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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220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09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220화

소름 끼치는 냉혹한 손속.

장천운은 왕두성의 두 팔을 찰나에 제압하고는, 처절한 비명을 지르는 왕두성의 가슴 옷자락을 독수리발톱처럼 세운 좌수 오지로 잡아챘다.

찌이이익.

세 겹으로 된 질기디 질긴 비단옷자락이 종잇장처럼 찢어지며 가슴이 드러났다.

왼쪽 가슴에 세 줄기 깊은 고랑이 파여 있었다. 오래 전에 생긴 상흔이었다.

상흔은 유두 부분을 지나며 그어졌는데, 그 때문인 듯 유두가 떨어져 나간 상태였다.

“사실이군.”

장천운은 왕두성을 벌레처럼 취급하며 문등천 앞으로 던졌다.

“그대가 알아서 하시오.”

“사, 살려다오, 등천아…… 제발…… 목숨만…….”

공포에 질린 왕두성이 사시나무처럼 떨려 더듬거렸다.

문등천은 이를 악물고 칼을 휘둘렀다.

“어머니도 그렇게 말했는데 왜 죽였어! 왜! 하아만이라도 살려달라고 그렇게 빌었는데, 왜 죽였느냔 말이다! 일곱 살짜리 아이를!”

쉬아악!

칼날이 왕두성의 목을 긋고 지나갔다.

머리가 몸에서 분리되며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머리를 잃은 왕두성의 몸이 부들부들 경련을 일으켰다.

마음 같아서는 잘근잘근 다지듯이 죽이며 최대한 고통을 주고 싶었다. 시간 여유만 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렇게 한다 해도 가슴에 쌓인 한이 풀리지 않을 듯했다.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소. 그만 갑시다.”

문등천은 잘린 왕두성의 머리를 집어 들었다.

“이 자의 머리를 아버지와 어머니 앞에 바칠 겁니다.”

장천운은 문등천의 말을 들으며 청기도장을 바라보았다.

안간힘을 다해서 버티고 서 있는 청기도장의 눈빛이 거세게 떨리고 있었다.

“도장도 누구 말이 진실인지 아실 거요. 앞으로 이 사람을 흉악무도한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으면 좋겠소.”

청기도장은 내상도 내상이지만 정신적인 충격으로 입이 열리지 않았다.

자신의 눈으로 왕두성의 가슴을 봤다. 문등천의 말이 사실이라면 흉악무도한 자는 자신이 그렇게 감쌌던 왕두성이었다. 그 흉악무도한 왕두성의 말만 믿고 처절한 한이 쌓인 피해자를 죽일 뻔했다.

사십 년 동안 도를 닦았다는 자신이, 진실조차 구별하지 못하고 말이다.

그런 안목으로 제자들을 어찌 가르친단 말인가. 어찌 도를 논한단 말인가.

‘무량수불…….’

장천운은 넋이 반쯤 빠진 청기도장을 놔둔 채 창문을 부수고 문등천과 함께 내전을 빠져나갔다.

그 직후 전각문이 열리며 무사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 * *

 

담장을 넘은 흑월대원들은 전력을 다해서 대평장으로부터 멀어졌다.

오관과 유고원, 추소철, 목진화, 막소광이 큰 부상을 입었다. 장천운을 제외하며 자잘한 부상을 입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특히 막소광의 부상이 제일 심했다.

그놈의 입이 화근이었다. 무당파 도인들을 말끝마다 말코라고 놀려댔다가 화가 난 도인들의 집중공격을 받은 것이었다.

다른 사람도 막소광을 도울 여력이 없었다. 그 바람에 등과 다리에 제법 깊은 상처를 입고 말았다.

“빌어먹을 말코들. 왜 나만 공격해? 나하고 무슨 원수라도 졌어?”

막소광은 등평의 등에 업혀가면서도 무당파 도인들만 탓했다.

“멈추시오.”

장천운이 손을 들어서 일행을 멈춰 세웠을 때도 그는 무당파 도인들을 욕했다.

“무당파 말코들은 하여간 재수가 없다니까. 개새끼들이 산속에서 도나 닦을 것이지, 왜 나와서…….”

쉭.

장천운이 지풍을 날려서 등평의 등에 업힌 막소광의 혈도를 찍어버렸다.

“욕할 힘 남아 있으면 싸울 때 쓰쇼.”

막소광은 그래도 할 말이 많은 듯 입을 뻥긋거렸다. 아혈이 찍혀서 말이 나오지 않았지만.

