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196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29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196화
“민아야!”
독고태가 다급히 독고태에게 다가갔다.
“단주!”
장천운이 앞을 막았다.
“비켜서라!”
“독에 중독됩니다.”
“공력으로 잠시 동안은 막을 수 있을 거다.”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독고태의 공력은 최소 백 년 이상. 절정 경지에서도 최상급이니까.
문제는 공력으로도 어쩔 수 없는 독이 있다는 것이다.
“안 됩니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비켜!”
그때 한 사람이 뇌옥 안으로 들어왔다. 사십 대 중후반의 나이로 보였는데, 긴 얼굴에 눈썹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희미했다.
율검당의 검시 전문가 중 하나이며 독에 관한 한 구천성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든다는 구언소였다.
“조금 늦었습니다, 당주.”
전무궁은 구언소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슬쩍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아주 독한 독이네. 살펴보던 간수가 손을 댔다가 중독되었다는군. 다행히 아직 숨은 붙어 있으니 해독할 수 있는지 알아보게나.”
“예, 당주.”
전무궁은 구언소가 독고민 앞에 쪼그리고 앉자,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서 당주, 음식을 가져온 자는 찾아보았는가?”
서호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사람을 보내서 찾아보았는데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습니다.”
전무궁은 그자를 찾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도 않았다. 지금쯤 행방을 감추었든지, 아니면 제거되었을 테니까.
그래도 뿌리를 캐 나가다 보면 어디엔가 남긴 흔적이 있지 않겠는가.
“독고 단주, 철저히 조사도 해야 하고 치료도 해야 하니 당분간 사람들의 접근을 금할 것이네. 이해해 주게나.”
독고태의 눈빛이 흔들렸다.
중독되어서 죽어가는 자식을 남에게 맡긴다는 게 어찌 쉬운 일이랴.
“꼭 그렇게 해야만 하겠소?”
“살리고 싶다면 모든 걸 맡기시게.”
독고태로선 아들의 중독을 해독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마 그가 아는 누군가라면 아들의 독을 해독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당장 아들을 그에게 데려갈 수는 없었다. 그가 해독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으으음, 알았소. 그럼 부탁하리다.”
***
벽호당으로부터 독고민의 중독을 보고 받은 공손백은 곧바로 나극을 찾아갔다.
나극도 보고를 받은 듯 얼굴이 바위처럼 굳어 있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핏줄에 대한 정이 남다르게 느껴졌다. 그런데 하나 있는 외손자가 말썽만 피우고 다니니 내심 마음에 안 들던 터였다.
벽호당 무사의 살인사건만 해도 그렇다.
어리석게도 상사병에 걸려서 술을 퍼마시고 살인을 하다니.
어쩌면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구명에 나서지 않았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외손자조차 다시는 볼 수 없게 될지 모른다.
그 사실이 어느 때보다 그를 분노하게 했다.
공손백은 그런 나극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천하의 마제도 이제 늙은 호랑이가 되었군.’
하지만 늙었어도 호랑이는 호랑이다. 그것도 천하를 뒤흔들 수 있는 힘을 지닌 노호.
“독고 단주가 우리를 원망하겠군요.”
자신과 대장로는 독고민의 구명을 위해서 한 일이 거의 없다. 반면 소성주는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흔쾌히 독고민을 풀어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독고민이 중독되어서 목숨이 위태로우니, 일찍 손을 쓰지 않은 자신과 대장로에게 불만이 있을 것은 자명한 일 아니겠는가 말이다.
나극이 분노를 씹으며 물었다.
“도대체 어떤 자들이 민아를 살해하려 했단 말인가? 짐작 가는 바는 없는가?”
“지금 조사 중입니다만, 독이 든 음식을 먹고 중독된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범인이 누구든, 민아를 죽여서 무슨 이득이 있다고 그런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
그 말을 들은 공손백의 눈이 가늘어졌다. 가는 주름이 칼자국처럼 나 있는 눈꺼풀 속에서 섬광이 번뜩였다.
‘혹시 그들이……?’
그는 짐작 가는 바가 없지 않았지만 나극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일단 독고 단주를 만나서 위로부터 해야겠습니다.”
“그래야겠지. 안 그래도 불만이 많은데 말이야.”
