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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200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04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200화

독고태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굳은 표정으로 장천운을 직시했다.

얼굴은 여전히 초췌했다. 하지만 눈빛은 조금 전과 판이하게 달랐다.

“그들에 대해서 어떻게 알았는지 몰라도…… 그들은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저도 압니다.”

천외의 주인들에게 수십 번 죽어 본 장천운이다. 아마 그보다 천외의 무서움을 잘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충고 하나 하마.”

“말씀하십시오.”

“듣는 이가 있든 없든, 네가 그들에 대해서 입을 연 순간부터 너는 그들의 표적이 되었을 거다.”

그들. 천외를 말함이다.

최대한 조심했음에도 그들이 눈치 챘을 거라는 말은, 그만큼 그들의 힘이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어 있다는 뜻.

“각오하고 있습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느냐?”

“죽는 게 두렵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일 겁니다. 하지만 팔다리가 잘리고, 배에 구멍이 나고, 심장이 터져서 수십 번 죽어 본 사람이라면 죽음에 대한 공포와 충격도 무뎌질 수밖에 없지요.”

“……?”

독고태는 장천운의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수십 번 죽어 본 사람? 심장이 터졌는데 살아난 사람이 있다고?

“꿈속에서 수십 번 죽었었지요.”

장천운은 사실대로 말했다. 받아들이는 독고태야 농담하는 걸로 생각했지만.

“훗, 꿈속에서라면 나도 수백 번은 죽었을 거다. 하지만 꿈속에서 죽는 것과 현실은 다른 법이지.”

“아무래도 그러겠지요. 좌우간 충고하신 말씀, 고맙게 받아들이겠습니다.”

장천운은 ‘단주의 숙부께선 어느 쪽과 관련되어 있습니까?’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기어 나왔지만 가까스로 억눌렀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단주, 대령주와 대장로에게 출정 명령이 떨어진 건 아십니까?”

“들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움직이지 않을 생각이다. 장인어른도 내 마음을 이해해 주시겠지.”

독고태가 움직이지 않으면 공손백과 나극으로서는 전력에서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럼 공백이 된 전력을 메우기 위해서라도 그들을 움직일 가능성이 더 커졌군.’

장천운이 나름대로 계산을 하고 있는데 독고태가 말했다.

“민아를 궁지로 몰아넣은 놈이든 독을 먹인 놈이든 잡기만 해라. 전에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킬 테니까.”

“알겠습니다.”

장천운이 방을 나가자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똑.

탁자 끝에 맺혔던 술방울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릴 정도다.

방문을 바라보고 있던 독고태는 장천운이 나가고도 스물을 셀 시간이 흘렀을 때쯤에서야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공손백, 조금만 기다려라. 네가 무슨 실수를 저질렀는지 처절하게 느끼게 해 주마.’

“유곡.”

독고태가 나직이 누군가를 부르자, 그의 뒤쪽에 검은 그림자 하나가 유령처럼 내려섰다.

독고태는 돌아보지도 않고 스산한 목소리로 명을 내렸다.

“들었느냐?”

“예, 작은 어른.”

“가서 숙부께 말씀드려라. 오늘 부로 공손백과의 관계를 끊겠다고.”

 

***

 

장천운은 구천무원을 향해 걸어가며 생각을 정리했다.

‘대령주와 대장로가 출정하면 소성주 역시 출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전쟁에서 패하는 쪽이 모든 걸 잃는 상황이 되겠군.’

강호는 냉정하다. 얻는 쪽이 있으면 잃는 쪽이 있다. 양쪽이 다 얻으려면 타협을 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소성주와 공손백 사이의 간극이 너무 멀다.

‘고집들이 세서 그건 힘들 것 같고…….’

단순한 고집이 아니다. 한 사람은 십수 년 동안 그 자리를 노렸고, 한 사람은 상대를 원수로 생각하고 있다.

더구나 그림자도 드러내지 않고 있는 자들이 뒤에서 눈을 번뜩이고 있지 않은가.

‘제길, 복마전이 따로 없군.’

무창 뒷골목의 피 튀기는 싸움도 그에 비하면 애들 장난에 불과했다.

 

구천무원을 삼십 장쯤 남겨놓았을 때였다. 달빛조차 없는 어둠 속을 걷던 장천운이 이마를 찌푸리고 눈을 가늘게 좁혔다.

‘어떻게 된 거지?’

구천무원이 얼마 남지 않은 곳인데도 경비무사가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경비 사각지대에 서 있는 게 아니라면 정상이 아니다.

멈칫한 그는 걸음을 늦추고 좌우를 둘러보았다.

섬뜩함을 느낀 그가 멈칫한 순간!

