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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191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88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191화

조금은 빼빼하게 느껴지는 몸매, 가슴까지 길게 늘어진 턱수염. 그는 오종 등과 함께 공손백의 그림자라고 불리는 다섯 장로 중 하나, 월광일사(月光一射) 용평이었다.

달빛 아래에서 손이 한 번 움직이면 반드시 한 사람의 목숨이 사라진다는 암기의 달인.

검왕문과의 싸움 때문에 회북에 가있던 그가 돌아온 것은 열흘 전. 평상시에도 사람들 앞에 잘 나서지 않다보니 일반 무사 중에는 월광일사가 장로라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있을 지경이었다.

“선택은 자네가 알아서 하게. 그 정도는 눈감아 주지.”

문인동은 그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는 용평과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어본 게 두어 번에 불과했다. 장로원에 들어와서 함께 지낸지 무려 삼 년이나 되었거늘.

그런 사람이 자신을 위해주는 척하며 말하자 짜증만 났다.

묵묵히 탁자 위의 독단을 바라보던 그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용평 선배, 궁금한 것이 하나 있소만.”

“말해보게. 내가 아는 거라면 대답해주지.”

“선배는 대령주와 어떤 사이요?”

“무슨 뜻인가?”

“궁금해서 말이오. 용평 선배는 사람들과 거의 대화를 하지 않소. 심지어 외부활동을 많이 해서 얼굴을 보기도 힘든 사람이지요. 그런데 유독 대령주의 말이라면 명령을 받들 듯 따르더군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소이다.”

용평은 무감정한 눈으로 문인동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 어디에서도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오죽하면 죽음을 각오한 문인동마저 가슴이 서늘해졌다.

자신이 용평을 잘못 보았나?

아니, 강호가 용평을 잘못 평가한 건가?

그때 용평의 입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정말 알고 싶나?”

“알려주신다면. 어차피 죽을 몸, 궁금증이라도 풀고 죽읍시다.”

“나는…… 대령주의 아랫사람이 아니네.”

“……예?”

장로원의 사람 중 용평이 공손백의 수족이라는 걸 모르는 이는 없다.

본인도 부정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그런데 아니라니?

그럼 친구?

하긴, 나이 차이도 그다지 크지 않다. 공손백이 서너 살 더 먹은 정도.

하지만 문인동을 정말로 놀라게 한 것은 다음에 한 말이었다.

“나는 다른 분을 모시고 있네.”

“……?”

눈이 휘둥그레진 문인동은 머리를 바쁘게 굴렸다.

그 모습을 보고 용평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문인동이 처음으로 그에게서 본 인간다운 표정이었다.

“머리 굴릴 것 없네. 자네는 모르는 분이니까.”

“제가 모르는 분이라니. 강호가 아니라 딴 세상에 사는 분인가 보군요.”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

장난처럼 던진 말에 뜻밖의 대답이 나오자 문인동의 눈매가 잘게 떨렸다.

“설마…… 황궁?”

용평은 씁쓸한 표정만 지은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천외에 숨어 있는 자들일지도.”

어둠 어느 곳에선가 의문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안색이 급변한 용평이 몸을 반쯤 돌리며 좌수로 허공을 저었다.

그의 좌수 끝에서 뭔가가 번뜩이더니, 화살촉처럼 생긴 암기 하나가 소리도 없이 어둠을 갈랐다.

그가 자랑하는 월광전이 소매 속에서 발출된 것이다.

무음의 가공할 쾌속. 철판을 종잇장처럼 꿰뚫을 수 있는 위력의 월광전이 그의 손끝을 벗어났다 싶은 순간 벽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곧바로 자신의 암기가 허공만 갈랐다는 걸 안 용평은 공력을 다급히 끌어올리고 정체불명의 적이 펼칠 공격에 대비했다.

자신의 감각을 속이고 방에 들어온 자다. 월광전마저 빈 허공을 갈랐다. 그것만으로도 얕볼 수 없는 실력이다.

“무서운 암기술이군.”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거의 동시에 용평의 우수가 우측을 휘저었다.

이번에는 월광전 세 개가 그의 소매 속에서 빠져나오더니 완만하게 선회하며 그가 원하는 곳을 향해 날았다.

분명 목소리가 들린 곳을 확인했다. 셋 중 하나는 상대의 몸을 꿰뚫을 수 있으리라.

푹, 푹, 푹.

