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187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22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187화
“봉황신무검의 막혔던 벽이 금방이라도 뚫릴 것처럼 느껴졌거든.”
장천운도 안다.
사마경의 봉황신무검은 현재 팔성의 경지였다. 그것만 해도 놀라운 발전인데, 최근 열심히 수련한 덕에 구성 경지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거기다 봉황장법과 칠봉영, 자신을 닦달하다 포기한 후 전념해서 익히고 있는 신법 역시도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아마 그녀가 봉황신무검을 구성까지 익힌다면 구천성의 어지간한 장로들은 그녀 앞에서 검을 자랑할 수 없을 것이었다.
‘실패했나?
성공했다면 저런 표정일 리가 없다. 활짝 웃으며 보란 듯이 자랑했겠지.
장천운은 궁금했지만 아무 것도 묻지 않고 묵묵히 기다렸다.
“비고에 들어가서 아버지가 남긴 책을 다시 살펴보았어. 혹시라도 도움이 되는 무서가 있나 하고.”
나직이 입을 연 사마경의 표정이 무섭게 굳어졌다.
“그러다 은밀한 곳에 숨겨진 작은 함을 하나 발견했지. 그래서…….”
호기심에 별 생각 않고 열어보았다. 상자 안에는 아버지의 일기장이 들어 있었다.
왜 아버지는 일기장을 수련장 깊숙한 곳에 숨겨놓았을까?
일기장이란 것은 본래 가까운 곳에 두지 않던가?
그녀는 의아해하며 일기장을 펼쳐보았다.
“그리고……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어. 너무나 놀라운 진실을…….”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꼬리를 길게 끈 사마경이 장천운의 두 눈을 직시했다.
장천운은 사마경의 기다란 눈썹이 사시나무 이파리처럼 떨리는 것을 보고 목구멍까지 튀어나온 궁금증을 억지로 구겨 넣었다.
복수를 위해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구천성에 들어온 여인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저 강한 여인의 가슴에 두려움을 심어준 걸까?
‘말해 봐요, 소성주. 그 어떤 강적도 당신을 해치지 못하게 내가 지켜줄 테니까.’
그의 마음이 전해진 걸까? 숨을 두어 번 고른 사마경이 바닥까지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어쩌면 아버지의 죽음 뒤에 또 다른 진실이 있을 지도 몰라, 천운. 그래서 백부와 대장로를 심하게 몰아붙이지 말라고 한 거야.”
또 다른 진실?
장천운의 표정이 무심하게 가라앉았다.
언젠가부터 가슴 저 깊은 곳에 정체 모를 답답함이 똬리를 틀고 있다. 소성주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그 답답함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을 지도…….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78장: 누가 이기나 보자
팽팽한 긴장감이 구천의 대지를 짓누르는 와중에도 신입무사들이 하루에 수십 명씩 구천성으로 몰려들었다.
어떤 때는 하루에 백 명이 넘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전쟁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수준에 오른 자들은 절반 정도밖에 안 되었다.
천경전은 구천성의 법을 관장하면서 신입무사에 대한 교육도 주관했다.
그들은 심사를 거쳐서 뽑힌 무사들을 재차 선별해서 강련곡과 일반 수련장으로 보냈다.
신입무사들은 그곳에서 한 달 정도 수련과 교육을 받은 후 각 조직에 배치되었다.
지난 한 달 동안 새롭게 구천성의 무사가 된 자들의 숫자는 천이백여 명. 숫자만 따진다면 당하의 전쟁 이전보다 오히려 많아졌다.
각 조직의 수장들은 신입무사 중 쓸 만한 자들을 영입하기 위해서 천경전으로 대주급 중간 간부를 파견했다.
그러나 신입무사에 대한 배치권한이 있는 천경전에선 쓸 만한 무사들을 소성주파 조직에 우선적으로 배치했다.
공손백과 나극은 불만이 많았지만 토를 달지 못했다.
당하에 간 조직은 대부분 소성주파였다. 당연하게도 소성주파의 피해가 많았으니 따질 수도 없는 것이었다.
신입무사 영입이 진행되는 동안 흑월대 역시 많은 땀을 흘렸다.
특히 두양양은 황산검문이 구천성을 상대하기 위해서 나섰다는 걸 안 이후부터 유난히 심하게 비무를 벌였다.
사마경이 대구천령을 발동한지 나흘째 되던 그날도 지쳐서 헐떡거릴 때까지 다섯 명을 상대하고서야 검을 내렸다.
