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201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92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201화
모두 셋. 그 기운의 주인들은 기문진 밖에서 걸음을 멈추고 장천운을 노려보았다.
“누군데 장원에 침입했느냐?”
세 사람 중 중앙에 서 있던 자가 냉랭히 물었다.
이제 사십 대로 보이는 자였다. 어둠 속에서도 눈빛이 차갑게 번뜩이고 입술이 얇아서 조금은 강퍅하게 느껴지는 인상을 지닌 자.
무기는 지니지 않았지만, 은연중 느껴지는 기세만 봐도 강호인임을 알 수 있었다. 그것도 굳이 무기를 필요로 하지 않을 정도의 절정고수다.
장천운은 진기를 거두어들이고 태연하게 변명을 늘어놓았다.
“지나가다 보니 도둑이 담을 넘어가는 것 같아서 들어왔소.”
“흥! 담을 넘은 사람은 그대 아닌가?”
“나는 도둑의 뒤를 따라서 들어왔을 뿐이오. 도둑이 안으로 들어갔으니 어서 안쪽부터 살펴보시오.”
“본 장원은 작아서 외인이 침입하면 바로 들킬 수밖에 없다. 그런데 너 외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이상하군. 분명히 담을 넘어갔는데…….”
“걱정해주는 것은 고맙다만, 그렇다고 해서 담을 넘어온 것까지 봐줄 수는 없다. 순순히 엎드려서 우리의 조치를 따라라. 너에게 잘못이 없다면 풀어주마.”
“당신들이 누군 줄 알고 내 몸을 맡긴단 말이오?”
“흥! 도둑 주제에 말이 많구나!”
“호의를 갖고 온 사람을 도둑 취급하다니. 이곳 주인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아랫사람을 보니 주인의 못된 성품을 알만하군.”
장천운이 짐짓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상대가 듣지 못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아니, 들으라고 한 말이었다.
“네가 감히!”
눈을 치켜 뜬 중년인이 한소리 내질렀다.
그때 장한 넷이 더 나와서 중년인의 좌우로 늘어섰다.
소리 없는 움직임. 단순히 걸어와서 좌우로 늘어서기만 했는데도 공간이 꽉 찬 듯 느껴졌다.
“네가 벌주를 자처했으니 우리를 원망하지 마라.”
중년인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고는 옆을 향해 손짓했다.
장한 둘이 땅에 꽂혀 있던 깃발 두 개를 양쪽에서 동시에 뽑았다.
장천운은 아지랑이처럼 어른거리던 현상이 사라지자, 걸음을 앞으로 옮겼다.
진세가 해제된 듯 중년인 일행의 모습이 더 뚜렷하게 보였다.
“벌주인지 아닌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
“건방진 놈! 저놈을 잡아라!”
중년인이 명령을 내리자, 장한 중 중년인의 우측에 서 있던 둘이 땅을 박차고 튀어나갔다.
소리도 없이 단숨에 이 장 간격을 좁힌 그들은 곧장 장천운을 공격했다.
장천운은 무심한 표정으로 한 걸음 내딛으며 두 주먹을 엇갈려서 쳐냈다.
가벼운 손짓처럼 보였지만, 그 속에 담긴 힘은 금강석처럼 단단한 바위를 부수고도 남았다.
게다가 부드럽기까지 해서, 어둠이 그의 손짓을 따라 돌며 두 장한의 공세를 휘감았다.
우수로 어둠을 저어서 우측 장한의 팔을 튕겨낸 장천운은 좌수를 뻗어서 좌측 장한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오른팔이 튕겨나간 장한은 급히 중심을 잡고 재차 왼팔을 내지르며 반격에 나섰다.
좌측 장한도 손목을 틀어서 장천운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의 손에는 공력이 실린 터라 손목 부위 역시 와류가 흐르고 있었다.
장천운은 냉소를 지은 채 다시 우수를 떨쳤다.
우측 장한의 왼팔이 마저 튕겨나가고, 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좌측 장한의 손목이 부러졌다.
“흡!”
좌측 장한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그와 동시에 장천운의 우수가 우측 장한의 공세를 무참하게 부수며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퍼벅!
“크억!”
타격음과 비명이 일시에 터져 나왔다.
입을 떡 벌린 두 장한은 달려들 때보다 더 빠르게 튕겨나갔다.
그 광경을 본 중년인이 눈을 홉떴다.
문득 뇌리 저편에서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혹시 저놈이…… 장천운?’
장천운은 소성주의 최측근 호위였다. 태사령의 말이 옳다 해도 기껏해야 수하들을 보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눈앞에 있는 자가 장천운 본인인 듯했다.
구천성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일개 대의 무사가 비천당 십팔객 중 둘을 일격에 무너뜨린다는 게 말이 되는 이야긴가!
중년인이 경악해서 생각에 잠긴 순간은 그야말로 눈 한 번 깜박일 시간에 불과했다.
