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하마제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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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95회 작성일소설 읽기 : 혈하마제 1화
혈하-第 1 章 묵혈의 후예
휘이잉-
차가운 겨울바람이 분다.
항산(恒山)
산서성 북쪽에 자리한 중원오악 중, 북악(北岳).
중원 중토에 있는 산은 화려함을 뽐내지만, 북방에 위치한 산은 기암괴석이 난립해 있고, 험준함을 자랑한다.
항산 평음봉(平陰峰)이라 해서 다르지 않았다.
평음봉은 항산의 수많은 봉우리 중 가장 음한 기운이 있는 곳이다.
1년 내내 스산한 기운을 자아내는 안개와 음지가 자리해 있어서 사냥꾼들조차 발길을 꺼리는 곳이다.
***
삼경(三更).
초승달 빛이 어둠을 어렴풋이 밝혀주고 있는 평음봉의 어느 계곡.
휘이잉-
옷 속으로 파고드는 찬바람이 무심히 계곡으로 몰려 들어갔다.
끼익! 끼익……
이게 무슨 소리인가?
바람이 계곡의 기암괴석 사이를 지나칠 때마다 나는 소리라고하기에는 너무 기괴하고 스산했다.
끼익! 끼익……
괴이한 소리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계속해서 들려왔다.
그 방향을 잡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돌연,
쿵! 쿵……!
무엇인가가 무너지는 것 같은 굉음.
땅까지 들썩거렸다.
끼익! 쿵……! 끼익! 쿵……!
산신이라도 내려와 땅을 파헤쳐 봉우리를 옮기기라도 하려는가?
기이하고 섬뜩한 소리는 부는 겨울바람과 어울려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소리는 계곡 안에서 새어나오고 있었다.
계곡 안.
관이다.
그것도 총 16개.
세로로 세워진 관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제멋대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쿵쿵거리고 있었다.
끼이익! 쿵……!
마치 피를 뿌려놓은 것 같은 핏빛 관은 스스로 펄쩍 솟구쳤다가 다시 떨어졌다.
그때마다 관의 밑 부분이 1/3 정도가 땅속으로 푹푹 박혔다.
그랬다가 곧,
쓔앙-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가 다시 쿵!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그 정도 낙하에.
그 정도 무게면 땅에 떨어질 때 충격으로 관이 부셔져야 정상이거늘 관은 멀쩡했다.
무언가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해 관을 보호하면서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둥근 원진을 만든 채 움직이는 관들의 중앙.
그곳에 한 청년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
나이는 대략 21세 정도.
청년은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청년의 몸 주위로는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어렸다.
그것은 한 겹 방어막 같았다.
츠츠츠츠츠.
청년의 합장한 두 손이 앞으로 쭉 펴졌다.
끼익!
16개의 관이 동시에 붕 떠올랐다.
청년의 합장한 두 손이 명치도 당겨져 모아졌다.
쿵! 쿵!
16개의 관이 땅에 떨어진다.
청년의 손짓에 따라 움직이는 16개의 관.
넘실거리는 검은 기운.
참으로 기상천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는데,
한 순간이다.
번쩍.
청년의 감긴 눈이 떠졌다.
촤앗-
청년은 명치 앞에 모아져 있던 두 손바닥을 뗌과 동시 앞으로 팔을 쭉 뻗으며 손바닥을 뒤집었다.
마치 앞으로 장풍을 날리는 것처럼.
촤촤촤촤촤촤촤.
청년의 몸을 중심으로 검은 색 기류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 모습은 마치 폭탄이 터지면서 그 풍압과 화력이 둥글고, 강하게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콰지지직!
검은 기류에 휩싸인 관들이 깨지고 부셔진다.
산산 조각난 나무 관들이 풍압에 의해 넓게 퍼지는 가운데 총 16구의 시체들이 청년을 중심으로 둥글게 나타났다.
나타났다기보다는 관 안에 있었다가 관이 부셔지면서 비로소 모습이 보였다는 건데.
나무관이라 해도 산산 조각날 정도면 엄청난 풍압이거늘 시체들은 하나도 손상되지 않은 상태였다.
시체들은 각양각색이었다.
