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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189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00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189화

사계와 호위무사 십여 명이 그를 호위하고 있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았는지 평소에 비해 배 이상 강화된 호위였다.

특히 그와 동행한 두 사람은 처음 보는 자였는데, 겉모습만 봐도 절정에 달한 고수임을 알 수 있었다.

‘드디어 천년 묵은 구렁이가 기어 나왔군.’

장천운은 공손백을 보고도 전과 달리 당당하게 대했다. 구천금령이 그의 손에 쥐어진 이상 굽힐 이유가 없었다.

아니, 꼭 구천금령이 아니라 해도 이제는 굽히고 싶지가 않았다.

“무엇이 지나치다는 겁니까, 대령주?”

고개를 뻣뻣이 들고 말대꾸를 하는 장천운을 보고 공손백의 눈에서 시퍼런 노화가 쏟아졌다.

“네놈이 구천금령을 믿고 겁을 상실했구나!”

“그 말씀은, 구천금령을 무시하겠다는 것처럼 들리는군요.”

공손백은 장천운의 말대꾸에 속이 불길처럼 타올랐다.

지금껏 자신의 앞에서 장천운처럼 빤히 쳐다보며 말대꾸한 자는 없었다.

감히 어느 누가 그 따위 버르장머리 없는 행동을 한단 말인가.

심지어 마제 나극조차도 저 따위로 말하지 않거늘.

“구천금령이 절대적인 권한을 지녔다 해도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니라.”

“대령주께 해당되지 않는다 해서 다른 장로들까지도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문인동과 오종을 빗대서 한 말이다.

공손백도 그 말의 의미를 모르지 않았다. 알면서도 더욱 강하게 압박했다.

“네가 정녕 나를 무시하겠다는 거냐?”

고오오오오!

무령의 기운이 소리 없는 해일처럼 장천운을 향해 밀려갔다.

공손백은 전에 한번 시험해 본 적이 있기에 이번에는 그보다 더 강한 칠성의 공력을 실었다.

두 사람 사이의 공간이 아지랑이처럼 이지러지면서 출렁거렸다. 멀리서 보면 바람이 공간을 살랑살랑 흔들어댄 듯했다.

하지만 그 아지랑이 속에는, 일반사람이 들어갔다면 만근 바위에 짓눌린 것처럼 오그라들 정도로 가공할 압력이 실려 있었다.

아마 두 사람 사이에 바위가 있었다면 모래처럼 부서졌을 것이고, 나무가 있었다면 가루가 되어서 스러졌을 것이었다.

장천운은 만근 압력을 대하고도 공손백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뒤쪽에 서 있던 구산이 충격을 받고 안색이 해쓱해졌다.

‘우욱!’

그는 뱃속의 창자가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것 같아서 몸이 절로 후들후들 떨렸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

여기서 형편없는 꼴을 보이면 류화에게 한소리 들을 게 뻔했다. 보나마나 은명객들이 고자질할 테니까.

‘젠장, 자리를 잘못 잡았군.’

장천운의 뒤가 제일 안전한 곳이라 생각했는데.

그나마 공손백이 공격 범위를 장천운에게 집중해서 다른 흑월대원들은 별 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다.

“제가 언제 대령주를 무시했단 말입니까? 저는 소성주님의 명을 받고 문인동 장로를 압송하려고 왔을 뿐입니다.”

장천운은 공손백의 두 눈을 직시한 채 꼬박꼬박 말대꾸했다.

흔들림 없는 목소리, 차가운 눈빛.

칠성의 공력으로도 장천운을 어찌하지 못한단 말인가?

예상한 것보다 더 강하다는 뜻.

공손백은 눈꺼풀을 미미하게 떨며 무형기를 거두어들였다.

더 이상의 무력시위는 의미가 없다. 더 해봐야 놈만 추켜 주는 꼴이 될 테니까.

“문인동 장로에 대한 것은 내가 먼저 조사해볼 것이다. 네가 정말 나를 무시하지 않는 거라면 돌아가서 기다려라. 이 일에 대해서는 내가 직접 소성주께 말씀드릴 것이다.”

“문인동 장로가 파천회 사람을 만난 것에 대해서 알고 계셨습니까?”

“오늘 지금 이 자리에서 처음 들었다.”

“그래요? 이상하군요. 문인동 장로는 모든 일을 대령주께 보고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저 뿐만 아니라 구천성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일이지요.”

―당신이 모를 리 없다. 거짓말하지 마라.

그런 뜻.

