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223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89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223화
“우리가 온 걸 알면 겁에 질려서 도망이나 안 갈지 모르겠군.”
배청이 거만한 표정으로 끼어들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사마경은 그 꼴이 보기 싫었다. 혈겁을 당한 철기보 앞이다. 지금 거만을 떨 때인가?
“배 장로님, 그렇게 자신 있으면 선봉에 서라니까요?”
차가운 사마경의 대답에 배청의 목이 쏙 들어갔다.
‘제기랄, 오늘이 그날인가? 왜 저리 신경질적이야?’
그때 하후경이 말했다.
“소성주, 오늘 새벽에 무림맹 측이 강력한 공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누가 그들을 공격했는지 몰라도, 어쨌든 상당한 피해를 봤다고 합니다. 그래서 말씀입니다만, 이 기회에 본 보를 먼저 탈환했으면 합니다.”
“나도 그럴 생각이에요. 철기보에서 죽어간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당연히 철기보를 탈환해야죠. 그리고 미리 말씀드리지 못했는데, 무림맹은 흑월대에게 당했어요.”
“예?”
하후경뿐만 아니라 대전 안의 간부 대부분의 표정에서 놀라움과 의아함이 교차했다.
비조의 보고를 받은 우문각만 쓴웃음을 짓고 있을 뿐.
‘절묘한 때에 이야기가 나오는군.’
지난 밤, 장천운과 흑월대가 출동해서 무림맹의 주력을 뒤흔들어놓았다. 최소한 무림맹의 열손가락 중 하나는 부러뜨린 셈이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전쟁 전체의 판도가 바뀔 수도 있을 만큼 엄청난 성과였다.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는 육선기로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말씀이오, 소성주? 무림맹이 흑월대에게 당했다니요?”
“철기보 사망자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 흑월대를 출동시켰어요. 형제나 다름없는 지부의 무사들이 무수히 죽었거늘, 어떻게 우리만 편안하게 잠잘 수 있겠어요? 그런데 흑월대가 각산으로 향하는 무림맹의 암습조를 발견하고 공격해서 물리쳤지요. 개중에는 화산의 현오자와 소림의 기재라는 대운도 있었다더군요.”
간부들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지난 새벽에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인가? 그래서 흑월대원들이 그 모양 그 꼴이었던가? 자기들끼리 수련한답시고 밤새 미친 짓하다가 다친 줄 알았는데.
하후등안과 하후경의 커진 눈은 감격으로 파르르 떨렸다.
“그 후 서평까지 가서 한바탕 뒤흔들어 놓고 왔으니 무림맹 쪽은 타격이 컸을 거예요. 우리에게는 기회라면 기회지요. 저들이 전열을 정비하기 전에 공격할 것이니, 그리 알고 만반의 준비를 해두세요.”
하후경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피를 토하듯 힘차게 소리쳤다.
“감사합니다, 소성주! 선봉은 저희 철기보가 서겠습니다!”
풍운산장의 모후도 그 옆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외쳤다.
“저희 풍운산장도 철기보와 함께 선봉에 서겠습니다!”
감격에 찬 목소리가 대전을 뒤흔들었다.
다른 사람들도 분위기에 휩쓸려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미리 알고 있던 우문각조차 입을 열지 못했다.
사마경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전과 달라져 있었다.
차이는 미미했다. 하지만 그 차이에 담긴 뜻까지 작은 것은 아니었다.
그 동안은 사마경을 존경해서가 아니라 소성주이기 때문에 따르는 사람이 다수였다. 그런 사람들 가슴에 사마경이 구천성의 주인으로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우문각은 뜨겁게 달구어진 쇳덩이가 가슴에 들어찬 듯했다.
존경심은 누가 강요한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어린 여자에게 나이든 사람이 존경심을 표한다는 것은 더욱 더 쉽지 않다.
그런데 철기보와 풍운산장은 물론이고, 섭가장이나 화검문 사람들 역시 진심이 담긴 눈으로 사마경을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점입가경이군. 어쩌면 나도 이제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된 것 같구나.’
* * *
아침이 되자 동마보 전체가 들썩거렸다.
무림맹을 물리치고 철기보를 되찾기 위한 출동준비 때문이었다.
사마경도 자신의 거처가 있는 별원에서 연송하와 류화의 시중을 받으며 준비를 서둘렀다.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구천성 임시성주의 위엄을 보일 수 있는 복장을 갖추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옷을 세 번이나 입었다 벗었다. 머리를 비녀로 치장해보기도 하고, 묶어보기도 했다.
아무리 강호의 여인이라 해도 여인은 여인이었다. 복장을 갖추는 데만 반 시진이나 걸렸다.
복장을 갖춘 그녀는 동경을 바라보았다.
