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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164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08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164화

“실례했습니다, 소성주. 용화성이라 합니다. 소문으로 듣던 것보다 더욱 아름다운 분이시군요.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용화성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인사를 건넸지만 사마경의 표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저 인사치례처럼 한마디 던졌을 뿐.

“저도 반가워요.”

그러고는 바로 고개를 돌려서 선등경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붉은 입술 사이에서 꿀처럼 달콤하고 빙수처럼 시원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무적장의 장로께서 어인 일로 이곳까지 오셨나요?”

선등경의 입이 절로 벌어졌다.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장 대주의 부탁으로 증언을 하기 위해서 왔소이다.”

증언?

사마경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그녀는 시선을 장천운에게로 돌렸다.

“찾았어?”

“예, 소성주. 대벽보의 엄효익이 그에게 주문했고, 황사중은 왕달을 시켜서 그것을 엄효익으로부터 사들였습니다.”

“그게 다야?”

“엄효익에게 그것을 구입하게끔 주도한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지?”

묻는 사마경의 눈에서 심장을 얼릴 것 같은 한기가 흘러나왔다.

엄효익을 움직였다는 자!

그자만 잡으면 진실의 중심에 접근할 수 있으리라.

장천운도 그 점을 알기에 냉소가 절로 떠올랐다.

“노회현 장로입니다.”

사마경의 이마가 와락 찌푸려졌다.

“노 장로라고?”

“예, 소성주. 왜 그러십니까?”

“그는 어제 아침에 성을 떠났어.”

“예?”

“대령주가 검왕문 쪽에 지원군을 보내겠다고 해서 허락했는데, 보고서에 노 장로도 함께 갔다고 적혀 있었어.”

장천운은 사마경의 말을 듣는 순간 등골이 싸늘해졌다.

왠지 모를 불길한 느낌.

미간을 좁힌 그는 고개를 미미하게 갸웃거렸다.

대령주가 노회현 장로를 검왕문 쪽으로 보냈다고?

노회현이 절정고수라 하나 나이가 많고, 무위는 젊은 장로들만 못했다.

보낼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닌데, 전쟁터나 다름없는 곳에 왜 그를 보냈을까?

우연일까?

만약 우연이 아니라면?

그때 인상을 쓰고 있던 사마경이 말했다.

“일단 전령을 보내서 돌아오라고 해야겠어.”

장천운은 무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밀령을 보내겠습니다.”

 

***

 

구천무원에는 특별한 손님들을 위한 방이 몇 개 있었다.

장천운은 선등경 등을 구천무원에 머무르게 했다. 현재로선 구천무원만큼 안전한 장소가 없었다.

무화원도 생각해봤지만, 그곳은 그들이 하루도 견디지 못할 듯했다.

그런데 선등경은 그곳에서 뜻밖의 사람을 만났다.

“엇? 자네 혹시……?”

구양명이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구양명과 전혀 다른 행색이었다. 수염도 깨끗하게 정리했고, 복장도 단정했다. 심지어 검마저 달랐다.

그 바람에 하마터면 몰라볼 뻔했다. 아마 어릴 때부터 오랜 기간 본 사람이 아니었다면 모르고 지나쳤을 것이다.

구양명은 선등경이 자신을 알아보자 쓴웃음을 지으며 포권을 취했다.

“오랜만입니다, 선배님.”

“역시 구양 조카였군. 워낙 많이 달라져서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어. 그런데 자네가 여긴 어쩐 일인가?”

사실 구양명은 자신의 정체가 알려지는 걸 원치 않았다.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덕분에 아직까지 그의 정체가 밖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흑월대원들이 그의 정체를 아는 걸 생각하면 의외가 아닐 수 없지만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흑월대원과 대화를 나누려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으니까.

그의 정체를 밝히지 말라고 장천운이 단단히 일러두기도 했고.

흑월대원들로선 장천운과 날밤새며 푸닥거리를 하느니 입을 꿰매고 사는 게 나았다.

그렇다고 해서 선등경까지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돌아가신 사부와 친한 사이였으니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정식으로 가입한 것은 아니고, 여기 이 친구와 약속한 게 있어서…….”

구양명은 변명 아닌 변명부터 했다.

그런데 선등경이 장난처럼 말했다.

“전부터 그랬지, 이기는 사람이 있으면 형으로 삼는다고. 혹시 자네를 이긴 사람이 구천성에 있기라도……?”

그는 농담조로 한 말이었지만, 구양명은 그 말을 듣고 당황해서 장천운의 표정을 슬쩍 훔쳐보았다.

