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199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01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199화
“알면 됐어!”
한 소리 내지른 장천운이 손목을 비틀어서 어둠을 갈지자로 그었다.
종잇장처럼 찢겨나간 어둠의 틈을 통해서 섬전의 소나기가 쏟아졌다.
도원경은 튀어나올까 염려될 정도로 눈을 크게 떴다.
선천진기에 가까운 잠력을 최대한 이끌어낸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서 마주쳐 갔다.
쿠구구구궁!
검세와 장세가 부딪친 것이라 하기에는 둔중한 굉음이 어둠을 뒤흔들었다.
두 사람 주위 일 장 반경 안의 바위가 부서지고 나무는 가루가 되어서 흩날렸다.
머리카락이 솟구친 도원경은 이를 부서져라 악물고 뒤로 물러섰다.
자존심 때문에 버티고 싶었지만 몸의 본능이 의지를 배신했다.
“이, 이런…… 어이없는…….”
그의 잇새로 억눌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보일 듯 말 듯 잘게 떨리는 그의 입술을 비집고 검은 핏줄기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그는 남은 힘을 쥐어짜서 뒤로 몸을 날렸다. 자존심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목숨이 먼저였다.
장천운은 그의 뒤를 쫓지 않았다.
초광이 고개를 땅바닥에 처박고 있었다.
***
장천운은 피투성이가 된 초광을 어깨에 메고 성으로 돌아갔다.
경비무사 누구도 밤바람을 타고 흐르는 그를 감지하지 못했다.
무화원에 도착한 장천운은 일단 더 이상 피가 흐르지 않도록 외상부터 손을 봤다. 피를 많이 흘리고 경맥을 다치긴 했지만 목숨에 지장은 없을 듯했다.
‘그나마 다행이군.’
귀를 반쪽 떼어주고 목숨을 구했으니 손해는 아니었다.
안도한 장천운은 지혈을 마치자 명문혈을 통해서 공력을 주입했다. 금방이라도 끊길 것처럼 약해졌던 진기 흐름이 점차 안정되어 갔다.
치료를 시작하고 한 시진쯤 지났을까, 초광이 눈을 뜨고 겨우 정신을 차렸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한 표정이던 그가 기억을 떠올리고는 이를 뿌드득 갈았다.
장천운은 그 모습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귀도 반쪽이 되었으니 앞으로 성격이 더 더러워지겠군.’
그뿐이 아니라 몸 여기저기도 엉망이다. 살아있는 게 다행일 정도.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초광의 상태가 아니었다.
장천운은 정신을 차린 초광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놈들의 근거지를 찾았소?”
“예, 대주.”
초광은 평소의 그답지 않게 정중한 목소리로 사정을 설명했다. 부탁할 것이 있는 그로선 그보다 더한 저자세도 취할 수 있었다.
장천운은 초광이 이야기를 매듭지을 때까지 듣기만 했다. 그러고는 도한경과 만난 상황이 지난 뒤에야 질문을 던졌다.
“그 계곡에 놈들이 숨어 있단 말이지요?”
“그렇소, 대주.”
“왜 알리지 않고 단독으로 추적했소? 아까운 사람들을 잃고 하마터면 초 령주까지 죽을 뻔했잖소?”
설마 자신을 걱정해 주는 것은 아니겠지?
초광은 이상한 곳에서 가슴이 뭉클하니 뜨거워졌다. 비록 잠깐 뿐이었지만.
뒤이어진 장천운의 말에 달아올랐던 가슴이 빠르게 식었다.
“그러잖아도 사람이 모자란데…….”
‘그럼 그렇지.’
어쨌든 독단으로 결정을 내린 이유는 단순했다.
뭔가를 해내서 자신이 무시당할 만큼 형편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장천운에게 알려 주고 싶었을 뿐.
물론 그 사실을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지만.
“확실한 사실을 알아낸 후에 보고 드리려 했소이다, 대주.”
“욕심을 낸 것이 아니었단 말이지요?”
초광은 가슴이 뜨끔했지만, 무슨 소리냐는 듯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왜 그런 욕심을 낸단 말이오?”
초광의 눈을 잠시 바라보던 장천운이 말을 돌렸다. 더 다그쳐 봐야 죽은 사람이 살아서 돌아올 일도 아니다.
