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222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82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222화
“확실히 이상하군요.”
구양명과 소연추는 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조용한 것이 뭐가 이상해? 공손백 세력이 뒤에서 쑤셔대지 않고 조용히 있으면 좋지.
“뭔가 다른 뜻이 있다는 말이겠지. 예를 들자면, 다른 일에 신경 쓰느라 성 안의 일은 미루어두었을 수도 있고.”
“그 다른 일은 우리와 무림맹 간의 전쟁이겠죠.”
“그들이 어느 쪽의 승리를 바랄 거라고 봐?”
“아마 우리가 밀리기를 바랄 겁니다.”
“왜?”
“그래야 우리를 돕겠다며 정식으로 나설 수 있죠.”
“무림맹을 위해서 나설 수도 있잖아?”
“그럼 재미가 없거든요.”
“재미?”
“무림맹은 구천성과 달리 오랜 세월 사문과 가문으로 엮여 있는 세력입니다. 자존심이 강해서 부러질지언정 꺾이지 않는 자들이죠. 설령 천외가 그들을 도와서 구천성을 무너뜨린다 해도, 힘의 논리만으로는 그들 위에 군림할 수 없을 겁니다.”
사마경이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입꼬리를 살짝 비틀고 냉소를 지었다.
“그럼 지금쯤 기분이 별로겠는데?”
“그럴지도 모르죠.”
“근처 어딘가에서 지켜보겠지?”
“그렇다고 봐야겠죠.”
“잡을 수 있겠어?”
“해봐야죠.”
냉소를 지은 채 장천운 앞을 오가던 사마경이 걸음을 멈추고 쓱, 고개를 돌렸다.
“천운, 나에게 불만이 많은 모양이지?”
장천운은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홉떴다.
“제가요? 일개 호위무사가 위대하신 소성주님께 무슨 불만이 있겠습니까?”
“정말 없어?”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확실히 없지?”
“없……다니까요.”
쿡.
사마경이 검지로 장천운의 가슴을 찔렀다.
“여기에 대고 맹세할 수 있어?”
“그게…….”
쿡.
“정말 나한테 불만이 없다는 거지?”
“눼.”
“그럼…… 다른 사람에게 불만이 있는 거야?”
“예?”
“가령 눈치도 없이 남아서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 때문에 기분이 상했다든가…….”
“…….”
사마경이 고개를 쳐들고 장천운을 올려다보았다.
두 사람의 거리는 한 자도 되지 않았다.
구양명과 소연추는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류화도 눈치 빠르게 두 사람을 따라서 움직였다.
세 사람이 방을 나갈 때까지 사마경은 그 자세 그대로 장천운을 올려다보았다.
방문이 닫히자 사마경이 앞으로 한 걸음 더 내딛었다.
가슴과 배가 닿았다.
“천운, 팔 좀 뻗어봐.”
“아직 대낮인데요.”
“대낮이면 어때? 무슨 수상한 짓 하는 것도 아닌데.”
‘그건 소성주님 생각이죠.’
장천운은 속으로 그렇게 말하면서도 두 팔을 뻗었다. 사마경이 그 팔 안에 있었다.
천천히 손을 든 사마경이 장천운의 허리를 둘렀다. 그러고는 얼굴을 가슴에 대었다.
“천운의 가슴은 정말 넓어.”
장천운은 뻗은 손으로 사마경을 감싸 안았다.
온몸을 통해서 잔 떨림이 느껴지고 있었다. 마치 비오는 날 처마 밑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비 맞은 강아지 같았다.
‘두렵습니까?’
무섭기도 하겠지.
냉혹한 여왕처럼 도도한 그녀가 얼마나 여린 여인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그다.
“솔직히, 좀 무서워.”
‘저도 압니다.’
장천운의 손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 사마경이 어미 품을 찾는 새끼 새처럼 비비적거리며 파고들었다.
“끝까지…… 끝까지 나를 지켜줄 거지? 아무리 힘들어도?”
‘예, 아무리 힘들어도 지켜드리겠습니다.’
장천운은 말 대신 사마경의 어깨를 부드럽게 쥐었다. 대답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사마경의 얼굴에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한 미소가 떠올랐다.
‘천운만 내 곁에 있으면 돼. 그러면 난 어떤 어려움도 견딜 수 있어.’
그때만 해도 그녀는 장천운이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했다.
장천운만 곁에 있다면 그 무엇이든 포기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세상의 그 무엇이라도.
그 마음이 백 년, 천 년이 가도 변하지 않을 거라 믿었다.
* * *
백리우진과 백천대원들은 사마경의 방에서 나오는 장천운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자신들에게 호위를 맡기고 어딘가로 떠났던 흑월대원 대부분이 부상을 입고 돌아왔다.