혁련기가 장천운의 말에 안색이 급변해서 물었다.

“적이오?”

장천운은 전면을 바라보았다. 사람 키보다 큰 수풀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 수풀 속에서 강력한 기운이 바람에 실린 채 밀려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철기보에 있던 자들이 몰려온 것 같소.”

“어떻게 할 생각이오?”

장천운은 무심한 표정으로 전면을 둘러보았다.

최소한 백 이상의 숫자다.

다행이라면 아직 저들은 자신들을 감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일직선으로 수풀을 뚫고 갈 거요. 나와 혁련 형이 앞장설 테니, 사공 형과 구 형, 두 소저가 뒤를 맡아주고, 나머지는 중간에서 좌우를 방어하며 앞만 보고 달려가시오.”

“피해서 가는 게 어떻겠소?”

“넓게 퍼져 있어서 돌아가려 했다가는 시간만 지체될 거요.”

혁련기는 더 묻지 않았다.

장천운의 말을 들은 사공명신과 구산, 두양양이 뒤로 물러났다. 그들 역시 몸 여기저기 피로 물들어 있었다. 적의 몸에서 튄 피도 있었고, 자신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도 있었다.

상처를 제대로 손보지 못한 상태였지만 눈빛만큼은 활활 타올랐다.

 

촤아아악.

장천운과 혁련기가 제일 먼저 수풀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들이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수풀이 도망치듯 좌우로 갈라졌다.

그로부터 이십여 장쯤 전진했을 때, 여기저기서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수상한 놈들이다! 막아라!”

“적이다! 구천성 놈들이다!”

“놈들이 그쪽으로 가고 있소!”

무림맹무사들이 좌우로 넓게 퍼져 있는 것이 흑월대에게는 행운이었다.

무림맹으로선 적이 빠져나갈 곳을 최대한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 대신 포위망이 얇아지고 말았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적의 전진을 막는 것은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적의 발걸음이 잠깐 멈추었을 때 포위해서 공격하면 되지 않겠는가 말이다.

장로들의 무공은 흑월대 세 조장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았고, 이십여 명의 고수는 흑월대원들 개개인과 차이가 없었다.

거기다 경산일군 소정경까지 있었다.

아마 흑월대에 장천운이 없었다면 그들의 뜻대로 되었을 것이었다.

 

막는 자는 누구든 베었다.

삼십여 장 전진하는 동안 십여 명이 장천운의 검에 피를뿌렸다.

혁련기의 거검도 무시무시한 위력을 발휘했다. 그가 커다란 검을 휘두를 때마다 일장 이내의 수풀이 베어졌다. 달려들던 적도 베어지거나, 튕겨나갔다.

근처에 있던 자들이 뒤늦게 달려와서 좌우를 공격했다.

“이거나 먹어라!”

저두심이 먼저 표도를 선물했다.

느닷없이 날아든 표도에 맞은 서너 명이 공격도 제대로 못해보고 물러섰다.

가까이 접근한 자들은 흑월대원들의 악에 바친 도검을 상대해야만 했다.

몇 사람은 아름다운 두양양의 검이 얼마나 무서운지 온몸으로 실감하며 쓰러졌다.

그 와중에도 흑월대원들은 속도를 늦추지 않고 달렸다.

오십 장쯤 달려가자 공격이 뜸해졌다.

드디어 포위망을 뚫고 나온 건가?

바로 그때 장천운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멈추지 말고 달리시오!”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혁련기가 멈칫했다. 그러다가 장천운의 외침을 듣고 다시 땅을 박찼다. 흑월대원들도 뒤를 따라서 죽어라 달렸다.

장천운이 내려선 곳으로 하얀 수염과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한 노인이 다가오고 있었다. 경산일군 소정경, 그였다.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수풀이 양쪽으로 갈라졌다. 마치 수풀이 저절로 갈라지는 듯했다.

그는 달려가는 흑월대원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고 장천운만 바라보며 다가왔다.

“네가 장천운이란 아이냐?”

장천운은 대답하기 전에 상대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뇌리에서 한사람에 대한 설명과 이름이 떠올랐다.

“경산일군 소 노선배님이십니까?”

“그래, 내가 소정경이다. 네가 교왕 둔가부와 비등한 대결을 벌였다고 들었다.”

“소문은 왕왕 과장될 때가 있지요.”

“글쎄다. 내 보기에 꼭 과장된 말인 것만은 아닌 것 같구나.”

“저 때문에 오셨다면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만.”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왔든, 내가 막고자 한다면 어차피 그냥 갈 수는 없지 않느냐?”

