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17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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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248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170화
사마경이 자리에 앉을 때까지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않았다.
당하전쟁 이전과는 대하는 태도가 판이하게 달랐다.
단순히 전쟁의 승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결과만큼이나 과정도 중요했다. 그리고 승리라는 결과 외에 또 다른 결과물이 그녀를 달리 보게 만들었다.
특히 대봉문과 담판을 지어서 지부로 끌어들인 일은 한 동안 술좌석의 안주가 되었을 정도였다.
“오늘 구천대평의회를 소집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에요!”
마침내 차가움마저 느껴지는 사마경의 목소리가 구천무전에 울려 퍼졌다.
간부들의 눈이 일제히 그녀에게로 집중되었다.
“먼저 노회현 장로에 대한 사안을 의논해볼 생각이에요.”
역시 그 일이었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며 반사적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마경의 입에서 두 번째 사안이 나왔다.
“두 번째는…… 태상호법과 공선도 호법의 살해사건에 대한 일이에요.”
웅성거림이 빠르게 잦아들었다.
사건이 벌어진지 이제 두 달여가 지났을 뿐이다. 그런데 두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 고민하거나, 마음 아파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육선기를 비롯한 호법 몇 명만이 안타까워하는 표정으로 한숨을 쉴 뿐.
“두 호법에 대한 사건은 저희 율검당에서 조사하고 있소이다, 소성주.”
율검당주 강극효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마경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어디까지 조사했나요?”
“사십여 명을 조사했소만 특별히 의심할 만한 사람은 없었소이다. 그래서 우리는 범인이 외부에서 들어온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소이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순찰당인 벽호당의 서 당주께서 책임을 지셔야 할 일이군요.”
갑작스런 지적에 서호가 눈을 부릅뜨고 펄쩍 뛰었다.
“소성주,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 벽호당이 왜……?”
“강 당주께서 방금 말씀했지 않나요? 외부인이 호법전까지 들어가서 태상호법과 공 호법을 살해했다고. 사실이라면 당연히 순찰당에도 책임이 있는 것 아닌가요?”
엄한 불똥을 맞은 서호가 강극효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강 당주, 언제 그런 결론이 났단 말이오?”
“그게…… 꼭 그렇게 결론이 났다는 게 아니라 그럴지도 모른다는…….”
강극효가 난감한 표정으로 얼버무렸다.
이때라는 듯 우문각이 싸늘하게 다그쳤다.
“강 당주, 율검당에서 언제부터 일을 그렇게 대충 처리했단 말이오? 태상호법과 공 호법을 죽인 살해범을 잡는 일이거늘, 외부인이 저질렀을지도 모른다? 도대체 그 동안 뭘 한 거요?”
강극효는 슬쩍 공손백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공손백이 도와주었으면 했지만, 공손백은 이마를 찡그린 채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강극효가 나서는 바람에 노회현의 일이 뒤로 밀린 것은 다행이었다. 하지만 서호의 말에 제대로 답변을 못하면서 우문각에게 꼬투리를 잡힐 빌미를 준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 아닐 수 없었다.
‘멍청한 놈!’
그때 사마경이 말했다.
“강 당주의 말을 들으셨다면, 제가 왜 두 분 호법의 살해사건을 이 자리에서 말하는지 아셨을 거예요.”
간부들은 더 이상 웅성거리지 않고 숨을 죽였다.
분위기가 묘하게 흐르고 있었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언동교가 나섰다.
“소성주, 두 분 호법에 대한 일은 우리 모두가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소이다. 그래도 어쨌든 율검당이 맡은 일이니 한 번 더 기회를 주시지요.”
“저도 그러고 싶어요. 하지만 두 분 호법의 원혼이 한이 맺힌 채 구천에서 떠돌아다니고 있을 걸 생각하면 무작정 기다릴 수도 없어요.”
“소성주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오만, 그 일이 꼭 평의회에서 논할 일이외까?”
오종이 불만스런 투로 말했다.
담담하던 사마경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 붉은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서도 냉기가 흘러나왔다.
“그래요. 제가 나름대로 조사한 바가 사실이라면…… 살해 용의자 중의 한 사람이 지금 이곳에 있거든요.”
청천벽력이 따로 없었다. 그녀의 말이 떨어진 순간, 구천무전이 얼어붙었다.