오죽했으면 막소광과 등평조차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무슨 여자가 저렇게 사나워?” 라며 그녀를 피할 정도였다.
장천운은 그녀의 마음을 짐작하고 있었다.
황산검문이 남궁세가와 힘을 합친 이상 이제는 구천성의 적이었다.
흑월대는 안휘로 가진 않지만, 머지않아 그녀에 대한 소문이 황산검문 사람들 귀에 들어가지 않겠는가.
그뿐이 아니었다. 그녀가 황산검문 제자라는 걸 아는 간부들이 소성주를 압박하고 있었다.
그 모든 일이 두양양의 마음에 부담이 되었을 것이었다.
“두 소저, 잠깐 나와 이야기 좀 하지요?”
검을 검집에 집어넣은 두양양이 돌아서며 땀을 닦았다.
그녀는 아무 말도 없이 바라보다가 장천운을 향해 다가왔다.
장천운 앞에 바짝 선 그녀는 고개를 비스듬히 쳐들고 키가 큰 장천운을 빤히 쳐다보았다.
거리라고 해봐야 두 자 정도에 불과해서 내쉬는 숨결이 그대로 느껴졌다. 알싸한 국화향 같기도 하고, 시큼한 식초향 같기도 했다.
장천운은 그녀의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위를 쳐다보자니 그녀를 무시하는 것 같았고, 아래를 보자니 목울대 밑에서 사마경보다 배는 더 튀어나온 가슴이 들썩이고 있었다.
‘눈빛은 여전히 특이하군.’
아마 그가 가슴을 보고 있으면, 근처에서 눈도 깜박이지 않고 있는 흑월대 괴짜들이 며칠 동안 헛소리만 해댈 것이었다.
“날 쫓아낼 생각 마요.”
장천운이 말하기 전에 두양양이 먼저 운을 뗐다.
“정말 돌아가지 않을 거요?”
“난 이제 흑월대 대원이에요. 그리고 지금 일에 만족해요. 대주 곁에서 떠나고 싶지도 않고. 대주를…… 좋아하거든요.”
두양양이 대놓고 자신의 마음을 밝혔다. 지금 못하면 말할 기회가 없을지도 몰랐다.
장천운도 두양양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다. 어쩌면 그래서 더 거리를 두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의 눈을 보니 소용없는 일이었던 듯 했지만.
“난 당신의 마음을 받아줄 여유가 없소.”
“누가 받아주래요? 어릴 때부터 나 혼자서도 잘 지냈어요. 외로워서 울 때도 있었지만 그게 생활이었죠. 그냥 놔둬도 잘 지낼 거예요. 가라고만 하지 마요.”
빠르게 말을 내뱉은 두양양이 돌아섰다.
몇 마디 하는 동안 얼굴에서 열이 났다. 조금만 더 쳐다보고 있으면 잘 익은 감처럼 빨개질 듯했다.
장천운은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도 두양양에게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관심의 종류가 남자와 여자 사이의 내밀한 감정과는 조금 달랐다.
‘저러다 마음만 상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군.’
그때 사공명신이 다가오더니 그에게 바짝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대주, 나도 쫓아낼 생각 마시게. 난 두 소저가 여기에 있는 한 절대 안 나갈 생각이거든.”
이번에는 장천운도 맞받아쳤다. 사공명신은 두양양이 아니었다.
“사공 형, 우리 오랜만에 제대로 된 비무 한번 해볼까요?”
움찔한 사공명신이 급한 일이라도 생긴 듯 서둘렀다.
“나도 하고 싶은데, 그럴 시간이 없군. 교대 시간이 얼마 안 남았네.”
“아직 반 시진은…….”
“이대로 갈 순 없잖아? 땀 좀 씻고 옷도 갈아입어야 하는데……. 어이! 가서 교대 준비하자고!”
대충 얼버무린 사공명신이 몸을 돌리더니, 행여나 붙잡을세라 이조원들 쪽으로 다급히 걸음을 옮겼다.
장천운은 피식, 실소를 짓고 거처가 있는 무화원으로 향했다.
고개를 들자 뿌연 하늘이 보였다.
‘전쟁이 끝났을 때, 저들 중 몇 사람이나 살아있을지…….’
***
장천운은 대주천을 마치고 숨을 깊이 들이쉰 후 길게 내쉬었다.
느릿하게 눈을 뜬 그의 입가에 고졸한 미소가 피어났다.
