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184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268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184화
사마경의 미간이 씰룩거렸다.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서 죽는 건 두렵지 않다.
하지만…… 하지만 그 복수 때문에 장천운이, 모두가 죽는 것은 바라는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마를 찌푸린 채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도 그렇게 되는 건 원치 않아.”
“그럼 일단 조사를 하면서 상황을 지켜보죠,”
입술을 질끈 깨문 사마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렇게 해.”
‘휴우우, 하여간 성질은…….’
속으로 안도한 사람은 장천운만이 아니었다.
지켜보던 사람들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도대체가 가슴이 조마조마해서 혼났네.’
‘휴우, 그러다 정말 공격명령을 내리려면 어쩌려고……. 하여간 오빠도…….’
‘후우, 무섭군, 무서워. 젊은 친구들 간덩이가 왜 그리 커?’
***
장천운은 선등경 일행을 찾아갔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떠나시겠다면 막을 생각은 없습니다만.”
천궁마신의 시신이 사라졌다.
선등경 일행의 증언을 증명할 방법이 사라진 것이었다.
물론 그들이 남아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큰 도움이 되겠지만, 떠나겠다면 말릴 수도 없었다.
“나는 조금 더 이곳에 머무르면서 돌아가는 상황을 알아보고 싶네. 채 아우, 아무래도 자네 혼자 돌아가야 할 것 같군.”
선등경의 말에 채응도가 눈을 홉떴다.
“저 혼자요?”
“돌아가서 보주님께 말씀드리게. 아주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슬쩍 장천운의 표정을 살펴 본 채응도가 말했다.
“장로, 함께 남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나도 그러고 싶네만, 보주께 그간의 사정을 전해야 하지 않겠나?”
“그건 그렇습니다만…….”
“내 걱정 말고 자네부터 돌아가게.”
선등경이 완강한 어조로 밀어붙이자, 채응도도 더는 고집을 부리지 못했다.
그때 선등경의 전음이 채응도의 고막을 파고들었다.
<이곳 상황을 전하면 보주께서 어떤 식으로든 지시를 내릴 거네.>
묵묵히 전음을 들은 채응도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번뜩였다가 사라졌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저 먼저 가지요.”
이번에는 용화성이 말했다.
“저도 장로님과 함께 이곳에 남겠습니다.”
장천운은 그의 잔류를 마다하지 않았다.
자존심이 지나치게 강해서 문제를 일으키거나, 오만한 태도가 가끔 꼴 보기 싫긴 해도 본심이 악한 자는 아니었다.
남아 있으면 사마경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테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노인네의 꿍꿍이가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어쨌든 절정고수 몇 명을 거저 얻었군.’
77장: 대구천령(大九天令)
사시 무렵, 회하에서 밀려든 안개가 높다란 담장을 능구렁이처럼 넘어오더니 전각을 하나 둘 뒤덮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안개를 뚫고 날아온 비둘기 한 마리가 비령각의 처마에 내려앉았다.
전서구의 다리에서 전서를 빼낸 정유는 깨알처럼 적힌 내용을 반쯤 읽다 말고 우문각의 거처로 달려갔다.
“총사, 무림맹이 움직였습니다.”
며칠 째 표정이 굳어 있던 우문각의 두 눈에서 섬광이 번뜩였다.
“어느 쪽이냐?”
“안휘 쪽이 먼저 움직였습니다.”
무림맹이 움직일 거라는 건 이미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 문제는 여주 쪽이냐, 아니면 안휘 쪽이냐 하는 것이었다.
“남궁세가와 황산검문, 남천신문 등 현재 밝혀진 것만으로도 약 이천 정도가 집결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남궁력이 작정했군.”
남궁세가가 수상한 마음을 먹고 있다는 건 창궁무전을 개최할 때부터 짐작하고 있던 바였다.
하지만 알면서도 대장로파를 견제하느라 섣불리 손댈 수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큰 세력을 이루었다.
“곧 여주도 움직일 겁니다.”
그뿐이 아니었다. 한 동안 잠잠해졌던 검왕문과 장강팔련도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격에 나설 것이고, 무당파를 비롯한 서쪽의 정파세력 역시 공격에 가담할 것이었다.
“빌어먹을. 천하를 상대로 싸워야할 판이군.”
우문각의 입에서 쌍소리가 나오자 정유가 슬쩍 쳐다보았다.