어둠 저편에서 뭔가가 날아들었다.

눈으로 보여서 안 것도 아니고, 소리가 들린 것도 아니다. 그저 느낌이 그렇게 말해 주고 있었다.

장천운은 본능적인 움직임으로 허리를 틀었다. 상체를 뒤로 반쯤 젖힌 그는 우수를 들어서 허공을 저었다.

손가락 사이에 뭔가가 잡혔다. 얇기가 종잇장 같고 길이가 네 치에 불과한 암기였다. 아마 피하지 않았다면 그의 심장을 찢어발겼을 것이다.

손가락 사이에 낀 암기가 몸부림이라도 치듯 꼬리를 파르르 떨었다.

암기와 암기의 주인 사이에 진기의 끈이 이어져 있는 듯했다.

장천운은 놀랄 틈도 없이 그 자세 그대로 일 장 가량 떠올랐다.

무음무형의 무언가가 그가 있던 곳을 지나갔다.

절정의 암기술. 침착한 이차 공격.

‘이 정도의 암기 고수가 구천성에 있었나?’

구천성에 암기고수가 서너 명 있다. 그러나 자신이 아는 한 손에 잡힌 류의 암기를 쓰는 자는 없다.

그렇다면 외인? 아니면…….

피융!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미미하지만 화살이 날아들 때나 들릴 법한 소리다.

속도가 그만큼 빠르다는 뜻.

삼차 공격은 상대가 허공에 뜨기를 노리기라도 한 듯 정확하게 그를 향해서 날아들었다.

‘제기랄! 나를 잘 아는 자야.’

 

장천운에게서 사 장 정도 떨어진 건물 구석.

한 뼘 길이의 특수한 소전을 날린 자의 입술 끝이 비틀렸다.

‘네놈이 그럴 줄 알았다.’

장천운에 대한 정보를 철저하게 이용했다.

놈은 기괴한 신법을 펼친다고 했다. 공손백조차 놈의 신법에 당황했다나?

그래서 자존심을 접고 세 번째 연환공격까지 염두에 두었다.

아니나 다를까 놈은 두 번의 공격을 가볍게 피했다.

그러나 세 번째 공격만큼은 피할 방도가 없다. 막기에도 이미 늦었고, 망혼전은 끝이 나선형으로 특수하게 제조되어서 강기마저 뚫을 수 있었다.

게다가 자신의 진기가 고스란히 실려 있기 때문에 한 뼘 두께의 암석도 관통할 정도로 위력이 강력했다.

‘시험은 무슨? 기회가 왔을 때 목줄을 끊어 버려야지. 하여간 노인네들의 쓸데없는 조심성하고는…… 후후후후.’

그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는 사이, 망혼전이 놈의 몸을 관통했다.

정확히 심장을 통과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몸이 뚫렸다는…….

‘응?’

느낌이 이상했다. 망혼전은 그와 무형으로 연결되어 있다. 방어벽에 막혔거나 몸을 관통했다면 저항이 느껴져야만 했다.

그런데 한 푼의 저항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뿐이 아니다. 허공에 떠 있던 놈의 모습이 어둠 속으로 녹아들고 있지 않은가!

‘헛! 저놈이……!’

강호에서 일수귀견이라 불리는 암기의 고수, 하노두는 눈을 부릅떴다.

장천운이 기괴한 신법으로 공손백을 경악하게 만들었다더니 과장이 아니었다.

게다가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는 이 느낌은……?

‘이런!’

대경한 그는 미련을 버리고 즉시 뒤로 몸을 뺐다.

그 직후, 그가 서 있던 자리에서 폭음이 일었다.

쾅!

청석 하나가 가루로 변하며 바닥이 움푹 파였다.

기겁한 하노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몸을 날렸다.

암기의 고수는 대부분 신법도 뛰어나다. 그래야 거리를 두고 싸울 수 있으니까.

그 역시 신법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장천운이 움푹 파인 곳에 내려섰을 때, 하노두는 이미 십 장 밖의 건물을 돌아서 사라지고 있었다.

“흥! 쥐새끼 같은 자가 눈치는 빠르군. 다음에 만나면 목을 따 주마!”

하노두는 이마에 핏대가 섰다.

뒤에서 장천운의 코웃음 소리가 들렸다. 조롱기 가득한 목소리가 고막을 파고들었다.

심장이 부글부글 끓어서 금방 터질 듯했다.

돌아가서 다시 싸워 봐?

하지만 이미 돌아선 터였다. 이긴다는 보장도 없고.

‘개자식! 네놈은 반드시 내가 죽여주마!’