강한 걸로 따지면 무림십룡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혁련기와 사공신, 구산도 엉망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아예 비교하는 것조차 우습게 되어버린 장천운조차 부상을 입은 듯했다.
도대체 어젯밤에 어딜 다녀온 걸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한바탕 한 모양이지?”
백리우진이 떠보았다. 그의 곁에는 강조와 양호평, 도양문, 여귀, 단수인이 있었다. 백천대 대원 중 백리우진의 측근이라 할 수 있는 자들.
그들 역시 귀를 쫑긋 세우고 장천운의 입을 주시했다.
“아주 확실하게 한바탕 했지.”
“어디서?”
“곧 알게 될 거야.”
“엉뚱한 짓이나 저지르지 않았으면 좋겠군. 너희들 때문에 우리까지 욕먹고 싶진 않으니까.”
장천운은 피식 실소를 지으며 삐딱한 투로 말했다.
“그럼 앞으로는 너희들이 우리 대신 가지 그래? 얼마든지 양보해줄 테니까.”
백리우진은 바로 대답을 못했다.
단순히 귀찮을 뿐인 일이라면 오기로라도 ‘그러지.’하고 대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장천운과 흑월대의 세 조장이 다쳤을 정도면 자신들은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 분명했다.
오기를 부리다 죽어봐야 죽은 사람만 손해일 뿐.
“그런 양보는 받고 싶지 않다. 소성주께서 직접 명령을 내리면 또 모를까.”
장천운은 여전히 실소를 지은 채 백리우진의 뒤쪽을 쓱, 돌아보았다.
“소성주를 지키는 일은 뽐내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다. 목숨을 걸 수 없으면 지금이라도 그만 둬.”
그와 눈이 마주치자 하나 둘 눈길을 돌렸다.
장천운은 냉소를 머금고 한마디 더했다.
“동마보로 가면 살얼음판 위에 올라선 상황이 될 거다. 살아서 돌아가고 싶으면 최선을 다해야 할 거야.”
“걱정마라, 장천운. 우리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으니까.”
강조가 자존심 상한 듯 코웃음 치며 쏘아붙였다.
그의 말대로 백천대 역시 강해졌다. 강조 자신도 강해졌다. 유고원에게 패한 후 이를 악물고 노력한 덕분이었다.
“그래? 그럼 다행이고.”
장천운은 가볍게 받아넘기고 돌아섰다.
그때 단수인이 소리 없이 몸을 날리더니 장천운의 등 뒤로 날아갔다.
백리우진 일행에게서 나는 인기척과 소음이 그의 움직임을 가려주었다.
눈 깜짝할 사이, 백리우진 등이 흠칫했을 때는 단수인이 이미 장천운의 뒤에 이르러 있었다.
이를 드러내며 차가운 미소를 지은 그가 손을 뻗었다. 그의 손에는 언제 들렸는지 한자 반 정도의 단검이 들려 있었다. 단검의 예리한 날이 화톳불 빛을 받아서 번뜩였다.
워낙 거리가 가깝다 보니 누구도 단수인을 말리지 못했다. 알면서 말리지 않았을 수도 있고.
실제로, 말리기는커녕 도와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었다.
몸을 돌린 장천운은 뒤에서의 상황을 전혀 모르는 듯 아무런 방어의 움직임도 없었다.
백천대원 중 몇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단수인의 단검이 장천운의 등을 정확하게 파고들고 있었다.
‘드디어 저 꼴 보기 싫은 놈을 잡는군!’
‘그래, 찔러라, 찔러!’
백리우진의 입가에도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제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저 공격만큼은 막을 수 없을 듯했다.
‘어디 어떻게 하나 볼까?’
그런데 눈을 의심케 만드는 광경이 벌어졌다.
분명 눈도 깜박이지 않고 빤히 보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 돌아섰는지 장천운이 단수인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아닌가.
백리우진의 눈이 커지는데, 퍽! 하는 소리가 나더니 단수인의 몸뚱이가 날아오던 곳으로 뒤돌아갔다.
바닥에 떨어져서 떼굴떼굴 굴러간 그는 안간힘을 다해서 일어나려 했다. 그의 얼굴, 특히 입술 근처가 피투성이였다.
침을 뱉자 하얀 조각이 핏덩이와 함께 나왔다.
이가 부러진 듯했다. 그것도 제법 많이.
“전에도 너처럼 설치다 이가 몇 개 빠진 자가 있었지. 음식 먹는데 불편해도 날 원망하지 마.”
냉랭히 말한 장천운이 백천대원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누구든, 고기 씹기 싫으면 말해. 시원하게 빼줄 테니까.”
