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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198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13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198화

흑월대의 미친놈들과 몇 번 캄캄한 한밤중에 대결해 본 적이 있다. 그놈들은 비무라고 했지만, 자신이 보기에는 그냥 개싸움이었다.

그때의 개싸움을 몇 번 겪은 그는 전보다 간이 훨씬 튼튼해져 있었다.

컴컴한 곳에서 검기가 날아드는 걸 본능적으로 피할 수 있는 것만 봐도 그때의 미친 짓이 효과는 있는 듯했다.

‘살아서 돌아가면 술 한 잔 쏘마!’

술도 살아 있어야 쏠 수 있다.

초광은 곤두선 신경을 억누르고 자신의 본능에 목숨을 맡겼다.

지금처럼 어두운 곳에서는 눈보다 본능을 믿는 게 나았다.

좌측에서 검기가 날아드는 걸 느낀 그가 반사적으로 몸을 틀며 검을 열십자로 두 번 그었다.

쩌정!

두 번째 변화에서 백남경의 검로가 차단되었다. 덕분에 어깨가 살짝 긁히는 것으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흥! 제법이구나!”

백남경이 코웃음 쳤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강한 놈이다. 겉으로는 코웃음 쳤지만, 신중하게 상대하지 않았다가는 역으로 당할지 모른다.

“커억!”

사밀령 무사 하나가 또 비명을 토하며 쓰러졌다.

그동안 어둠 속의 습격자도 둘이 더 쓰러졌다.

겨우 버티는 사밀령 무사들 역시도 자잘한 상처로 몸이 성하지 않았다. 스친 검기에 살이 갈라지고 내상마저 입은 상태였다.

초광은 상황이 점점 악화되자 초조해졌다.

‘지미, 한두 놈만 더 지옥으로 데려가면 좋겠는데.’

그러나 앞에 있는 상대는 그가 다른 생각을 하며 상대할 수 있을 만큼 녹록치 않았다.

‘윽! 제길!’

속으로 신음을 삼킨 초광이 미끄러지듯 뒤로 물러났다. 도기에 어깨가 갈라진 듯했다.

백남경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림자처럼 따라가며 칼을 휘둘렀다. 칼끝에서 뻗어나간 도기가 어둠을 소리 없이 열여덟 조각으로 갈랐다.

파도처럼 밀려드는 도기에 솜털이 올올이 곤두선 초광은 혼신의 힘을 다해서 방어하며 뒤로 물러섰다.

떠더더덩!

도검이 충돌하며 귀청을 찢어댈 듯 둔중한 굉음이 울렸다.

부서진 도기의 여파가 스치면서 초광의 몸에 두어 군데 상처가 더해졌다.

‘흥! 죽어도 나 혼자 죽지는 않겠다!’

이를 악다문 초광은 백남경의 도세 속으로 뛰어들었다.

백남경도 물러서지 않고 더욱 강하게 칼을 휘둘렀다.

눈은 처음부터 무용지물이었다. 오직 감각과 본능만으로 상대의 공격을 판단해야 했다.

초광은 살이 갈라지는 섬뜩한 느낌을 참고 상대의 약점을 끈질기게 노렸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순간에 오 초의 공방이 이어졌다.

그리고 칠 초식째, 백남경의 공세를 버티지 못한 초광이 좌측 어깨에 제법 큰 부상을 입고서 주르륵 물러섰다.

그러잖아도 움직임이 둔해진 몸이거늘, 어깨의 상처가 더 심해진 듯 좌측 팔이 축 늘어졌다.

백남경이 조소를 지으며 초광을 향해 다가갔다. 하얀 이가 어둠 속에서 음산한 빛을 발했다.

“지금이라도 무릎을 꿇어라. 그럼 목숨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초광이 고통을 참으며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개자식, 네놈이나 똥 퍼먹을 때까지 오래 살아라.”

“죽고 싶다면 어쩔 수 없지.”

백남경이 냉랭히 말하고는 땅을 박차고 몸을 날리며 칼을 휘둘렀다.

그때 초광이 몸을 비틀며, 축 늘어뜨리고 있던 좌수를 폈다. 동시에 활처럼 휘어져 있던 나뭇가지가 튀어나갔다.

“엇?”

생각지 못한 상황에 백남경이 멈칫거렸다. 그 와중에도 그의 칼은 어둠과 나뭇가지를 한꺼번에 갈라 버렸다.

잘게 잘려나간 나뭇가지 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 바람에 백남경은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대신 그의 매끄러운 움직임에 틈이 생겼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기회!

몸을 날린 초광은 상대의 도세를 두려워하지 않고 흠의 결을 따라 검을 뻗었다.

‘함께 죽자, 개자식아!’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쉬각!

푹!

초광의 귀 반쪽이 머리카락과 함께 잘려 나갔다.

그보다 한발 늦긴 했지만 초광의 검이 백남경의 오른쪽 가슴에 박혔다.