그 사이 다른 두 장한이 신형을 날렸다.
그들은 더 이상 눈치를 보지 않고 무기를 뽑았다. 한 사람은 검을, 한 사람은 낫처럼 휘어진 기병을 무기로 썼다.
장천운은 상대가 무기를 들고 공격해오자 냉소를 지으며 현월을 잡았다.
스윽!
거무스름한 검신을 드러낸 현월이 어둠을 수십 조각으로 갈랐다.
공격하던 두 장한은 몸이 절로 굳었다. 소름끼치는 살기에 온몸이 갈가리 조각나는 듯했다.
‘헉!’
‘이런!’
쩡!
충격을 못 이기고 두 동강 난 반쪽 검신이 빙글빙글 돌며 날아갔다. 나머지 반을 쥐고 있던 장한의 얼굴이 땡감을 베어 문 것처럼 일그러지고, 찢어진 그의 손아귀에 들린 검이 부들부들 떨렸다.
서걱!
낫처럼 생긴 기병을 사용하던 자는 팔꿈치 부분이 잘렸다.
아무리 무서운 기병도 팔이 잘린 이상 아녀자의 손에 들린 바늘만도 못했다.
장천운은 힘을 아끼지 않았다. 일원장이 천외의 근거지 중 하나라면 재고자시고 할 여유가 없는 것이었다.
‘최대한 충격을 줘서 우두머리를 불러내야 해!’
생각과 동시, 현월 끝에서 검기가 일렁거렸다.
공격목표는 중년인이었다.
중년인은 현월을 마주하고서야 왜 십팔객들이 힘을 쓰지 못하고 당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남은 두 장한이 앞으로 나서려 하자 다급히 말렸다.
“물러서라. 내가 상대할 것이다!”
중년인은 공력을 팔성까지 끌어올리고 쌍장을 뻗었다.
강맹한 장력이 투명한 막처럼 형성되며 전면을 막았다. 절정고수가 아니면 펼칠 수 없는 장막이었다.
장막을 대한 장천운은 이 장원이 천외와 관련되었을 거라 확신했다.
절정고수가 일개 하수인으로 있는 장원이다. 그것도 구천성 외곽에.
그 정도 힘을 지닌 방파가 강호에 몇이나 되겠는가.
“개를 때리면 주인이 나오는 법이지!”
자극적인 말투로 냉랭히 일갈을 터트린 장천운이 장막을 향해 현월을 뻗었다.
쿠구궁.
장막이 힘의 한계를 못 견딘 북처럼 굉음을 내며 터져 나갔다.
충돌의 여파가 파도처럼 좌우로 퍼지자, 근처에 있던 두 장한은 눈을 부릅뜨고 정신없이 물러섰다.
당사자인 중년인도 충격에 머리카락이 흐트러진 채 이를 악물고 뒤로 밀려났다.
쿵, 쿵, 쿵.
힘겹게 세 걸음 물러선 중년인의 눈빛이 거세게 떨렸다.
장막이 터져나가며 그 충격이 몸의 전신 내부를 뒤흔들었다. 가슴이 턱 막혀서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설마 이 정도로 강할 줄이야!
일수 대결에서 이익을 본 장천운도 표정이 굳어졌다.
하수인에 불과한 자의 실력이 구천성의 장로들 못지않았다.
천외의 힘이 그만큼 강하다는 뜻.
‘얼마나 많은 자들이 있는지, 그게 문제군.’
생각과 동시에 두 번째 공격을 감행했다. 아직 주인이 나오지 않고 있었다.
‘한 대 더 때리면 나오겠지.’
장천운이 현월을 흔들며 뻗자, 검첨에서 아홉 줄기 벼락이 번쩍였다. 천뢰구검 중 구전관천이 펼쳐진 것이었다.
중년인도 십성 공력을 모조리 끌어올렸다. 심장이 터질 듯했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나중은 생각할 것도 없었다.
찰나의 순간, 장천운의 검세가 중년인을 향해서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중년인도 전 공력을 끌어올린 쌍장으로 첩첩이 방어막을 형성했다.
쩌저저적!
구전관천의 아홉 줄기 벼락이 중년인의 방어막을 철저히 파괴하며 밀려갔다.
눈을 부릅뜬 중년인의 입에서 핏물이 흘러나왔다.
현월의 검첨과 중년인의 거리는 다섯 자 정도, 그럼에도 검첨에서 뻗어나간 벼락 한 줄기가 중년인의 어깨를 훑고 지나갔다.
옷과 살이 쩍 갈라지며 중년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때였다.
“참으로 겁이 없는 놈이로다!”
분노의 일갈이 허공에서 울리는가 싶더니,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한 듯 가공할 압력이 밀려들었다.
처음으로 장천운의 얼굴에 긴장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짓누르는 압력의 위력이 결코 공손백의 그것에 뒤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천하에서 적수를 찾기 힘들다는 공손백과 비견되는 고수가 나타났다는 말 아니겠는가.
