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194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28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19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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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천성의 움직임은 죽림 속 작은 장원에 속속 전해졌다.
장산은 무 노인의 앞에 앉아서 마치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본 것처럼 돌아가는 상황을 자세히 보고했다.
“구천성이 안휘성 쪽의 연합세력을 상대하기 위해서 일차로 무사 오백을 파견했습니다.”
“지부들도 움직이겠군.”
“예, 노야.”
“그럼 무림맹 쪽을 움직여라. 무림맹이 움직이면 구천성은 물론 놈들도 동요할 수밖에 없을 거다.”
“대법의 완성을 위해서라도 시간을 더 끄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지금쯤은 놈들도 우리의 존재를 눈치 채고 있을 거다. 그렇다면 시간을 끌어봐야 기선만 빼앗길 뿐이야.”
장산은 더 이상 토를 달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노야.
“잊지 마라. 한 순간만 삐끗해도 승패가 갈린다는 걸.”
“명심하겠습니다.”
침중한 표정으로 대답한 장산이 고개를 들었다. 조금 전과 달리 깊이를 잴 수 없을 만큼 깊은 눈빛이었다.
잠시 후.
전서구 세 마리가 죽림 속에서 날아올랐다.
날개를 힘차게 퍼덕이며 비상한 전서구들은 각기 북쪽과 동쪽, 서쪽으로 날아갔다.
수백 마리 비둘기 중에서도 똑똑한 놈을 고르고 골라서 수 개월간 훈련시킨 전서구다.
내일쯤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고, 그 이후 강호를 뒤흔들 움직임이 시작될 것이었다.
창문 밖의 죽림 상공을 바라보던 장산은 전서구들이 목적지를 향해서 방향을 잡고 사라지자 몸을 돌렸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승패는 하늘에 맡기고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
장천운의 내상은 생각보다 깊었다.
닷새 동안 운공조식을 하며 내상을 다스렸는데도 완치가 되지 않았다.
장천운은 그 이유를 짐작하고 공손백에 대한 판단을 다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기(魔氣).
그랬다. 그의 내상이 더디게 회복되는 이유는 공손백의 기운이 지독한 마기를 품고 있기 때문이었다.
혈맥을 파고든 마기가 내상 치료를 방해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날도 장천운은 요상을 위해서 밤새 운공조식을 하고 해가 중천에 뜬 후에야 눈을 떴다.
전날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완치가 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듯했다.
‘끄응, 이삼 일은 더 고생해야 할 것 같군.’
엉덩이를 털고 일어난 그는 방을 나섰다.
그가 흑월대의 거처 앞마당으로 들어서자, 수련을 빙자한 개싸움에 열중이던 흑월대 대원들이 손을 멈추고 장천운을 바라보았다.
“어? 오늘은 많이 나아졌는데?”
“그래도 내장이 터지진 않은 모양이군.”
목진화와 수은귀는 그렇게 아쉬워했고,
“씨바, 오늘 한번 붙어보려고 했더니…….”
막소광은 짜증난 목소리로 귀신 씨나락 까먹듯 중얼거렸다.
장천운이 그들을 바라보며 씩 웃고는 두 손을 맞잡고 손가락을 꺾었다.
“어디 그 동안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한번 볼까요?”
그러나 장천운은 연락책임을 맡고 있는 청목이 허겁지겁 달려오는 바람에 몸을 풀 시간이 없었다.
“대주, 무림맹이 남하하고 있다 합니다. 소성주께서 즉시 구천무원으로 들어오시랍니다.”
‘드디어 시작인가?’
어차피 각오하고 있던 일이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빠른 움직임이 마음에 걸렸지만,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초조하게 기다리기만 하는 것보다는 지금 상황이 나을 수도 있었다.
문제는 무림맹이 누군가의 입김에 의해서 움직였을 경우였다.
구천성과 무림맹의 움직임을 환하게 들여다보며 천하정세를 인형극처럼 조종하는 자들이 있다면?
‘앞으로 더욱 험하고 어려운 길을 가야하겠지.’
장천운은 가라앉은 눈으로 흑월대원들을 둘러보고 무화원의 입구로 향했다.
가슴을 쓸어내린 사람들이 막소광을 노려보았다.
시체처럼 창백해졌던 막소광의 안색이 서서히 제 빛을 찾고 있었다.
알고 보면 그도 겁이 많은 사람이었다. 입이 따로 놀아서 문제지.