남녀, 나이도 제각각이었다.
다만 죽은 시기가 같은지 부패한 상태가 고만고만한 게 비슷했다.
망부석처럼 우뚝 모습을 보인 시체들.
청년은 눈을 감고는 쭉 뻗었던 두 팔을 다시 명치 앞으로 끌어당겼다.
그와 동시,
쏴아아-
청년을 중심으로 흡인력이 일어나더니 사방으로 흩어졌던 검은 기류들이 다시 청년에게 빨려 들었다.
쿵! 깡충! 쿵! 깡충!
움직인다.
16구의 썩은 시체들이 두 다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깡충거리며 뛰었다.
강시(彊屍)다.
16구의 강시들이 청년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쿵! 깡충! 쿵! 깡충! 쿵!
잠시 후.
청년의 몸을 에워쌓듯 바싹 다가온 16구의 강시들이 축 늘어진 두 팔을 번쩍 들었다.
16구의 강시들이 죄다 똑같이 ‘앞으로 나란히’ 하는데.
그 강시들의 32개의 손끝은 청년의 몸 주변에 아른거리는 검은 기류의 막에 걸려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다.
그 뿐만 아니다.
파르르.
강시들의 몸이 번개에 맞은 듯 떨렸다.
츠츠츠츠츠.
검은 기류는 더욱 그 색깔이 짙어지고.
파르르르.
16구의 강시들 몸은 점점 더 떨림이 빨라졌다.
나중에는 아예 덜덜 거릴 정도다.
그런 채로 시간이 흘렀다.
여명.
차가운 대지를 밝히며 겨울 해가 동산 너머로 머리를 내민다.
햇살은 점점 어둠을 먹으며 계곡 안으로 서며 들었다.
이윽고 여명의 햇살이 계곡 안 전체를 밝히자.
츠츠츠츠.
사라진다.
16구의 강시들이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스르륵.
강시들이 입은 수의만이 힘없이 땅에 떨어졌다.
번쩍.
청년의 눈이 떠진 것도 그때다.
“우웩!”
청년은 한 모금의 피를 왈칵 토해냈다.
그런데 그가 토해낸 피라는 것이 새빨간 것이 아니라 먹물처럼 새까만 색.
청년은 그 새까만 피를 내려다보다 낮게 중얼거렸다.
“내가……내가 드디어 묵혈사령신공(墨血死靈神功)을 이루었구나! 내가 해냈다!”
그는 느닷없이 실성한 사람처럼 두 손을 흔들어 대면서 목청껏 소리 내어 웃었다.
“크하하하……나는 해냈다! 비록 대성은 못했지만! 나는 이루고 말았다. 크하하하……!”
계곡이 쩌렁쩌렁 울릴 엄청난 광소를 웃어젖힌 청년.
그는 한참을 웃어젖히다 표정이 굳어졌다.
“기다려라! 원수들!”
이제는 반대로 어께를 들먹이며 깊이 흐느껴 울었다.
“아버님……어머님……소자 사군보(査軍保), 원수의 피로 중원 무림을 피비다로 만들고 말겠습니다.”
듣는 사람의 등줄기를 오싹하게 만드는 살기.
“흐흐흑……”
어찌나 원한이 깊은지 사군보는 피눈물을 흘렸다.
얼마나 울었나?
사군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자신을 중심으로 둥글게 퍼져있는 수의들을 정성스럽게 모았다.
그 수의들을 하나의 구덩이 안에 던지면서 그는 한 명 한 명, 뇌리에 떠올렸다.
“적령신(赤靈神) 냉천군(冷天君). 할아버지의 적령장(赤靈掌)은 흑도제일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어요. 군보는 절대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도록 하겠어요.”
적룡신 냉천군.
10년 전 무너진 흑도의 하늘 묵혈방(墨血幇).
적룡신은 묵혈방 원로이자, 묵혈팔겁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가 펼치는 적령장은 흑도제일장법으로 숭앙을 받았다.
그러나 묵혈방의 붕괴와 함께 그 역시 실종되어 강호에서 사라졌다.
그런 그의 이름이 사군보의 입에서 거론되고 있었다.
스륵.
