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216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01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216화
“시주들은 누군가?”
현오자가 장천운을 향해 물었다.
장천운이 냉랭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오히려 내가 묻고 싶군요. 그대들은 누군데 이 밤중에 미친 들개 떼처럼 달려가는 거요?”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하려는 의도가 다분한 말투였다.
현오자는 수양이 깊은 도인답게 장천운의 도발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시주들이야말로 무슨 이유로 우리의 앞길을 막는가?”
“어떤 미친놈들이 내 친구의 집을 공격해서 가족들을 해쳤다지 뭐요.”
“친구의 집이라면 어딜 말하는가?”
장천운의 입술이 비틀렸다. 비틀어진 입술 사이로 드러난 하얀 이가 달빛을 받아서 반짝였다.
“철기보.”
촤아아아아…….
장천운의 한마디가 떨어지자마자 무림맹 무사들이 부챗살 형태를 이루며 전면을 압박해갔다.
“구천성에서 왔나?”
“맞소. 그대들은 무림맹 사람이겠지?”
“잘됐군. 안 그래도 구천성을 직접 치지 못해서 아쉬웠거늘.”
“아쉬워할 것 더럽게 없군. 죽지 못해서 안달하는 것도 아니고.”
“더 들어봐야 빈도의 귀만 더러워지겠군. 치우게나.”
현오자가 말하며 손을 들어서 앞을 가리켰다.
좌우로 퍼졌던 무림맹 무사들이 일제히 몸을 날렸다.
“구천성 놈들에게 정의가 살아 있다는 걸 보여줘라!”
“한 놈도 놓치지 마라!”
수풀 속에서 나온 흑월대원들은 날아드는 무림맹무사들을 보며 무기를 빼들었다.
“지랄하고 있네.”
“정의는 무슨? 말라비틀어진 지가 언젠데?”
“꼴같잖은 소리 신경 쓸 거 없어! 목을 쳐버려!”
악다구니 같은 고함소리가 가라앉기도 전에 무림맹무사들과 흑월대원들이 뒤엉켰다.
그때부터 달빛 아래에서 피 튀기는 혈전이 벌어졌다.
구천성과 무림맹 간에 벌어진 전쟁의 서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장천운은 자신을 향해서 날아드는 무사를 향해 좌수를 뻗었다.
이 장 앞까지 날아온 무사가 쾅! 하는 굉음과 함께 튕겨나갔다.
“갈 길이 바쁘니 빨리 끝내는 것이 서로에게 좋겠지.”
냉랭히 말을 내뱉은 장천운은 현오자를 향해서 발을 내딛었다.
한 발 내딛었다 싶은 순간에 사오 장을 미끄러져갔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현월이 뽑혀 있었다.
상대의 숫자가 흑월대보다 세 배쯤 많다. 죽이지 못하면 누군가가 죽는다. 적수공권으로 상대의 실력을 엿보고 자시고 할 시간이 없었다.
‘피해를 줄이려면 속전속결만이 최선이다.’
현오자도 화산파가 자랑하는 자하신공을 끌어올리며 매화검을 뽑았다.
상대는 젊었다. 이제 이십대 중반이나 되었을까?
본능에 경종을 울리는 묘한 강함이 느껴지긴 해도 뚫고 가는 것은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상대가 걸음을 내딛기 전까지만 해도 그런 마음이었다.
매화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 것은 상대와의 거리가 오 장으로 줄어들었을 때였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오싹한 느낌. 그는 자신도 모르게 매화검을 움켜쥐었다.
동시에 장천운의 현월이 벼락처럼 어둠을 갈랐다. 천뢰구검 중 전광일혼이 오 장의 거리를 찰나에 좁혔다.
쉬아아악! 쩌저저적!
현오자도 매화검을 뻗으며 마주쳐갔다. 그의 얼굴 어디에서도 조금 전의 여유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처음부터 화산파의 비전검법인 칠절매화검을 펼쳤다. 어지간한 검법으로는 상대의 검에서 뻗친 벼락을 막아낼 수 없을 듯했다.
촤라라라락!
어둠 속에서 열두 개의 매화가 피어났다. 검첨에서 피어나기 시작한 매화는 순식간에 크기를 키워가며 허공에서 나풀거렸다.
장천운도 초식을 구전관천으로 변화시켰다.
현월에서 뻗어나간 벼락이 아홉 가닥으로 갈라지더니 매화를 산산이 부수며 짓쳐들었다.
쩌저저정! 콰과광!
연이어서 터져 나오는 굉음. 현오자의 치켜뜬 눈이 파르르 떨렸다.
상대의 공격은 빠르고 강했다. 일말의 인정도 느껴지지 않는 검초. 정말로 벼락이 날아드는 듯했다.
찰나에 벌어진 사오 초 공방.