백천대원들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들 중 이 빠진 자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도 자네가 강하다고들 하니 한번 시험해보고 싶었던 모양이네. 설마 진짜로 자네를 해치려고 했겠나? 이해하게.”
백리우진이 짐짓 웃으면서 말했다.
속이 썼지만 일단은 장천운을 달래야 했다. 장천운이 이 일을 핑계로 백천대를 제어하려 한다면 막을 방법이 없었다.
장천운은 그에 대한 대답으로 씩 웃었다.
“기왕 할 거, 백리 대주가 시험해봤으면 더 재미있었을 텐데.”
“하, 하. 내가 왜 그런 미련한 짓을 하겠나?”
백리우진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개자식, 원한다면 언젠가는 내가 직접 손을 쓰마. 그때는 반드시 네놈의 목을 따버릴 거다.’
* * *
철기보의 생존자와 풍운산장 무사들은 각산 동쪽 외곽에 있는 동마보에 기거하고 있었다.
동마보는 오십여 년 동안 철기보와 형제처럼 지냈다. 또한 철기보가 운영하는 마방 세 곳 중 하나인 각산마방을 책임지고 있었다.
본래 그곳에는 튼튼한 말이 천 필 이상 있었다. 그런데 구천성 무사대가 도착했을 때는 폭풍철기대의 말 오십여 마리 외에 노마와 병든 말 이삼십 마리만이 남아 있었다.
철기보가 공격당하기 전날, 황군이 갑자기 대규모 훈련을 한다며 끌고 갔다는 것이었다.
미시에 정양을 출발한 구천성 본진이 각산에 도착했을 때도 말은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사마경이 직접 구천성 무사대를 이끌고 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침체되어 있던 동마보의 분위기가 기름을 부은 모닥불처럼 활활 타올랐다.
철기보주 하후등안과 하후경, 동마보주 조동강 등 철기보와 동마보는 물론이고, 그들을 돕기 위해 몰려온 고수들까지 십 리나 나와서 사마경을 맞이했다.
패왕거에 타고 있던 사마경은 이십 리 떨어진 곳에서 미리 내렸다. 그러고는 무사들과 함께 걸어서 동마보 쪽 사람들과 조우했다.
마주 보며 걸음을 멈춘 그녀가 먼저 두 손을 맞잡고 눈 위에까지 올리며 죽은 철기보 무사들을 애도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에요. 구천성을 대표해서 이 사마경이 목숨을 잃은 철기보의 영령들께 진심으로 애도를 표하고자 해요.”
“고맙소이다, 소성주! 본 보를 돕기 위해 이 먼 길을 직접 오시다니. 더구나 패왕거도 타지 않고 걸어서 오신 걸 보니 그 마음에 감복할 뿐이외다.”
하후등안이 최대한 공손한 표정으로 두 손을 맞잡고 사마경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그의 좌우와 뒤쪽에 서 있던 사람들도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철기보 무사들의 원혼이 구천을 떠돌고 있을 텐데, 내 어찌 마차를 타고 여러분을 만날 수 있겠어요.”
경국지색의 미모를 지닌 그녀가 안타까움 가득한 표정으로 말하자, 철기보 사람들은 감격해서 눈물이라도 흘릴 듯했다.
“떠돌던 무사들의 혼도 소성주의 넓은 아량과 진심에 감격해서 편히 저승으로 갔을 거외다.”
“진심으로 그리 되었으면 해요.”
“보로 가시지요.”
구천성 무사대가 도착한 지 일각쯤 지난 후 동마보 대전에 삼십여 명의 고위간부가 모였다.
“황군이 말을 끌고 가는 바람에 힘을 제대로 쓸 수가 없었소, 소성주.”
철기보주 하후등안이 이를 갈면서 말했다.
철기보의 무력은 말이 절반의 비중을 차지한다. 말이 부족한 상태에서의 싸움은 화살 없는 활로 적과 싸우는 것과 같았다.
그런데 황군은 각산마방의 말만 끌고 간 것이 아니었다. 철기보의 주력 마방인 이창마방 역시 마사가 텅 비다시피 했다.
“무림맹이 황군을 움직였다고 봐야겠구려.”
우문각이 침중한 안색으로 말했다.
무림맹의 주력인 구문팔가는 황군과 각별한 관계를 수백 년 동안 유지해 왔다. 많은 제자들이 황군에 몸 담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황군의 무술훈련 역시 구문팔가 출신의 무장들이 도맡다시피 했다.
과거 구천성이 무림맹을 마지막까지 몰아붙이지 못한 이유도 그 때문이라는 말이 있었다.
황제와 적이 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말이다.
“총사, 무림맹 쪽의 움직임은 어떤가요?”
“지금 루하의 본진이 이창으로 내려오고 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