장천운은 내심 쾌재를 부르면서도 못 들은 척 딴청을 피웠다.

‘잘됐어. 형이 될 순 없어도, 붙잡아둘 수는 있겠군.’

구양명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하, 하, 하, 원 선배님도. 어릴 적에 한 농담을 아직도 기억하시는군요.”

“당연히 기억하지. 전에 분명히 몇 번이나…….”

“들어가시지요. 제가 따뜻한 차를 대접하겠습니다.”

“허허허, 오래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군. 자네가 차를 다 대접하다니.”

“살다 보면 바뀌지 않는 것이 뭐 있겠습니까? 자, 들어가십시오.”

구양명은 너스레를 떨며 선등경을 방안으로 몰아넣으려 했다.

그런데 용화성이 나섰다.

“노선배님, 잘 아시는 분 같은데, 뉘신지 저에게도 소개시켜주시지요.”

“아, 그렇군. 이보게, 이 친구는 광양산장 용 형의 손자네.”

“용화성이라 합니다. 호남의 친구들은 동정일수라고도 부릅니다.”

구양명은 짜증이 났지만, 그나마 선등경의 말이 끊긴 것에 위안을 삼았다.

“나는 구양이라 하네.”

“구양 노형이셨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구양이라는 성만 들은 용화성은 가볍게 포권을 취하며 목에 힘을 주었다.

아무리 이곳이 구천성이라 해도 광양산장의 대공자 신분이라면 꿀릴 것 없다. 더구나 복장을 보아하니 고위급 간부도 아닌 것 같고.

바라보는 눈빛에 왠지 가슴이 답답해지긴 했지만, 그 정도야 뭐…….

그런데 왠지 모르게 못마땅한 표정이다. 자신의 신분을 알고도 저런 표정이라니.

‘선 노선배님의 친구 분 제자인 모양인데, 꽤 거만하군.’

선등경이 아는 사람만 아니었다면 사람을 대하는 예절에 대해서 한마디 해주었을 텐데…….

‘꼭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 세력의 힘을 믿고 건방을 떤다니까.’

구양명의 반응이 못마땅한 그는 한마디 충고해주고 싶은 마음을 참을 수 없었다.

인사를 하면 답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귀하는 평소에도…….”

그런데 거의 동시에 선등경이 입을 열었다.

“어쨌든, 홀로 천하를 누비던 천한마검이 구천성에 있을 줄은 몰랐군.”

천한마검?

그제야 구양명의 정체를 알게 된 용화성은 입이 달라붙었다. 고막이 왱왱 울렸다.

“…….”

그나마 ‘당신’이라 하지 않고 ‘귀하’라고 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

 

“장천운이 도착했습니다. 보고대로 무적장과 광양산장 사람들이 동행했습니다. 그리고…….”

보고가 이어지는 동안 공손백은 허공만 노려보았다.

놈은 독에 중독된 흑월대원의 해독을 위해 구천성을 나섰다고 했다.

설령 그 말이 사실일지라도 오로지 그 일만을 위해서 구천성을 나선 것은 아닐 것이다.

현재로선 무적장과 광양산장을 끌어들이는 것이 목적일 가능성이 더 높다.

정말 그들이 사마경을 돕게 된다면 만만치 않은 세력이 형성될 것이다.

문제는 나극과 독고태다. 그들마저 자신에게 검을 들이댄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밀릴 거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다만 짜증나는 것은, 편한 길을 놔두고 힘들게 가야만 하는 지금 상황이었다.

원단 전날 사마경을 임시성주로 세우는 일에 두 사람이 반대만 했어도 일이 이 지경으로 흐르지는 않았을 텐데…….

‘한 치 앞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멍청한 것들!’

와락, 짜증이 솟구친 공손백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의 전신에서 가공할 기운이 불길처럼 퍼졌다.

보고를 올리던 문인동이 흠칫했다. 하지만 보고를 멈추지는 않았다.

“…… 그리고 노 장로는 검왕문으로 가던 중 개인적인 일 때문에 잠시 떠난 것으로 처리했습니다.”

보고가 끝나자 공손백에게서 피어오른 기운도 가라앉았다.

“교왕과 환마는 뭐하고 있느냐?”

“하는 일 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습니다.”

환마 우곡이 사흘 전에 들어왔다. 그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사마경에게 무적장과 광양산장의 힘이 더해진다고 걱정할 것 없다.

“성학.”

“예, 주군.”

“대장로에게 내가 만나잔다고 전해라.”

흠칫한 종리성학이 눈을 들었다가 다시 내리깔았다.

