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169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16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169화
독고태의 방을 나선 장천운은 마당을 가로질렀다.
독고태는 장천운이 방을 나설 때까지 가슴 속에 있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하지만 장천운도 아쉬워하진 않았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서 뒤섞였다.
‘의심을 시작했으니 바로 풀리진 않을 거다. 어쩌면 또 한 번의 변수를 자처할지도 모르고. 어쨌든 며칠 여유는 벌었군.’
독고태는 교활한 자다. 그런 자일수록 남을 믿지 못한다. 상대가 형제자매일지라도.
하물며 장인과 사위는 아무리 좋아도 결국 남이나 다름없는 관계 아닌가.
‘큰 떡만 하나 쥐어 준다면…….’
정문이 저만치 보일 즈음, 누군가가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걸어 나왔다.
그를 본 장천운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나타난 사람은 독고민이었다.
“잠깐 나 좀 볼까?”
연송하 말대로 살이 많이 빠진 모습이다. 눈도 휑하게 느껴졌고, 단정하던 머리카락도 거친 듯 보인다.
‘완전히 미쳤군.’
속으로 혀를 찬 장천운은 건성으로 대답했다.
“지금은 바빠서 안 돼.”
“잠깐이면 된다.”
“좋아, 그럼 여기서 말해 봐.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지?”
“사마경을 만나게 해다오.”
정상적인 눈빛이 아니다.
소성주 때문에 상사병에 걸렸다더니 정말인가보다.
‘이런 놈일수록 거부하면 더 날뛰는 법이지.’
장천운은 무뚝뚝한 표정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말씀은 드려보겠어. 하지만 자신은 못해.”
독고민의 표정이 단박에 달라졌다. 활짝 웃는 표정 어디에서도 이전의 그를 찾을 수 없었다.
“정말이지? 네가 내 부탁을 들어준다면, 내가 가진 것은 뭐든 주마.”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없어.”
“그래? 그럼 나중에라도 말해라.”
상사병이 무서운 병은 분명한가보다. 독고민이 이렇게 변하다니.
그런데 소성주의 뭐가 좋아서 상사병이 든 거지?
얼굴 예쁜 거야…… 뭐 조금 예쁘긴 하지만, 병이 들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말이지.
그뿐이 아니다.
“그리고 백리우진에게 전해. 사마경에게 허튼 수작을 부리면 용서치 않을 거라고.”
초조한 표정으로 노려보며 말하는 게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그대로 전하지.”
백리우진과 독고민이 티격태격하는 거야 나쁠 것 없다. 서로 으르렁거리면 그만큼 자신이 편해질 테니까.
‘그래, 어디 둘이서 마음껏 싸워봐라.’
***
장천운이 사마경의 방으로 들어갔을 때 그곳에는 우문각이 와 있었다.
구양명과 소연추는 보이지 않았다. 비상이 걸려 있는 상황. 밤이 늦었다고 해서 잠을 자러 가지는 않았을 텐데…….
“내가 오시라고 했어.”
사마경이 의아해하는 장천운을 향해 말했다.
곧 자시가 된다. 이 늦은 시간에 우문각을 부르다니.
‘밀어붙이는 김에 끝장을 내겠다는 건가?’
장천운은 사마경의 뜻을 짐작했지만 토를 달지 않았다.
독살의 증거가 나온 이상 사마경도 더 참기가 힘들겠지.
“말해 봐. 뭐래?”
장천운은 독고태와 나눈 이야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이야기했다. 단, 독고민을 만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사마경은 장천운의 말을 듣고 입술을 깨물었다.
눈빛이 얼마나 차갑게 느껴지는지 심장박동이 멈춘 듯 보일 지경이었다.
“독고 단주가 그렇게 말했단 말이지?”
“예, 소성주.”
“숙부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마경이 묻자, 우문각이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독고태가 나서지 않더라도 아직은 대령주와 대장로의 힘이 너무 강하오.”
“시간이 흐르면 더 강해질 거예요. 독고 단주도 마음이 변할지 모르고요.”
일리 있는 말이다.
“그건 그렇소. 그래도 좀 더 완벽한 기회를 노리는 게 어떨까 싶소.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공격했다가는 자칫 역공을 당할 수도 있소.”
