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하마제 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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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14회 작성일소설 읽기 : 혈하마제 3화
혈하-第 3 章 내가 바빠서
사군보는 여전히 태연했다.
어디 죽이고 싶다면 죽이라는 듯 씨익 웃으면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
없다.
그의 뒤쪽에 아무도 없었다.
두어 개의 탁자가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지만 모두 텅 비었다.
그 다음은 두꺼운 벽이다.
그렇다고 사군보가 고개를 돌리는 사이에 뒤에 있던 사람이 어디로 숨을 수 있는 시간도 없었다.
사군보는 그제야 안색이 약간 변했다.
‘고수!’
그는 주위를 다급히 둘러보았다.
주루 안의 손님들은 계단 쪽으로 눈길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에는 그에게 전음을 보내온 사람이 섞여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재차 전음이 들려왔다.
[뭘 두리번거려! 어서 일어나지 못하겠느냐?]
비록 전음이었으나 사군보에게는 귀청이 찢어질 것 같은 고함이었다.
사군보는 움직이지 않았다.
‘어디 어떻게 나오나 보자!’
오기가 발동되었다.
뿐만 아니라 강호에 처음 나오자마자 엄청난 고수를 만났다는 것에 묘한 흥분도 일었다.
[네놈이 내 말을 아주 무시하는 거 보니 나름 자신 만만한 가 본데, 그 잘나지도 못한 무공 몇 가닥을 안다고 까불지 마라!]
‘잘나지도 못한 무공!’
으득!
자신이 익힌 무공은 모두 16인의 처절한 복수와 원한이 담긴 것들이다.
그렇게 폄하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아주! 꼴에 자존심은! 이놈아, 고작 귀영수라(鬼影修羅)의 생사탄공(生死彈功)을 갖고 깝죽인다마는 하늘 위에 하늘이 있음을 이 늙은이가 알려주겠다!]
벌떡!
사군보의 눈이 커졌다.
사실 조금 전 그는 은연중으로 생사탄공을 운용했다.
생사탄공은 묵혈팔겁 중 한 사람인 귀영수라의 절기다.
귀영수라는 16인의 생존자 중 한 명이다.
생사탄공은 기공이다.
초식이나 몸놀림이 있는 것이 아닌 내공을 의념으로 조종하는 것으로, 그 묘용은 무궁하다.
생사탄공을 몸에 두르면 호신강막이 형성됨과 동시 반탄지력도 일어난다.
생사탄공의 내공을 실처럼 가늘게 뽑은 다음 원하는 방향으로 날리면 내기가 스치는 곳곳마다의 기척이며, 공기의 흐름 등등이 기감에 잡힌다.
전음을 보내는 자의 위치를 살피기 위해 일으켰는데 대번에 발각이 난 것이다.
‘누구냐, 넌?’
사군보는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가 누군지 궁금하면 일단 여자를 구해! 그럼 알려주마!]
사군보는 잠시 고민하다가 도로 의자에 앉았다.
칼자루는 내가 쥐었다.
내가 움직여야 저 여인을 구한다.
전음을 보낸 자는 나를 재촉하지만 내가 끝까지 안 움직이면 속이 탈 것이고, 스스로정체를 드러낼 것이 뻔하다.
기다리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애가 탄 듯 보내온 전음 속에는 초조함이 어렸다.
[어서, 어서 움직여라! 이러다가는 쌀이 익는다. 밥된다고!]
쌀이 익는다느니, 밥이 된다느니 하는 은어는 뒷골목 하류배가 쓰는 음탕한 은어다.
흔히 ‘잡아먹었다.’와 같은 맥락으로.
[안 일어나!]
더, 더 애 닳아 봐라!
사군보는 우이독경, 아예 신경쓰지 않는 표정이다.
[놈! 묵혈방의 도망자들 중 몇몇이 네놈에게 무공을 전수한 것 같은데……하는 꼬라지가 옛 묵혈방 악도들과 아주 판박이구나!]
“……!”
사군보는 입술을 굳게 물었다.
속에서 열불이 터졌다.
자신을 돌봐준 16인의 묵혈방 사람들은 스승이요, 가족이다.
그들을 욕하는 건 정말 듣고 있기 힘들었다.
‘좋아! 네놈이 폄하한 묵혈방의 힘을 직접 보여주지!’
살기가 물씬 풍겼다.
투기가 일어나고 온몸의 혈맥이 부풀어 올랐다.
극도의 분노.
사군보는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곧장 계단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꽝!
그가 딱 두 걸음 떼어놓았을 때다.
