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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하마제 8화

무료소설 혈하마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8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혈하마제 8화

혈하-第 8 章 전대의 거마

 

사군보는 상대방을 살폈다.

‘얼굴이 안 보이네.’

그가 숨은 곳에서는 상대방의 뒷모습만 잡혔다.

상대방은 검은 흑삼을 걸쳤다.

반백의 머리를 말총머리처럼 묶어 허리까지 길게 늘어트린 자.

머리카락 색깔로 보아 50대 후반으로 추정할 뿐이다.

이때다.

흑삼인은 사당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시신들을 보며 이를 바득 갈았다.

“네놈들 모두 내 손으로 찢어 죽이려고 했는데! 하늘도 무시하구나, 내 복수를 막아?”

철컹. 철컹.

흑삼인은 성큼 시신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가 걸을 때마다 예의 철 소리가 들려왔다.

“대체 누구냐? 누가 감히 날 이용했단 말이냐?”

7구의 시신들.

칠대문파 장문인들로 추정되는 그 시신들을 보며 흑삼인은 분노했다.

“완전히 차도살인에 당했군……”

차도살인(借刀殺人).

다른 사람의 칼을 빌려 죽이는 계책.

 

부스럭.

흑삼인은 품에서 서신을 꺼냈다.

흑삼인은 서신의 내용을 읽었다.

“12월 10일 자정까지 오대산 섭두봉 아래 사당으로 와라. 석년의 혈채를 갚자! 구대문파 장령……”

서신의 내용을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구대문파 장령 공동의 배첩.

강호 백도 무림에 큰 반향을 가져올 수 있는 배첩이다.

“이건 가짜겠군.”

찍! 찍!

흑삼인은 배첩을 찢었다.

그는 배첩 조각을 버리며 시신들을 번갈아 보았다.

시신들이 죽은 시각과 여기서 만나자고 한 시각이 다르다.

피의 응고상태를 보아 최소 한 시진 전에 칠대문파 장문인들은 죽임을 당했다.

결국 누군가가 가짜 서신으로 흑삼인과 칠대문파 장문인들을 각각 다른 시간에 이곳으로 불러냈다는 것이다.

“날 이리로 오게 만들고 이놈들을 죽여 나에게 덤터기를 씌워? 강호에 다시 돌아오자마자 이런 꼴을 당해? 어이가 없군.”

꽈득.

흑삼인은 이를 갈았다.

“누구건 상관없다. 날 이용한 대가를 받게 해주면 된다!”

흑삼인은 시신을 세었다.

“그나저나 둘이 비네……소림과 무당이 없군. 아쉬워해야 하나, 둘을 남겨둔 것에 고마워해야 하나. 크크크!”

기괴한 웃음이다.

흑삼인의 성격은 종잡을 수 없을 만큼 변덕스러웠다.

“네놈들은 죽어도 편히 저승에 갈 수 없다!”

갑자기 또 분노하는 흑삼인.

그는 사당 안의 시신들을 쭉 둘러보고는 한쪽에 떨어져 있던 검을 집어 들었다.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가는 느닷없이 하나의 시신 앞에서 크게 휘둘렀다.

쏴아앗-!

시신의 배가 갈라지며 뭉클뭉클 묽게 개어진 핏덩이가 새어나왔다.

죽은 자의 근육은 경직된다.

죽은 자의 피는 응고한다.

흐르는 핏물이 아닌 뭉클거리는 핏덩이는 보기에도 속이 역겨운 장면이었다.

또, 죽은 사람을 다시 죽이는 잔인한 행위다.

부관참시(剖棺斬屍)도 아니고.

“아직 분이 안 풀리네! 네놈들을 모두 노부가 다시 죽여주마.”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흑삼인은 다른 시체의 배를 향해 검을 내리 꽂았다.

사각-

 

한편,

이 광경을 처음부터 쭉 보아온 사군보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악랄한 놈……’

주먹을 불끈 쥐었으나 몸을 움직이지는 않았다.

철컹. 철컹.

그 사이 흑삼인은 세 번째 시신으로 다가갔다.

“히히히……은영진인(隱影眞人), 전날 네놈에게 받았던 빚을 이것으로 갚겠다!”

푸악.

말을 끝내며 그 시체에도 검을 내리 찍었다.

사군보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은영이라면 현 공동파의 장문인 도명이다. 역시 이들은 칠대문파 장령들이었다.’

이젠 확신이 선다.

사군보는 사태를 더 지켜보기로 했다.

 

철컹. 철컹.

