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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212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22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212화

담장을 넘어가던 우곡은 고개만 살짝 돌려서 뒤를 돌아다보았다.

자신이 몸을 숨기려 했던 바위는 높이만 해도 일 장이나 되었다. 그 바위의 상단 절반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아마 조금만 늦었다면 바위를 가루로 만든 장력을 자신이 상대해야 했을 것이었다.

과연 아무런 피해 없이 그 기운을 맞상대할 수 있었을까?

솔직히 말해서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더 허탈했다.

‘헛소문이 아니었나?’

 

* * *

 

무화원으로 돌아온 장천운은 잠을 자지 않고 운공조식만 행했다.

축시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외곽의 장원을 공격한지 반 시진이 넘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천하의 운명을 판가름할 혼돈의 바퀴는 돌고 있으리라.

‘후우, 내가 뭔데 천하의 운명을 걱정하며 잠도 자지 않는 건지 원…….’

무창의 흑도 건달 출신이 천하를 걱정한다고 하면 지나가던 개가 배꼽을 잡고 뒹굴 것이다.

‘그래도 그 늙은이들은 용서할 수 없어.’

꿈속에서 매일 죽임을 당한 원한도 원한이지만, 지금은 패한 것이 더 기분 나빴다.

남들이야 그 사람들이 무슨 죄냐고, 네 꿈속에 나타나고 싶어서 나타났냐며 어이없어 해도 어쩔 수 없다.

반드시 만나서 이겨보고 싶었다.

호승심이라 해도 좋고, 젊은 놈의 쓸데없는 오기라 해도 좋았다.

자신이 수없이 겪은 고통을 그대로 느끼게 만들어 주리라!

 

장천운이 두 번째 대주천을 끝낸 후 기운을 다스리고 있을 때였다.

“다녀왔소.”

우곡의 나직한 목소리가 귀청을 울렸다.

눈을 뜬 장천운은 가부좌를 풀고 침상에서 내려왔다.

“수고하셨습니다.”

간단한 인사말이 끝나기도 전에 우곡이 다탁 앞에 나타났다.

평상시 무표정한 우곡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얼굴이 허탈함으로 가득 차있었다.

“지금까지 세상을 헛살았던 것 같소.”

장천운은 우곡 앞에 찻잔을 놓고 차주전자를 들어서 차를 따랐다.

“어땠습니까?”

“안으로 진입해서 가까이 다가갔다가 하마터면 들킬 뻔했소. 전이었다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설치다가 이 늙은이의 몸뚱이가 터졌을 거요.”

우곡이 한숨을 쉬듯 말하고 찻잔을 들었다.

장천운도 자신의 잔에 차를 따라서 한 모금 마셨다.

“세 사람 중 누구였습니까?”

“처음에는 청산자인 줄 알았는데, 돌아오면서 생각해보니 금룡신군일 가능성이 더 큰 것 같소.”

잠시 멈췄다가 말을 잇는 우곡의 목소리가 가늘게 흔들렸다.

“그로 추정되는 자가 장력을 날려서 만근 바위를 가루로 만들었는데, 소문으로만 들었던 금룡천강장이 아닌가 싶소.”

아주 오래 전에 허황된 소문이 돌았었다. 어떤 자가 장력 한방으로 작은 동산을 없애버렸다는 것이다.

그 동산 근처에 살았던 사람들은 그 말을 믿었는데, 오히려 동산의 존재를 몰랐던 자들은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게 말이 돼? 거짓말도 정도껏 해야지 말이야. 하면서.

이후 그 소문을 믿는 자들이 그자의 무공을 금룡천강장이라고 불렀다. 하늘에서 내려온 거대한 금룡이 똬리를 튼 후 동산이 사라졌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었다.

“우 노선배님, 그 장원에 다시 갔다 올 수 있겠습니까? 그곳의 주인에게 제가 쓴 서신만 전해주면 됩니다. 방법은 알아서 하시고요.”

우곡의 눈이 잘게 떨렸다.

저 밑바닥에서 오랜 세월 잊고 지냈던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고개를 들었다. 그런 한편으로는 상한 자존심에 대한 반발심과 호승심이 뜨겁게 솟구쳤다.

“그러리다.”

 

일각 후, 우곡은 장천운이 써준 서신을 장원의 주인에게 전하기 위해서 방을 나섰다.

장천운은 우곡이 나간 후 한참 동안 허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셋이 손을 잡은 게 아니라면 금룡신군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해. 그렇다면 그로서도 다른 둘을 견제하는 게 나을 거다.’

가능성은 오 할 이상. 충분히 시도해볼 만하다.

‘그가 받아들이기만 하면 두어 달은 시간을 벌 수 있어.’

짧으면 두 달, 길면 석 달.

전쟁이 시작되면 최대한 빨리 무림맹의 기세를 꺾어야 한다. 누구의 기세가 먼저 꺾이느냐에 따라서 승패가 달라질 테니까.

 

* * *

 

우곡이 장천운의 방을 나선지 반 시진쯤 지난 시각.

금선전 안에서 눈썹과 머리카락이 은은한 금빛을 띤 노인이 서신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강인한 힘이 느껴지는 부리부리한 눈에서도 은은한 금빛이 돌았다.

“우곤, 이놈의 말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동선궁 내실의 다탁에 얌전히 놓여 있는 서신을 시녀가 발견했다.

서신을 발견할 때까지 침입자가 내실을 들락거린 사실을 아무도 모른 것이다.

게다가 서신 옆에는 밑바닥에 찻물이 남아있는 찻잔도 있었다. 침입자가 차를 마시고 갔다는 뜻. 자신들을 농락하고 싶었던 건가?