“지미, 결국 오늘도 승부를 내지 못하고 지나가는군.”
장천운이 구천무원의 전청으로 들어갔을 때, 안에는 사마경과 우문각, 소연추, 영호관과 구천호령만 있었다.
구양명은 보이지 않았다.
사마경이 턱을 살짝 쳐들고, 도도한 자세로 태사의에 앉아 장천운을 맞이했다.
“어서 와, 천운.”
“무림맹이 움직였다고 들었습니다.”
“맞아, 그래서 간부들을 소집했어. 백부와 대장로도.”
장천운은 고개를 돌려서 우문각을 바라보았다.
“어떤 상황입니까?”
“수천 명이나 되는 무사들이 허창으로 집결하고 있다.”
“그 정도 인원이 모여들고 있다면 미리 징조가 있었을 텐데, 어째서 아무도 모르고 있었던 거죠?”
어떻게 생각하면 총사인 우문각을 질타하는 질문이기도 했다.
—정보조직은 뭐하고 있었던 겁니까?
그런 뜻이었으니까.
“눈치 챘을 때는 이미 이천 명이나 모인 후였다는군. 미처 생각지 못한 일이었어.”
무림맹은 여타 문파와 다르다. 그 중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여러 문파로 이루어진 조직이라는 것이었다.
무사 수천이 하루 만에 갑자기 모여든다는 것부터가 이상했다.
“미리 준비하고 있다가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일사불란하게 모였나 보군요.”
“그럴지도 모르지. 그런데 그들이 출동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그 어떤 상황증거도 없는 상태다. 오히려 무림맹을 감시했던 정보원들이 더 어리둥절했다더군.”
“그렇다면…… 누군가가 그들을 이용하기라도……?”
“파천회가 저번처럼 무림맹의 뒤에서 부채질 했을지도 모르지.”
나직이 말을 내뱉은 우문각이 눈을 반쯤 좁히고 허공을 응시했다.
‘아니면 내가 모르는 제 삼자가 있는지도…….’
그때 사마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운도 왔으니 이제 구천대전으로 가. 곧 간부들이 모일 거야.”
고위간부들이 하나 둘 구천대전으로 모여들었다.
개중에는 공손백과 나극, 독고태, 그리고 우문각과 백리호, 육선기 등도 있었다.
당금 구천성을 움직이는 최고위 간부들이 총집결한 것이었다.
사마경은 좌우에 장천운과 우문각을 거느리고 그들이 집결할 때까지 기다렸다.
간부들이 대부분 모이자, 우문각이 정유를 돌아보았다.
“보고를 시작해라, 정유.”
정유가 사마경을 향해서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부터 올린 후 보고를 시작했다.
“무림맹의 주력이 허창으로 집결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무림맹에 속한 문파의 정예제자 약 삼천에 모였다 합니다. 그들은…….”
정유가 보고를 시작하자 간부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무림맹의 정예 삼천이 한 곳에 모인 적은 수십 년 동안 거의 없었다. 그들이 정말 구천성을 공격하기 위해 모인 것이라면 구천성으로선 수십 년래에 최대 위기라고 할 수 있었다.
“……최소한 이창에서 그들의 남하를 차단하지 않으면 곧장 신양까지 밀고 내려올 것으로 예측 됩니다.”
일각에 걸친 정유의 보고가 끝나자 간부들의 시선이 일제히 사마경에게로 향했다.
동시에 사마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려했던 대로 무림맹이 본 성을 목표로 움직였어요. 이제부터 우리 구천성은 무림맹과의 싸움에 총력을 기울여야만 합니다.”
그녀의 맑고 차가운 목소리가 대전 안을 울렸다.
“대령주와 대장로께선 전에 말씀드린 대로 안휘와 장강팔련을 책임져 주세요. 나는 성을 경비할 전력만 남겨놓고 이창으로 가겠어요.”
공손백과 나극은 이미 약속했던 터라 거부할 수도 없었다. 거부는커녕 무림맹 본진 대신 안휘와 장강팔련을 맡은 것에 대해 고마워해야 할 판이었다.
“알겠네.”
“그렇게 하지.”
사마경은 그 이상의 사족을 붙이지 않았다.
공손백과 나극에게서 시선을 뗀 그녀가 오연한 자세로 말했다.
“무림맹은 본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수십 년 동안 준비해왔어요. 그들과의 싸움은 본 성의 운명이 걸린 일전이 될 거예요.”