전혀 우문각답지 않은 말투. 장천운에게 물든 듯했다.
“차라리 잘 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총사.”
“이유는?”
“대령주의 움직임이 수상합니다. 아무래도 더 참기가 힘든 모양입니다.”
“그래?”
“게다가 소성주께서도 전대 성주의 시신이 사라진 일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지요.”
“그래서?
“양 세력이 부딪치면 공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문각의 이마에 깊은 골이 파였다.
“승산은?”
“냉정하게 따져보면…… 현재로썬 대령주와 대장로 측의 승산이 높습니다.”
그냥 높은 정도가 아니다. 우문각이 도와준다 해도 훨씬 높았다.
“반면 소성주께선 운이 따라줘서 이긴다 해도 패배한 것과 같은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무림맹 공격을 핑계로 두 분 사이를 떼어놓는 게 지금으로선 최선이라는 생각입니다.”
“나쁜 생각은 아니군.”
우문각은 짧게 대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이 좋은 소식을 양쪽에 알려줘야겠다.”
이번에는 정유가 우문각을 슬쩍 흘겨보았다.
‘진짜 달라지셨어.’
***
“남궁력이 먼저 움직였소, 소성주.”
우문각의 말에 사마경은 오만하게 보일 정도로 턱을 치켜들고 이를 악물었다.
드디어 시작된 건가?
당하의 싸움과는 비교도 안 되는 거대한 전쟁의 시작이다.
천하를 상대로 한 전쟁!
“십이지부에 지급으로 연락해서 각자 맡은 지역을 지키면서 적의 움직임을 철저히 살펴보라고 하세요.”
“예, 소성주.”
“무림맹 총단과의 대결은 내가 지휘할 거예요. 그리고 대령주와 대장로께는 다른 곳을 맡길 겁니다.”
사마경의 말에 우문각이 눈을 조금 크게 떴다.
여주의 무림맹은 본진이다. 당연히 안휘의 정파세력보다 더 강하다.
그런데 약한 곳을 공손백과 나극에게 맡기고 강한 곳을 자신이 맡으려 하다니.
“너무 위험하오, 소성주.”
“이 한판으로 끝낼 생각이에요. 그렇다면 확실하게 보여줘야겠죠. 내가 성주가 될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하지만…….”
“내가 무림맹 본진과의 싸움을 피한다면 안휘 세력을 이긴다 해도 성주로 인정받지 못할 거예요. 아마 또 다른 싸움에 나서라고 하겠죠. 그렇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잖아요?”
전율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누누이 생각했던 바지만, 정말 천궁마신을 너무나 많이 닮아 있었다.
“하하하! 총사, 정말 강한 자들과의 싸움을 피한다면 자잘한 무리를 이긴들 누가 우리 구천성을 인정해주겠는가? 나는 강자들과 싸울 것이네!”
천궁마신은 그렇게 외치고, 하남과 안휘, 호북을 호령하고 있던 열 개의 문파를 무릎 꿇렸다. 그러고는 구천성을 천하제일세로 우뚝 세웠지 않은가.
‘소성주가 무림맹 총단을 맡겠다고 하면 공손백과 나극은 쌍수를 들고 환영할 거다.’
***
“무림맹마저 움직인다면 우리도 나서지 않을 수 없네. 어떻게 할 생각인가?”
나극의 말에 공손백이 바로 대답하지 않고 생각을 정리했다.
나극도 재촉하지 않고 찻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공손백이 말할 때까지 기다렸다.
공손백은 천천히 열을 셀 시간이 흘렀을 때쯤 말문을 열었다.
“우리 쪽에서 먼저 나서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거요.”
“우리가 먼저 나선다?”
“어차피 무림맹이 움직인다는 것은 기정사실입니다. 우리가 먼저 나서서 안휘 세력을 상대하면, 사마경으로선 좋든 싫든 무림맹의 주력을 상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흐음.”
“게다가 사마경은 전쟁에서 돌아온 지 아직 두 달도 안 되었습니다. 그런 사마경에게 또 전쟁터로 나가라고 윽박지르면 눈치를 보던 간부들도 반감을 갖게 될 겁니다. 반면에, 이번에는 우리가 나설 테니 소성주는 쉬라고 하면 그들도 우리를 달리 보게 되겠지요.”