“저들은 이미 노 장로를 제거했어요. 거기다 무적장과 광양산장 사람들이 들어온 것마저 수상하게 보고 있어요. 어쩌면 그들이 들어온 이유를 짐작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그 말은 맞소. 공손백 곁에는 뛰어난 자들이 많으니까. 문인동 장로과 종리성학만 해도 대단한 재주를 지닌 사람들이오. 그래서 더욱 조심해야 한다는 거요, 소성주. 아마 저들은 소성주의 공격에 대해서도 대비책을 세워놓았을 거요.”
그때 장천운이 말했다.
“그럼 일단 옆구리부터 찔러보죠, 총사.”
“옆구리를 찔러?”
“먼저 문인동 장로부터 엮는 겁니다.”
“태상호법 살해범으로 말인가?”
“그렇습니다.”
여철숭이 죽기 전에 쓴 ‘우(又)’자로 보이는 흔적은 ‘문(文)’라고 결론이 났다.
여철숭과 친한 사람 중 ‘문’자가 들어간 사람은 문인동 뿐. 게다가 그는 여철숭과 적이 된 공손백의 사람이 되었지 않은가.
“나도 그러고 싶네만, 공손백의 철저한 비호를 받고 있어서 추궁하기가 쉽지 않네.”
“쉽지 않겠지만 어려울 것도 없죠.”
“어려울 것도 없다? 어디 방법을 말해보게.”
“그가 태상호법을 죽였다면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들어갔을 겁니다. 시신을 치우지 않고 그대로 놔두었다는 것은 동조자도 따로 없었다는 말일 것이고요.”
“아무래도 그랬겠지.”
“역으로 생각해 보면, 그 시간에 그와 마주하거나 본 사람도 없다는 뜻이죠.”
“음?”
“그럼 저희는 그가 태상호법의 방에 들어갔다는 것을 악착같이 주장하는 겁니다.”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며? 증거가 있어야 주장하지?”
“태상호법을 살해했을 것으로 의심되는 수상한 사람을 본 사람이 없을 뿐, 방에 들어가는 그를 본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죠.”
“누가 봤는데?”
“개똥이요.”
“…….”
“……뭐? 누구?”
사마경과 우문각이 눈을 껌벅이며 빤히 바라보자, 장천운이 우문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차갑게 가라앉은 눈에서 싸늘한 섬광이 번뜩였다.
“개똥이가 방에 들어가는 문인동의 모습을 본 거죠.”
“설마……?”
장천운의 말뜻을 깨달은 우문각이 말꼬리를 길게 끌며 기이한 표정을 지었다.
장천운이 조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럼 이제 남은 일은 개똥이로 누굴 세울 거냐 하는 것만 남았군요. 그 일은 총사께서 맡아주십시오.”
“으으음.”
우문각이 침음을 흘리며 눈을 가늘게 좁혔다.
거짓 증인을 내세우자는 말.
그럴 듯한 생각이다. 믿을 만한 사람을 내세우면 아마 반박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본 사람이 없었다고 말할 수도 없을 거고.
그 말을 하면 자신이 그곳에 있었다는 뜻이 되니까.
“저들도 가짜 증인을 내세워서 함께 있었다고 할지 모르네.”
“그에 대해서는 그 즉시 확인해보면 됩니다. 총사께서 직∙접.”
우문각의 섭심마혼공 앞에서 안색하나 변하지 않고 거짓말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문인 장로가 순순히 호법전에 갔다는 걸 시인하면 어쩔 건가?”
그 말에 사마경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위험을 무릅쓰고 시인하겠어요?”
“가긴 했지만 자신은 죽이지 않았다고 할 수도 있소.”
그럴 경우 새로운 증거를 찾아내야만 한다.
하지만 장천운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거기까지만 가도 반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일이 중요한 것은…… 간부들의 가슴에 의심의 싹을 심어주는 거니까요. 이후에 벌어질 ‘진짜 싸움’을 위해서 말이죠.”
우문각은 가슴이 싸늘하게 식었다.
‘무서운 놈.’
반면 사마경은 가슴이 뜨거워졌다.
“좋아. 그럼 해보지 뭐. 우문 숙부, 내일 아침에 구천대평의회를 소집하세요.”
***
사마경의 방에서 폭풍을 일으킬 음모가 진행되던 그 시각.
구천무원 후원의 작은 연못가에 구양명과 소연추가 나란히 서 있었다.
“달빛이 밝구려.”
“보름달이잖아요.”
“바람이 아직 찬데 괜찮소?”
“봄밤의 날씨는 겨울만큼이나 차죠.”
두 사람은, 한쪽에서 경비를 서며 곁눈질 하는 유고원의 속이 터질 정도로 엉뚱한 소리만 해댔다.
