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188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17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188화
“아버지가 백부를 제치고 성주가 된 것도 그들이 암암리에 아버지를 밀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고 했어. 백부보다는 아버지를 다루는 게 쉬웠기 때문에. 그런데 더 어이없는 건, 아버지도 그들이 누군지 알지 못했던 것 같아. 돌아가실 때까지도.”
믿어지지 않았다.
혹시 전대 성주가 과대망상증에 걸렸던 것은 아닐까?
오죽하면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구천성은 천하 최강의 세력이다. 그런 세력을 숨어서 좌지우지 하는 자들이 있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린가?
그러나 사마경이 봤다는 일기의 내용은 허황된 이야기라고 치부하기에 너무나 구체적이었다.
‘암중에서 구천성을, 천하를 움직이는 자들이 있단 말이지?’
그것도 아주 오래 전부터.
설령 과대망상과 과도한 정신적 중압감 때문에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해도 사실 확인 정도는 필요했다.
“그들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무림맹이 본격적으로 움직일 경우 모습을 드러낼 겁니다.”
무심한 장천운의 어조에 사마경이 창밖으로 향했던 시선을 돌려서 장천운을 쳐다보았다.
“내 생각도 그래. 그래서 더 철저히 대응해야 돼. 이제는 누구도 믿을 수가 없거든.”
언뜻 사마경의 눈꺼풀이 잘게 떨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약함을 내색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했음에도 버티기가 힘든가 보다.
도대체 어떤 자들이기에 수십 년 동안 흔적도 드러내지 않고 구천성을 좌지우지할 수 있단 말인가?
“기분 전환도 할 겸, 일단 문인 장로 쪽부터 건드려보겠습니다.”
“괜히 저들을 자극하는 건 아닐까?”
공손백이나 나극을 말함이 아니었다. 어둠 속 저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자들. 천궁마신 사마중천조차 중압감을 느껴야만 했던 자들, 바로 그 암중의 인물을 자극할까봐 걱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장천운은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걱정은커녕 오히려 눈빛을 시퍼렇게 번뜩였다.
“제대로 자극을 받아서 밖으로 뛰쳐나오면 그것도 나쁠 건 없지요.”
이상할 정도로 피가 끓었다. 그 동안 어느 누구에게도 느끼지 못했던 승부욕이 불길처럼 타올랐다.
‘어떤 늙은이들인지 모르지만, 어디 누가 이기나 보자!’
***
미시 말.
장천운은 흑월대 이조와 삼조원을 모조리 이끌고 장로원으로 향했다.
구천성의 최대 관심대상인 그가 무공에 미친놈들만 모였다는 흑월대를 이끌고 장로원으로 가자,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집중되었다.
“저 자식이 왜 장로원으로 가지?”
“또 무슨 일을 벌이려고…….”
이 정도의 반응은 순진한 것이었다.
“소성주가 또 미친개를 풀었군. 한바탕 시끄러워지겠는데?”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장천운은 귓전으로 전해지는 온갖 말을 들으면서 장로원의 입구로 다가갔다.
바짝 긴장한 경비무사들이 입구를 막고 물었다.
“무슨 일인데 찾아온 거요?”
“비켜! 구천금령의 앞을 막는 자는 목을 친다!”
장천운이 구천금령을 높이 쳐들고 소리치자, 화들짝 놀란 경비무사들은 눈을 부릅뜨고 옆으로 비켜났다.
장천운은 어깨를 편 채 경비무사들 사이를 지나 안으로 진입했다.
흑월대원들도 덩달아서 목과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뒤따라갔다.
천하제일세의 가장 강력한 무력이 웅크리고 있는 장로원이었다. 목에 힘을 주고 그 안으로 들어간다는 게 어찌 보통 일일까.
특히나 은명객들은 자신들이 구천금령의 주인이라도 되는 듯 거만한 표정으로 경비무사들을 째려보았다.
“뭘 봐, 인마?”
“그 썩은 눈깔을 확 캐버리기 전에 돌려!”
“다들 막 형만 보는 것 같군. 하긴 볼만한 모습이긴 하지.”
“어? 저 새끼도 한 얼굴 하는데?”
구시렁구시렁, 중얼중얼.
경비무사들은 눈을 치켜뜨고 노려보기만 할 뿐 그 이상의 행동으로 옮기진 못했다.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그런 마음이랄까?
한편, 안쪽에 있던 경비무사들은 장천운이 왔다는 것을 알고 다급히 안쪽에 소식을 알렸다.