***
독고민은 겨우 목숨을 건지긴 했지만 의식불명 상태였다.
구언소는 독고민을 들것에 실어서 조심스럽게 의약당으로 옮겼다.
누구도 독고민의 생사에 대해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었다. 구언소조차도 살아날 확률을 삼 할 밑으로 볼 정도였으니까.
그 사실이 알려지자, 구천성의 분위기가 깊이 모를 늪에 잠긴 것처럼 가라앉았다.
독고민을 싫어했던 사마경조차도 기분이 좋지 않은 듯 표정에 그늘이 져 있었다.
“천운, 누가 저지른 짓이라고 생각해?”
“누가 저질렀는지보다 왜 그랬는지, 그 점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천운 말도 일리가 있어. 범인은 쓸모도 없는 그를 왜 죽이려 했을까?”
“그는 쓸모가 없지만 독고 단주까지 그런 것은 아닙니다. 범인이 노린 사람은 독고민이 아니라 독고 단주일 가능성이 큽니다.”
“독고 단주를 흔들기 위해서 독고민을 죽이려 했다?”
“어쩌면 구천성을 흔들기 위해서일 수도 있죠.”
독고태가 어느 쪽으로 붙느냐에 따라 대령주와 소성주파의 구도가 달라질 수 있다.
무림맹과의 전쟁을 코앞에 둔 지금, 구천성에 혼란을 야기하기 위해서는 독고태를 이용하는 것이 상수다.
“그들이 저지른 짓일까?”
사마경이 나직하게 말하며 눈 속 깊은 곳에서 한광을 번뜩였다.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무주공산이 된 구천성을 흔들어 놓고 술 한잔 하며 구경할 생각일지도 모르죠.”
“어떻게 하면 좋겠어?”
“지금 경천단에는 대령주와 대장로가 있습니다. 그들이 떠난 후에 제가 독고 단주를 만나 보겠습니다.”
***
축시(丑時:오전1시~3시) 초(初).
장천운이 찾아갔을 때 독고태는 술을 마시고 있었다. 제법 많이 마신 듯 얼굴이 불콰했다.
그는 장천운이 늦은 시각에 찾아왔는데도 만남을 거부하지 않았다.
“앉게.”
독고태가 손으로 앞자리를 가리키자, 장천운은 별 말 없이 자리에 앉았다.
술잔 하나를 장천운 앞으로 민 독고태가 술병을 들었다.
“해독이 되어서 살아난다 해도 정상적인 몸을 되찾긴 힘들 거라고 하더군. 그것도 해독이 되었을 때의 일이네만.”
“구 대주님과 의약당이 전력을 다하고 있으니 해독될 겁니다.”
독고태는 씁쓸한 표정으로 술병을 잡았다.
“대령주와 대장로가 왔다 간 건 자네도 알 거네. 위로하기 위해 왔다더군. 민아가 죽으면 위로가 무슨 소용이라고…….”
쪼르르.
술잔이 가득 채워졌다.
“들게나.”
장천운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술잔을 들어서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러고는 독고태의 빈 술잔에 술을 따라 주었다.
독고태도 곧바로 술잔을 들더니 목구멍 안으로 쏟아 부었다.
“오늘에서야 알았네.”
술잔을 내려놓은 그의 입에서 음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장천운은 묵묵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세상에 권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더군.”
독고태의 입꼬리가 위쪽으로 말려 올라갔다.
훗, 하면서 실소를 지은 그가 말을 이었다.
“정말 우스운 일이야. 나이 오십이 넘어서야 그걸 깨닫다니. 옆에 있을 때는 짜증만 났는데…… 막상 죽을지 모른다 생각하니 모든 걸 잃는 기분이네.”
장천운은 문득 사마경이 떠올랐다.
그녀도 몇 달 전 비슷한 말을 했었다.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사실을 알게 된 후에.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알고 나서야 아버지란 존재가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했는지 깨달았다고 했다.
독고태는 아들이 쓰러진 후에야 못나게만 보이던 아들의 존재 가치를 깨달았나보다.
‘나는 열 살 때 그걸 알고 하늘이 사라진 기분이 들었는데…….’
그의 눈에 처음으로 독고태가 인간답게 보였다.
그때 독고태가 빈 술잔을 만지작거리더니 중얼거리듯 말했다.
