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16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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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21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167화
언동교의 눈에서 살광이 번뜩였다.
‘맞아, 지금쯤 둔 형과 우 형이 함께 있을 거다. 잘하면 오늘 이놈을 요리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내심 득의의 마음을 숨긴 그가 싸늘하게 말했다.
“너 같은 놈은 쳐다보지도 못할 분이 와계신다.”
“글쎄, 그게 누구냐니까요? 혹시 수상한 사람 아닙니까? 이거, 한번 조사해봐야겠는데?”
장천운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방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 방문이 열리고 커다란 덩치의 장한이 나왔다.
교왕의 가마꾼 중 하나.
장천운을 알아본 그가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방안에는 주인어른께서 친구 분과 함께 계시오.”
“어? 오랜만입니다. 안 그래도 한번 찾아뵙고 이야기 좀 나누려고 했는데, 이 방에 계셨군요.”
언동교는 장천운이 교왕을 잘 아는 듯 말하자 안색이 급변했다.
‘어떻게 알지? 처음 왔을 때 소성주를 만나러 갔는데, 그때 봤나?’
하지만 단순히 한번 본 사이 같지가 않았다.
왠지 친근한 말투, 자신에게 대들 때와는 사뭇 다른 표정이다. 게다가 교왕의 수족이나 다름없는 사웅이 긴장하고 있지 않은가.
장천운은 언동교의 표정이 변하든 말든 교왕의 방문을 향해 곧장 걸어갔다.
거한은 순간적으로 머뭇거렸지만 그의 앞을 막지 못하고 옆으로 비켜섰다.
방안에는 두 사람이 탁자를 가운데 두고 앉아 있었다. 거한 셋은 벽쪽에 서 있었는데, 문 밖으로 나온 자마저 서 있으면 사찰 입구의 사천왕이 따로 없을 듯했다.
“오랜만입니다, 교왕 노선배님.”
장천운은 먼저 교왕 둔가부를 향해 포권을 취해서 인사를 건네고 반대편에 앉아 있는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 노인은 교왕과 정반대로 대꼬챙이처럼 마른 몸매에 키가 홀쭉하니 컸다.
장천운은 그 노인을 향해서도 포권을 취했다.
“장천운이라 합니다. 혹시 환마 우곡 노선배님이 아니신지요?”
“내가 우곡이다. 지금은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니 그만 나가봐라.”
우곡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약간의 노기가 실린 목소리. 나이도 어린 장천운이 허락도 받지 않고 무작정 들어온 것이 기분이 상한 듯했다.
하지만 여기서 그냥 물러서면 장천운이 아니었다.
“아무리 두 분의 이야기가 중요하다 해도 손님이 주인을 내쫓을 수는 없는 법이지요.”
우곡의 길게 뻗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참으로 건방진 놈이로다. 구천성의 이름을 믿고 그러는가 본데, 세상에는 구천성의 이름으로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 있느니라.”
노기가 실린 그 말에 장천운이 포권을 풀고 몸을 꼿꼿이 세웠다.
표정도 무심하게 가라앉았는데 조금 전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설마 구천성의 이름으로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 노선배님을 자칭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왜? 나는 그럴 말을 할 자격이 없어 보이느냐?”
“그렇습니다. 노선배님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습니다.”
“…….”
설마 그렇게 말할 줄은 생각도 못한 듯 우곡과 둔가부가 동시에 눈을 크게 떴다.
장천운이 한마디 덧붙였다.
“노선배님은 자신의 능력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시는군요.”
“이 우곡이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있다? 와하하하하!”
느닷없이 대소를 터트린 우곡이 장천운을 노려보았다.
칼날처럼 날카롭게 뻗은 그의 두 눈에서 푸른빛이 일렁거렸다.
“강호에 나온 지 사십 년이 다 되가는 지금 새파란 놈에게 그런 평가를 받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구나.”
그가 얇은 입술 사이로 나직이 말을 뱉으며 몸을 일으켰다.
머리카락이 넘실거리고, 갈색 장포가 펄럭거렸다.
장천운은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똑같은 자세, 똑같은 표정으로 우곡을 응시했다.
“교왕께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 노선배님께 구천성을 무시할 자격이 있다고 보십니까?”