으드득, 이를 간 그는 장천운이 쫓아오지 않는다는 걸 확인한 후에야 방향을 북쪽으로 틀었다.

 

***

 

눈을 치켜뜬 손우곤은 하노두를 노려보며 냉랭히 다그쳤다.

“멍청하긴! 내가 그렇게 조심하라 일렀거늘…….”

“죄송합니다, 태사령. 놈을 너무 가볍게 봤던 제 실수입니다.”

하노두는 고개를 푹 숙였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당분간 얼굴을 드러내지 마라. 너로 인해서 나 역시도 이곳을 떠나야 할지 모르겠구나.”

손우곤의 말이 뜻밖이었는지, 이적상이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

“굳이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지 않겠소?”

이마를 찌푸린 손우곤이 고개를 저었다.

“아주 집요한 놈이네. 게다가 여우 같은 머리까지 갖고 있지. 자칫하면 이곳 자체를 포기할 상황이 될지도 모르네.”

“그렇다 해도 아직은 애송이 아니오?”

“그놈이 아니었다면 사마경이 어찌 공손백과 나극을 대등하게 상대할 수 있겠나? 설마 우문각 때문일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에 대해선 이적상도 할 말이 없었다.

이제는 누구도 장천운의 존재를 무시하지 못했다.

장천운이 없었다면 지금의 사마경 역시 없었을 거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는 판이었다.

“그렇다면 더욱 더 없애야겠구려.”

“그 때문에 조사하라고 보냈는데, 오히려 일을 키워서 왔으니 어쩌겠나? 놈이 이곳까지 들쑤시기 전에 잠시 피해 있어야지.”

손우곤의 그 말에 하노두가 눈치를 보며 말했다.

“확실히 따돌렸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

“예, 태사령.”

“쯔쯔쯔, 내 그렇게 말했거늘, 아직도 모르겠느냐?”

“예?”

“놈을 네 기준으로 판단하지 마라. 교활한 공손백도 너처럼 놈을 얕보았기 때문에 지금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차라리 그가 앞뒤 안 가리고 힘으로 몰아붙였다면, 비록 반쪽이긴 해도 진즉 구천성을 거머쥐었을 거다.”

하노두는 손우곤의 말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 겨우 이십 대 초반인 장천운이다. 소문에 의하면 흑도의 새끼건달이었다고 했다. 그런 놈이 뛰어나면 얼마나 뛰어날까?

하지만 그런 장천운에게 패해서 도망친 입장이니 반박하지도 못했다.

그때 밖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룁니다. 수상한 놈이 장원 안으로 침입했습니다.”

 

***

 

장천운은 작은 장원을 쳐다보았다.

자신을 암습했던 자가 들어간 장원이다. 외관상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장원.

‘일원장이라…….’

수상한 냄새가 났다. 차분히 둘러보는 동안 가슴이 싸늘하게 식었다.

절정의 기운이 곳곳에 깔려 있다. 평소였다면 모르고 그냥 지나쳤을지 모를 만큼 은밀한 기운이다.

이런 외곽에 왜 절정 경지의 고수들이 기거하는 걸까?

‘들어가서 확인해 보면 알겠지.’

주위를 슬쩍 둘러본 장천운은 담장을 넘었다. 안에서는 아직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그런데 담장을 넘어서 몇 걸음 옮기던 그가 이마를 찌푸리며 멈칫했다.

순간적으로 머리끝이 쭈뼛 섰다.

깊이 모를 늪 속에 빠진 기분이랄까?

분명 몇 걸음 앞으로 나아갔는데 건물과의 거리가 그대로였다.

그뿐 아니라 건물이 흐릿하게 보이면서 아지랑이처럼 좌우로 흔들렸다.

‘기문진?’

진세의 영향이 아니라면 어찌 건물이 아지랑이처럼 흔들릴까.

쓴웃음을 지은 장천운은 방위를 짚고 진세를 살펴보았다.

기문진에 대해서 아는 것은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강련곡에서 기초를 배웠을 뿐.

사마경과 남초초에게 좀 더 배우긴 했지만, 아직은 한눈에 진세의 구조를 간파하고 빠져나갈 실력은 아니다.

‘힘으로 부수고 나가는 수밖에 없나?’

장천운은 공력을 팔성까지 끌어올렸다.

단순히 침입자를 막기 위한 진세일 가능성이 높다.

장원의 규모가 작아서 복잡한 진은 설치할 수 없었을 것이고, 지나친 살기를 지닌 진 또한 설치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가는 당장 구천성에 들킬 테니까.

후우웅.

그의 몸 주위로 강력한 기운이 휘돌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차갑고도 예리한 기운이 그가 있는 곳을 향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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