“그렇군요. 그렇다면 지금까지 쓸데없는 이야기만 한 것 같습니다.”

화아아악!

장천운에게서 폭사하듯 뿜어져 나온 기운이 그를 중심으로 회오리쳤다. 사선으로 늘어뜨린 현월에서도 은은한 묵광이 쭉 뻗쳤다.

여유롭던 소정경의 표정이 굳어졌다. 말은 과장이 아닌 것 같다고 했지만, 속마음은 어느 정도 가볍게 대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아무래도 잘못 생각한 듯했다.

가슴이 답답해진 그는 공력을 끌어올려서 장천운의 기운에 대응하며 검을 뺐다.

웅혼한 진기가 도도히 흘러나와서 그를 감쌌다.

“후배가 선공을 취하겠습니다.”

장천운이 무심한 어조로 말하고는 찰나도 머뭇거리지 않고 몸을 날렸다.

소정경이 굳은 표정으로 검을 들었다.

보고 있으면 답답할 정도로 느린 속도였다. 그러나 장천운은 조금도 방심하지 않았다.

느리게 들어 올리는 소정경의 검첨에서 어둠을 짓누르는 강기가 발현되고 있었다.

장천운 역시 처음부터 팔성의 공력으로 천뢰구검을 펼쳤다.

어느 순간, 두 사람의 공세가 정면으로 뒤엉켰다.

콰르르릉, 쩌저적!

한밤에 천둥이 치고 벼락이 떨어졌다. 광풍이 불면서 강기의 폭우가 쏟아졌다.

경천동지의 대결!

직경 십여 장 일대의 수풀이 휩쓸리고 뒤집어졌다.

암천을 갈가리 찢어놓고 대지를 뒤집어버린 천둥벽력과 광풍폭우는 오십을 셀 즈음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두 사람 사이에서 휘돌던 거센 회오리바람이 마지막 비명을 끌어안고 멀어지자, 천지가 고요해졌다.

장천운과 소정경이 있던 자리는 수풀이 사라지고 공터가 되어버렸다.

두 사람은 삼 장 거리를 두고서 서로를 마주보았다.

바람에 흩날릴 때마다 머릿결 사이로 드러나는 장천운의 안색이 어둠 속인데도 약간 창백하게 보였다. 그 때문인지 무심한 표정이 더욱 차갑게 느껴졌다.

반면 소정경은 부릅뜬 눈매와 꾹 다문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

휘이이이잉.

세찬 돌개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거칠게 휩쓸고 지나갔다. 가루처럼 잘게 부서진 풀잎이 허공으로 솟구쳤다가 한쪽으로 쓸려갔다.

눈앞의 광경에서 스산함마저 느껴질 즈음,

“소문보다 더하구나.”

달라붙어 있던 소정경의 입술이 벌어지면서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장천운이 현월을 털 듯이 흔들며 답했다.

“소 노선배는 내기 지금까지 싸워본 사람 중 다섯 손가락에 드는 고수요.”

소정경의 이마 주름이 꿈틀거렸다.

다섯 손가락. 싸워본 자들 중에 자신과 비견할 수 있는 고수가 넷이나 더 있었다는 말이다.

새파랗게 어린 애송이가 언제 그런 자들과 싸워봤단 말인가. 결국 자신을 놀리려고 한 말 아니겠는가.

화를 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감히 자신을 놀리다니.

장천운인들 왜 그의 마음을 모르겠는가. 알기에 선수를 쳐서 그의 입을 막았다.

“자존심 상하실 것 없습니다. 그 사람들 누구도 소 노선배님 아래가 아니니까요. 그 중 하나가 공손백이라면 이해하실지.”

공손백이라면 자신도 딱히 할 말이 없다. 교왕을 더한다 해도 둘. 그럼 나머지 셋은?

“손우곤이라는 이름을 아십니까?”

누구지?

소정경은 이마를 찌푸렸다. 아무리 더듬어 봐도 기억에 없는 이름이었다.

“그럼 고완은?”

그 이름도 기억에 없다.

은근히 짜증이 났다. 이놈이 왜 생판 모르는 이름을 들먹이지? 설마 이름도 없는 자들이 자신보다 강하다는 건 아니겠지?

“정말 그 자들이 공손백이나 교왕과 나란히 할 정도더냐?”

혹시나 해서 떠보았다. 소정경의 자존심을 자극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진정으로 모르는 듯하다.

“혹시 하늘 밖에 있는 또 다른 하늘에 대해서 들어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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