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165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11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165화
대원들의 상태를 간단하게 점검한 장천운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오랜만에 느긋한 휴식을 취했다.
자신이 없는 동안 별다른 말썽을 일으키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그런데 짐작했던 것보다 더 안정된 듯 느껴졌다.
‘그 동안 구양 대협이 고생 좀 했겠군.’
미소를 지은 그는 불씨가 막 피어난 화로에 찻주전자를 올려서 물을 데웠다.
그가 데워진 물로 차를 우려서 한 모금 마셨을 때 연송하가 방으로 찾아왔다.
“잘 다녀오셨어요?”
그녀는 오랜만에 만난 장천운을 앞데 두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장천운은 잠깐 밖에 나갔다 온 사람처럼 건성으로 인사를 받았다.
“어, 별일 없었지?”
연송하의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예, 살얼음판을 걷는 분위기 빼고는 괜찮아요.”
“듣자니까 하후경과 모후가 자주 와서 비무수련을 함께 한다며?”
“그 사람들도 싸우는 게 좋은가 보죠.”
“구천무원에도 아무 일 없었어?”
“소성주께서 오빠 생각 때문에 식사를 제대로 못했던 거 빼면 아무 일 없었어요.”
“소성주가 왜 나 때문에 밥을 못 먹어?”
“걱정되셨나 보죠.”
왠지 말투가 삐딱하다.
“송하야, 나한테 뭐 불만 있어?”
“아뇨? 아무 불만 없어요.”
없다는데 뭐라고 하랴.
장천운도 다른 고민 때문에 연송하의 마음을 깊게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다.
“귀찮게 하는 놈은 없었어?”
“백리 공자만 두 차례 찾아와서 이야기를 나누다 갔어요.”
“백리우진이?”
“전보다는 많이 나아졌던데요? 예전처럼 오만하거나 거만하지도 않고요.”
“그래봐야 그놈이 그놈이지 뭐. 걸레를 빤다고 행주가 되는 것은 아니거든.”
“그래도 독고 공자보단 훨씬 나아요.”
“독고민도 왔었어?”
“다섯 번이나요. 그런데 살이 많이 빠졌어요.”
“왜?”
“상사병에 걸렸나 봐요. 어떤 때는 미친 사람처럼 굴어서 소성주님이 구천무원에도 들이지 말라고 했어요.”
참 별일 다 있구나 싶었다.
하지만 독고민의 마음을 이해 못할 것도 없었다.
추녀인 줄 알았던 사마경이 절세미녀가 되어서 돌아오지 않았는가.
속았다는 마음과 미모에 홀린 마음이 뒤섞이면서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의 사마경 모습은 피 끓는 청년에게 미칠 만큼의 충격을 충분히 줄 정도로 아름다웠으니까.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조심해. 그리고 그놈이 손만 대도 바로 나에게 말해. 이 오빠가 그놈의 손목을 작신 부러뜨려버릴 거니까.”
“피이…….”
입술 사이로 실소를 지은 연송하의 얼굴이 발그레하니 상기되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겉과 달리 내심은 무척 기뻤다. 자신을 위해서 경천단과의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뜻으로 들린 것이다.
새침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풀어졌다.
“저보다 오빠 걱정이나 하세요. 대령주가 오빠를 노릴지 모르잖아요.”
“내 걱정은 안 해도 돼. 그런 일이 벌어지면 후회하게 만들어줄 자신이 있거든.”
“그래서 걱정이라니까요. 자신감이 지나쳐도 안 좋은 거라구요.”
“진짜라니까?”
그때 수혼대 대원 하나가 그들을 향해서 달려왔다. 무척 다급한 표정이었다.
“장 대주님.”
“무슨 일이오?”
“소성주님께서 즉시 구천무원으로 들어오시랍니다.”
70장: 환마(幻魔) 우곡
사마경의 방에는 그녀 외에도 소연추와 철무, 냉원상이 있었다.
장천운은 그들의 굳은 표정만 보고도 심상치 않은 일이 발생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헤어진 지 기껏해야 한 시진.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밖에 있는 구산이 모르고 있는 걸로 봐서 그만큼 비밀을 요하는 일인 듯했다.
“무슨 일입니까, 소성주?”
“장로원에 사람을 몇 명 심어 놓았어. 그런데 연락이 끊겼어. 셋 모두 다.”
