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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197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26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197화

“독고 공자가 떠났을 때만 해도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물론 많이 맞아서 내상까지 입은 것 같긴 합니다만.”

“그럼…… 다른 사람이 죽였단 말인가?”

“범인을 알지는 못합니다만, 혹시 몰라서 철저히 조사해 보라고 했으니 곧 어떤 결과가 나올 겁니다.”

독고태의 어깨가 펴졌다. 얼굴이 여전히 불콰했고 눈도 충혈되었지만, 눈빛만큼은 조금 전과 달랐다.

“만약 자네가 진범을 잡아서 민아의 명예를 회복시켜 준다면, 뭐든 부탁 하나를 들어주겠네.”

 

축시 정(正).

경천단을 나선 장천운은 냉소를 지었다.

독고태는 천외에 대해서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자신이 아는 것에 한계가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는 사실을 협상의 대가로 써먹으려는 것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뒤늦게 실수를 깨닫고 입을 다문 것일지도 모르고.

어쨌든 중요한 것은 그가 천외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제법 많이!

‘독고민의 숙조부라는 자가 그들과 관계되었을지도 모르겠군.’

어쩌면 숙조부라는 자가 바로 천외 중 하나일지도…….

 

***

 

장천운은 유난히 붉게 물든 태양이 동산 위로 완전히 솟구쳤을 때 위곤을 만났다.

위곤은 독고민에게 죽은 것으로 알려진 두 무사의 살해 사건을 조사했었다. 사마중천의 시신이 사라지는 바람에 잠깐 중단했을 뿐.

“철혈단의 조신이 죽은 자들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근처를 지나간 사람은 모두 넷이었네. 그런데 풍혼단 무사 하나가 사건이 벌어진 건물 뒤쪽으로 수상한 자가 들어가는 걸 목격했다고 하더군. 워낙 어두운데다 뒷모습만 봐서 정체를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말이야.”

“아쉽군요. 그자가 누군지만 알면…….”

아쉬운 표정으로 말하던 장천운의 눈빛이 섬광처럼 번뜩였다.

말꼬리를 길게 끈 그가 묘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래도 형상 정도는 알겠지요?”

“그러겠지. 그 친구도 일류 수준은 되는 고수니까, 어둡다 해도 조금은 본 것이 있을 것이네.”

“청목을 그자에게 데리고 가서, 그날 본 사람의 모습을 기억나는 대로 최대한 떠올려 보라고 하십시오.”

청목의 진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위곤이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청목의 기억력이라면 몇 가지 정보만 있어도 많은 것을 알아낼 것이다.

“좋은 생각이군.”

 

청목을 사밀령으로 데려간 위곤은 수상한 자를 봤다는 풍혼단 무사를 사밀령으로 불러들였다.

“머리를 쥐어짜서라도, 네가 봤다는 자에 대해서 뭐든 기억해 내라.”

바짝 긴장한 삼십 대 초반의 풍혼단 무사는 위곤의 싸늘한 눈빛을 받으며 사력을 다해서 기억을 더듬었다.

위곤의 표정은 평소와 전혀 달랐다.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신의 머리를 쥐어짜서 터트려 버릴 것처럼 무시무시하게 느껴졌다.

“마른 듯 보이는 몸에 키가 저보다 한두 치 크고…… 머리가 말꼬리처럼 찰랑거렸는데 등의 절반까지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언뜻 본 바로는 옆구리에 칼을 매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조용히 한쪽에 서서 설명을 듣던 청목의 눈이 점점 가늘어졌다.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스쳐지나가며 정리되고 있었다.

수백 명이 백 명으로, 오십 명으로, 삼십 명으로…….

그 와중에도 풍혼단 무사는 콩알 같은 식은땀을 흘리며 설명을 이어갔다.

“칼이 이렇게 흔들리는데…… 도집이 어두운 색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중략……

“……제가 아는 것은 그것이 전부입니다.”

풍혼단 무사가 겨우 설명을 마치자, 청목이 위곤을 바라보았다.

머릿속에의 정리는 모두 끝난 상태였다.

“본 성 안에 그와 비슷한 사람이 둘 있습니다, 일령주님. 그 중 한 사람은 광혈단의 이대주 무동곽이고, 다른 한 사람은…… 대령주 휘하에 있습니다. 석 달 전에 장로원 옆을 지나가다가 대령주의 뒤를 따라가는 걸 한 번 본 적 있습죠.”

위곤은 청목의 기억력이 뛰어나다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조금은 어이없는 기분이 들었다.

‘이놈 앞에서는 말 한마디도 조심해야겠군.’