초광은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뒤로 몸을 날렸다.

사밀령 무사 중 셋은 쓰러지고, 남은 하나마저 부상이 심해서 쓰러지기 직전이다. 더 이상 고집을 부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일단 살아야 돼!’

느긋한 자세로, 백남경이 초광을 요리하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던 습격자들은 갑작스런 상황에 놀라서 노성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대주!”

“저놈을 죽여!”

초광은 젖 먹던 힘까지 끌어내서 그 자리를 벗어났다.

기회는 한 번뿐이다. 잡히면 죽는다.

수하들의 죽음으로 노기가 하늘 끝까지 솟구쳤지만, 복수도 살아 있어야 할 수 있다.

‘미안하다, 운호, 걸양, 충수, 남평. 너희들의 복수는 반드시 해 주마! 장 대주 앞에 무릎을 꿇고라도 부탁하마! 저승에서 조금만 기다려라!’

다행히 어둠은 탈출자의 편이었다.

환한 곳이었다면 십 장의 거리 정도는 코앞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컴컴한 숲속에서의 십 장은 세상이 둘로 갈라진 것만큼이나 먼 거리였다.

초광은 가시에 얼굴이 긁히고, 나무 등걸에 부딪쳐서 뼈가 부러진 듯 고통스러웠지만 멈추지 않고 달렸다.

 

***

 

초광이 그를 만난 것은 산을 하나 넘었을 때였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달리는 그의 앞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자는 본래 바위 위에 앉아 있었는데, 초광이 달려오는 모습을 보고 바위에서 일어났다.

초광도 그자를 봤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거리가 오 장으로 줄어들었을 즈음, 가슴이 싸늘하게 식는 섬뜩한 느낌과 함께 발걸음이 느려졌다.

그리고 그자의 삼 장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본인의 의지라기보다 멈추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본능이 그의 발길을 붙잡은 것이다.

“누구요?”

초광이 눈을 부라리며 물었지만 그자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대신 몸을 초광 쪽으로 돌리고 천천히 다가왔다.

“쯔쯔쯔, 멍청한 것들. 이딴 놈을 잡지 못하고 놓치다니.”

그자는 혀를 차며 짜증내듯 말했다.

달이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며 그자의 얼굴을 비추었다.

나이가 이제 마흔쯤 되었을까?

말투보다 젊고 잘생긴 얼굴이었다.

초광은 그자와 눈이 마주치자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어둠 속인데도 상대의 눈이 선명하게 보였다.

소름끼치도록 무심한 눈빛.

그는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거의 동시에 중년인이 우수를 들었다.

초광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가슴이 만근 바위에 짓눌린 듯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제기랄!’

그는 자신의 상대가 아님을 바로 깨닫고 혼신의 힘을 다해서 옆으로 몸을 날렸다.

몸이 정상이라 해도 삼 초를 상대하기 힘든 강자다. 지금 상태로는 일 초식도 받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반사적으로 몸을 날렸음에도 상대의 장력이 먼저 그의 몸을 두들겼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초광의 몸뚱이가 훌훌 날아갔다.

그나마 몸을 날리던 중이어서 위력이 반감된 상태가 아니었다면 초광은 그 장력에 의해서 절명했을 것이다.

정신이 아득해진 초광은 땅에 떨어지기 직전에서야 상대의 정체를 기억해냈다.

‘설마…… 마수(魔手) 도한경?’

달리 경혼귀마수라고도 부른다.

천중십마에 들진 못했지만, 실력은 그들에 비해서 뒤떨어지지 않는 마도의 고수.

겉으로는 마흔쯤으로 보이나 실제로는 육순이 다 된 늙은이다.

털썩.

땅에 널브러진 초광은 서너 바퀴 구른 후 상체를 들었다.

웩!

목구멍을 치고 올라온 한 덩이 선혈이 입에서 뿜어졌다.

그 덕에 겨우 정신이 들긴 했지만 잠깐 뿐이었다.

“운이 좋군. 아니, 눈치가 빠르다고 해야 하나?”

도한경이 그를 향해 다가갔다.

“그래봐야 죽는 시간이 조금 늦추어졌을 뿐이지.”

겨우 고개를 든 초광의 몸이 충격파로 인해서 잘게 떨렸다.

눈앞도 흐려졌다.

‘빌어먹을. 결국 이렇게 죽나?’

도한경의 마수가 어깨 위로 들리는 게 보였다. 어둠 속에서도 푸르스름한 빛을 발하는 손 옆의 입가에 비릿한 조소가 떠올라 있었다.

‘씨발, 죽을 때 죽더라도 저 인간의 이빨 하나 정도는…… 하다못해 눈두덩에 시퍼런 멍이라도…….’

그때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아주 늦진 않았군.”

평상시였다면 반갑기는커녕 짜증만 났을 목소리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그 목소리가 세상의 그 어떤 노랫소리보다도 황홀하게 들렸다.

