전히 사마경의 손에 넘어가는 셈이 되는 것이다.
‘교활한 계집.’
공손백이 머뭇거린 사이 사마경이 말을 이었다.
“이런! 순서가 바뀌었군요. 본래는 노 장로의 일부터 논의해보려고 했는데요. 그럼 이제 그 일을 논의해보지요.”
막 반박하려던 공손백이 입을 다물었다.
노회현의 일은 단순하게 그의 실종만으로 끝나지 않을 사안이다.
만약 사마경이 정말로 ‘그 일’을 알고 있다면 말이다.
“노 장로가 본 성이 싫어서 떠났다면 굳이 찾을 필요도 없지 않은가?”
“살아있다면 신의를 저버리고 성을 떠난 죄를 물어야 할 것이고, 죽었다면 왜, 누구에 의해서 죽었는지 밝혀내야만 해요. 우리 구천성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그 일은 앞으로 흑월대 장천운 대주가 맡아서 조사할 거예요.”
“장……천운?”
“이년 전 남 숙부님의 살해사건에서도 핵심을 짚어내 육 장로님의 무고를 밝혀낸 사람이 장 대주였지요. 저번 당하에서 공을 세운 일은 말할 것도 없고요. 능력은 충분하다고 봐요.”
공손백의 눈썹이 회색빛 송충이처럼 꿈틀거렸다.
어찌 생각하면 일이 꼬이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그래서 그는 더더욱 장천운이 마음에 안 들었다.
‘다른 놈이라면 몰라도 저놈에게 맡길 순…….’
그런데 독고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장천운이 조사대를 맡는다면, 이 독고태는 찬성이오!”
공손백의 표정이 급변했다. 넋 놓고 있다가 한 대 맞기라도 한 것처럼.
그는 나극을 슬쩍 쳐다보았다. 나극도 난감한 표정이었다.
‘빌어먹을, 아직 말하지 않은 모양이군. 늙은이가 굼뜨기는.’
사마경은 이지러진 공손백의 표정을 못 본척하고 포권을 취했다.
“고마워요, 단주.”
그러고는 곧바로 말을 돌렸다.
“모두 알다시피 최근 들어서 많은 무사들이 본성에 가입했어요. 그들 중에서 쓸 만한 사람을 뽑아 그 동안 줄어든 각 조직의 인원을 채울 거예요. 수장들께선 필요한 인원을 계산해서 총사께 말씀드리도록 하세요.”
말할 기회를 놓친 공손백은 차디찬 눈빛으로 사마경을 노려보았다.
그때 사마경이 간부들을 둘러보고는 목에 힘을 주고 말했다.
“여러분께서 명심할 것이 하나 있어요. 앞으로 무림맹과 파천회가 호시탐탐 본 성을 노릴 거예요. 하나로 힘을 합쳐서 대항해도 모자랄 판에 분란을 조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임시성주의 권한으로 절대 용서치 않을 거예요.”
그것은 선전포고였다.
공손백도 선전포고의 대상이 자신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사마경을 노려보는 그의 입에서 서릿발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 역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 누구든 분란을 조장해서 구천성에 위해를 가하는 자는 용서치 않을 것이네.”
소성주라 해도!
“고마워요, 백부!”
사마경이 공손백을 향해 포권의 예를 취했다.
공손백도 천천히 두 손을 들어서 포권을 취했다. 한광이 고인 두 눈이 사마경에게서 한 치도 떨어지지 않았다.
“당연한 일 아닌가?”
지켜보던 사람들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
거처로 돌아온 공손백은 들끓은 가슴을 식혔다.
오늘의 평의회에서 자신이 밀렸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많은 걸 잃었어.’
짜증이 치민 그는 먼저 문인동을 다그쳤다.
“그 늙은이가 바닥에 글을 새겼다니. 좀 더 세세히 살피지 않고 뭐했느냐?”
“죄송합니다, 주군. 핏물에 잠겨서 미처 보지를 못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증거만으로는 저를 범인으로 단정할 수 없을 겁니다.”
‘문’자를 쓰는 사람은 세상에 얼마든지 있다. 명확한 증거라 할 수 없다.
친한 사이라는 것도 심증일 뿐이고, 태상호법의 방에 들어가는 걸 봤다는 것도 시간이 확실치 않다.
결국 심증은 확실하지만 확실하게 범인으로 몰기에는 물증이 부족하다.
“놈들이 노리는 건 제가 아니라 주군입니다. 아마도 주군의 손발을 쳐내서 고립무원의 상태로 만들 생각인 것 같습니다.”
공손백도 모르지 않았다.
“흥! 분명 그런 생각이겠지. 문제는 사마경에게 명분을 주었다는 것이야.”