 

위곤으로부터 청목의 말을 전해 들은 장천운은 이마를 찌푸렸다.

석 달 전에 한 번 봤다는 자. 그것도 어둠 속의 뒷모습만 보고 판단한 의견이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하지만 그는 청목의 의견 때문에 고민하는 게 아니었다.

출정이 이틀 남은 상황, 당장 공손백을 건드려 봐야 득이 없다는 점이 문제였다.

그에 대한 반발로 출정을 번복하면 사마경만 곤란해지니까.

“어떻게 할 건가?”

“일단 그자의 신분을 알아보고 움직임을 파악해 주십시오.”

“그거야 어려울 것 없지.”

“생각보다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대령주에게는 숨겨 놓은 무사들이 있습니다. 그들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큽니다.”

무창에서 잡았던 자들은 사혼객이라 했다. 조직이 드러난 단혼객과 달리 그들은 음지에서 은밀하게 움직였다.

오죽하면 그런 자들이 있다는 것조차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장천운은 사혼객에 대해서 간략하게 말해 주었다. 물론 무창에서 자신이 벌인 일까지 모두 말해 줄 필요는 없었다.

사혼객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위곤은 입꼬리를 비틀었다.

사밀령도 그동안 놀고만 있지는 않았다. 사밀령이 달리 사밀령이겠는가.

“우리도 조직의 이름만 모를 뿐 대령주의 숨겨진 힘에 대해서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네. 사혼객이라…… 어쩌면 그들이 우리 형제들을 제거했을지도 모르겠군.”

그동안에는 가까이 접근하지 않았다. 자칫하면 역으로 당할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소성주와 장천운이라는 강력한 보호벽이 있지 않은가.

‘형제들의 빚을 철저히 갚아 주마.’

 

 

81장: 산중에 피바람이 불고

 

 

초광의 칼날 같은 눈빛이 어둠 속에서 번뜩이며 한 사람을 따라 움직였다.

장로원에서 나온 자가 담장을 따라 걷고 있었다. 마른 몸매에 상당히 커 보이는 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뒤로 묶은 머리가 말꼬리처럼 찰랑거렸다.

‘저 새끼인가?’

초광은 상대가 멀어지자 짙은 어둠속에서 나와 천천히 뒤따라갔다.

자신뿐만이 아니라 수하 넷이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놓치지 않을 자신이야 차고 넘쳤지만 매사에 조심했다.

방심했다가 놓쳐서 장천운에게 시달리는 건 죽기보다 더 싫었다.

말꼬리 머리를 흔들거리며 걸어가던 자는 서쪽 담장으로 걸어가더니 곧장 서문을 나섰다.

서문을 경비하는 무사는 모두 셋이나 되었는데 그를 검문도 하지 않고 내보냈다.

‘저놈들도 한패군.’

초광은 좌우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어둠 속에서 그림자 네 개가 유령처럼 움직였다.

그들은 정문이 아닌 담을 향해 접근했다.

초광이 먼저 주위를 둘러본 후 담을 넘었다.

 

서문을 나서면 바로 산악 지대가 펼쳐진다. 구천성의 기재들을 키워 내는 강련곡이 바로 그 산악 지역 속에 있었다.

말꼬리 무사, 백남경은 서문을 나선 후 곧장 강련곡 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강련곡 입구에서 방향을 우측으로 틀더니 험준한 산길을 탔다.

달빛이 쏟아지는 어둠 속 산길을 거침없이 나아간 그는 산을 두 개나 넘더니 또 다른 계곡으로 들어갔다.

추적하던 초광과 사밀령 무사들이 따라가기 벅찬 속도였다.

하지만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로 다져진 초광은 백남경의 꼬리를 놓치지 않았다.

백남경이 들어간 계곡은 사람이 다니지 않는 험지였다. 그럼에도 백남경은 자주 가본 길이라도 되는 듯 걸음걸이에 조금도 망설임이 없었다.

'이상하군. 이쪽은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인데…….'

초광은 눈을 가늘게 뜨고 백남경의 등을 노려보았다.

백남경이 들어간 계곡은 사람이 살 만한 지형이 아니어서 촌락이 없다.

그러나 밤중에 산길을 평지처럼 걷는 고수가 아무도 없는 곳에 뭐 하러 가겠는가.

달밤에 수련하기 위해 가는 것은 아닐 터.

바짝 긴장한 초광은 더욱 조심하며 백남경의 뒤를 쫓았다.

잠깐 사이 백남경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숲속 어둠 속으로 빨려들 듯이 들어갔다.

마음이 급해진 초광은 걸음을 빨리 했다.

