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19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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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22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193화
공손백은 미련을 버렸다.
그러나 장천운은 포기할 마음이 없었다.
그가 슬쩍 좌수 중지를 튕기자, 악착같이 버티고 타오르던 촛불이 꺼졌다. 동시에 그의 모습도 사라졌다.
“놈을 막아!”
공손백이 소리쳤다.
장천운의 신묘한 신법을 접해본 그다. 초기에 막지 못하면 두 번의 기회가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았다.
사계도 화들짝 놀라서 뿌연 어둠만 존재하는 허공을 향해 공세를 퍼부었다.
그들과 같은 절정고수에게 어둠은 큰 방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빛이 처음부터 없었을 때와 있다가 사라졌을 때는 감각의 차이가 큰 법이다.
장천운은 그 빈틈을 파고들며 현월을 뻗었다.
“헉!”
기겁한 숨소리가 염하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일수 대결에서 형편없이 당해본 경험이 있던 그는 미친 듯이 두 손을 휘둘러서 팔방을 온통 손 그림자로 뒤덮었다.
떠더더덩!
현월과 염하의 극양장력이 충돌하며 둔중한 굉음이 울렸다.
낯빛이 해쓱해진 염하가 산발된 머리를 흔들며 물러섰다.
추산과 동백이 그 즉시 장천운이 있을 만한 곳을 향해 공격을 감행했다.
장천운은 그들의 공세 사이로 몸을 날렸다. 두 사람은 확신을 갖고 공격한 것이 아니어서 공격 사이에 빈틈이 드러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공손백의 감각을 벗어나지 못했다.
허공을 노려보던 공손백이 시퍼렇게 변한 쌍수를 뻗었다.
“너는 갈 수 없다!”
고오오오!
청광을 발하는 거대한 손 그림자가 어둠을 움켜쥐며 해일처럼 밀려갔다.
시퍼런 손 그림자가 스치는 곳마다 기둥과 들보의 둘레가 먼지로 변하면서 깎여나갔다.
사계도 반사적으로 공격 방향을 틀어서 장천운의 진로를 차단했다.
‘제기랄!’
장천운은 공손백의 가공할 장력을 겨우 피해서 한쪽에 내려섰다.
그를 향해서 공손백과 사계가 포위망을 형성한 채 다가갔다.
그때 밖에서 소란스런 목소리가 들렸다.
“멈춰라! 안으로 들어오면 용서치 않을 것이다!”
“대주! 무슨 일이오?”
“씨바, 한 번 해보자는 거요, 지금?”
“비켜!”
흑월대원들의 목소리.
장천운의 입술 끝에 하얀 미소가 걸렸다. 곡소광의 욕설이 반갑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어떻게 알고 왔지?’
어쨌든 적시에 나타났다. 이제 밖에 있는 자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공손백도 상황을 짐작하고 표정이 이지러졌다.
“교활한 놈. 저들이 올 때까지 시간을 끌었구나.”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굳이 변명할 이유는 없었다.
여유를 찾은 장천운이 담담한 목소리로 전음을 보냈다.
<대령주께서 마음먹고 손을 쓰신다면 저를 죽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적지 않은 대가를 내놓으셔야 할 겁니다. 그리고 분노한 소성주와 총사를 상대해야 할 겁니다. 설령 대령주가 이긴다 해도 피해가 큰 상태에서 암중의 적들을 상대할 수 있겠습니까? 열심히 죽 쑤어서 개에게 퍼줄 겁니까?>
장천운이 말한 천외가 어떤 존재인지 잘 아는 공손백으로선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장천운은 공손백의 얼굴에서 나타나는 미세한 변화를 놓치지 않고 몇 마디 덧붙였다.
<여기서 멈춘다면 오늘의 일은 잊지요. 앞으로 같은 적을 상대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흥! 그들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나를 어쩔 수는 없느니라.>
공손백이 냉랭히 코웃음 쳤다. 그러나 조금 전과 같은 강한 기세는 느껴지지 않았다.
장천운은 내친 김에 한 번 더 흔들었다.
<어쩌면 성주의 시신이 사라진 일도 그자들 짓일지 모릅니다. 구천성주의 보좌를 놓고 다투는 것은 쥐구멍에 숨어 있는 자들을 때려잡은 후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 말에는 공손백도 바로 대꾸하지 못했다.
철저한 계산 하에서 움직이는 그다. 사마경을 제거한다 해도 남 좋은 일만 시킨 꼴이 된다는 걸 왜 모르겠는가.