곧이어 장로들이 우르르 뛰쳐나왔다.
“무슨 일인데 저 자식이 또 온 거야?”
“빌어먹을 놈! 무사들이 출정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장천운은 곧장 문인동의 방으로 방향을 틀었다.
저 안쪽에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 교왕 둔가부와 환마 우곡이 보였다. 심심한데 잘 됐다는 듯 구경꾼으로서 완벽한 자세를 취한 두 사람은 느긋하니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문인동 장로께선 잠깐 나와 보시지요!”
“무슨 일이냐?”
방에서 문인동이 나오며 냉랭히 되물었다. 삼십대 무사 둘이 그의 좌우를 호위하며 따라나오더니, 긴장한 표정으로 흑월대원들을 둘러보았다.
장천운은 일단 손을 들어서 흔들었다.
흑월대 무사들이 좌우로 퍼지더니 문인동의 거처를 포위했다. 제법 일사불란한 움직임이었다.
그제야 심상치 않음을 느낀 문인동이 눈을 가늘게 좁히고 싸늘한 눈빛을 번뜩였다.
“지금 뭐하자는 거냐?”
“뭐하기는요? 장로를 포위한 것이지요.”
“포위? 나를 잡아가기라도 하겠다는 거냐?”
“죄를 지었다면 당연히 잡아가야겠지요.”
“말장난하고 싶은 마음 없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말해봐라. 태상호법의 죽음에 대해서 또 다른 증거라도 찾았느냐?”
문인동이 싸늘한 말투로 다그치듯 말하자, 장천운이 냉소를 지었다.
“오늘은 다른 일로 왔습니다.”
“다른 일?”
“그렇습니다. 그러고 보면 장로께서도 참 많은 일을 하고 다니십니다. 소문에 의하면 적운수사가 병법에 밝고 계책에 능하다고 하던데, 요즘 하는 일을 봐서는 그런 것도 아닌 것 같군요.”
비아냥거리는 말투에 문인동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장천운을 노려보았다.
“네놈이 지금 나를 능멸하겠다는 거냐?”
“능멸은 능력이 있는 자에게 모멸감을 주었을 때나 하는 말이지요.”
“이놈!”
문인동의 옆에 서 있던 호위무사 양추가 바닥을 차고 몸을 날리며 벼락처럼 쌍장을 뻗었다.
장천운과의 거리는 삼 장 정도. 그야말로 눈 깜짝할 순간의 공격이어서 다른 사람은 끼어들 틈도 없었다. 끼어들려는 사람도 없었지만.
오히려 끼어들기는커녕 흥미가 동한 눈으로 쳐다보면서 박자를 맞추듯 한 소리 덧붙이는 사람도 있었다.
“얼씨구?”
“미쳤군.”
장천운은 양추의 공격이 코앞까지 다가온 후에야 손을 마주 뻗었다.
쾅!
일성 굉음이 울리고, 달려들던 양추가 본래의 위치로 날아갔다. 하지만 처음과 달리 제대로 서있지도 못할 정도로 문이 부서지며 처박혔다.
탁탁, 소리가 나도록 손을 턴 장천운이 무심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문인동을 쳐다보았다.
“제가 왜 왔는지 아십니까?”
“내가 네놈의 속을 어찌 안단 말이냐?”
“목운사에 간 적이 있지요?”
갑자기 뒤통수를 세차게 맞은 듯, 문인동은 느닷없는 충격에 바로 반박을 못했다.
일단 기선을 제압한 장천운은 더욱 세차게 몰아붙였다.
“그곳에서 파천회 사람을 만났지요?”
“그, 그게 무슨 소리…….”
문인동은 안간힘을 다해서 반박하려 애썼다. 그러나 장천운이 그대로 놔두지 않았다.
“당하에서 우리를 공격했던 파천회 사람들을 왜 몰래 만났습니까, 장로? 예? 도대체 무슨 이유로 적인 파천회 사람들을 만났느냔 말입니다!”
목소리가 워낙 커서 귀머거리가 아닌 이상 듣지 못한 사람이 없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나왔던 장로들은 눈을 부릅뜨거나, 입을 꾹 다물고 노기를 드러냈다.
일부 몇 사람이 곤혹스런 표정을 지으며 당황하긴 했지만, 겉으로 드러내진 못했다.
문인동이 파천회 사람들을 몰래 만났다는 게 사실이라면 그야말로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적과의 내통!