‘드디어 주인이 나왔군!’
장천운은 현월의 검첨을 허공으로 틀면서 공력을 집중시켰다.
웅장한 기운이 묵기를 동반한 채 머리를 쳐들었다. 마치 흑룡이 용틀임을 하며 하늘로 방향을 트는 듯했다.
칙칙한 어둠만이 존재하는 하늘. 별빛도 달빛도 보이지 않고 천만근 압력만이 장천운을 내리눌렀다.
그런데 잔뜩 긴장한 장천운의 표정이 묘하게 이지러졌다.
‘이건!’
언젠가 이와 같은 압력을 경험해본 적이 있었다.
바로…… 꿈속에서.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그때의 더러운 기분이 되살아난 장천운은 이를 악물고 하늘을 노려보았다.
발에 밟힌 썩은 호박처럼 금방 짓눌릴 것 같던 그가 허리를 쭉 폈다.
머리카락이 태풍을 만난 듯 사방으로 뻗쳤다.
단전에서 화산처럼 폭발하듯 솟구친 진기가 현월을 쥔 손에 집중되었다.
악다문 그의 입술이 벌어지는가 싶더니 단절된 목소리가 잇새로 흘러나왔다.
“그래…….”
현월에서 다섯 자가 넘는 검은 기둥이 쭉 뻗어나가고,
“……잘 만났다!”
악을 쓰듯 외친 장천운이 현월을 머리 위로 들어올리며, 집중된 공력을 쏟아냈다.
집채만 한 바윗덩이조차 으깨버릴 수 있는 천만근 압력이 흔들리며 우렛소리가 연이어서 울렸다.
콰르르르릉. 드드드드.
장천운을 중심으로 어둠이 너울지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파문이 퍼져나가는 곳에 있던 모든 것이 부서지고 가루로 으깨졌다.
심지어 담장 근처의 정원마저 바위와 나무가 가루로 변하면서, 기문진이 자동으로 파훼되었다.
장천운은 천뢰구검 중 다섯 초식을 연달아서 펼쳤다.
막대한 진기를 소모하는 천뢰구검을 연환으로 펼치는 건 위험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어설픈 환술로 상대할 수 없는 고수, 다른 방법이 없었다.
꿈속에서 죽으면 기분만 더러울 뿐 실제로 죽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한번 죽으면 끝인 것이다.
콰과광!
벼락이 바로 옆에 떨어진 듯 귀청을 터트리는 굉음이 울렸다.
파문에 휩쓸린 장한들이 뒤로 날아가고, 중년인도 해쓱한 얼굴로 정신없이 십여 보 물러서더니 허리를 숙이고 피를 토했다.
“우웩!”
장천운의 주위 오 장이 완전한 폐허로 변했다. 메마른 대지가 한 자 이상 깊이의 원형으로 파이면서 속살을 드러냈다.
가공할 진기의 충돌로 다리가 무릎까지 땅에 박힌 장천운은 목구멍을 밀고 올라오는 핏덩이를 악착같이 삼켰다.
그때, 저편 어둠 속에서 한 사람이 내려서기 시작했다.
두 손을 앞으로 반쯤 뻗은 오연한 자세. 언뜻 봐서는 오십대 초반쯤으로 보였고, 그자의 몸 주위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회오리가 치고 있었다.
‘젠장! 꿈속에서 상대했을 때보다 더 강하잖아?’
그때 문득, 소름끼치는 어떤 생각이 망치로 때리듯 뇌리를 두들겼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고, 치켜뜬 눈에서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상대는 꿈속에서 만났던 자들보다 한참 젊었다. 그때 보다 젊어진 게 아니라면, 저자는 꿈속에서 만난 천외의 세 괴물 중 누구도 아니다.
그 말인 즉, 천외의 세 괴물이 저자의 위에 있다는 뜻이었다.
당연히 저자보다 강하겠지?
하지만 놀란 것으로 따지자면 장천운보다 손우곤이 더했다. 오죽하면 코끝이 씰룩거리는 오래 전의 버릇이 되살아났을까.
“정말 믿을 수가 없구나. 강하다는 말을 듣긴 했다만, 설마 이 정도로 강할 줄이야…….”
놀라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앞으로 내민 손끝이 미미하게 떨렸다.
천외삼성 외에는 천하의 누구도 자신의 위로 인정하지 않는 그다. 심지어 공손백이나 나극조차도.
그런데 이제 겨우 이십대인 애송이와 단 일수를 겨루고 내상을 입다니.
너무도 어이가 없다보니 분노조차 일지 않았다.
“너는 와서는 안 되는 곳에 왔다. 그리고 알아서는 안 되는 일을 알려고 했어.”
분노도 없는 무심한 살기가 손우곤의 주위로 너울처럼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