갑자기 화살이 자신에게 날아들자 둔가부의 두툼한 얼굴살이 일그러졌다.
―왜 하필 나에게 물어?
마치 그런 표정이랄까?
“둔가야, 어떻게 생각하냐?”
우곡도 물었다.
둔가부의 얼굴이 더 심하게 일그러졌다.
그러다 적절한 말을 생각해낸 듯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후우, 최소한 저놈에게는 너를 평가할 자격이 있다.”
“뭐?”
우곡에게는 그 말이 더 충격적이었다.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안다는 둔가부가 그런 말을 하다니!
홱, 고개를 돌린 그는 더 망설이지 않았다.
“어디 보자, 이놈! 정말 그런 자격이 있는지!”
방 안에 거센 바람이 이는가 싶더니 우곡의 신형이 네 개, 여덟 개로 나누어지며 장천운을 덮쳤다.
환영 하나하나에 기운이 실려 있어서 모두 진체처럼 느껴졌다.
참으로 거짓말 같은 신법.
그런데 장천운은 한술 더 떠서 그 자리에서 퍽! 하는 순간 사라져버렸다.
귀신이 곡하다가 뒤로 넘어갈 노릇이었다.
“헛! 이 자식이!”
“그 정도로는 저를 잡을 수 없습니다.”
“오냐, 이놈! 어디 계속 도망가봐라!”
둘 다 보이지 않았다.
바람이 불어대는 허공에서 목소리만 들렸다.
사웅은 벽에 바짝 붙어서 꼼짝도 하지 않았고, 둔가부는 고개를 저으며 침상 있는 곳까지 물러섰다.
기이한 것은 두 사람 다 공격하는 기미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장천운은 어차피 공격할 생각이 없었다. 환술을 펼치려면 공격을 위한 진기를 절반 이상 쓸 수 없는 것이다.
우곡도 자신의 장기 중 하나인 환영절마수를 펼치지 않았다.
오기라면 오기였다. 절고의 신법을 익힌 고수답게 공격초식으로 겨루는 것보다 신법으로 승부를 내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스물을 셀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둔가부가 어느 한 곳을 보고 두툼한 입술을 반쯤 벌렸다.
장천운이 기둥에 붙어 서서 허공을 쳐다보고 있었다. 모습이 흐릿하긴 한데 분명 장천운이었다.
그것도 모르는지 우곡은 사방팔방을 휙휙 날아다니며 장천운을 잡으려 했다.
더 기이한 것은, 자신이 빤히 보고 있는데, 기둥에 붙어 있던 장천운의 모습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어, 어떻게 저럴 수가!’
그가 놀라고 있는 동안 장천운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 후 셋을 셀 즈음, 장천운과 우곡이 서로를 마주보며 바닥에 내려섰다.
“도대체…… 그게 무슨 신법이냐?”
우곡이 거죽만 남은 볼을 푸들푸들 떨며 물었다.
그가 익힌 환사귀영(幻邪鬼影)은 무영환신, 유령마영, 귀혼류와 함께 천하에서 가장 기괴한 신법 중 하나로 불린다.
그런데 애송이의 신법은 결코 자신에게 뒤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더욱 더 괴이했다.
더구나 자신이 느끼기로 최소한 세 번 정도는 위기가 있었다. 아마 그때 놈이 손을 썼다면 자신은 당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무영무종이라는 겁니다.”
다만 신법이 아니다, 환술이지.
그때 둔가부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우가야, 실망할 것 없다. 나도 못 이겼으니까.”
“뭐?”
“적수공권으로 싸웠는데도 못 이겼어.”
우곡은 얇은 입술을 꾹 닫고 장천운을 쳐다보았다.
장천운도 그쯤에서 상황을 마무리 지었다.
이쯤 했으면 공손백이나 나극이 손을 내밀어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어쨌든 실망시켜드리지는 않은 것 같아 다행입니다. 그럼 편히 쉬시면서 즐거운 이야기 나누십시오.”
‘이 상황에서 즐거운 이야기를 잘도 나누겠다.’
둔가부는 볼을 씰룩였지만 토를 달지는 않았다.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놈이다. 세상에 저런 놈이 있을 줄 어찌 알았으랴.