도도한 그녀의 모습이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때만큼은 구천성의 간부들조차 그녀의 아름다움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명령에 따르지 않고 성의 안위에 해를 끼치는 사람은 일벌백계로 다스릴 겁니다. 그 점, 모두 명심해주시기 바라겠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옥쟁반 위에서 굴러가는 옥구슬 소리보다 차갑고 맑게 흘러나왔다.
그때 독고태가 침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소성주, 내 아들을 풀어줘서, 이번 전쟁에 나가 공을 세워 벌을 대신하도록 해주시오.”
사마경은 다른 사람이 나설 틈도 주지 않고 독고태의 청을 흔쾌히 들어주었다.
“알았어요. 단주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독고민을 임시로 풀어주겠어요.”
받은 게 있으면 그만한 대가를 줘야 불만이 없는 법이다.
***
구천무원에서 사마경의 목소리가 울려 퍼질 즈음, 일원장의 내실에서도 몇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태사령, 무림맹이 움직였소이다.”
“안 그래도 그 일 때문에 태군께서 명을 내리셨네.”
“명령이라 하시면……?”
“구천성의 무사 칠 할 이상이 출동할 거네. 그럴 경우 대부분의 전력이 성을 떠나게 되지. 태군께서는 함부로 움직이지 말고 상황을 지켜보라 하셨네.”
이적상이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주력이 밖으로 나갔을 때 내부를 정리하는 게 낫지 않겠소?”
“그래봐야 우리만 드러날 뿐, 남는 것도 없네.”
“드러난다 해서 두려울 게 뭐 있겠소?”
이적상과 이적문이 강경책을 주장하자 손우곤이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구천의 대지를 노리는 하늘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네. 먼저 모습을 드러내면 다른 자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할 수 있어.”
그제야 두 노인의 표정이 가라앉았다.
너무 오랜 세월 지켜보기만 하다 보니 하늘 밖에 또 다른 자들이 있다는 걸 깜박하고 있었다.
그들 역시 천하를 조롱할 능력을 지녔거늘.
“죄송하오, 태사령. 지금과 같은 기회가 십여 년 만에 있다 보니 감정이 너무 앞섰던 것 같소이다.”
손우곤의 이마에 깊은 주름이 그어졌다. 골이 깊어서 검은 선처럼 보이던 주름이 살아 있는 흑질(黑蛭)처럼 꿈틀거렸다.
분노라기보다는 회한에 가까운 표정.
“그때 내가 성급하게 결정을 내려서 십수 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했네. 자네들은 그러지 않았으면 싶네.”
이적상과 이적문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그들은 손우곤이 한 말뜻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공손백을 밀어내기 위해서 사마중천을 추천한 사람이 그였으니까.
그때만 해도 사마중천이 어떤 성격인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었다. 손우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그랬다.
사마중천의 내면에 강렬하고도 뜨거운 폭풍이 숨어 있다는 걸 알았다면 절대 그를 추천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결국 그들이 계획한 대로 사마중천은 공손백을 밀어내고 성주자리를 물려받았다.
그리고 일 년, 그는 천하를 돌며 패왕의 면모를 드러냈다.
천궁마신!
천하제일의 패왕.
손우곤이 아차 챘을 때, 그는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위치에 올라 있었다.
심지어 천외삼성-그들은 하늘 밖에 있는 세 사람을 그렇게 불렀다-조차도 그 이전처럼 사마중천을 좌우할 수 없었다.
결국 태군은 천하를 놓고 벌인 친구들과의 한판 내기에서 승리 직전에 돌아서야만 했다.
아마 손우곤이 태군의 의제만 아니었다면, 그때 책임을 물어서 목을 쳤을 것이다.
“나 역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아.”
“말씀대로 하리다.”
“그래도 구경만 하고 있을 순 없는 일. 혼란스런 상황을 만들도록 하게. 그래야 우리가 움직이더라도 그림자가 감춰질 테니까.”
***
대규모 출정이 결정되자 숨막히는 긴장감이 구천성을 짓눌렀다. 너무나 고요해서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였다.
전체 전략을 짜는 비령각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소성주께서 얼마 전과 달라진 것처럼 느껴집니다.”
정유가 곤혹한 표정으로 말하는데도 우문각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대신 가늘어진 그의 눈에서 칼날처럼 날카로운 눈빛이 번뜩였다.
“그래, 많이 달라졌지. 더 강하고 냉정해졌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변화시켰을까?
‘안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