나극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것도 좋은 생각이군.”
공손백의 말이 옳았다.
많은 간부들이 사마경을 연약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연약한 사마경을 몰아붙이는 모습을 보여줘 봐야 이익 될 게 없었다.
사람은 보편적으로 약자의 편을 들어주니까.
또한 무림맹의 주력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안휘의 세력을 상대하는 게 훨씬 나았다.
공손백이 또 다른 꿍꿍이를 갖고 있다는 건 생각도 못했지만.
“일차로 전력의 반을 보내서 그들의 진출을 차단하고, 상황 여부에 따라서 나머지 무사를 데리고 저와 대장로가 가는 겁니다.”
“좋네, 그렇게 하세.”
“그런데 독고태는 좀 어떻습니까?”
“요즘 들어서 나를 기피하네. 아무래도 민아 일에 내가 나서지 않는 것 때문에 화가 난 것 같아.”
“너무 걱정 마십시오. 그러잖아도 벽호당주에게 말해두었습니다.”
그때 방문 밖에서 문인동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대령주, 급히 아뢸 일이 있습니다.”
“들어와라.”
문이 열리고 문인동이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소성주께서 대구천령을 발동했습니다!”
공손백이 평소의 그답지 않게 눈을 치켜뜨고 경악한 표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뭐야? 이유는?”
“무림맹이 발호했으니 모든 권한을 임시성주인 소성주께 집중시키겠다고 합니다.”
구천성은 본래 여러 세력의 연합체이다 보니 성주의 절대권력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권한이 나누어질 수밖에 없었다.
구천대평의회도 그런 의미에서 만들어졌고, 십이지부가 자체적인 고유의 권한을 지니고 있는 것 또한 마찬가지의 이유였다.
그러나 대구천령이 발동되면 원인이 제거될 때까지 그 모든 권한이 성주에게로 집중된다.
구천성이 위기에 처했을 때 모든 권한을 성주에게 집중시키는 절대령이 대구천령인 것이다.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구천대평의회에서 대구천령을 발동할 만한 상황이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문제다.
무림맹을 비롯해서 천하가 구천성을 노리는 판이다. 지금 상황에서 위기가 아니라고 어느 누가 반박할 수 있단 말인가.
“젠장! 깜박 잊고 있었군.”
공손백이 그리 말할 만도 했다.
대구천령은 만들어진 이후 단 두 번밖에 발동된 적이 없었으니까.
“사마경을 만나봐야 하지 않겠나?”
나극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 역시 충격이 큰 듯했다.
“가시지요. 대구천령을 발동한 이상 우리를 피할 순 없을 겁니다.”
***
공손백과 나극을 비롯한 장로와 간부 십여 명이 구천무원으로 몰려갔다.
사마경도 그들이 올 거라 예상하고 있던 터여서 회의실로 나가 순순히 그들을 맞이했다.
장천운과 영호관을 비롯한 구천호령이 그녀를 호위하고, 우문각과 소연추가 동행했다.
그녀가 호위를 받으며 나타나자, 공손백이 거두절미하고 서두를 꺼냈다.
“소성주, 대구천령을 발동했다 들었네!”
“맞아요. 조금 전에 비령각을 통해서 알렸어요. 그 일 때문에 오셨나요?”
“모든 권한을 소성주께 집중시키겠다고 하셨다는데, 무슨 뜻인가?”
“말 그대로에요. 무림맹과 전쟁을 치르려면 지휘체계가 하나로 통일되어야만 해요. 설마 무림맹을 대충 상대할 수 있는 적으로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그 말에 대해서는 나극이 나섰다.
“그 말은 소성주의 말이 옳네만, 구천성은 소성주께서 혼자 지휘하기에 너무 거대한 세력이네.”
“너무 걱정하시지 않아도 돼요, 대장로. 싸움이 벌어지는 각 지역의 수장에게 어느 정도 자율적인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할 거니까요.”
“정말 모든 지휘체계를 소성주에게 집중시켜야만 하겠나?”
“아니면, 다른 방법이 있나요? 어디서든 패하면 모든 책임을 제가 지게 될 텐데요. 물론 패해도 저에게 책임을 일절 묻지 않겠다고 하신다면 계속 지금 체제로 갈 수도 있어요. 어때요, 그렇게 하시겠어요?”
사마경은 질문을 던지고 공손백을 직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