듣기 거북한 쇳소리를 내며 흑삼인은 다음 시신으로 다가갔다.

“어떤 놈인지 몰라도 그놈도 나처럼 구대문파에 원한이 깊구나. 죽인 것도 부족해 죄다 얼굴 가죽을 뜯어내고 뭉개버렸어.”

그는 그 시체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상처는 대하교주의 독문수법과 비슷하네? 그럼 이놈들을 죽인 사람이 대하교주라고?”

흑삼인은 시신에 남은 무공 흔적을 알아본 것 같았다.

“구대문파에서 대하교를 조사하고 있었나? 대하교주는 함부로 움직일 사람이 아닌데?”

대하교(大河敎).

다시금 거론되는 이름이다.

“만약 날 이용한 게 대하교면……내 기필코 대하교주를 찾아가 그놈의 간을 씹어 먹어버리겠다.”

흑삼인은 재차 검을 날렸다.

촤아앗-!

또 다시 피분수가 솟구쳤다.

 

다섯 째……

여섯 째 시신의 몸에 검을 꽂는 동안 사군보는 하나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 신음을 흘리다 혼절한 철지화상.

아직 살아 있는지 가끔씩 가슴의 기복이 보였다.

흑삼인이 마치 들으라는 듯 친절하게 중얼거려 준 덕분에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철지화상을 살린다면 더 많은 정보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선뜻 나서기가 주저해졌다.

‘저 사람을 구해야 하나?’

구대문파는 묵혈방의 숙적이었다.

묵혈방의 붕괴에 직접적인 관여를 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백도라는 자체에 거부감이 강했다.

그게 그를 주저하게 만드는 거다.

그때다.

철컹. 철컹.

흑삼인이 철지화상에게 다가갔다.

사군보는 다시 침을 꿀꺽 삼켰다.

‘살리자! 그래야 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전모를 밝힐 수 있다.’

마음을 정하고 움직이려는 순간 그는 기겁했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마혈에 찍힌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겁을 집어먹어서 몸이 경직된 것도 아니다.

몸이 의지를 따르지 않았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너무 놀라 정신이 없었다.

그 순간 흑삼인은 검을 번쩍 치켜들었다.

이때다.

죽은 듯 쓰러져 있던 철지화상이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자신의 배를 노리고 검을 찌르려는 흑삼인을 보고는 있는 힘을 다하여 입술을 움직였다.

“사……살려……주시오……사……”

흑삼인의 긴 머리카락이 더욱 크게 움직였다.

“히히힛…… 철지, 아미파는 네놈 대신에 노부가 정리를 해줄 터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푸욱!

그는 살려달라고 사정하는 철지화상의 심장에 검을 꽂았다.

진정 악귀의 모습이었다.

칠지화상을 끝으로 일곱 시신의 배를 가른 흑삼인.

그가 돌연 몸을 돌렸다.

드러난 흑삼인의 얼굴은 기괴했다.

지독한 화상을 입었다.

얼굴의 반은 녹아내렸다가 생살이 다시 돋아나 벌건 빛을 드러낸 채 축 늘어져 있었고, 두 눈 중 하나는 의안인 듯 하얀 백태만 보였다.

눈, 코, 입이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겠다.

“히히힛……이제는 그만 나오너라! 더 구경할 것이 없을 것이다!”

흑삼인이 말을 할 때마다 눌어붙은 얼굴 피부가 징그럽게 꾸물거렸다.

사군보는 가슴이 철렁했다.

‘내게 하는 말인가?’

설마 숨어 있는 것을 알았어?

흑삼인이 버럭 소리쳤다.

“더 구경할 것이 없다지 않았느냐! 고통 없이 죽여주겠으니 어서 나오너라!”

쩌렁- 쩌렁-

사당 안이 흔들렸다.

그 음성의 기파는 가슴을 막막하게 하는 울림이었다.

편두통처럼 머리 한쪽을 죄여오는 고통도 주었다.

사군보는 상대의 말에 하나의 기공을 떠올렸다.

‘아! 이건 섭음(攝音)이다!’

섭음.

최면술과 같은 무공.

듣는 순간 뇌에 자극을 줘서 자신의 의지대로 상대방을 조종하는 음성이다.

그 동안 흑삼인은 혼자 중얼거리면서도 섭음을 섞어 흘렸다.

그 섭음을 듣고, 또 듣고 하다 보니 결국 이에 중독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까 몸을 움직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흑삼인은 몰랐다.

모든 마공, 사공은 삼뇌마자 막여천의 머릿속이 저장 되어 있었다.