“내가 알기로, 그곳은 사람이 살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장천운이 말끝을 흐리며 눈살을 찌푸리자, 무거운 표정을 지은 채 조용히 서 있던 위곤이 말했다.
“우리 역시 그 계곡에 사람이 있는 줄 알지 못했네. 누군가가 그 계곡에 대한 비밀을 철저히 차단했단 뜻이겠지.”
그 말에 장천운의 눈에서 한광이 번뜩였다.
“그 누군가는 대령주나 대장로일 가능성이 크겠군요.”
“내 생각 역시 대주와 같네. 그들이 아니라면 어느 누가 구천성의 눈을 가릴 수 있겠나?”
‘어쩌면 천외일지도 모르지.’
또 다른 가능성을 떠올린 장천운이 냉소를 지었다.
“철저히 조사해 보십시오. 어느 정도 전력인지, 몇 명이나 되는지. 마수 도한경조차 그들의 일원이라면 예상치 못한 변수가 될지도 모릅니다.”
“알았네.”
“위험하다 싶으면 즉시 물러나라 하십시오. 희생자는 어제 잃은 넷으로 충분합니다.”
위곤은 느릿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형제들을 더 잃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껍데기만 파악할 수도 없는 일이다. 복수를 위해서라도.
‘때로는 희생이 크더라도 반드시 해야만 할 일이 있는 법이지.’
***
사마경은 아침이 되어서야 보고를 받고 아미를 찌푸렸다.
“어느 정도 전력이야?”
“지금 조사하고 있으니 곧 밝혀질 겁니다.”
“천외와 관계가 있을까?”
장천운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럼 백부가 그들과 연관되었을지도 모른단 말이군.”
“저번에 그들을 모르는 것처럼 말한 게 사실이라면, 그도 모르는 사이 다른 식으로 연결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사마경은 냉기가 흐르는 눈빛으로 찻잔을 노려보았다. 찻잔 안의 뜨거운 차가 금방이라도 얼어버릴 듯했다.
“결국 구천성 안팎에서 얽히고설켜 있단 말이겠지?”
“예, 소성주.”
“마수 도한경이 그들의 일원이라면 더한 자도 있을 수 있겠군.”
“그럴 겁니다.”
사마경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녀는 늘씬하게 뻗은 손가락으로 태사의 손잡이를 툭툭 치며 생각에 잠겼다. 십여 번쯤 쳤을까, 눈을 든 그녀가 불쑥 물었다.
“그들이 어떻게 나올 거라고 생각해? 도망갔을까?”
“아마 그곳에 그대로 있을 겁니다.”
“흥! 백부를 믿고 말이지?”
“그보다는 작금의 상황을 믿고서 버티는 거라고 봐야겠지요.”
정파와의 전쟁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내전을 벌일 수는 없다. 그 점을 아는 자들이 굳이 계곡을 나와서 위험을 자초할까?
“안 되겠어. 백부와 대장로에게 출정을 서두르라고 해야겠어. 조금 전에 올라온 비령각의 보고에 따르면, 안휘의 정파세력이 모두 집결했다고 하거든.”
사마경의 말에 장천운의 눈빛이 번쩍 빛을 발했다.
공손백이 출정하면 계곡 안에 있던 자들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아니면 공손백을 따라가든지.
움직이지 못하면 시간을 벌 수 있고, 따라가면 전력을 파악하는 일이 훨씬 쉬워진다.
어느 쪽이든 나쁘지 않은 결과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
청묵전의 내실에 어느 때보다 무거운 분위기가 흘렀다.
공손백이 허리를 꼿꼿이 펴고 앉은 채 말없이 전면을 노려보고 있었다. 태사의의 손잡이를 움켜쥔 그의 주먹에서 힘줄이 툭툭 불거졌다.
공력을 일으키지 않았음에도 의자의 손잡이가 부서질 것처럼 우그러들며 비명을 질렀다.
“……그 바람에 백남경이 중상을 입고, 도한경마저 심한 내상을 입은 후 후퇴했습니다.”
종리성학이 보고를 마친 후에야 그의 입이 열렸다.
“사마경도 보고를 들었겠군.”
“아직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습니다.”
“아마 위곤이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볼 거다.”
“그래봐야 기문진으로 입구가 막혔으니 비영곡으로는 들어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때 문이 열리고 문인동이 안으로 들어왔다.
