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하마제 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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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37회 작성일소설 읽기 : 혈하마제 6화
혈하-第 6 章 괴짜는 괴짜다
휘익-!
그는 남쪽을 향해 무작정 달렸다.
얼마쯤 달렸을까?
큰 길은 다시 두 개의 갈림길로 나누어졌다.
마차가 다닐 정도로 넓은 관도는 오른쪽으로 휘어져 있었다.
고작 한 사람 정도 지날 좁은 협도는 왼쪽으로 해서 산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깊은 어둠에 잠든 산을 보며 사군보는 거리를 쟀다.
‘태음봉을 나온 게 사흘 전 아침이었으니까 저 산이 오대산이겠구나.’
항산산맥 아래에 있는 오대산은 도교의 성지다.
또한 항산보다 더 높은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오대산을 넘어가면 하북 땅이다.
사군보는 큰길과 작은 길 중간에 서서 고심했다.
큰길로 가면 편하지만 많이 돌아간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어둠, 밤, 산짐승 따위에 겁먹을 그는 아니었다.
사군보는 오대산으로 들어가는 협로로 몸을 틀었다.
오대산(五臺山).
문수보살의 도장인 오대산은 다섯 기의 산봉우리들에 둘러 싸여 있다.
산봉우리들의 정상은 모두 평탄하여 흙으로 층계를 쌓은 옥상 마당처럼 생겼다.
동쪽의 망해봉(望海峰).
서쪽의 괘월봉(挂月峰).
남쪽의 금수봉(锦绣峰).
북쪽의 섭두봉(叶斗峰).
중앙의 취암봉(翠岩峰).
이렇게 다섯 개의 봉우리를 합쳐 오대산의 오대(五臺)가 된다.
츠팟.
발밑으로 밟히는 메마른 낙엽소리.
꽁꽁 언 땅을 지치는 가벼운 발걸음.
인적 드문 산길이고, 깊은 밤인지라 사군보는 거침없이 신법을 펼쳐 산을 탔다.
종종 걸음을 멈춰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을 보며 방향을 가늠할 뿐이다.
섭두봉 아래.
뱀의 아가리 같은 계곡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느닷없는 고함소리가 그를 붙잡았다.
“이 육시랄 놈! 여기가 어디라고 시커먼 발 때를 떨어뜨리려 하느냐?”
쩌렁- 쩌렁-
우렁찬 외침에 겨울새들이 잠에서 깨 파드닥 날아올랐다.
사군보는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엔 기암괴석만 널려져 있어 황량할 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이놈아! 당장 돌아가지 못할까? 여긴 내 안식처다. 네놈 같이 시체 썩은 내가 나는 놈이 발을 들일 곳이 아니라고!”
쩌렁- 쩌렁-
양쪽 협곡으로 울려 퍼지는 메아리 때문에 음성이 들려오는 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기분이 언짢은 사군보다.
“흥!”
그는 코웃음을 치고는 계곡 안으로 걸음을 떼어놓았다.
서너 걸음을 채 떼어 놓기 전에 영락없이 호통이 떨어졌다.
“사지를 찢어 죽일 놈! 네놈의 목을 땅에 내려놓고 도망가라지 않았느냐?”
“……”
저벅. 저벅.
사군보는 아무런 대꾸를 않고 걸음을 떼어놓았다.
그러는 한편 그는 주변을 예의 깊게 살폈다.
그의 눈에서 기광이 일렁였다.
하나의 희고 큼지막한 물체가 휙 덮쳐왔기 때문이다.
핑-!
너무나 빠르고 괴이한 물체라서 그것이 어떤 것인지 가늠하지 못한 채 그는 장력을 뻗어냈다.
펑!
굉음과 함께 흰 물체가 산산이 부셔졌다.
‘눈?’
어이가 없었다.
장력에 흩어지고 있는 것은 눈뭉치였다.
상대가 자신을 향해 눈싸움을 걸어왔다는 사실보다는 고작 눈뭉치가 엄청난 진력을 지녔다는 것에 사군보는 대경했다.
‘도처에 고수들 투성이군.’
전음으로자신을 갖고 논 자도 고수.
산중에 처 박혀있는 자도 그가 가늠할 수 없는 고수였다.
이때다.