“그들이 제거했다고 봐야겠군요.”
“그런 것 같아. 그런데 그 세 사람은 서로를 몰라. 그런데도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연락이 끊겼어.”
사마경의 말에 냉원상이 몇 마디 덧붙였다.
“모습도 보이지 않네.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
“서로를 몰랐던 셋이 한꺼번에 제거되었다면, 그들이 세 사람의 정체를 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마경이 눈살을 찌푸리며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에게 경고를 보내려고 제거한 걸까?”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그보다는……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일에 방해가 될 거라 생각하고 눈과 귀를 막으려 했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무슨 일을 하려고 눈과 귀를 막은 거지?”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는 안 되는 일이겠죠.”
단순한 그 말에는 무서운 뜻이 숨어 있었다.
그 뜻을 짐작한 듯 냉원상이 침음을 흘리며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으으음, 많은 피가 흐를 지도 모르겠군.”
“아마 그럴 겁니다. 어쨌든 일이 급하게 되었습니다.”
눈과 귀를 막고 진행하는 일의 목표지점에는 사마경이 있을 것이다.
시작한 이상 중간에 멈추지 않을 것이다.
멈출 생각을 했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겠지.
사마경도 그 점을 모르지 않았다.
“천운, 어떻게 하면 좋겠어?”
“제가 총사를 만나보겠습니다. 어쩌면 총사도 소성주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겁니다.”
“우문숙부가 왜……?”
“장로원에는 총사의 눈과 귀도 있었을 테니까요.”
그들 역시 지워졌을 가능성이 크다.
사마경은 장천운의 말뜻을 바로 알아들었다.
“맞아, 그럴지도 모르겠네. 알았어. 그럼 천운이 만나봐.”
***
장천운의 짐작은 빗나가지 않았다.
우문각도 이마를 잔뜩 찌푸리고 고민 중이었다.
장천운이 이십여 일 만에 돌아오자마자 심상치 않은 일이 발생했다.
장로원과 호법원에 심어놓았던 비령조원 중 장로원의 조원 둘이 제거된 것이다
이번 일의 발생과 장천운의 귀환이 어떤 식으로든 관계있다는 뜻.
우문각은 그 내면의 숨은 뜻을 짐작하기에 더욱 마음이 무거워졌다.
장천운이 찾아온 것은 그때쯤이었다.
“갔던 일은 어떻게 되었느냐?”
우문각은 대뜸 그렇게 물었다. 기선을 제압하기 위함이었다.
상황이 생각처럼 흐르진 않았지만.
“잘 됐죠.”
우문각의 이마에 그어진 주름이 꿈틀거렸다. 속으로 욕을 하고 있는 듯 입술도 움찔거렸다.
“알아냈느냐?”
“알아냈으니까 돌아왔죠.”
‘이 자식이 진짜……!’
우문각은 부글부글 속이 끓었지만 폭발하진 않았다. 폭발하면 지는 것이다.
“뭐라고 하더냐?”
장천운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우문각을 빤히 바라보았다.
우문각이 한 번 더 몰아붙였다.
“설마 쓸데없는 이야기만 잔뜩 듣고 온 것은 아니겠지?”
“아시잖습니까? 증인까지 데려온 거.”
알면서 뭘 그렇게 묻느냐는 뜻.
이번에는 우문각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장천운을 노려보았다.
특유의 눈빛이 장천운의 눈에 정통으로 꽂혔다.
하지만 장천운은 눈을 한 번 깜박이는 것으로 그의 공격에서 벗어났다.
우문각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전에는 시선을 피하든, 아니면 상당한 노력을 해야만 자신의 섭심마혼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눈 한 번 깜박이는 것으로 벗어나다니!
물론 자신이 전력으로 펼친 것이 아니었기에 벗어날 수 있었겠지만,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차갑게 식었다.
‘뭐 이런 놈이……!’
그는 천천히 숨을 몰아쉬어서 경악을 가라앉혔다.
“하긴 선등경과 채응도에다 광양산장 사람들까지 증언을 해준다면 믿음을 주기에 부족하진 않겠지.”
“거기다 한 사람만 더 하면 되는데, 생각지 않았던 문제가 생겼습니다.”
“누군데 그러느냐?”
“노회현 장로입니다. 듣자하니 검왕문과의 싸움 때문에 지원군으로 파견 나갔다고 하더군요.”