월광전이 단단한 벽을 두부처럼 파고들었다.

이번에도 허탕이었다.

“누구냐?”

소리치는 목소리 끝이 뾰족하게 갈라졌다. 분노에 앞서 경악이 그를 짓눌렀다.

“그가 왔군.”

문인동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용평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문인동을 향해 돌아갔다.

“그?”

“장천운.”

용평이 눈을 치켜뜨고 홱 고개를 돌렸다.

찰나, 소름끼치는 한 줄기 기운이 그의 머리를 꿰뚫는 듯했다.

‘헉!’

헛바람을 집어삼킨 용평은 뒤로 두 걸음 물러서며 연달아 좌우 손을 흔들었다.

그의 쌍수에서 와선풍이 일더니 직경 다섯 자 크기에 세 겹으로 된 강기막이 형성되었다. 어지간한 절정고수들은 흉내도 내기 힘든 강기막이었다.

바로 그때, 그의 앞 어둠 속에서 장천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빠른 신법의 변화를 이용한 단순한 눈속임과는 차원이 달랐다.

모공으로 기운을 뿜어내서 주위의 형상과 동화시키는 극상의 환술.

뿌연 어둠 속에서 사람이 형성되는 거짓말 같은 광경에 용평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치켜떴다.

장천운은 자신이 모습이 반쯤 드러났을 때 손을 뻗었다.

쫙 펼친 그의 장심에서 뇌전이 나선을 그리며 휘돌았다.

용평이 천외와 관련되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 순간 전력을 다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었다. 만변은환을 펼칠 때면 오성 공력만 공격으로 돌릴 수 있으니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반격의 빌미를 줄 수도 있다.

“네놈이 감히……!”

눈을 치켜뜬 용평은 공력을 구성까지 끌어올렸다.

그가 장천운에 대해서 조금만 더 알았다면 일성의 공력을 남겨놓으려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외부로 나돌던 그는 장천운에 대한 소문을 평가절하 했다. 새파랗게 젊은 놈을 상대로 전력을 다한다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쩌저적!

섬광이 번뜩였다 싶은 순간, 뇌정무극수가 강기막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헉!’

대경한 용평은 눈을 홉떴다. 뒤늦게 공력을 급히 더 끌어올린 그는 강기막을 보강하며 맞섰다. 자존심 때문에라도 피할 수는 없었다.

상대를 경시한 결과는 참담했다.

퍼벅!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뇌정무극수가 용평의 가슴을 두들겼다.

마지막까지 자존심을 포기하지 못한 용평으로선 피할 틈조차 없었다.

‘컥!’

입이 저절로 쩍 벌어졌다.

말은커녕 숨도 쉴 수 없었다. 온몸이 마치 물먹은 솜처럼 늘어졌다.

뒤로 물러서려했으나 마음만 앞설 뿐, 순간적인 충격으로 인해서 두 다리가 그의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그가 비틀거리며 겨우 한 걸음 물러섰을 때 장천운의 모습이 완전하게 드러났다.

장천운은 지풍을 튕겨서 용평의 마혈과 아혈을 마저 제압했다.

‘운이 좋았군.’

방안이 어둡고 기습을 하지 않았다면 최소한 서너 수는 더 겨루었어야 했을 것이었다.

그랬다면 누군가가 방 안의 상황을 눈치 챘겠지.

“일이 조금 복잡하게 되었군요.”

장천운이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

공손백이 문인동을 쉽게 내놓지는 않을 거라고는 예상했던 일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폐기시키려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더구나 장로 중에서도 모습을 좀체 드러내지 않는 용평으로 하여금 감시를 하게 할 줄이야.

독단을 복용하든 자결하든 시간이 지나면 손 쓸 수도 없는 상황. 할 수 없이 자신이 나서야 했다.

문제는 용평을 영원히 사라지게 만들 수 없는 한 오늘 밤의 흔적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문인동이야 이판사판이었지만.

“왜 나를 다시 찾아온 거냐?”

용평의 일은 나중에 처리해도 될 터. 장천운은 뒤에 할 고민보다 당장의 현실에 집중했다.

진기로 목소리가 새어나가는 걸 막은 그가 운을 뗐다.

“제가 가져간 차, 목운사에서 가져온 것이더군요.”

역시 알고 있었나?

문인동은 더 이상 부정하지 않았다. 불필요한 부정은 시간만 소모할 뿐이다.