한 떨기 모란보다 더 아름다운 여인이 그 안에 있었다.
“너무 화려한 것 아닐까? 천운이 보기엔 어때?”
입구 쪽에 묵묵히 서 있던 장천운은 행여나 그녀가 옷을 바꿔 입겠다고 할까봐 겁이 났다.
치장하는 것을 반 시진이나 지켜본다는 것은 무척 지루한 일이었다.
“그 정도면 적당합니다, 소성주.”
“그래?”
“아마 저 뿐만이 아니라 구천성의 모든 무사들도 같은 생각일 겁니다.”
그제야 만족한 듯 사마경이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다.
그때 문 밖에서 백리우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소성주께 아룁니다. 속히 대전으로 나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야?”
“황군 위소(衛所)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동마보의 중앙대전인 백마전에 아침부터 무거운 분위기가 흘렀다.
넓은 앞마당에는 기다란 창을 든 군졸 오십여 명이 서 있었다. 장수들이 타고 온 말도 다섯 필이나 되었는데, 말의 주인들은 모두 백마전 안에 있었다.
사마경이 일행과 함께 백마전으로 향하자, 군졸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를 향해 움직였다.
말로만 들었던 구천성 소성주의 아름다움은 그들의 눈을 튀어나오게 하고도 남았다.
사마경일행이 백마전을 얼마 남겨 놓지 않았을 때 안에서 큰 소리가 흘러나왔다.
“훈련 중이어서 이동하면 안 된다니, 그게 무슨 소리요, 이 장군!”
“어허! 보주, 훈련 중에 무사들이 대규모로 이동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몰라서 묻는 거요?”
“내 어찌 모르겠소? 내 말은, 왜 하필 지금 훈련을 하느냔 말이오!”
“험, 그걸 내 어찌 알겠소? 나야 위에서 명령이 내려왔으니 훈련을 하는 것이지.”
그때 위사가 안쪽에 대고 사마경의 등장을 알렸다.
“소성주께서 오셨습니다!”
사마경이 안으로 들어가자 다섯 장수가 벌떡벌떡 일어났다. 눈이 휘둥그레진 것은 기본이고, 둘은 입마저 반쯤 벌어져서 침이 흘러나오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구천성 쪽 사람들은 하후등안과 우문각, 육선기 등이 나와 있었다. 그들의 표정이 착잡한 걸 보니 상황이 안 좋은 듯했다.
사마경은 도도한 표정으로 장수들 앞까지 걸어갔다.
“사마경이라 합니다. 아침부터 황군의 장수께서 어쩐 일이신가요?”
포권을 취한 그녀가 꾀꼬리 노래하듯 청아한 목소리로 묻자, 촉의 장비처럼 생긴 장수가 허겁지겁 두 손을 맞잡았다.
“천호장 이병득이오.”
옆에 서 있던 하후등안이 분노를 억누른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했다.
“황군이 훈련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 사흘 동안 동마보에서 이십 리를 벗어나면 안 된답니다, 소성주.”
사마경이 고운 아미를 찡그리며 물었다.
“장군, 본래 계획에 있던 훈련인가요? 황군의 훈련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습니다만.”
장비를 닮은 장수 이병득이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허허허, 본관 역시 갑작스런 훈련 명령에 당황하고 있소이다.”
“그 훈련, 꼭 오늘부터 해야 하나요?”
“명령이 그렇게 내려온지라…….”
“내일부터 하면 큰일이라도 나나요?”
“난들 어찌 그러고 싶지 않겠소이까. 하지만 황상의 명은 지엄한지라 어길 수가 없소이다.”
생긴 것은 장비 같은데 대답하는 게 너구리같았다.
“험, 그럼 본관은 이만 가보겠소이다. 훈련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거기다 미꾸라지처럼 은근슬쩍 빠져나가려는 수작까지.
“이 장군! 정말 이 하후등안과의 십년 우정을 이렇듯 무시할 거요?”
하후등안이 분노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이병득이 그를 바라보며 정색했다.
“하후 형과의 우정을 내 어찌 모른 척할 수 있겠소. 그래서 하는 말인데, 황상에 대한 나의 충정을 시험해보려고 하지 마시오.”
“이……!”
하후등안의 얼굴이 벌게졌다.
그가 폭발하기 직전에 이병득이 소리를 죽여서 넌지시 말했다.
“그나마 내가 지금 찾아온 것도 바로 하후 형과의 우정 때문이란 것만 알아주시오.”
하후등안의 눈에서 분노의 불꽃이 번뜩였다.
“그럼 역시 저놈들이……?”
“험, 그럼 다음에 봅시다.”