“히히힛…… 제법이구나. 노부가 무진곡(無塵谷)에 들어온 게 30년이다. 그동안 별별 놈들이 다 네 은거지로 들어왔지만 모두 한 방에 나가 떨어졌지. 그런데 네놈은 다르군. 오랜 만에 노부를 즐겁게 해주는 애송이 놈을 만났구나. 히히…….”
언제 나타난 것인지 모른다.
한 명의 백발노인이 허리를 잔뜩 구부린 채 저만치 앞에 모습이 보였다.
어찌나 늙어 보이는지 툭 건드리기만 해도 쓰러질 것 같은 노인이라 나이도 어림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 노인을 보고 있으면 재미난 곳이 있는데 바로 머리카락이다.
민 대머리다.
밤송이처럼, 고슴도치처럼 꼿꼿하고 짧은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나와 있어 그 수를 셀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움푹 들어가 있는 눈에서는 신비스러울 정도의 신광이 반짝였다.
사군보는 상대를 보았을 때 직감적으로 괴팍한 성격의 은거기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노인장, 내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어요?”
“이런 맹랑한 녀석 보게. 싸라기밥만 처먹었나, 다짜고짜 반말을 씨부렁거리는 꼬라지하며……얌마! 어른을 보았으면 예의 바르게 인사부터 해야지!”
“길을 비킬 거요? 아니면 계속 시비를 걸고 요?”
“요런 놈 보게? 완전히 맛이 간 녀석이잖아. 이놈아, 노부가 누군지 아느냐?”
“내 알바 아니거든.”
“노부가 바로 그 유명하시고 고명하신 지랄마군(地辣魔君)이시다. 강호에서 50여년을 지냈지만 네놈처럼 싸가지 없는 놈은 처음 본다.”
‘지랄마군!’
사군보의 안색이 약간 변했다.
그는 눈앞의 노인이 괴팍하기로 유명한 천지쌍괴(天地雙怪)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놀란 것이다.
그러나 곧 그는 정색하며 다소 비아냥거리듯 이죽거렸다.
“아하! 그럼 노인이 당년에 고인이던 천지쌍괴 중에 한 사람인 지랄마군 무강운이란 말이군요. 그러나 그 이름으로 나를 어쩌지는 못하니! 자, 길을 비키는 게 어때요, 노인장.”
“어? 이놈이 간땡이가 부었나? 노부의 이름을 듣고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네 그려……너, 혹시 약간 맛이 간 놈 아니냐?”
노인은 손가락을 자기의 머리 근처에 올려 빙글빙글 돌렸다.
지랄마군 무강운(武强雲).
50년 전만 해도 강호가 좁다 하며 천방지축 날뛰던 괴인이다.
성격이 괴팍해 독 오른 독사를 건드릴지언정 지랄마군을 건드리지 말라할 정도다.
게다가 지랄마군 못지않게 괴팍하기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합방노괴(合房老怪)와 함께 어울려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더더욱 그 이름을 강호에 날리게 되었다.
강호인들은 그들을 천지쌍괴라 칭했다.
30여 년 전이다.
돌연 천지쌍괴는 강호에서 그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워낙 많은 원수들이 있어 그들 손에 죽었다는 말도 있고……
더 이상 강호가 재미없어 어디론가 은거했다는 말도 있었지만 세월이 지나며 그들의 괴행은 단지 얘깃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런 천지쌍괴 가운데 한 명인 지랄마군이 사군보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사군보는 외눈 하나 끔뻑이지도 않았다.
그는 마치 웬 개가 짖느냐는 듯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지랄마군은 은근히 열이 났다.
“이놈! 네놈의 사부가 어떤 작자냐? 싸가지 없는 제자를 둔 놈 상판대기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다.”
“말해주기 싫은데.”
“그래? 노부도 알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그건 그렇고, 어서 네놈의 목이나 노부 앞에 내려놓고 가거라.”
“내 목 말이오?”
“싫단 말이냐? 그렇게는 못하겠다는 것이지!”
“하나 뿐인 목인데 그걸 누가 내놔. 당연한 것 아니요?”
“히히히…… 노부가 다른 목을 네놈에게 붙여주면 되지 않겠느냐.”
“싫다면?”
“이놈! 무진곡에 허락 없이 들어온 죄도 큰데 이곳저곳 뛰어다니면서 발바닥의 때를 떨어뜨렸으니 자연 목을 내놓아야 하지 않느냐?”
지랄마군의 말은 순전히 억지였다.