그가 분노한 이유는 사실 그 점이었다.
문인동의 범죄가 밝혀져서 잡힌다 해도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 하면 그만이다. 약간의 타격은 입을지 몰라도 그 정도는 금방 만회할 수 있다.
반면 명분을 주었다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
명분을 얻음으로써 사마경은 조직의 수장을 바꾸는 등 구천성의 주요 업무를 일사천리로 진행시켰다.
자신은 두 눈 빤히 뜨고도 막지 못했고.
“그 멍청한 독고태 때문에 일이 더 꼬였어.”
한쪽에서 조용히 선 채 문인동이 질책 당하는 것을 즐겁게 바라보던 종리성학이 넌지시 말했다.
“요즘 독고민이 사마경에게 미쳐서 엉뚱한 짓을 하고 다닌다고 합니다. 놈을 이용해서 독고태에게 경고를 보내는 게 어떻겠습니까?”
공손백의 눈빛이 짙푸른 살기로 번뜩였다.
“그것도 괜찮을 것 같군. 사지 하나 잘려도 상관없으니 확실하게 처리해.”
***
구천무원에서도 심각한 이야기가 오갔다.
“율검당까지 빼앗긴 이상 대령주와 대장로가 참고만 있지는 않을 거요.”
우문각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개별적으로 생각하면 굉장한 득이다. 문제는 율검당을 빼앗긴 공손백과 나극의 반응이다. 당하고만 있을 자들이 아니니까.
사마경은 후회하지 않았다.
“어차피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에요. 시간을 끌면 백부가 정리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을 거예요.”
“그건 그렇소만, 당주를 바꾼다 해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 자칫 부담만 커질 수도 있소.”
“제가 알기로는 충성심이 강한 사람들만이 율검당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어요. 강 당주가 맡기 시작하면서부터 변질이 되었던 거죠.”
사실이었다.
오년 전, 강극효는 전 율검당주였던 주산해가 급사한 후 대장로 나극이 강력하게 밀어붙여서 율검당을 맡게 되었다.
그 후 율검당은 알게 모르게 성주와 거리를 두었다.
말로는 성주의 말보다 율법이 우선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했지만, 그 이면에 나극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아마 율검당 무사들 중 강 당주의 행사에 불만이 많은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을 거예요. 그들을 잘 이용하면 생각보다 내부를 쉽게 정리할 수 있다고 봐요.”
사마경의 말에 우문각은 묵묵히 고개만 주억거렸다.
율검당 주요 무사 중 반 이상이 오년 전 사람들이다. 성주에게 충성을 맹세한 자들.
그들의 충성심은 아직 변질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저 오년 동안 참고 있었을 뿐.
“설령 율검당 무사들의 반발심이 생각보다 크더라도 너무 걱정할 것은 없어요. 이제부터 바쁘게 굴러가다 보면 반발할 시간도 없을 걸요?”
“반발할 시간을 안 주고 굴린다?”
“할 일이 많잖아요. 태상호법과 공 호법의 살인사건도 해결해야 되고, 남조연 장로의 살해사건도 재조사 시키고, 노 장로의 실종건도 도와야 하니까요.”
우문각은 다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시선을 돌려서 장천운을 바라보았다.
장천운이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랬군. 저 여우 같은 놈이 뒤에서 바람을 잡았어. 어쩐지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밀어붙이더라니…….’
사실 장천운이 한 말은 단순했다.
이 기회에 율검당의 주인을 바꾸자.
천경전과 절검당의 주인을 소성주 사람으로 임명하자.
공손백에게 강하게 나가라.
사마경은 그의 말을 듣고 그가 생각한 것보다도 더 멋지게 상황을 정리했을 뿐이다.
“어쨌든 이제부터 저들의 반격이 시작될 거요, 소성주.”
“저도 알아요. 지금쯤 어떻게 하면 제 목을 칠 것인지 궁리하고 있겠죠. 하지만 쉽게 당하진 않을 거예요.”
“어쩌면 힘으로 해결하려 할지 모르오. 나는 소성주가 다칠까 봐 그것이 걱정될 뿐이오.”
“제가 어찌 숙부님의 마음을 모르겠어요. 사실 저도 겁이 나요. 하지만 제가 돌아가신 아버지께 해드릴 수 있는 일은 복수밖에 없어요. 그 일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내놓을 각오가 되어 있어요.”
사마경이 그리 마음먹었다면 더 이상의 걱정은 무의미하다.
“좋소. 소성주께서 그런 마음이라면 이 우문각이 어찌 토를 더 달 수 있겠소.”
“이해해줘서 고마워요, 숙부.”
“그런데 독에 대한 건은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