이병득은 노련하게 뒤처리를 하고 방을 나갔다. 그 이후에도 소식을 들은 고위간부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황군의 훈련으로 인해서 출정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분명 무림맹 놈들이 수작을 부렸을 겁니다.”
“빌어먹을! 꼼짝없이 당했어!”
“소성주, 이대로 있을 거요? 뭔가 방도를 마련해봐야 하지 않겠소?”
배청이 기회를 잡았다는 듯 사마경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사마경이 그를 바라보았다.
“일단 배 장로께서 귀도당 무사들을 데리고 철기보로 가세요.”
“예?”
“혹시라도 황군이 앞을 가로막으면 싸우지 말고 순순히 잡혀주세요. 자칫하면 황군에 대항한 죄를 물어서 수배령이 내려질지 모르니까요.”
배청의 눈이 커졌다.
“싫으세요?”
“황군이 훈련 때문에 움직이면 안 된다고…….”
“나도 알아요. 그래도 뭔가 해보긴 해봐야죠. 안 그래요?”
조금 전에 배청 자신이 한 말이었다.
배청은 그제야 사마경이 자신을 우회해서 다그치고 있다는 걸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끄응, 여우같은 년.’
갈수록 사마경이 무섭게 느껴졌다.
“못할 거 같으면 조용히 있으세요. 생각 방해하지 말고.”
“나야 뭐…… 좋은 방법을 찾아보자는 뜻으로 한 말이었을 뿐이외다. 험!”
사마경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장내의 간부들을 둘러보았다.
둘러서 있던 고위간부들은 말 몇 마디로 배청의 입을 막아버린 사마경에게 감탄을 금치 못했다.
배청과 한 마음이던 간부들조차도 이제는 사마경의 시선을 슬그머니 피했다.
“사흘이면 무림맹 본진이 철기보에 완전히 자리를 잡을 거예요. 앞으로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니 그 동안 수하들을 잘 이끌어주세요.”
“알겠소이다, 소성주.”
“그럼 이만 가보겠소.”
배청을 비롯한 간부들 몇이 눈치를 보며 대전을 빠져나갔다.
하후등안과 하후경 등 남아 있던 사람들은 분을 못 이기고 무림맹을 성토했다.
“비겁한 놈들!”
“신뢰를 깬 놈들의 행위를 만천하에 알려야 하오!”
황군과 강호는 서로 개입하지 않는다는 게 암묵적인 강호의 법도다. 그런 강호의 법도를 어기고 황군을 끌어들이다니!
그러나 성토만으로는 무림맹을 물리칠 수 없었다.
“모두 돌아가 계세요. 최대한 빨리 방법을 생각해내서 회의를 소집하도록 하겠어요.”
* * *
대전을 나선 사마경은 곧장 별원으로 돌아갔다. 상황을 전해 들었는지 호위대들의 분위기도 가라앉아 있었다.
우문각은 별원까지 그녀를 따라왔다. 사마경은 그의 동행을 막지 않았다. 뭔가 할 말이 있으니까 따라온 것 아니겠는가.
아니다 다를까, 방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우문각이 넌지시 입을 열었다..
“소성주, 정말로 무작정 기다리시기만 할 거요?”
사마경의 입가에 차디 찬 냉소가 떠올랐다.
“방법을 찾아봐야죠.”
“소수가 움직이는 것은 아무리 황군이라 해도 막을 수 없을 거요.”
우문각이 두 눈에서 각기 다른 눈빛을 번뜩이며 말했다.
사마경의 냉소가 짙어졌다.
“하긴 전쟁이라는 것이 꼭 전면전만 벌어지는 건 아니지요.”
“게다가 우리에게는 저들에게 치명상을 가할 수 있는 조직이 있지 않소?”
묵묵히 서 있던 장천운은 우문각의 옆모습을 노려보았다. 그가 말한 ‘치명상을 가할 수 있는 조직’이 누굴 말하는지는 굳이 물어볼 것도 없었다.
‘저 양반이 진짜……! 흑월대가 다 죽기를 바라는 거야, 뭐야?’
다행히 사마경은 생각이 다른 듯했다.
“흑월대는 연이은 작전으로 부상자가 많고 공력도 많이 소모되었어요. 부상이 덜한 대원도 하루 이틀 정도는 휴식이 필요해요. 그래서 말인데…… 총사 휘하의 사람들을 움직여보면 어떨까요?”
“비조의 힘만으로는 큰 성과를 볼 수 없소.”
우문각이 난감해하자, 사마경이 천천히 시선을 돌려서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묵조(黙組)가 나서면 해볼 만하지 않을까요?”
“…….”
우문각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졌다. 눈빛도 조금 전의 그와 판이하게 달랐다. 남에게 보이기 싫은 속살을 어쩔 수 없이 내보인 신경과민증 여인처럼 복잡하게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