‘그다! 그 인간이 왔어!’

초광과 달리 도한경은 갑자기 들린 목소리가 이상하게도 귀에 거슬렸다.

인상을 찌푸린 그는 걸음을 멈추고 어둠을 노려보았다.

무의식중에 긴장한 그가 어둠을 향해 나직이 물었다.

“웬 놈이냐?”

어이가 없었다. 상대의 목소리만 들었을 뿐이거늘, 행동을 멈추고 긴장한 목소리로 그런 어이없는 질문을 하다니.

하지만 상대는 그의 마음을 조금도 알아주지 않고 오히려 한 수 더 떴다.

“당신을 지옥으로 보내 줄 사람.”

“훗, 미친놈. 감히 이 도한경에게 그런 말을 할 놈이 있을 줄은 미처 몰랐구나.”

“못할 건 또 뭐요? 당신이 천중십마라도 된단 말이오?”

도한경의 눈초리가 역팔자로 치켜 올라갔다.

그는 자신의 실력이 천중십마에게 뒤진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면전에서 그런 말을 듣자 눌러 놓았던 분노가 활화산처럼 솟구쳤다.

“천중십마가 뭐 그리 대단하단 말이냐?”

“최소한 당신보다는 대단할 것 같은데?”

장천운이 도발적으로 도한경의 심경을 건드렸다.

새파란 놈에게 그런 말을 듣고 참는다면 마수가 아니다.

“죽일 놈!”

한마디 욕설을 잇새로 내뱉은 그가 죽 늘어지듯이 나아가며 손을 흔들었다.

어둠을 짓이기는 강력한 장력이 밤바다의 거센 파도처럼 장천운을 덮쳤다.

득의의 미소를 지은 도한경이 살심 가득한 코웃음을 날렸다.

“흥! 별 것도 아닌 놈이 입만 살았었구나.”

동시에 장천운이 그의 장력 속으로 뛰어들었다. 마치 불속으로 목숨을 던지는 불나방처럼.

감히 자신의 청혼마령수에 몸을 던지다니!

도한경은 별 미친놈 다 본다는 듯 실소를 금치 못했고, 초광은 이를 악물고 눈빛을 빛냈다.

그가 아는 장천운은 무모한 짓을 자처하는 멍청이가 아니었다.

‘저 인간이 아무 대책도 없이 저 무지막지한 장력 속으로 몸을 던질 리 없어.’

장천운은 그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가 펼친 혼천수라권과 뇌정무극수에 도한경의 장력이 산산이 부서졌다.

바위를 모래처럼 만들어 버리는 청혼마령수가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자꾸만 사방으로 흩어졌다.

기선을 잡은 장천운은 그 정도에서 만족하지 않고 곧장 도한경의 가슴을 향해서 뇌정무극수를 펼쳤다.

그가 손을 뻗을 때마다 섬전이 벼락 치는 소리를 내며 쏟아졌다.

뒤늦게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은 도한경은 눈을 부릅뜨고 쌍수를 번갈아 내쳤다.

콰르르르릉!

우레 소리와 함께 도한경의 얼굴이 캄캄한 밤에도 하얗게 느껴질 정도로 창백해졌다.

잠깐의 방심이 가져온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기경팔맥의 기가 제대로 흐르지 않았고, 움직임조차 둔해졌다.

“이런 개 같은……!”

욕설을 내뱉은 그는 전력을 다해서 십이장을 벼락처럼 내쳤지만 본래 위력의 절반밖에 안 되었다.

그 정도로는 상황을 뒤집기에 역부족이었다. 상황을 뒤집기는커녕 오히려 초수를 더할수록 가슴이 답답해지고 손발이 무거워졌다.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뒤로 물러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 그는 이를 악물고 정신없이 다섯 걸음을 물러섰다.

그쯤에서 장천운이 한 번 더 그를 자극했다.

“확실히 천중십마에 비하면 멀었군. 하긴 그러니 마수의 이름이 천중십마에 들지 못하는 거겠지.”

눈을 찢어질 것처럼 치켜뜬 도한경이 외마디 고함을 내지르며 몸을 날렸다.

“이노오오옴!”

장천운으로선 기다렸던 바다. 도한경의 동료들이 도착하기 전에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결정을 내린 그는 자연스럽게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의 손이 현월을 잡았다 싶은 순간, 쩌저적! 하는 소리와 함께 어둠보다 더 검은 벼락이 밤공기를 갈랐다.

소리 없이 뻗어나간 벼락은 어둠과 도한경을 동시에 갈랐다.

기겁한 도한경은 반사적으로 몸을 틀었다.

적수공권만 해도 자신을 능가하는 자가 무기를 뽑다니.

그렇다면 지금까지 실력을 다 드러낸 것이 아니었단 말인가?

등골이 절로 오싹해진 그는 최근 들어본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혹시 네놈이 장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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