더구나 장천운을 제거하려면 만만치 않은 대가를 치러야 할 터. 자칫하면 장천운 말대로 ‘죽 쒀서 개주는 꼴’이 될 수 있었다.
반드시 죽일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께름칙한 놈을 제거하지 못한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지만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해야만 했다.
한번 마음이 흔들린 그는 결국 타협을 택하고 말았다.
<네 생각이 정 그렇다면 조건을 말해봐라.>
장천운은 전음으로 자신의 조건을 말했다.
두어 가지만 제외하면 공손백으로선 거부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그나마 그 두 가지도 아직은 확실치 않았지만.
<좋아, 같은 적을 두었을 때는 적도 친구가 될 수 있는 법이지.>
‘휴우, 그놈의 고집하고는…….’
그때 공손백이 쓰러져 있는 용평을 향해 중지를 튕겼다.
그의 손끝에서 뻗어나간 지풍이 용평의 사혈에 깊숙이 박혔다.
몸을 부르르 떤 용평은 한 서린 눈빛으로 공손백을 바라보며 숨을 거두었다.
장천운은 그 일을 막지도, 묻지도 않았다.
어차피 용평을 살려둘 수는 없었다.
취조하면 천외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겠지만,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쉽게 입을 열지는 않을 터, 용평의 입을 열기도 전에 저들이 먼저 눈치 챌지 몰랐다.
공손백도 그 사실을 알기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살수를 썼을 것이었다.
‘정말 소름끼치도록 냉정하군.’
그때 공손백이 전음으로 말했다.
<용평은 네가 죽인 것으로 하겠다.>
장천운은 쓴웃음을 지으며 순순히 받아들였다. 어차피 자신에게 맡겼어도 죽였을 테니까.
<그렇게 하지요.>
80장: 일원장(一元莊)
장천운이 구천무원으로 들어가자 사마경과 소연추가 기다리고 있었다.
사마경은 돌아온 장천운의 위아래를 쓱 훑어보고 눈을 흘겼다.
창백한 안색, 두어 군데 찢겨진 옷자락.
내심 걱정스러우면서도, 오랜만에 흐트러진 장천운의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제대로 임자 만났군.”
“대령주에다 사계까지 상대했습니다.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온 게 다행이지요.”
사마경과 소연추의 눈이 커졌다.
“백부와 사계를 모두 상대했다고? 와, 대단한데?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한가봐.”
“흑월대가 조금만 늦게 왔다면 돌아오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왜 불만인 표정이지? 보내지 말 걸 그랬나? 유모가 아무래도 위험할 것 같다고 해서 보냈는데.”
그랬다. 흑월대는 소성주가 보낸 것이었다. 의견을 낸 사람은 소연추였고.
“제가 어찌 소성주께 감히 불만을 품을 수 있겠습니까?”
“아니라면 다행이고.”
그쯤에서 농담을 접은 사마경이 차로 입술을 적시고 화제를 원점으로 돌렸다.
“어떻게 됐어?”
“제가 갔을 때…….”
장천운은 자신이 도착했을 때부터 나올 때까지 벌어진 일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주었다.
짧지 않은 이야기인데도 사마경은 말 한마디 끼어들지 않고 듣기만 했다.
긴박한 이야기가 나올 때는 표정이 굳어지기도 했고,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을 때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서 겨우 협상을 하고 빠져나왔습니다.”
장천운이 이야기를 맺자 사마경은 그제야 다시 찻잔을 들었다.
기다란 눈썹 안쪽에서 한기가 느껴질 정도의 싸늘한 눈빛이 흘러나왔다.
붉은 입술로 찻잔을 물고 차를 한 모금 마신 그녀가 눈을 들었다.
“그들의 힘이 깊고 넓게 퍼져 있는 것은 분명하단 말이군.”
“예, 소성주.”
“백부는 그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을까?”
그에 대해선 장천운도 확실하게 답할 수 없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공손백도 천외에 대해서 적대감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전체인지, 일부인지 알 순 없지만.
“관련이 있든 없든, 그들을 상대하려면 대령주의 힘이 필요합니다.”
“하긴 백부도 같은 생각을 했기 때문에 순순히 천운을 보내준 거겠지.”
순순히는 아니었다. 아마 흑월대가 오지 않았다면 확률은 반반이었을 것이다.
“정확한 상황을 알아내려면 시간이야 조금 걸리겠지만, 용 장로가 죽은 이상 그들도 곧 대령주와 저희 쪽이 자신들을 눈치 챘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천운은 어떻게 생각해? 아버지의 죽음에도 그들이 관련되었을 거라고 봐?”