숲속으로 오솔길이 나 있는 게 어슴푸레 보였다. 안쪽은 너무 어두워서 눈에 아무리 힘을 줘도 보이지 않았다.

‘빌어먹을!’

주먹을 움켜쥔 그는 감각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후 어둠 속으로 발을 내딛었다. 사밀령 무사들도 그를 따라서 안으로 진입했다.

오싹한 느낌이 스멀거리며 그들의 정신을 짓눌렀다.

목숨 건 작전을 숱하게 수행하며 공포에 숙달된 그들조차 참기 힘든 두려움이 온몸을 휘감았다.

암흑의 지옥에 빠진 느낌이랄까?

초광은 억지로 장천운을 떠올리며 두려움을 떨쳤다. 그를 생각하자 두려움이 아침 햇살을 받은 안개처럼 흩어졌다.

 

이백여 장을 전진하자 은색 달빛이 하늘 높이 솟은 나무 사이에서 화살처럼 쏟아졌다.

초광은 그로부터 이십여 장을 더 조심스럽게 전진한 후 걸음을 멈췄다.

계곡 깊은 곳, 안개가 흐릿하게 낀 절벽과 절벽 사이에서 불빛이 너울처럼 퍼지고 있었다.

숲을 통과하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을 위치.

‘혹시 저곳에 놈들이……?’

초광은 손을 들어서 수하들의 전진을 중단시켰다.

그때였다.

으스스한 바람이 밀려들었다.

“응?”

초광이 고개를 번쩍 쳐들고 인상을 썼다.

살갗에 소름이 돋았다. 밀려드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소름끼치는 살기였다.

“제기랄!”

상소리를 내뱉은 그가 뒤로 주욱 물러났다.

“이곳까지 따라와서 그냥 가면 되나?”

밀려드는 살기만큼이나 음침한 목소리가 어둠을 흔들었다.

동시에 시커먼 나무 위에서 그림자가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개자식, 우리가 따라온 걸 알고 있었구나. 모두 도망쳐!”

초광이 좌우를 향해 소리쳤다.

살기에 짓눌려서 몸이 굳어 있던 사밀령 무사들이 그 외침을 듣자마자 뒤로 몸을 날렸다.

“후후후후, 이미 지옥의 아가리에 들어와 있다는 걸 모르는군.”

음침한 조소가 다시 들렸다.

쏴아아아, 하는 소리와 함께 어둠을 짓누르며 파도처럼 밀려들던 살기가 초광을 덮쳤다.

모두 다섯. 하나같이 일류고수의 기운을 지닌 자들이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숨이 막혔다. 살갗이 따가워지다 못해 껍질이 벗겨질 것만 같았다.

수하들 먼저 보내기 위해서 검을 빼들고 기다렸던 초광은 이를 부서지도록 악다물고 전력을 다해서 방어했다.

죽음은 각오하고 있던 터였다.

죽더라도 수하들만큼은 살리고 싶었다.

쪽팔리게 도망치는 것보다 남자답게 죽는 것이 낫지 않겠어?

“개자식들! 쉽진 않을 거다!”

흑월대의 미친놈들과 함께 한 달여의 시간을 보냈다.

설마 그놈들보다 더할까?

그러나 상대는 앞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크억.”

고통스런 단말마가 초광의 뒤쪽에서 울렸다.

사밀령 무사 중 하나가 옆구리를 부여잡으며 비틀거렸다. 극렬한 고통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순간 ‘서걱’ 하는 미미한 소음이 나더니, 비틀거리던 사밀령 무사가 맥없이 옆으로 쓰러졌다.

쓰러지는 그의 몸에서 머리가 분리되며 떨어졌다.

머리가 있던 자리에서 솟구치는 검은 피 분수.

숲속에 퍼지는 비릿한 피비린내가 공격자들의 살기를 부추겼다.

“저희가 뒤를 맡을 테니 사령주께서 먼저 빠져나가십시오!”

사밀령 무사 하나가 절망감을 억누르며 소리쳤다.

“지랄 말고 어서 가!”

초광이 악을 쓰며 검을 뻗었다.

사력을 다한 사혼십이검의 검세가 어둠을 찢어발겼다.

어둠 속에서 뻗어나가는 검기가 어찌나 살벌한지 공격하던 자들도 쉽게 접근하지 못했다.

“그놈은 내가 맡을 테니 다른 놈들부터 제거해라.”

백남경이 냉랭히 소리치며 초광을 향해 몸을 날렸다.

사밀령의 일개 조직원 몇 명 해치우지 못해서 시간을 보내다니.

은근히 짜증이 났다.

“얼마든지 와라!”

초광도 마주 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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