더 큰 문제는 문인동이 대령주의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자칫하면 대령주에게까지 불똥이 튀어서 구천성을 불난 벌집처럼 만들어버릴지도 몰랐다.
“말씀해 보시지요, 장로! 파천회 사람들을 몰래 만난 것이 구천성을 위한 일이라면 소성주께 보고를 올렸어야 하는 일 아닙니까? 대령주께라도 보고를 올리긴 올렸습니까?”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문인동은 사력을 다해서 가까스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일단 부정부터 했다.
순순히 인정하기에는 사안이 너무나 중대했다.
“내가 파천회 사람을 만났다니, 어디서 그런 해괴망측한 말을 듣고 왔기에 함부로 망발을 하는 것이냐?”
역시 보통이 아니었다. 찰나의 순간에 침착함을 되찾다니.
그러나 장천운도 그 정도 반발은 예상하고 있던 터였다.
“무슨 말인지 모른다고요? 망발? 장로와 파천회의 제갈승우가 목운사에서 만난 것을 본 사람이 있는데도 발뺌하시겠다는 겁니까?”
그는 당사자의 이름을 꺼내서 더욱 강하게 압박했다.
‘빌어먹을!’
문인동은 목격자가 있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했지만 무조건 부인부터 하고 봤다.
“나는 모르는 일이다! 어디서 감히 나에게 누명을 씌우려는 것이냐?”
“장로께서는 옆에 있는 저자들과 함께 가지 않았습니까? 사실 파천회 사람들과 만난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들과 나눈 이야기가 중요하지요. 그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눈 겁니까?”
장천운이 슬쩍 돌려 쳐봤지만 문인동도 쉽사리 넘어가지 않았다.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했잖느냐! 그런데 무슨 이야기를 나눠? 헛소리하지 말고 가봐라!”
“대령주께 말씀은 드렸습니까?”
“알지도 못하는 일을 왜 대령주께 말씀드린단 말이냐?”
“끝까지 부정하신다면 할 수 없이 연행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군요. 이미 증인을 통해서 확인한 일이니 순순히 저를 따라가시지요.”
“흥! 아무리 구천금령이라 해도 확실한 증거 없이 장로를 잡아갈 수는 없다.”
“확실한 증인이 있다고 했지 않습니까?”
“그 증인이 거짓말을 해서 나를 궁지에 빠뜨리려는 건지 어찌 안단 말이냐?”
“정말…… 구천금령에 따르지 않으실 겁니까?”
장천운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나직한 목소리에는 그가 흘린 진기가 실려 있었다. 그 때문에 기이한 울림이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문인동의 내부를 흔들었다.
문인동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심리적 압박감에 목소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나는…… 갈 이유가 없다.”
겨우 몇 마디 내뱉은 그는 소름이 돋았다.
장천운의 강함에 대해서는 수차례 들었다. 얼마나 강한지에 대해서도 많은 말들이 오갔다. 개중 어떤 사람은 장천운이 절대의 경지에 도달했을지 모른다는 농담 아닌 농담마저 했다.
그랬다. 농담인 줄 알았다. 아마 자신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그 말이 농담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놈에 대해서 너무 몰랐구나.’
“순순히 따르지 않겠다면 할 수 없군요. 구천률에 따라서 처리하는 수밖에.”
장천운이 냉랭한 표정으로 말하자, 흑월대가 포위망을 서서히 좁혔다.
“장 대주! 장로원에서 장로를 연행해 가겠다니. 네가 지금 우리 장로들을 무시하겠다는 것이냐?”
오종이 소리치며 언동교 등 장로 서너 명과 함께 접근했다.
그들은 흑월대를 무시하지 않았다. 정신적으로 이상한 놈들이 많긴 하지만 무공만큼은 자신들이 함부로 할 수 없을 만큼 강했다.
자칫하면 창피만 당할지도 모르는 일, 무작정 공격하기보다는 틈을 엿보는 게 나았다.
장천운은 오종의 말에도 기세를 굽히지 않았다.
“문인동 장로에 대한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면 적과 내통한 죄로 처벌을 받을 것입니다. 누구든! 문인동 장로를 돕는 자도 함께 처벌을 받을지 모르니, 신세 알아서 행동하십시오!”
오종은 ‘적과 내통한 죄’라는 말이 나오자 멈칫했다.
다른 장로들도 당황한 표정으로 눈치만 봤다.
그때였다.
“이놈! 듣자하니 말이 지나치구나!”
노기가 깃든 일갈과 함께 공손백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