장천운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사마경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기다린 속눈썹이 경련을 일으키듯 가늘게 떨리고 있다.
말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가슴 깊숙한 곳에 묻어두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그들이 연관되었다면 상황이 더 복잡해질 테니까.
“관련되었다면 이번 기회에 본심을 드러낼 겁니다.”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어. 누가 진범인지 확실하게 가려질 테니까.”
사마경의 붉은 입술 사이에서 서릿발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장천운이 그녀를 착잡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분명한 것은 독에 당했다는 거지요.”
***
힘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몰려들고, 사람이 있는 곳에는 술과 음식, 여자가 빠지지 않는 법이다.
구천성 외곽에도 구천성에 기생하듯 살아가는 사람들만 이만 명이나 되었다.
특히 북문에서 십 리 저도 떨어진 영벽진과 동문 쪽의 기호진은 객잔과 기루는 물론이고 온갖 물건을 파는 장사치들로 북적거렸다.
사람들이 몰려들다 보니 장사도 제법 잘 되어서 그럴 듯한 장원들도 들어서 있었다.
영벽진의 일원장(一圓莊)도 그런 곳 중 하나였다. 집주인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학식이 상당한 사람이라고 소문나 있었다.
삼월의 햇살이 따사롭게 비치던 어느 날. 바로 그 일원장의 내실에서 청의중년인과 노인 둘이 마주앉았다.
검은 수염이 가슴까지 늘어진 중년인은 오십 대쯤으로 보였는데, 나이답지 않게 흑백이 또렷한 눈을 지니고 있었다.
반면 두 노인 중 하나는 갈의를 입었고 한 노인은 백의를 입었는데, 형제라도 되는 듯 생김새가 비슷했다.
“용평이 죽었다고?”
“장천운이 죽였다 하오.”
“심문을 한 흔적은?”
“혈도를 제압당한 것 외에, 심문을 한 다른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소.”
의외로 질문을 하는 사람은 중년인이었고, 두 노인은 중년인의 말에 공손히 대답했다.
“용평이 어느 정도까지 말했을 거라 생각하는가?”
“설령 취조를 했다 해도 그가 아는 것은 많지 않소. 우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소.”
“너무 쉽게 생각하는군. 그렇게 말하면 태군께서 순순히 납득하실 거라고 보는가?”
“저들은 용평을 취조조차 하지 않았으니 심려 마시오, 태사령(太司令).”
중년인, 손우곤은 눈을 반쯤 감고 잠시 생각하더니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아무래도 이상해. 뭔가가 뒤틀리고 있어. 사마중천의 시신이 사라진 것도 그렇고.”
두 노인 중 갈의를 입은 노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일원장의 주인인 이적상이란 자로, 인근 사람들은 그를 학자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한때 비혈검(飛血劍)이라고 불렸던 강호의 절정고수였다.
“그 일은 확실히 이상하오. 누가 사마중천의 시신을 가져갔는지…….”
“죽은 건 확실한가?”
“확실하외다.”
“확실하다니 더 이상하군. 죽은 게 분명한 시신을 왜 가져간단 말인가?”
그 말에 백의노인이 반문하듯 답했다.
“사마경을 협박하려는 의도일 수도 있지 않겠소?”
그는 이적상의 동생인 이적문으로 강호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자였다.
하지만 그의 무공은 이적상이 십초도 상대하기 힘들 만큼 강했고, 지닌 학식 역시 어지간한 학자들 입을 다물게 할 정도로 깊었다. 인근 사람들이 일원장 주인의 학식에 대해서 높이 평가하는 것은 바로 이적문 때문이었다.
“흐으음…….”
침음을 흘리며 미간을 좁혔던 손우곤이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닌 것 같네.”
“하면……?”
“지난 일 년 간 몇 가지 예상치 못했던 일이 일어났지. 우린 그 중 가장 주의를 기울였어야 할 곳에 대해서 너무 가볍게 지나쳤어.”
“어떤 곳을 지나쳤다는 거요?”
“파․천․회.”
“아!”
“구천성에 항거하기 위해서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 단체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그 동안의 행동을 보면 수상한 면이 많아. 마치 뭔가가 감추어진 깊이 모를 우물처럼 말이야”
“철저히 조사해보겠소이다.”
“그리고 장천운도 없애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위험한 놈을 그 동안 너무 놔두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