검과 검이 직접 부딪치지는 않았다. 각자의 검에서 뻗어 나온 기운이 뒤엉키고 충돌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거센 충격이 손끝, 발끝까지 저릿저릿하게 만들었다.
심장이 싸늘하게 식은 그는 본능적인 위기감에 이를 악물었다.
자신이 가진 재주를 모두 꺼내지 않으면 죽을지 모른다. 죽은 다음 후회하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타앗!”
일성 기합을 내지른 그는 천매오검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천매오검은 화산파의 최고무공 중 하나로 장문인의 후계자만이 익힐 수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가 천매오검을 익혔다는 것은 ‘현오자가 화산파의 차대 장문인으로 내정되었다’는 세간의 소문이 사실이라는 말이었다.
장천운은 화려한 현오자의 검을 대하고 두 눈에서 이채를 번뜩였다.
화려한 검은 실속이 없는 게 대부분이다. 그저 보기만 좋을 뿐.
그러나 현오자의 검은 달랐다. 화려함 속에 진중함이 담겨 있고, 아름다움 속에 바위조차 잘라버릴 예리함이 숨겨져 있었다.
화산의 모든 검이 천매오검에 모두 녹아 있는 것이다.
‘과연 명문정파의 검답군. 하지만 그 정도로는 천뢰구검을 막지 못해!’
장천운은 차가운 미소를 매단 채 현월을 비틀었다.
현월의 검첨에서 어둠보다 더 검은 묵광이 쭉 뻗어나갔다.
장천운과 현오자가 대결을 펼치는 동안 흑월대와 무림맹무사들 간의 격전이 혼전으로 치달렸다.
“으악!”
“크억! 이놈들이……!”
사방에서 비명과 고함이 터져 나왔다.
흑월대원들은 공격함에 있어서 멋을 부리지도 않았고, 시간을 끌지도 않았다.
수련할 때 멋을 부렸다가 장천운에게 작신 맞아본 게 어디 한두 번이던가. 멋을 부려보고 싶어도 본능이 말렸다.
단순하게 보이는 그들의 공격은 무섭도록 효과적이었다.
그들의 몸은 최소한의 힘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공격법을 무의식중에 깨닫고 있었다. 지옥의 수련을 거치며 터득한 그들만의 생존법이었다.
강마우와 임사유도 이제는 이가 갈리도록 지독했던 수련을 원망하지 않았다.
무림맹무사들은 그들보다 약하지 않았다. 전이었다면 오 초 공격을 받아내기 힘든 고수도 있었다.
그들과 비등한 싸움을 벌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벌떡거렸다.
쉬익!
“크억!”
“조심하쇼!”
저두심이 날린 표도가 강마우를 공격하던 자의 등을 뚫었다.
강마우는 당황하지 않고 칼을 휘둘렀다. 아래에서 위로 올려친 칼날 끝에 상대의 목이 걸렸다.
그대로 상대의 목을 갈라버린 강마우는 저두심 쪽을 향해 씩 웃어주고 다른 적을 향해 달려들었다.
“우리가 만만하게 보였나 보지? 그럼 만만하게 죽여주마!”
막소광은 입을 쉬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괜찮은 무기(?)였다. 무림맹무사들은 갑자기 막소광이 앞에 나타날 때마다 흠칫했다.
목진화와 수은귀, 등평이 그의 옆에서 싸웠는데, 그들 역시 일반적인 무사들과는 싸우는 방법이 달랐다.
그들은 철저히 약점을 노려서 공격했고, 급습도 마다하지 않았다.
패배하고 난 뒤에 비겁함을 논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러한 것은 살아난 뒤에 따져도 충분했다.
거기다 서로 잘났다며 떠들어대는 통에 무림맹무사들은 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한편, 대운은 혁련기를 상대하고 있었다.
그는 오만한 여유를 부리지 않았다. 처음부터 팔성 공력으로 나한금강장 십이초식을 줄줄이 쏟아냈다.
무쇠조차 부순다는 나한금강장의 강맹한 장력이 그를 중심으로 반경 일 장 이내를 장악했다.
혁련기는 거검을 뽑아들고 대운의 공세에 맞섰다. 그가 익힌 천붕십삼검은 부친인 혁련광조차 혀를 내둘렀을 정도로 위력이 강맹했다.
거검에서 폭풍처럼 뿜어져 나온 검기가 어둠을 장악한 대운의 장력을 무지막지하게 두들겼다.
대운도 이를 악물고 나한금강장에 반야신공을 더했다.
쿠구구궁!
귀청을 먹먹케 하는 굉음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숨 쉴 틈도 없이 칠팔 초식의 공방이 오갔다.
승부를 논할 수 없을 정도의 팽팽한 대결! 두 사람 주위 일대의 수풀이 먼지처럼 부서져서 회오리쳤다.