‘그러고 보니 수련에 전념한 때가 언젠지 모르겠군.’
일반적인 초식 수련에 대해서는 부족함을 느끼지 못했다. 흑월대와의 비무 자체가 수련의 연속이었으니까.
하지만 몽중무의 수련은 등한시한 면이 없지 않았다.
현재의 수준만으로도 적수를 찾기가 힘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만(自慢). 바로 그 괴물이 자신의 내부에 깊숙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일지도…….
씁쓸한 마음이 든 그는 다시 눈을 감았다.
‘할아버지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대주천을 마친 장천운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차를 한 잔 마시고 있을 때, 사밀령 사령주 초광이 찾아왔다.
초광은 자신의 임무가 무척이나 마음에 안 들었다.
빌어먹을. 하필이면 왜 자신을 연락책임자로 임명한단 말인가. 전이산이나 백오를 시켜도 되는데.
아니, 그들이 아니어도 수하를 시키면 될 일 아니냔 말이다.
자신을 굴려먹는 식으로라도 복수를 하겠다는 건가?
‘어린놈이 쪼잔하기는…….’
그래도 겉으로는 일절 표를 내지 않았다. 어쨌든 지금은 자신이 약자였다.
“대주, 합비에 모인 남궁세가와 황산검문, 남천신문이 서진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입니다.”
“대령주나 대장로 쪽도 알고 있겠군요.”
“알 겁니다. 무사대 일진이 내일 오전, 육안으로 출발할 것 같습니다.”
마침내 안휘의 대전이 막을 올렸다. 얼마나 많은 피가 흐를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무림맹 총단이나 파천회 쪽의 움직임은 아직 들어온 소식이 없소?”
“아직은…….”
장천운은 초광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방문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소성주께 가봐야겠소. 혹시라도 소식이 들어오면 바로 전해주시오.”
‘씨바, 이 초광이 완전 개무시 당하는군. 자존심 상해서 원…….’
저번 장로원에서 어려움에 처했을 때 구해주지만 않았어도 한번 대들어 볼 텐데…….
초광은 장천운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대주.”
그래도 말투는 공손했다.
그때 방문을 열고 나가려던 장천운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는 고개를 돌렸다.
초광은 제 발 저린 도둑처럼 흠칫했다.
“하달하실 말씀이라도……?”
“사령주, 혹시 우리 흑월대에 들어올 생각 없소?”
미쳤냐?
“제가 사밀령의 일만으로도 바빠서……”
초광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히더니 상흔이 있는 눈두덩을 타고 흘렀다.
“싫으면 할 수 없고.”
장천운은 두 번 묻지 않고 방을 나갔다.
그도 거부할 줄 알고 그냥 해본 소리였다. 어떤 반응을 보이나 보고 싶어서.
‘크크크, 놀라긴.’
***
아침이 되자, 안휘성 정파연합의 서진(西進)을 차단하기 위해 파견하기로 한 무사대 중 일진 오백이 육안을 향해 출발했다.
그들을 환송하고 방으로 돌아온 사마경이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십이지부 중 세 곳이 그들과 합류하기로 했으니 밀리지는 않을 거야.”
그녀의 옆에는 장천운과 소연추, 연송하, 그리고 구양명이 서 있었다.
“대령주와 대장로는 언제쯤 출정한다고 합니까?”
장천운의 질문에 사마경이 미간을 좁히더니 약간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열흘 정도 시간을 두고 움직일 거야. 말로는 이진을 완벽히 조직한 후 출발한다고 하는데, 속셈은 다른 것 같아.”
“무림맹의 움직임을 살펴보면서 대응할 생각일 겁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무림맹의 주력도 곧 움직일 테니까.”
“무림맹이 준동하면 바로 출정하실 겁니까?”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짧게 대답한 사마경이 창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옆모습을 본 장천운은 막 내뱉으려던 말을 삼켰다.
전이었다면 총사나 소성주파 간부들과 논의해보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세상의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목숨을 걸고 도망치던 때의 사람들 외에는 누가 적인지 알 수조차 없는 상황 아닌가 말이다.
아니, 함께 도망쳤던 사람들조차 믿기가 힘든 판이었다.
그녀가 말했다.
“아버지는 거대한 그림자가 구천성을 덮고 있다고 했어. 너무나 거대하고 깊게 숨어 있어서 덮고 있는 것조차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하셨지. 믿어져? 성주조차 모르는 힘이 구천성을 뒤덮고 있다는 게.”
그뿐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엄청난 말도 나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