‘목을 비틀어서 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

공손백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그러나 지금은 장천운의 목을 비틀어 죽이는 것보다 사실을 확인하는 게 중요했다. 문인동이 정말로 파천회와 연관되었다면 절대로 장천운에게 딸려 보낼 수 없었다.

“내 모든 걸 걸고 맹세할 수 있다. 나는 그 일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른다. 그러니 이 일은 내게 맡기도록 해라.”

공손백과 말다툼을 하는 사이에 다가온 나극도 한마디 거들었다.

“이 늙은이의 생각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장로원의 일은 나와 대령주가 알아서 할 것이니 돌아가 있어라.”

장천운은 그쯤에서 한 발 물러섰다.

“좋습니다. 대장로까지 그러시니 시간을 하루 드리겠습니다. 내일 이 시간까지 조사해 보시고, 사건의 전말을 소성주께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시겠다면 물러가지요.”

기분이 상할 이유는 없었다.

어차피 공손백과 나극이 나서면 양보하는 척, 봐주는 척하면서 물러설 생각이었으니까.

거기다 하루라는 조건까지 걸어서 압박했으니, 그 정도면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고도 남았다.

이제 곧 구천성 구석구석까지 장로원에서 벌어진 일의 내막이 쫘르르르 퍼지리라.

‘그럼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지.’

그런데 그의 마음을 몰라주는 사람이 있었다.

“건방진 놈! 감히 까마득한 어른들께 이래라 저래라 하다니! 단단히 혼을 나야 정신을 차릴 놈이로구나!”

공손백과 함께 나타난 두 사람 중 오십대 중반의 중노인이 눈을 치켜뜨며 다그쳤다.

큰 키에 사납게 느껴지는 인상. 어깨 위로 삐죽 솟구친 검처럼 날카로운 눈매를 지닌 자였다.

장천운으로선 처음 보는 자.

하지만 그는 상대의 모습을 살펴보고 정체를 짐작했다.

“귀하는 혹시 며칠 전에 새로 장로가 되셨다는 경세일검 석 대협 아니십니까?”

“알긴 아는구나. 내가 바로 석중환이니라.”

경세일검 석중환. 상주 일대에서 적수를 찾기 힘들다는 절정고수.

홀로 활동하기를 좋아한다는 그가 구천성에 들어온 것은 닷새 전이었다.

강호에 위명을 떨치고 있던 그는 장로로 받아들여졌는데, 그 사이 공손백이 자신의 사람으로 삼은 듯했다.

“이제 구천성의 장로가 되셨으니 구천률부터 공부하셔야할 것 같습니다.”

“뭐야?”

“구천성에서 가장 지엄한 법이지요. 모르면 자칫 본의 아닌 일로 곤욕을 치를 수 있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장천운의 말투에는 신경을 자극하는 묘한 뭔가가 있었다.

입술 끝이 비틀리는 조소 띤 말투. 약간은 고의성이 짙었는데, 성격이 급한 사람일수록 말려들기 쉬웠다.

아니나 다를까, 석중환도 그 말에 끓어오르는 노기를 참지 못했다.

“내 구천률은 잘 모르겠다만, 건방진 행동을 하는 애송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는 잘 알고 있느니라.”

이를 갈 듯 말을 내뱉은 그가 앞으로 나섰다.

공손백은 그를 말리지 않았다.

석중환의 실력을 믿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기면 이기는 대로, 패하더라도 최소한 기는 죽지 않겠는가. 기가 죽은 석중환이라면 다루기가 훨씬 편해질 것이다.

심하게 다칠 경우 절정고수 하나를 잃는 게 아쉽긴 하나, 그 핑계를 대고 소성주 쪽에 반격을 가할 수 있다면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더 크지 않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귀하가 말한 건방진 애송이를 무시했다가 거꾸로 당했지요. 손을 쓰려거든 최선을 다하셔야 할 겁니다.”

장천운이 마치 남의 일처럼 말했다.

“흥! 네깟 놈에게 패할 것 같으면 강호에 나오지도 않았다.”

냉랭히 코웃음 친 석중환이 등 뒤로 손을 가져가더니 검을 뽑았다.

무척이나 느린 속도였다. 그가 검을 다 뽑은 후 사선으로 내렸을 때까지도 사람들은 침 삼키는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그가 손목을 살짝 틀자, 석 자 세 치쯤 되는 검신이 햇빛을 받아서 번뜩였다.

그때 사공명신이 나섰다.