‘저러다 오늘 또 밤 새지…….’
오늘이 처음이 아니다.
며칠 전에는 ‘달 끝이 칼날처럼 날카롭게 생겼군요.’라며 강호의 멋없는 검사답게 말했다.
그에 대한 소연추의 대답은 ‘초승달이잖아요.’였다.
‘으이그! 정말 쫓아가서 가르쳐줄 수도 없고……!’
전보다 나아진 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넉 자였던 두 사람의 거리가 세 자로 줄어들었으니까.
한 자 다가가는데 보름 가까이 걸린 것이다.
저 두 사람은 알까?
두 사람이 손을 잡는데 얼마나 걸릴 것인지에 대해서 내기가 걸렸다는 걸.
유고원도 은자 한 냥을 걸었다. 그 기간까지 앞으로 닷새 남았다. 그 안에 손을 잡으면 돈을 따고, 못 잡으면 잃는다.
‘저러다가는 한 달이 지나도 손을 못 잡겠네.’
그런데 그때 소연추가 휘청거렸다. 연못가의 나무뿌리에 발이 걸린 듯했다.
아무리 절정고수라도 싱숭생숭한 마음이다 보면 나무뿌리를 못 볼 수 있는 법이다.
‘어머!’
그녀는 반사적으로 오른손을 뻗어서 바로 옆의 나무를 짚으려 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나무를 짚을 오른손이 없었다.
대신 그녀 곁에는 절대경지에 도달한 천한마검이 있었다.
스윽, 마치 나무뿌리에 걸릴 줄 알았다는 듯 구양명이 번개처럼 손을 뻗어서 소연추의 허리를 붙잡았다.
“조심하……구려.”
잦아드는 목소리 끝이 가늘게 떨렸다.
‘헉!’
유고원의 가자미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가 있는 쪽에서는 두 사람이 겹쳐진 듯 보였다. 마치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것처럼.
그런데 금방 떨어질 줄 알았던 두 사람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뿐이 아니다.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의 머리가 하나로 보였다.
‘저, 저건 너무 빠르잖아?’
그때였다. 방호가 구천무원의 건물을 돌아나오며 말했다.
“구양 대협, 그쪽에 계십니까? 소성주께서 부르십니다.”
하나로 보였던 머리가 번개처럼 둘로 갈라졌다.
방호는 그날의 일을 두고두고 후회했는데, 술을 마실 때마다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내가 그날 한쪽 눈이 엉뚱한 곳만 보지 않았어도…….
71장: 물러설 수 없는 자리
뿌연 아침안개가 지붕을 타고 흐른다.
둥지를 털고 나온 새들이 아침을 반기며 지저귄다.
세상의 아침은 긴장감으로 온 신경이 팽팽하게 당겨진 인간들을 비웃듯이 평화롭기만 하다.
그렇게 아침 해가 동산을 차고 세차게 솟구치던 사시 초.
간부들이 구천대평의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구천무전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당하전쟁 이후 두 번째 평의회였다.
갑작스런 평의회 소집은 구천성의 아침을 벌집처럼 쑤셔놓았다.
이미 전날 사마경의 명령을 받은 장천운이 장로원을 뒤집어놓은 것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구천대평의회를 소집했으니 그 이유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노 장로가 싸우기 싫어서 도망갔다는군. 아마도 그 일 때문에 소성주가 화났나 보네.”
“잔머리만 굴리던 친구가 드디어 맛이 갔군. 쯔쯔쯔…….”
“신의를 저버리고 출행랑 친 놈은 잡아서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려야 한다니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무슨 헛소리야? 노 장로가 왜 도망쳐?”
“이제는 별 소리가 다 나오는군. 소성주가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이러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군. 역시 어려,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니까, 에잉…….”
사마경의 성급함과 경험 부족을 탓하며 혀를 차는 자도 있었다.
어쨌든 어느 쪽이든 노회현 문제인 줄 알았다.
하지만 몇 사람은 오늘의 대회의 소집이 노회현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예상했다.
특히 공손백은 찰나의 순간도 마음을 놓지 않았다.
‘이 여우같은 계집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절대 긴장의 끈을 놓아선 안 돼.’
만약 독살에 대해 알아냈다면 힘으로 뒤집어버리는 수밖에.
그때였다.
구천무전 밖에서 경비무사가 힘찬 목소리로 외쳤다.
“소성주께서 듭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