“혹시 본 성 깊숙한 곳에 아무도 모르는 힘이 잠자고 있다는 걸 아나?”
목소리가 워낙 작아서 바로 앞의 장천운조차 겨우 들을 수 있었다.
장천운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술병을 든 그는 독고태가 들고 있는 술잔에 술을 따랐다.
태산이 무너져도 눈썹 한 올 끄떡하지 않을 것 같던 그조차 독고태의 말에는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술잔이 거의 다 채워졌을 즈음, 그는 진기로 주위를 차단하고 입을 열었다.
“하늘 밖에 또 다른 하늘이 있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찰나의 순간 많은 고민을 했다.
독고태가 말한 ‘잠자고 있는 힘’은 그들을 지칭하는 듯했다.
천외의 힘!
그들 외에는 독고태가 그리 표현할 자들이 없다.
왜 지금 그들을 들먹인 걸까?
독고태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혹시 자신을 떠보려고 한 말이 아닐까?
자칫하면 미지의 적에게 자신이, 소성주가 그들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걸 알리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술잔이 채워질 즈음에는 결심을 굳혔다.
이미 공손백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독고태에게 말하지 못할 것도 없다.
더구나 공손백과 달리 독고태는 그들을 알고 있지 않은가.
아니, 어쩌면 공손백도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척 했을지도…….
독고태 역시 장천운의 말에 놀란 듯 어깨가 움찔거렸다.
“알고 있었군.”
“얼마 전에야 언뜻 들은 이야기여서 아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내가 왜 그 말을 했는지 아나?”
“그들을 아십니까?”
대답하려던 독고태가 멈칫하더니 피식 웃었다.
“내 나름대로 잘 안다고 생각했네. 그런데 막상 대답하려니 내가 알고 있는 것이 확실한 것인지조차 확신이 들지 않는군.”
술잔을 다시 목구멍 안으로 털어 넣은 그가 장천운을 바라보았다. 눈에서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그들은 민아를 지켜줄 수 있었을 거야. 아니, 반드시 지켜주었어야 했어. 그런데 지켜주지 못했네.”
격정을 참지 못한 그가 빈 술잔을 움켜쥐었다.
주먹이 잘게 떨리고, 자기로 된 술잔이 가루가 되어서 밑으로 흘러내렸다.
“내 능력으로는 아들을 살릴 수 없다는 걸 알았을 때, 그때 내 기분이 어땠는지 아나?”
“아마 독고 공자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을 겁니다.”
장천운이 씁쓸한 목소리로 대답하자, 독고태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맞아, 그랬지. 나이도 어린 사람이 잘 아는군.”
“제가 그랬습니다. 항상 제 옆에 있을 것만 같던 아버지가 어느 날 제 곁을 영원히 떠났다는 걸 알았을 때,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그저 아버지의 얼굴만 떠오르더군요.”
“얼마 전 민아를 많이 혼냈네. 멍청한 놈이라고 했지. 그렇게 바보처럼 살 거면 나가 죽으라는 말도 서슴없이 했네. 세상에 여자가 하나뿐이냐면서.”
“사실 혼날 만했지요.”
“그래, 혼날 만했지. 그래도 너무 심했어. 그 바람에 술을 진탕 퍼마시고 밖으로 나갔지. 그리고 그날 사람을 죽였네. 내가 조금만 참았으면…… 그랬으면 그런 일도 없었을 텐데…….”
목소리가 축축했다. 눈에도 물기가 가득 고여 있었다.
체면 때문에 참고 있을 뿐 소리 내어 울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독고태의 흐트러진 모습에 장천운도 마음이 가라앉았다.
인정사정없는 독한 손속 때문에 젊을 적 철심공자(鐵心公子)라고 불렸다는 사람이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자식을 걱정하는 여느 아버지와 다를 게 없었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장천운은 그동안 말하지 않았던 사실 하나를 알려 주었다.
“독고 공자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패긴 했습니다만.”
꼭 독고태를 위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어쩌면 자신이 던진 미끼에 제법 큰 대어가 걸려들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결국 민아에게 맞은 자들이 죽었지 않은가.”
“독고 공자에게 맞아서 죽은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지요.”
자조의 표정이던 독고태가 천천히 눈을 들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