사군보는 어이가 없었다.
생각 같아선 일장에 그를 죽이고 싶었지만 그와 은원이 없기에 참고 있을 뿐이다.
지랄마군이 다시 말을 꺼냈다.
“좋다. 정 목이 아까우면 대신 다른 것을 내놓아라.”
“노인장에게 줄 것은 아무 것도 없어요.”
“쯧쯧…… 어리석은 놈! 욕심만 많아 가지고……지옥이 눈앞에 있는데 그걸 모르다니……”
“나는 노인장과 실랑이 할 시간이 없으니 비켜요. 그렇지 않으면 염라대왕을 보게 될 거요.”
“야야! 염라대왕이 내 친군데 무슨 지랄이냐? 어쩌겠느냐? 죽겠느냐? 아니면 값비싼 것을 주겠느냐?”
“아무래도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릴 노인네군.”
“허허! 고놈, 재롱도 가지가지로 피우는구나. 좋다! 보아하니 주먹을 믿나 본데, 어떠냐? 3초의 승부로 승패를 가리는 것이. 노부가 3초를 펼칠 테니 그걸 받아내면 네놈이 이곳을 지나치는 것을 승낙하마.”
사군보의 눈썹이 꿈틀했다.
‘이제 보니 나와 장난을 치자고 시비를 건 것이었군.’
이제 지랄마군의 속셈을 알 것 같았다.
오랜 은거 탓에 사람을 구경하지 못한 것이다.
‘그럼 한번 놀아줄까?’
그는 피식 미소를 지어 보였다.
“노인장, 그건 공평치 않으니 만약 내가 3초를 받아내면 노인장이 내 부탁 한 가지를 들어주는 것으로 하는 게 어때요?”
“지랄 옆차기 하고 있네.”
“자신 없어요?”
“호~ 이길 자신이 있다 이거지, 좋다! 히히힛…… 3초다. 3초를 받아넘길 수 있다면 네놈이 이긴 것이다.”
“기꺼이 받지요.”
사군보는 지랄마군의 무공이 절정경지에 달해 있음을 짐작했다.
하지만 그가 지니고 있는 무공이라면 3초 공격을 받아내고도 남는다.
결코 자만심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익힌 무공들은 하나같이 흑도 무림에 있어서 강하고 무섭다는 마공들이다.
단지 싸움 경험이 없다는 것.
내공이 뒤받침을 해 주지 못해 십분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할 뿐.
이 현실적인 두 가지 사항을 빼고 보면 초식 하나만 볼 때 그는 절대마종(絶對魔宗)의 자질을 충분히 갖고 있다.
사군보는 이 기회에 자신의 역량을 측정하고 싶었다.
지랄마군 같은 고수를 만난다는 것은 그만큼 큰 기회요, 행운이었다.
지랄마군이 누런 이빨을 드러냈다.
“히히힛…… 조심하거라!”
그의 음성이 입 밖으로 나오는 것과 동시에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파팟-!
사군보는 순간적으로 당황은 했지만 그 자리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당황은 틈을 만든다.
그는 정중정의 자세로 주변을 살폈다.
쉭! 쉭!
휘리리릭-파라락-!
옷자락이 날려지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왔다.
사람은 보이지를 않고 옷자락 스치는 소리만 들려지다니 괴공 중에서도 괴공이었다.
그런 것에 당황해 하지를 않는 사군보도 대단했다.
그러나 기실 아니었다.
잠깐 사이였는데 사군보의 얼굴에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마치 참기 어려운 고통을 이를 악물고 참는 모습이었다.
‘가공할 압박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압박.
마치 만근 바위가 머리 위에서 눌러오는 것 같았다.
이대로 가만있으면 쥐포처럼 납작하게 압살당할 것 같은 긴장과 초조.
반격을 하지 않고 견뎌내야 한다.
반격을 하는 순간 내기는 진다.
사군보는 호신강기를 일으켜 온몸을 보호하며 압박해오는 압력에 저항했다.
어느 한 순간부터 사군보의 발이 서서히 땅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츠츠츳-!
거의 발목까지 땅속으로 빠져들어 갔을 때였다.
쿵!
1장(丈) 밖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리면서 지랄마군이 땅에 내려섰다.
그는 한차례 어지러운 싸움을 벌인 것처럼 머리카락과 옷매무새가 헝클어져 있고, 눈빛도 약간 충혈 된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