“대주, 내가 상대해보겠소. 검 한 자루로 상주를 호령했다는 경세일검의 검이 얼마나 무서운지 한번 보고 싶소.”

장천운은 손을 들어서 그를 막았다.

“아니오. 나에게 감정이 있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내가 상대해줘야지요.”

사공명신이 비록 남천신문의 비전을 익히진 않았다 하나, 그의 무공 속에는 어릴 때 익힌 남천신문의 무리가 알게 모르게 섞여 있다.

장로들은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들. 그들이 두양양에 이어서 사공명신의 신분마저 눈치 채게 되면 자칫 일이 묘하게 흐를지도 몰랐다. 어쨌든 남천검문은 지금 구천성의 적이 된 상황이니까.

“오냐, 이놈. 어차피 다른 놈은 필요 없다!”

검을 사선으로 내린 석중환이 장천운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장천운도 현월을 뽑았다. 거무스름한 검신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기이한 침묵이 흘렀다.

한쪽에서 구시렁거리던 은명객조차 입을 다물고 눈만 깜박거렸다.

일을 열면 저 거무스름한 검첨 끝에서 꾸물거리는 뭔가가 자신의 목을 향해 달려들 것만 같았다.

“내 검이 무정타 원망하진 마시오.”

“건방진 놈!”

석중환이 소리치며 땅을 박차고 나아갔다.

본래는 어린놈에게 선공을 양보하려 했다. 그런데 검을 뽑아든 순간 지금까지의 놈과 완전히 달라졌다.

마주 선 것만으로도 숨이 막힐 지경.

그제야 알았다. 절대고수인 공손백과 나극 등이 장천운의 건방진 행동을 보고도 참는 이유가 꼭 소성주 때문만이 아니라는 걸.

가슴이 서늘해진 그는 결국 상대가 공격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선공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콰아아아아.

석중환의 폭풍 같은 검세는 한 치의 빈틈도 없었고, 바위조차 조각조각 베어버릴 정도로 강력한 힘이 실려 있었다.

그가 검을 펼치는 일장 주위는 그물 같은 검영으로 뒤덮여서 파리 한 마리 빠져나갈 틈이 없었다.

석중환이 자랑하는 경세팔검 중 세 가지 초식이 숨 한번 쉴 짧은 시간에 연환으로 펼쳐진 것이다.

‘너 따위 애송이에게 질 수는…….’

하지만 장천운이 작심하고 펼친 천뢰구검을 맞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철벽같던 검벽이 쭉 뻗은 전광뇌에 쪼개지고, 구전관천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그것은 마치 두부에 송곳을 꽂는 것 같아서 당사자인 석중환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커졌다.

콰과광!

굉음이 터져 나오는가 싶더니 석중환의 몸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치켜뜬 눈, 창백하게 질린 그의 얼굴 근육이 푸들푸들 떨렸다.

“이, 이런 개 같은…… 일이…….”

그의 앞, 단단한 땅에는 다섯 개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는데, 발목이 들어갈 정도로 깊었다.

그 발자국 끝에 선 그의 다리도 사시나무처럼 가늘게 떨렸다.

“맙소사…….”

누군가가 탄식하듯 나직이 읊조렸다.

단 삼 초식. 경세일검이 구천성의 일개 호위대주와 공방을 벌여서 패한 초수다.

장로들은 소문이 사실이었음을 절감하고 숨을 삼켰다.

공손백 역시 예상보다 강한 장천운의 무공을 보고 표정이 바위처럼 굳어졌다.

하지만 그들은 생각조차 못했다. 장천운이 자신의 팔 할만 내보였다는 걸.

“더 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무심한 어조로 몇 마디 내뱉은 장천운은 석중환의 대답도 듣지 않고 공손백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문인 장로는 대령주께 맡겨둔다 해도, 저 두 사람은 제가 데려가야겠습니다. 설마 그것까지 막으시지는 않겠지요?”

장천운은 문인동을 호위하고 있던 두 사람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중 한 사람인 양추는 내상이 심한 듯 입안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죄가 없는 사람을 왜 데려간단 말이냐?”

“구천금령을 행사하는 저에게 살수를 쓴 것만 해도 죽을죄를 지었다고 볼 수 있지요.”

공손백은 늦게 나왔기 때문에 그 광경을 보지 못했다.

사실이라면 막을 방도가 없었다.

그는 문인동을 바라보았다.

<저놈 말이 사실이냐?>

<양추가 놈을 공격한 것은 맞습니다만, 데려가는 것은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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