공손백도 이를 지그시 악물고 사마경을 쳐다보았다.
그도 잠시, 여기저기서 노성이 터져 나왔다.
“소성주! 그게 누구요? 누가 용의자란 말이오?”
“사실에 근거한 말씀이어야 할 것이외다!”
“어허! 이거 참…… 어떻게 책임지려고 그런 말을…….”
탕탕탕!
누가 탁자를 세차게 두드렸다.
사람들의 눈이 모두 그쪽으로 향했다.
구평추 장로였다.
“모두 조용히 하고 소성주의 말씀부터 들어봅시다! 이유가 있으니 그런 말씀을 하셨을 것 아니오?”
그때까지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던 나극이 손을 들어서 흔들었다.
장로들부터 입을 닫았다. 호법과 각 조직의 수장들도 헛기침을 하고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조용해졌다.
그제야 나극이 침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말씀해 보시게, 소성주. 용의자가 여기에 있다고 했던가?”
“그래요, 대장로.”
“용의자는 용의자일 뿐, 모든 것이 밝혀질 때까지 범인이 아니네. 그 정도는 알고 있겠지?”
“물론이에요. 그래서 구천대평의회를 소집한 거죠. 여러분들께서 정확한 판단을 내려주시길 바라고 말이에요.”
사마경의 목소리는 맑고 컸다. 옥쟁반에서 구슬이 통통 튕기는 듯했다.
몇몇 사람이 그녀의 말을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
‘간부들에게 판단을 맡기겠다? 결국 책임을 간부들에게 떠넘기겠다는 건가?’
‘갈수록 교활해지는군.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겠어.’
그 와중에도 사마경의 목소리가 구천무전에 울려 퍼졌다.
“태상호법과 공 호법의 살해범을 잡는 일이에요. 마다할 분은 없을 거라 생각해요.”
그런 말까지 했는데 안 된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심지어 공손백조차 그에 대해서는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흐음, 그래, 그 용의자가 누군가?”
공손백이 입을 열자 모두가 숨소리조차 멈추고 사마경을 주시했다.
사마경은 그쯤에서 공을 우문각에게 넘겼다.
“당시 저와 몇 사람이 태상호법의 방에 들어가서 몇 가지 증거를 찾았어요. 총사 역시 함께 있었지요. 총사, 설명해 주시겠어요?”
우문각은 속으로 쓴웃음이 나왔다.
이제부터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갈지 모른다. 한발만 잘못 내딛어도 끝 모를 수렁으로 빠질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물러설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래, 언젠가는 부딪쳐야할 일.
‘오늘이 그날이라고 해서 나쁠 것도 없지.’
숨을 깊게 들이쉬고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좌중을 둘러보았다.
무려 백 명에 가까운 간부들이 숨조차 멈추고 일제히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럴 때는 에둘러 말하는 것보다 단도직입적으로 심장을 찔러 들어가는 게 나았다.
“태상호법을 죽인 자는 자신이 매우 현명하고 완벽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만, 최소 두 가지 이상의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 중 하나는, 쓰러진 태상호법이 바닥에 범인의 이름자 중 한 자를 남겼다는 걸 몰랐다는 겁니다. 물론 흘러나온 피에 의해서 바로 덮였기 때문에 못 봤을 수도 있겠지요.”
간부들이 또 다시 웅성거렸다. 반면 몇 사람은 표정이 굳어졌다.
우문각이 손을 들자 약속이라도 한 듯 대화를 멈췄다.
“두 번째 실수는, 뭐가 그리도 할 말이 많았는지 바로 죽이지 않고 시간을 끌었다는 겁니다. 하긴 매우 가까운 사이였으니 죽기 전까지 할 말이 많았겠지요. 부디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용서해달라는 말이라도 했기를 바랍니다.”
이번에는 아무도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그 말에 흥미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범인이 여철숭과 가까운 사이라는 사실이 입을 얼어붙게 만든 것이다.
대전 안에 있는 사람 중 여철숭과 가까웠던 사람이 어디 한두 사람이던가?
“세 번째도 있소?”
독고태가 물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 했지만 궁금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있습니다.”
우문각이 일단 서두만 꺼내고 숨을 골랐다.