돌연 그가 앉아있던 탁자가 굉음과 함께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뭐야?”
“어? 탁자가 왜 박살났지?”
마침 목소야와 그에게 머리채를 잡힌 소제제는 2층 객방 안으로 사라진 뒤였다.
객방 입구와 계단에 진치고 서 있는 무뢰배들의 얼굴에 음탕한 기운만 남긴 채.
구경거리도 사라져서 다시금 각자의 시간으로 돌아가는 손님들인데 갑작스런 폭음에 놀랄 수밖에.
돌연한 폭발은 조금 전 사군보가 뽑아낸 생사탄공의 내기가 폭발을 일으킨 것이다.
사군보의 분노가 표출된 것이다.
손님들은 한 마디씩 웅성거리며 탁자가 부서진 곳으로 눈길이 모아졌다.
그 사이, 사군보는 계단 바로 아래까지 당도했다.
“넌 뭐야?”
계단 바로 밑에 있던 무뢰배 중 하나가 사군보의 어깨를 잡았다.
순간,
우둑!
사군보의 손이 움직여 무뢰배의 팔목을 잡더니 그대로 팔목 뼈를 부러트려 버렸다.
“으악!”
오른손 팔목을 잡고 주저앉는 무뢰배.
그 자의 머리를 향해 오른 발을 돌려 차는 사군보.
퍽!
수박 깨지듯 무뢰배의 머리통이 박살이 나고, 하얀 뇌수와 시뻘건 핏물이 비산했다.
“아악!”
“살인이다!”
“네, 네놈은 뭐, 뭐냐?”
“쳐! 저 놈이 강 사형을 죽였다.”
“죽여!”
손님들이 비명을 질렀다.
급작스런 사태에 놀랐던 무뢰배들이 제 정신을 차리자마자 득달같이 덤벼드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사군보는 지금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누구일까? 누구이기에 내가 생사탄공을 익힐 것을 알고 있을까?
-살기는 없었다. 그렇다면 적은 아닌데?
“이놈!”
챙!
한 무뢰배가 대도를 뽑아 휘둘러 왔다.
슥.
상체를 숙여 대도를 흘리며 한 발을 계단에 오른 사군보의 주먹이 대도를 쥔 자의 면상에 닿았다.
퍽!
“컥!”
코뼈가 무너지며 대도를 든 무뢰배는 얼굴을 부여잡고 뒤로 날아갔다.
“쳐!”
“죽여!”
세 명의 무뢰배가 계단으로 올라오는 사군보를 덮쳤다.
계단은 좁다.
게다가 위에서 공격하는 게 훨씬 유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군보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퍽!
꽈직!
“으악!”
세 명의 몸이 계단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무, 무서운 놈!”
“어서 도련님께 알려.”
계단 위에 있는 다섯 명의 무뢰배들은 사색이 된 채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성큼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오른 사군보는 무뢰배들을 무시한 채 그들이 막고 선 객방을 주시했다.
객방 문은 닫혀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훤히 알 수 있었다.
“더 이상 피를 보기 싫다.”
“뭐?”
“너, 넌 누구냐?”
“가라! 목숨만은 살려 주마.”
꿀꺽.
아예 내려가라고 계단 입구를 비켜주는 사군보.
다섯 명의 무뢰배들은 서로 눈치를 살폈다.
살고 싶다.
그러나 여기서 도망쳤다가는 나중에 돌아올 후환이 너무 두려웠다.
그 사이 전음이 다시 들렸다.
[뭐 해! 저러다간 큰일 나겠다!]
“안 가?”
낮은 음성.
무뢰배들은 안절부절못했다.
“그럼 말고. 내가 바빠서.”
슝-
사군보의 신형이 쭉 당겼다가 놓은 고무줄처럼 튕겨 나갔다.
“야, 야, 잠깐……캑!”
“크악!”
퍽! 쿠당탕! 우지끈!
2층 복도에 자빠지는 자.
2층 난간을 넘어 아래층으로 떨어지는 자.
2층 벽을 뚫고 객방 안으로 들어간 자 등등.
다섯 명의 무뢰배들은 곤죽이 되었다.
가볍게 그들을 정리한 사군보는 객방 문을 발로 찼다.
**
“아악!”
소제제는 상의가 걸레처럼 찢긴 채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한 마디로 고양이 앞에 쥐 모습이다.
그녀는 벌벌 떨면서 꽉 닫힌 객방 문을 힐끔 바라보았다.
누구라도 좋으니 구해달라는 구원의 눈길이었는데,
그때다.