우곡은 장천운이 포권을 취하고 밖으로 나갈 때까지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러고는 문이 닫히자 아무 말 없이 자리에 앉았다.
“괜히 연락했군.”
둔가부가 미안한지 한마디 했다.
우곡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잘 불러줬다. 덕분에 다 늙어서야 세상이 내가 알던 것보다 더 넓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다행이군.”
“둔가야, 저놈 때문에라도 한 동안 이곳에서 지내야겠다.”
“응? 그럼……?”
본래 우곡은 내일쯤 밖으로 나가려 했다.
구천성의 오만함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친구가 없었다면 삼고초려를 하며 불러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
“같잖게 구천성의 이름을 까내리고도 이기지 못했으니 어쩔 수 있나?”
씁쓸한 표정으로 말하던 우곡이 눈을 가늘게 좁히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왜 그러냐?”
“이제 생각났는데, 그놈의 그 기괴한 신법, 언젠가 들어본 것 같아.”
“그래?”
그때였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우곡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설마……?’
언동교는 방에서 나온 장천운을 보고 눈매를 파르르 떨었다.
방안에서 말다툼하는 소리가 나더니 곧 세찬 바람소리가 들렸다.
그것뿐이었다.
싸우는 소리도 나지 않았고,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장천운이 들어갈 때와 별반 달라지지 않은 모습으로 방을 나섰다.
도대체 방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놈이군.’
***
장천운은 언동교의 의혹어린 시선을 뒤로 한 채 다른 장로들을 찾아갔다.
그 후 위곤이 이끄는 사밀령과 따로 움직이며 일만 팔천 평이나 되는 장로원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노회현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고, 노회현의 방에 들어간 사람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헛일만 한 것은 아니었다.
장천운이 장로들을 개별적으로 만난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구산의 부친인 구평추 장로 같은 경우는 그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했고, 가유덕과 관무독, 진철평 장로 역시 호의적이었다.
반면 다른 장로들은 협조를 거부하거나, 대놓고 반발했다.
특히 오종과 배청 등 악연이 있던 자들은 당장 목을 쳐버리지 못해서 한스럽다는 듯 싸늘한 눈빛으로 대했다.
최소한 장로전을 들쑤시고 다닌 덕에 적과 아군을 전보다 더 확실하게 가려낼 수 있었다.
장로원을 마음껏 들쑤신 장천운은 한 시진 만에 구천무원으로 돌아갔다.
“어떻게 됐어?”
장천운이 돌아오자, 사마경이 기대감과 초조함이 뒤섞인 표정으로 물었다.
“노회현은 자신의 방에서 죽은 것 같습니다.”
“증거는 찾았어?”
“노 장로가 누군가와 다툰 듯 보이는 흔적을 찾았습니다. 해서 시체도 찾아보고, 노 장로의 방에 들어간 사람도 찾아보았습니다만, 찾지 못했습니다.”
“시체가 장로원 안에 있을까?”
“가능성은 반반입니다.”
“사람들의 눈 때문에 밖으로 빼돌리진 못했을 거야.”
“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만, 대령주의 힘이라면 밖으로 빼돌리는 것도 어렵지 않았을 겁니다.”
“죽었다면, 당연히 저들이 죽였겠지?”
“그럴 겁니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어?”
“손님을 모셔놓고 시간을 오래 끌 수는 없습니다. 일단 밀어붙여보고 상황에 따라서 대응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사마경은 잠시 동안 말없이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싸늘하게 반짝이는 눈빛으로 말했다.
“백부가 순순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거야. 만약을 대비해서 철저히 준비해.”
“알겠습니다.”
71장: 물러설 수 없는 자리
그날 밤은 구름에 가려져서 달도 별도 보이지 않았다. 봄비라도 오려는지 공기가 눅눅한 느낌이었다. 바람은 불지 않았다.
바람도 없고 공기도 눅눅한 봄날 밤. 그날따라 먼 산에서 부엉이가 유난하게도 신경질적으로 울어댔다.
백리우진이 장천운을 찾아온 것은 그날 밤, 부엉이가 목이 쉰 소리로 ‘부엌, 부엌’ 하며 악을 써댈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