왠지 굳어 있는 표정.
공손백은 그의 표정만 보고도 급박한 일이 생겼음을 직감했다.
“무슨 일이냐?”
“소성주가 사람을 보냈습니다.”
공손백은 어젯밤의 일 때문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문인동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의 생각과 한참 달랐다.
“이틀 안으로 출정 준비를 마치고 삼월 보름에 출발하라는 명령문을 가져왔습니다.”
“사흘 후에 출발하라고?”
“안휘의 정파세력이 모두 집결해서 본 성 측 세력과 충돌 일보직전이라 합니다.”
“대장로 쪽은?”
“그쪽에도 같은 명령이 전해졌습니다.”
공손백은 이마를 찌푸리고 잠시 생각을 가다듬었다.
다른 뜻이 숨어 있는 듯했다. 그러나 간부들 앞에서 나서겠다고 했으니 명령을 거부할 수도 없는 일이다.
“알았다. 사흘 후에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해.”
“예, 주군.”
“성학, 비영곡에 연락을 취해라. 그들도 함께 간다.”
멈칫한 종리성학이 눈을 들었다.
“굳이 그러실 필요까진…….”
“분명 뭔가 노리는 게 있을 거다. 우리가 떠나면 비영곡을 칠지도 모를 일이야.”
종리성학은 반론을 제기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무림맹이 움직인 이상 사마경에게는 비영곡을 공격할 여유가 없을 텐데…….’
그러나 공손백의 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기에 더 이상 반박하지 않았다.
“전부 데려가실 생각이십니까?”
“어차피 그들을 세상에 드러낼 거라면 남길 필요는 없겠지.”
82장 : 일원장(一元莊)
짙은 밤안개 밀려드는 해시 초, 장천운은 독고태를 찾아갔다.
독고태는 그날도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단 며칠 사이에 얼굴이 초췌해져서 사람이 완전히 달라진 듯 보였다.
“단주, 독고 공자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자에 대해서 몇 가지 알아낸 사실이 있습니다.”
“그래? 어떤 놈이더냐?”
음울한 목소리로 물은 독고태가 술잔을 내려놓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초췌한 얼굴과 달리 눈빛은 얼음을 깎아 만든 칼날처럼 차가웠다.
“혹시 강련곡 너머에 있는 비영곡을 아십니까?”
“비영곡? 그런 곳도 있었나?”
“저희도 어제서야 알았습니다.”
“비영곡에 대해서 물어봤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용의자로 보이는 자가 그곳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장천운은 독고태에게 지난밤에 벌어진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이야기 와중에 도한경의 이름이 나오자 독고태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런 고수가 웅크리고 있는 곳이 알려지지 않다니. 그것도 구천성 근처에서.
“대령주와 관련되었느냐?”
장천운이 무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지시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역시 나를 끌어들이기 위해서 민아를 이용했던 것이었군. 나를, 이 독고태를.”
독고태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들릴 듯 말 듯 웅얼거렸다.
파스스스스.
움켜쥔 술잔이 손안에서 가루가 되었다. 술은 증기로 변해서 손가락 사이로 연기처럼 새어나왔다.
달콤시큼한 주향이 방안에 은은하게 번졌다.
장천운은 그 모습을 보고 자신의 판단을 수정했다.
‘알려진 것보다 더 강한 공력을 지녔어. 그렇다면 공손백이나 나극과 비해도 큰 차이가 없다는 뜻인데…….’
하긴 그러니 공손백과 나극도 독고태를 지금 이상으로 몰아붙이지 못하는 거겠지.
한편으로는 그런 독고태가 공손백과 나극에게서 떨어져 나온 게 사마경으로선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장천운은 그쯤에서 또 한 가지 사실을 알려 주었다.
“단주, 독고 공자에게 독을 쓴 자는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랬겠지. 민아를 죽여 봐야 그들에게는 득 될 것이 없을 테니까.”
“지금 율검당에서 독을 쓴 자를 추적 중이니, 곧 어떤 소식이 있을 겁니다.”
“어떤 자들일 거라고 보느냐?”
그 질문에 장천운이 독고태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단주께서도 이미 짐작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만.”
생각지 못한 말이었는지 독고태의 눈빛이 흔들렸다.
“짐작하고 있을 거다?”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