다른 사람들도 그를 따라서 숨을 쉬었다. 그리고 우문각의 입술이 떨어지자 숨을 멈췄다.
“그날 태상호법께서 살해당하신 것으로 추측되는 시간에 누군가가 태상호법의 방으로 들어가는 걸 본 사람이 있습니다.”
“태상호법의 방에 들어간 사람을 봤다고? 누구요?”
우문각은 이번에도 바로 대답하지 않고 앉아 있는 간부들을 둘러보았다.
“누구요? 누가 감히 태상호법을 살해한 거요!”
벌떡 일어선 육선기가 분기탱천한 표정으로 소리쳐 물었다.
“어서 말해보시오, 총사!”
“어허! 도대체 어떤 놈이……!”
이 사람, 저 사람 분노를 쏟아냈다.
이름을 밝히면 당장 잡아서 오체분시라도 할 것 같은 험악한 분위기.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던 몇 사람의 표정이 미미하게나마 이지러졌다.
우문각은 분위기가 무르익자 손을 들어서 검지를 세우고 허공에 글자를 쓰며 말했다.
“먼저 태상호법의 방바닥에 남겨진 글자부터 말씀드리지요. 그 글자는…… 바로 문(文)자였습니다.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으니 확인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이름에 ‘문’자가 들어간 사람은 많지 않았다.
호법 중에선 기철문과 호문대곡, 장로 중에선 문인동 뿐.
간부들은 고개를 돌려서 그 세 사람을 둘러보았다. 특히 여철숭과 가장 가깝게 지냈던 사람인 문인동에게로 대부분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문인동은 마른 암석처럼 굳어진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총사!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하시는지 모르겠소만, 단순히 ‘문’자가 바닥에 적혀 있다 하여서 이름에 ‘문’자가 들어간 사람을 용의자로 모는 것은 적절치 못하외다.”
몇 사람이 그의 말에 동조했다.
“그 말은 문인 장로의 말이 맞소이다!”
“율검당이 먼저 철저하게 조사를 했다고 들었소. 총사가 들어가서 봤다는 글자를 그들이 못 봤다는 건 말이 안 되오. 율검당 무사들이 모두 봉사라면 모를까…….”
그 말에 우문각이 답했다.
“내 굳이 두 번째 이유에 대해서는 더 설명하지 않겠소. 태상호법은 인품이 뛰어난 분이어서 가까운 사람이 많았으니까 말이오.”
그러고는 문인동이 입을 열기 전에 먼저 운을 떼었다.
“대신 하나만 묻겠소, 문인 장로. 그럼 그 시간에 태상호법의 방에는 왜 찾아간 거요?”
―여철숭의 방에 들어간 사람은 바로 너였다!
그 말이다.
간부들이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문인동을 쳐다보았다.
문인동은 당황하지 않고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고는 숨을 고른 후 냉랭히 말했다.
“내가 태상호법을 찾아간 것은 맞소. 하지만 나는 태상호법과 일각 정도 담소를 나눈 후 방을 나왔소. 태상호법께서 살해당하신 것은 그 이후외다.”
나름대로 조심했다고는 하나 자신이 미처 보지 못한 목격자가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호법전을 나선 이후에도 몇몇 무사들과 마주쳤었다. 그들이라면 자신이 태상호법의 방에 들어갔다는 건 모를지라도 최소한 호법전에서 나왔다는 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부정하는 것보다는 정면으로 돌파하는 게 낫다.
“총사께서도 아시겠지만, 태상호법께선 이 문인동을 친조카처럼 생각하셨소. 호법전의 누구에게 물어봐도 다 알 거요. 그런데 나를 범인일 거라 생각하다니…… 나중에 범인이 밝혀지면, 총사께선 그 말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할 거외다.”
우문각이 차가운 눈빛으로 문인동을 보며 말했다.
“다른 사람이 범인으로 밝혀지면 내 정식으로 사과하겠소. 하지만 그 전에…… 장로께서도 정식 조사를 받아야만 하오.”
그때 공손백이 입을 열었다.
“정식 조사라…….”
축축하게 젖은 듯 느껴지는 나직한 목소리.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답답해지는 느낌을 받고 이마를 찌푸렸다.
“조사는 누가 할 건가? 설마 총사가 직접 하겠다는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