“그래서. 나에게 뭘 원하는 거냐?”

원하는 것이 있을 테니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지 않은 것이겠지.

“사실을 알고 싶을 뿐입니다.”

“사실이라…….”

“태상호법의 죽음에 얽힌 진실, 그리고 이번에 파천회 사람들을 만나 나눈 이야기도 듣고 싶고.”

“내가 왜 그걸 말해줘야 하지?”

“말씀해주신다면 장로의 명예를 지켜드리죠. 원하신다면 목숨까지도.”

문인동의 입술 끝이 비틀어졌다.

“너에게 그럴 만한 자격이 있을까? 기껏해야 호위무사 주제에.”

“소성주께서도 허락하신 일입니다.”

그렇다면 문제가 다르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장로를 용서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구천성 전체를 위해서 결단을 내리셨습니다.”

“좋아, 소성주께서 그리 결정을 내리셨다 치자, 과연 소성주와 네가 나를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군.”

“지킬 수 있든 없든, 이제 장로께서도 결정을 내리셔야 할 일로 보입니다만.”

“왜? 대령주가 나를 죽이려 하기 때문에?”

“대령주 때문이 아닙니다.”

“그럼?”

“천외에 숨어있는 자들. 그들이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에도 ‘천외’ 운운하지 않았던가.

“천외라니? 무슨 말이냐?”

장천운은 답을 뒤로 미루고, 쓰러져 있는 용평을 바라보았다.

용평이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다. 하지만 장천운은 직감적으로 그가 천외와 어떤 식으로든 연결 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귀하라면 내가 누구를 말하는지 알 거라고 봅니다만.”

마혈과 아혈이 찍혀 있던 용평은 잘게 떨리는 시선을 돌려서 장천운과 눈이 마주치는 것을 피했다.

장천운은 그에게 더 묻지 않고 문인동을 향해 말했다.

“장로, 구천성을 암중에서 좌지우지하고 있는 자들이 있다는 걸 아십니까?”

“구천성을 좌지우지해?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니, 구천성 뿐만이 아니라 천하 전체를 좌지우지하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문인동의 두 눈이 경악으로 부릅떠졌다.

황당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용평의 말을 들어본 그로선 장천운의 말을 황당하게만 생각할 수 없었다.

“그들이 천외에 숨어 있는 자들이란 말이냐?”

“정체가 확실치 않아서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믿기 힘든 말이군. 천하의 누가…….”

바로 그때, 장천운이 고개를 치켜들더니 방문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동시에 밖에서 냉랭한 목소리가 들렸다.

“장천운. 잠깐 이야기 좀 할까?”

장천운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졌다.

공손백의 목소리다. 진기로 소리를 차단했는데 자신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만약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도 않고 알았다면?

‘빌어먹을. 올가미에 제대로 걸린 건가?’

문인동을 살펴보았다.

화들짝 놀라서 당황한 표정이다. 그도 몰랐나 보다.

하긴 소란이 벌어진 것을 알고 왔다고 하기에는 반응이 너무 빠르다. 소란 때문이었다면 밖을 오가던 경비무사들이 먼저 무슨 일 있냐며 물어봤을 것이다.

결론은 하나.

“대령주가 친 그물에 걸린 건가?”

문인동도 장천운과 동일한 추측을 하고는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때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세차게 열렸다.

밤바람이 안으로 밀려들었다.

장천운은 머리를 흩날리며, 방문 밖 저쪽에서 뒷짐을 진 채 서 있는 공손백을 바라보았다.

그의 좌우에 사계와 장로 넷이 서 있고, 뒤쪽에는 흑의와 갈의를 입은 무사 수십 명이 늘어서 있었다.

뒤쪽과 지붕 쪽에서도 상당한 숫자의 무사들이 느껴졌다.

공손백의 말대로 완벽한 포위망이다. 세 겹인지 네 겹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아주 작정하고 왔군.’

자신하나 잡겠다고 저 많은 사람을 동원하다니.

“저야 낮에 미처 물어보지 못했던 것을 물어볼까 해서 왔습니다만, 대령주께선 어쩐 일이십니까?”

장천운이 시치미를 뚝 떼고 말하는 동안 방문 앞까지 다가온 공손백이 냉소를 지었다.

“나도 너에게 물어볼 것이 있다.”

“뭘 묻고 싶은 겁니까?”

“들어가서 말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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