공손백의 눈빛이 투명하게 가라앉아 있다. 그럴 때는 토를 달아서 좋을 게 없었다.

“즉시 전하겠습니다.”

“문인동, 사람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라. 피를 봐야한다면 그렇게 해.”

“명을 이행하기 전에 얼쩡거리는 쥐새끼들부터 모두 제거하겠습니다.”

“그래, 그게 순서겠지.”

지시를 내린 공손백이 태사의에서 일어났다.

주먹을 움켜쥔 채 뒷짐을 진 그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무엇을 노리는지 몰라도 네 뜻대로 안 될 거다, 계집.”

 

***

 

무화원에 간 장천운은 신천장에 있던 흑월대원들이 모두 돌아온 것을 알고 마음이 놓였다.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사람이 몇 있었지만 우려할 정도는 아니었다.

흑월대원들 중 구산과 추소철 등 과거의 흑월조원은 장천운이 무사히 돌아온 것을 밝은 표정으로 반겼다.

하지만 그가 돌아온 것을 모두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은명객들은 불만이 많았다.

“한 달 정도 더 돌아다니다 와도 되는데, 왜 이렇게 빨리 와?”

“씨바, 다친 곳도 없잖아? 앞으로 땀 좀 흘리게 생겼군.”

장천운은 중얼거리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도 못들은 척했다. 대신 간단하게 인사말을 건넸다.

“모두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말씀하시는 걸 보니 큰 이상은 없는 것 같은데, 내일부터 그 동안의 수련 진척도를 점검을 해보겠습니다. 제가 없는 동안 얼마나 실력이 늘었는지 한번 볼까요?”

흑월대원들의 눈이 막소광과 등평에게 화살처럼 날아갔다.

중얼거렸던 막소광과 등평은 괜히 바쁜 척하며 어물쩍 방을 나갔다.

“그럼 쉬쇼, 대주. 난 좀 바빠서…….”

“나도 함께 가자고.”

장천운은 피식 실소를 짓고는 한쪽을 쳐다보았다.

강마우와 임사유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서 있었는데 전과 많이 달라진 듯 보였다.

나란히 서 있는 걸 보니 사이도 전보다 나아진 것 같았고.

“할 만합니까?”

장천운의 말에 강마우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뭐, 그럭저럭…….”

솔직히 처음에는 미치는 줄 알았다.

뭐 이런 인간들이 다 있는지, 시간만 나면 수련한다며 비무, 아니 싸움을 해댔다.

대충하는 싸움이 아니었다. 진짜 철천지원수와 싸우는 줄 알았다. 가끔 자신들도 끌어들였는데, 그 바람에 맞기도 많이 맞았다.

특히 은명객들하고 비무 아닌 비무를 할 때는 정말로 죽는 줄 알았다.

오죽하면 자청해서 흑월대에 들어온 자신의 머리를 돌로 내리치고 싶었을까.

그래도 오기로 버텼다. 설마 죽이지는 않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내가 바로 깡다구마왕 강마우야! 미친놈들, 어디 마음대로 해봐!

거기다 임사유까지 그를 들들 볶았다. 지옥에 가려면 혼자 갈 것이지 왜 데려왔냐며.

악에 바친 그는 삶의 방식을 바꾸기로 작정했다.

자신이 먼저 흑월대원들을 쫓아다니면서 한 수 가르쳐 달라고 졸라댔다.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몸이 조금만 괜찮다 싶으면 쫓아다녔다.

열흘이 지날 즈음에는 흑월대원들이 슬슬 피했다.

임사유의 오기도 강마우에게 뒤지지 않았다. 며칠 지나지 않아서 강마우보다 더 독기를 펄펄 날렸다.

어차피 맞아죽을 거면 이판사판이었다.

지미, 죽으면 한 번 죽지 두 번 죽어?

그러는 동안 두 사람은 자신들이 달라지고 있다는 걸 확실하게 느꼈다.

첫 번째, 강해지고 있었다.

두 번째, 생사투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세 번째, 밉던 곱던, 자신을 진심으로 위해주는 사람은 옆에 있는 친구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앞으로 더 강해져야 합니다. 지옥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으려면.”

“그럴 생각이오. 나도 일찍 죽고 싶진 않거든.”

임사유가 독기 서린 눈빛으로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강마우가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그런데 대주, 물속에서 하는 수련은 없수?”

“날씨가 조금 따뜻해지면 한번 할까요?”

옆에서 듣고 있던 흑월대원들은 무슨 뜻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때만 해도 그들은 물귀신 둘이 옆에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다음 달이면 들어가도 될 만큼 따뜻해질 겁니다, 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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