그것을 고스란히 복사하듯 가져온 것이 사군보다.

섭음?

그 해독방법을 알고 있는데 뭐가 무서우랴.

‘이젠 그 이유를 알았으니 몸을 옭아맨 사술을 풀면 된다.’

사군보는 얼른 운기를 했다.

즉시 그의 마음은 부동심을 지니게 되었다.

그 사이 흑삼인은 계속 말을 보냈다.

“히히히…… 네놈은 노부가 누구인지 아느냐?”

그 안에는 심후한 내공이 담겨져 있어 상대의 심맥과 뇌를 마구 흔들었다.

부동심법을 전개했음에도 귀가 멍멍했다.

기혈이 마구 끓어오르려 했다.

“히히히……”

흑삼인은 돌연 검의 날보다도 훨씬 날카로운 웃음을 흘렸다.

그것은 마기다.

사기였다.

‘놈에게 조종당하면 안 된다.’

사군보는 12성의 공력을 끌어올려 상대의 기운을 막았다.

그 한편으로는 의아했다.

‘내가 숨어 있는 걸 알면서도 날 잡으러 오지 않고 왜 소리만 지르지?’

기공을 음으로 전환하는 건 절정의 고수만이 할 수 있는 상승의 기술이다.

그걸 아무렇지 않게 펼치는 것을 보아 흑삼인은 초절정고수.

그런데 왜 소리만 지를까?

어찌 되었건 죽으나 사나 사군보도 내공으로 상대의 공격을 막아낼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흑삼인은 섭음을 거두었다.

“제법이구나. 노부의 혈곡후(血哭吼)를 받아 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잠시 후면 네놈의 뇌가 터져 죽을 것이다.”

정말이었다.

머리가 찌그러질 것 같았다.

사군보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몸은 가늘게 떨려졌다.

 

다시 얼마의 시간이 흘렀다.

묵묵히 사군보가 숨어 있는 곳만 보던 흑삼인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지금쯤이면 기어 나와야 정상이다.

자극을 받은 뇌로 인해 바보 멍청이가 되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조용하다.

“으음……내가 직접 움직여야 하나? 별 수 없군.”

흑삼인은 한 발 내딛었다.

철컹! 

오른쪽 다리에서 철 소리가 났다.

그런데,

기기깅!

오른 발바닥이 바닥에 닿자 오른 다리에서 마치 쇠가 갈리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하필 이럴 때!”

흑삼인의 입에서 짜증어린 말이 튀어 나왔다.

흑삼인은 꼿꼿하게 선 채 허리를 숙여 오른쪽 바지를 걷어 올렸다.

드러나는 다리.

철로 만든 의족(義足)이다. 

그래서 그가 움직일 때마다 쇳소리가 난 것이다.

그래서 사군보가 숨이 있는 제단으로 오지 않고 섭음으로 사군보가 스스로 나오게끔 유도했던 것이다.

의족을 단 다리로 보행하는 데에는 많은 내공 소모가 필요했다.

더욱 지금은 철의 지닌 속성상 치명적인 단점이 드러나는 겨울.

찬 기온은 철의 속성을 좁게 만든다.

평소보다 더 보행에 유의해야 하는 것이다.

철로 된 의족의 발목 부분을 만지는 흑삼인.

틀어진 이음새를 다시 고친 후에야 그는 바지자락을 다시 내려 덮었다.

흑삼인은 화가 난 눈으로 제단을 노려보았다.

“마지막 경고다. 나와라!”

“……”

“히히히……그럼 나오게 해주지. 이번에는 전과 다를 것이다.”

드드드.

사당의 벽이 흔들린다.

쩍, 저저적-

제단 위에 올려둔 나무로 만든 신전이 갑자기 금이 가기 시작했다.

섭음에 가공할 내공까지 실어 음파로 공격을 한 것이다.

흑삼인의 혈곡후는 단순한 최면공부가 아니다.

다리가 불편한 그는 운신의 약점이 있다.

그래서 고안한 것이 음공이다.

기파를 이용한 공격.

상대가 아무리 멀리 있다 해도 그거 겨냥을 하면 음의 기파가 날아가 상대를 자극하는 기공이다.

 

‘크으……’

부동심법 만으로 견디는데에 한계가 왔다.

사군보는 자신도 모르게 묵혈사령신공을 개방했다.

그의 전신으로부터 스멀스멀 검은 기운이 일어났다.

그 기운은 그를 감싸고도 남아 아지랑이처럼 솟아올랐다.

츠츠츠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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