“으으음, 그래?”
침음을 흘리며 되묻는 우문각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장천운은 그 흔들림을 놓치지 않았다. 정말로 찰나에 불과한 흔들림이었는데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눈 한번 깜박하지 않고 주시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혹시 소성주께서 모르시고 계신 거라도 있습니까?”
“꼭 그런 것은 아니고…….”
우문각이 뒤늦게 말을 돌리려 했지만, 이미 기선은 장천운에게 넘어간 상태였다.
“설마 총사께서 소성주님을 속이려 하시진 않으셨을 거고…… 알고 계신 것이 있으면 말씀을 하시지, 왜 안하셨습니까?”
장천운은 우문각이 뭔가를 알고 있다는 걸 기정사실처럼 몰아붙였다.
우문각도 굳이 부정하진 않았다.
“말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확실치 않아서 조사 중이었을 뿐이야.”
“그래서요, 확실하게 알아내셨습니까?”
“오늘 오시 말쯤에 보고가 들어올 거라 생각했는데, 아직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다.”
“정보원들이 제거되었을 가능성은 얼마나 됩니까?”
“그게…….”
“총사의 정보원들만 연락이 끊긴 게 아닙니다. 소성주께서 심어놓은 자들도 동시에 사라졌습니다.”
우문각의 눈빛이 눈에 보일 정도로 흔들렸다.
“그게 사실이냐?”
“그것 때문에 총사를 만나러 온 겁니다.”
“빌어먹을…….”
“일단 조사하던 일부터 말씀해 주십시오.”
그때 정유가 온 바람에 우문각이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총사, 다녀왔습니다.”
“들어와라.”
방으로 들어온 정유는 장천운을 보고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평정심을 되찾고 두 사람 앞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되었느냐?”
우문각이 묻자, 정유가 장천운을 바라보며 머뭇거렸다.
장천운 앞에서 말해도 되는지 알고자 함이었다.
“천운을 볼 것 없다. 구천무원 쪽도 연락이 모두 끊겼다고 하는구나.”
“이런, 역시 그랬군요.”
일단 놀란 표정으로 탄식하듯 말한 정유가 입을 열었다.
“장로원 쪽의 경비가 갑자기 강화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저희 쪽 비조원들 역시 모두 제거된 것처럼 보입니다.”
“제가 돌아오자마자 그랬다는 것은 그만큼 마음이 급해졌다는 뜻이겠죠.”
한마디로 똥줄이 탔다는 말이다.
우문각이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네가 뭘 알아냈는지 저들이 눈치 챘다고 보느냐?”
“눈치 챘을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뒤가 구린 구석이 있으니 제풀에 놀라서 미리 선수 친 것일 수는 있습니다.”
우문각은 미간을 좁힌 채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럴 듯한 추측이었다.
“아니면 단순히 무적장과 광양산장 사람들이 함께 온 것을 보고, 소성주에게 새로운 힘이 생길 것을 우려해서 서두르는 것일 수도 있고요.”
그 역시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정유가 그쯤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총사, 두 가지 경우를 모두 가정해두고 대비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그래야할 것 같군.”
“이제 말씀해 보시죠. 뭘 조사하던 중이었습니까?”
장천운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자, 우문각도 더 이상 회피하지 못했다.
“노 장로의 지원군 파견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무슨 문제입니까?”
“그가 지원군과 함께 나갔다는데, 성으로 오던 중에 지원군을 만난 사람이 지원군에서 그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지원군과 함께 나갔는데, 지원군에는 그가 없다?”
“중간에서 어디로 사라졌든지, 아니면 처음부터 없었단 말이겠지.”
장천운의 눈빛이 차갑게 번뜩였다.
“처음부터 없었다면, 파견조차 안했을 수도 있겠군요.”
“분명한 것은 노회현이 현재 장로원에 없다는 것이다.”
“무창의 흑도에서는 가끔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 시체에 돌을 잔뜩 매단 다음 장강 깊은 곳에 빠뜨리곤 하죠.”
“저들이 노 장로를 제거했다고 보느냐?”
“그게 가장 깨끗한 방법이니까요.”
“태상호법의 죽음보다 더 골치 아프게 됐군. 그가 정말 제거되었다면 증인만으로는 공손백을 엮을 수 없다.”
그때 문득 어떤 생각을 떠올린 장천운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