그러던 어느 순간.
콰광!
고막을 찢을 것처럼 엄청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두 사람은 이 장 거리를 두고서 물러서서 상대를 노려보았다.
대운은 상대가 예상 외로 강한 걸 알고 표정이 굳어졌다.
저 자는 누군가? 누군데 자신과 비슷한 나이에 자신에게 뒤지지 않는 무공을 익히고 있는 걸까?
혁련기도 경악했다.
“젊은 땡초가 대단하구나!”
소림의 제자인 듯했다. 나이도 자신과 비슷한 듯 보였다.
문득 정파에 있는 젊은 고수의 이름이 떠올랐다. 그 중에는 소림의 제자도 있었다.
“혹시 소림의 대운? 그대가 대운인가?”
“아미타불. 빈승이 대운이오.”
“나는 혁련기다. 소림제일기재를 이곳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군.”
대운도 혁련기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무림십룡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구천삼공자 중 하나가 바로 혁련기다.
“시주가 구천삼공자 중 한 사람이라 해도 본 맹의 행사를 막지는 못할 거요.”
“이런, 이런. 그대들은 지금 얼마나 무서운 사람을 만났는지 모르고 있군. 내가 그대 입장이라면 체면이고 뭐고 다 내던지고 똥줄 빠지게 도망갔을 거야.”
대운의 이마에 주름이 그어졌다.
구천삼공자쯤 되는 사람이 그런 저속한 표현을 쓰면서 도망 운운하다니.
그런데 누가 그렇게 무섭다는 거지?
혁련기가 자화자찬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면?
대운은 슬쩍 시선을 돌려 현오자 쪽을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쾅! 하는 단발의 굉음과 함께 현오자가 튕기듯 날아가는 게 보였다.
삼 장을 날아간 현오자는 바로 서지도 못하고 나뒹굴었다.
“현오 사숙!”
화산파의 젊은 제자 두엇이 경악성을 내지르며, 현오자와 싸우던 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이후 눈을 의심하는 광경이 벌어졌다.
한 줄기 광채가 어둠을 가르는가 싶더니, 화산파 제자의 검과 몸이 동시에 갈라졌다.
“검강!”
대운의 입에서 경악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절정고수도 구현하기 힘든 검강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펼쳐졌다. 그것도 길이가 무려 다섯 자였다.
과연 자신은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오래 생각할 것 없었다. 자신도 강기를 발출할 수는 있지만, 저렇게 자연스러운 검강 발현은 불가능하다.
다섯 자 길이의 검강을 저 정도로 자연스럽게 펼칠 수 있는 사람이 천하에 몇이나 될 것인가.
“저 시주는 누구요?”
“우리 흑월대 대주. 그대들은 오늘 염왕을 만난 거야.”
혁련기가 냉소를 지으며 거검을 다시 쳐들었다.
흑월대원들은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무림맹무사들 사이를 누볐다.
무림맹무사들도 고르고 고른 고수들이었다. 개개인의 무공은 흑월대원들에 비해서 크게 뒤지지 않았다. 정심함을 따지자면 그들 중 몇은 오히려 흑월대원보다 나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흑월대원들은 생사를 건 싸움에 이골이 난 사람들이었다. 이런 어둠 속에서 벌어진 싸움은 더더욱 능숙했다.
게다가 그들 중에는 절정고수만 해도 열 명 가까이 되었다.
일각. 무림맹무사들은 지옥을 경험해야만 했다.
“크억!”
“그쪽을 막아!”
“힘을 합쳐서 상대해!”
무림맹무사들이 여기저기서 악다구니를 써댔다.
콰직!
뇌정무극수가 가슴을 두들겼다.
뼈가 부서지며 가슴이 깊숙하게 함몰된 무림맹무사가 눈을 부릅뜨며 뒤로 널브러졌다.
장천운은 잠깐 사이에 무림맹무사 다섯을 무너뜨리고 현오자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나뒹굴었던 현오자는 사력을 다해서 일어났다. 관절 마디마디가 저릿저릿했고, 몸은 만근 철추가 매달린 것처럼 무거웠다.
그는 장천운이 다가오자, 자신도 모르게 두어 걸음 비틀거리며 물러서서 자하신공을 끌어올렸다.
공력이 오성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태.
장천운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가 거세게 떨렸다. 그는 자신에게 참담함을 가져다 준 자의 정체가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다.
“너는 누구…….”
“장천운.”
장천운은 이름만 짧게 내뱉고 발끝으로 땅을 밀었다. 그는 얼음판 위를 미끄러지듯 죽 나아가며 현월을 뻗었다.
바로 그때, 외마디 불호가 암천을 울렸다.
“아, 미, 타,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