또 하나의 수의가 구덩이에 모아진다.
사군보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름 하나.
“여모란(呂牡丹) 아줌마의 환영보법(幻影步法)은 현란한 천하제일의 보법이었어요. 군보는 절대 아줌마의 마지막 모습을 잊지 못해요. 그 광경은 너무나 아름다웠거든요.”
환영마후(幻影魔后) 여모란.
흔히 모란대부인(牡丹大婦人)이라 불렸던 여인.
묵혈방의 사대전 중 환영전(幻影殿)의 전주다.
스륵.
“막여천(幕女川) 아저씨의 두뇌는 가히 하늘도 속일 수 있군요. 삼국의 조조가 지닌 교활함, 제갈량이 지닌 신묘함, 사마위의 신산을 모두 지녀 강호인들은 아저씨를 삼뇌마자(三腦魔子)라 불렀지요. 그러나 이제 그 삼뇌마자란 아호는 이 군보가 갖겠어요. 아저씨가 마지막 죽어가면서 펼친 만뇌복사현공(萬腦複寫賢功) 덕분에 군보는 아저씨 두뇌에 있던 모든 것을 고스란히 이어 받을 수 있게 되었거든요.”
휘시시……
하얀 수의가 다른 수의 위에 떨어졌다.
삼뇌마자 막여천.
묵혈팔겁 중 한 사람이자, 묵혈방 군사다.
그는 단 한 초식의 무공도 펼치지 못했다.
단전 자체를 형성할 수 없는 기형의 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를 업신여기거나 눈 아래 두지 못했다.
그는 걸어 다니는 무공비고요, 지혜의 바다였다.
그의 두뇌에서 반짝이는 지략에 숱한 문파가 무릎을 꿇었고, 절정을 자랑하던 흑도 거마들이 굴복을 했다.
그가 있기 때문에 묵혈방의 50년 흑도집권이 가능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강호에 흘러 다닐 정도면 그에 대한 설명으로 만족하리라.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분명 막여천은 10년 전 시체가 산화되어 사라졌는데, 어떻게 그의 시신이 이곳에 있을 수 있을까?
그렇다.
10년 전 재가 되어 타 죽은 막여천의 시신은 가짜였다.
당시 막여천은 다른 사람을 자기처럼 꾸민 후 복수를 다짐하며 묵혈방을 떠났다.
무공을 모르는 막여천을 호위하며 탈출한 자들이 적령신 냉천군과 환영마후를 비롯한 16인이다.
“……”
사군보는 수북이 쌓인 수의들을 바라보았다.
간간이 부는 바람에도 불구하고 기이하게도 수의들은 하나도 흩어지거나 날려가지 않았다.
너무나도 무거운 한이 어린 탓일까?
그 한이 풀릴 때까지 절대 흩어지지 않으려는 망자의 염(念) 때문일까?
“모두 고마워요. 여러분들의 희생 덕분에 난 묵혈사령신공을 대성했어요. 비록, 저주의 마공이고, 인간의 피를 검게 만드는 악마의 무공이지만 난 결코 후회하지 않아요.”
묵혈사령신공(墨血死靈神功)!
“나를 구하고 묵혈방의 부활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열여섯 분의 복수지념(復讐之念)은 날 악마로 만들어 버렸지만 결코 후회하지 않아요. 나 역시 그걸 원했으니까.”
16구의 강시들.
그 한 명 한 명은 모두 사군보에게 있어선 혈족과 진배없는 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사군보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바쳤다.
복수를 위해!
사군보가 묵혈사령신공을 대성할 수 있도록 거름이 된 것이다.
촤르르르.
사군보는 수북이 쌓인 수의 위로 흙을 덮기 시작했다.
잠시 후, 이름도 알 수 없는 계곡 안에 마치 강아지의 무덤처럼 작은 무덤 하나가 생겨났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무덤이 아니라 땅이 약간 봉긋하게 솟아났다고 느껴질 정도로 작은 무덤이었다.
16개 수의가 묻힌 무덤을 말없이 응시하던 사군보는 천천히 허공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조용히 뇌까렸다.
“기다려라. 배신자들아! 나 사군보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