[조금만 버텨라, 아가야. 놈이 드디어 일어났다. 후후후……]
예의 전음 소리.
사군보에게 들렸던 그 전음 소리가 지금 소제제의 귀로 파고 들었다.
그 전음에 소제제의 눈가에 안도의 빛이 스쳤다.
‘다행이다.’
한편, 소제제가 오들오들 떨고 있는 모습(?)에 목소야의 음욕은 더욱 달아올랐다.
“히히힛……”
목소야는 침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소제제의 나머지 옷을 쭉 찢었다.
찌이익-!
옷이 찢기고 하얀 속살이 드러날 때마다 음탕한 웃음소리가 방 안을 진저리치게 했다.
“살, 살려 주세요.”
소제제는 이제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완전 나체가 되었다.
두 손으로, 두 무릎으로 몸을 애써 가려 보려고 하지만 어디 그런다고 가려지겠는가.
마음이 급한 목소야는 바지만 훌렁 벗었다.
허벅지 사이 시커먼 육봉이 벌렁거리며 드러났다.
“아앗!”
소제제는 목소야의 육봉을 보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는 곧 닥칠 자신의 위기에 몸서리쳤다.
‘빨리 구하러 와.’
그녀는 속으로 외쳤다.
“끄흑! 좋아, 아주 좋아!”
목소야는 흥분에 진저리를 치면서 소제제를 와락 덮쳤다.
“안 돼!”
소제제가 몸을 옆으로 내빼자 목소야는 침대 밖으로 나동그라졌다.
“이년이!”
넘어진 목소야는 얼굴이 빨개지면서 이를 뿌드득 갈았다.
화가 난 목소야는 돌연 상의 속에서 작은 병을 꺼냈다.
“흥! 네년이 어디까지 버티나 보자!”
뽕!
그는 빠르게 병의 뚜껑을 열었다.
그는 병 주둥아리를 소제제 쪽으로 향하게 하고는 팔을 휘저었다.
휘시시시……
병 주둥아리에서 희뿌연 가루가 새어나오며 꽃가루처럼 날렸다.
목소야는 콧구멍을 벌렁거리면서 가루를 들이마셨다.
그의 몸이 잘게 떨렸다.
눈도 하얗게 떠지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흐흡! 좋아, 아주 좋아!”
연신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흥분하는 목소야.
‘이건 또 뭐야? 설마?’
소제제는 뭔가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듯 급히 호흡을 멈췄다.
그러나 이미 미량의 가루를 마셨음은 물론 얼굴과 살에 묻은 후였다.
“아……이게 아닌데……이러면 계획이 틀어지는데……”
소제제는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동시 일이 묘하게 틀어졌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번뜩!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며 입가에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목소야를 노려보는 소제제의 눈동자에서 새파란 불꽃이 일었다.
그것은 살기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닭 모가지 하나 비틀 힘조차 없는 나약한 여인이라 믿어지지 않을, 그런 지독한 살기였다.
그녀의 오른손이 움찔거렸다.
‘단 한 방이면 돼!’
아쉽다.
비록 부친의 성화에 못 이겨 이런 연극을 하고 있지만 그 사내의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사실 이런 연극은 몇 차례 해 봤다.
그때마다 꼴에 사내랍시고 나선 자들도 많았다.
다만 그 자들은 대부분 의협심보다는 소제제의 미모에 혹한 자들이란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사람 볼 줄 모르는 부친의 눈이 동태라는 게 또 문제였지만.
아무튼, 부친의 성화에 일단 만만하게 보인 목소야와 그 무뢰배들을 꼬드겨 위기에 처한 불쌍한 여자로 보이게끔 연출하고 지금까지 연극을 잘 이끌어 왔다.
하지만 이 미친놈이 춘약 가루를 쓸 줄이야!
이건 예상하지 못한 변수다.
연극은 끝났다.
죽인다.
그리고 여기를 빠져나간 후 운기조식을 통해 춘약을 태워야 한다.
막 그녀가 내공을 끌어올리려는 순간,
쾅!
문이 박살났다.
**
“크크크크!”
목소야는 독수리 발톱 같은 손으로 그녀의 완맥을 낚아챘다.
‘나도 몰라 이젠!’
소제제는 내공을 거둬야만 했다.
목소야를 죽이면 끝인데 하필 이때 목표로 잡은 사내가 자신을 구하러 들어온 것이다.
기왕 벌어진 연극.
끝까지 가보자는 심보로 마음을 돌리자 소제제는 온몸의 힘이 쭉 빠지는 무력감을 느껴야만 했다.
‘아, 제대로 춘약에 중독되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