금안노인은 모든 사실을 알고도 화를 내지 않았다. 자신이 직접 손을 쓰고도 잡지 못한 자다.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때려죽이고 싶은 놈이긴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맞아, 노부가 생각해도 놈의 말이 옳다. 정말 재미있고 대단한 놈이야. 한 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드는구나.”

금안노인의 말에 손우곤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그가 아는 태군은 지금껏 젊은 놈에게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다. 누군가를 가르치고 싶어 하지도 않았고,

사문의 무공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태천금룡신공을 자신에게 전수해준 것도 필요에 의해서였을 뿐.

“제자로 삼고 싶으십니까?”

손우곤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금안노인의 입술이 서서히 벌어졌다. 절대 웃지 않을 것 같던 그의 입가에 웃음이 맺혔다.

손우곤은 그 모습을 보고 눈매가 거세게 떨렸다.

십 년? 이십 년?

사제인 자신조차 사형의 웃음을 본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장천운, 그의 무엇이 사형을 웃게 만든 걸까?

“사문을 잇는 건 네가 알아서 해라. 나는 제자를 들이고 싶은 마음이 티끌만큼도 없으니까.”

“그럼 왜 그놈에게 그리 깊은 관심을……?”

금안노인, 금룡신군의 웃음이 점점 더 짙어졌다.

“노부의 끝을 알게 해줄 것 같거든. 어쩌면…… 인간의 껍질을 벗어버린 두 늙은이의 끝도 알게 해줄 수 있을지 모르고.”

“정말 그토록 대단한 놈이란 말입니까?”

“우곤.”

“예, 사형.”

“질투할 것 없다.”

“제가 어찌…….”

“우리 셋이 관심을 가진 놈은 지난 삼십 년 동안 그 놈이 처음이다. 네가 질투할 대상이 아니니라.”

손우곤의 눈이 점점 커졌다.

“그럼 다른 두 분도……?”

“보지 않아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느니라. 그 늙은이들도 틀림없이 그놈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을 것이다. 흐으음, 아주 오랜만에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겠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금룡신군이었다.

손우곤은 그런 금룡신군을 바라보며 자신의 생각을 넌지시 말했다.

“사마경이 출정할 때 제가 가볼까 합니다.”

금룡신군은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손우곤을 응시했다.

손우곤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한 줄기 실낱같은 바람이 자신의 몸 안을 샅샅이 훑고 지나가는 듯했다.

환한 대낮, 어디에도 숨을 곳 없는 확 트인 들판 한 가운데에 발가벗고 서 있는 느낌. 가슴 한 구석에 찌꺼기처럼 남아 있는 질시의 앙금을 들킨 것 같다.

그는 겨우 입을 열어서 변명이나 다름없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한 번 더 놈을 상대해보고 싶습니다.”

금룡신군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너로서는 그 놈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겠지. 원한다면 그렇게 해라. 그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구나.”

 

금룡신군이 웃음을 짓고 있던 그 시각.

우곡은 오십여 리 떨어진 곳의 들판을 가로지르며 풀잎을 스치듯 날아가고 있었다.

“지금쯤 서신을 발견했겠군. 침입자가 코앞까지 들어와서 차를 마시고 갔으니 자존심 깨나 상했을 거다.”

그는 소심한 복수를 계획했고, 성공했다.

어차피 살상력 높은 무공보다 신법이 장기인 그다. 아쉽긴 해도 그 정도면 절반의 복수는 한 셈이었다.

‘저들이 수십 년 동안 키운 고수가 세상 곳곳에 퍼져 있다면, 천하를 농락하고 있다는 소사조의 말이 허언이 아닐지도 모른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구나.’

금룡신군이 세상으로 나간다면 누가 그를 막을 수 있단 말인가.

하물며 그와 동격의 절대능력자가 둘이나 더 있지 않은가 말이다.

‘소사조가 왜, 무엇을 걱정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군.’

어쩌면 옛 친구들을 불러내야할지도 모르겠다. 구천성의 패도적인 군림이 싫어서 손을 털고 촌구석에 처박힌 친구들을.

구천성 때문이 아니다. 천하무림을 위해서도 아니다.

강호세력 간의 전쟁이 벌어지면 가장 큰 피해자는 힘이 없는 사람들이다.

삼류무사, 그리고 그의 가족들. 그들은 자신들이 왜 피해를 봐야 하는지도 모르고 피의 폭풍에 휩쓸릴 것이다.

‘어쩌면 그놈들이 더 좋아할지도 모르겠군.’

 

* * *

 

공손백과 나극이 출정한 지 나흘째.

공손백이 육안에 도착한 첫날에는 별다른 일 없이 대치상태를 지속했다.

싸움은 이틀째 되던 날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에만 해도 국지전이었다. 서로 상대의 전력을 탐색하는 탐색전 정도.

그런데 그날 저녁, 공손백이 강수를 두었다.

육안에서 백 리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청화장에 안휘의 정파고수 오백여 명이 운집해 있었다.

공손백은 기선제압이 전쟁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기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명령을 내렸다.

“청화장을 쓸어버려라!”

공격인원은 이백여 명. 모두 일류 이상의 고수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개중에는 절정고수만 일곱 명이나 되었고, 장로 오종이 총 지휘자였다.

공격의 기본 계획은 기습에 이은 속전속결.

이백 무사는 청화장의 담을 넘자마자 살수를 펼쳤다.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와 처절한 비명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악다구니와 공포에 질린 고함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어둠 속에서 벌어진 싸움은 이각 만에 끝이 났다.

정파무사 중 살아서 도주한 인원은 백여 명. 봄꽃이 만발했던 정원과 앞뒤마당에는 혈화가 가득 피어났고, 사백에 가까운 무사들이 시신으로 변했다.

그러나 안휘의 정파세력도 만반의 준비를 해놓은 터였다. 기습에 의해서 청화장이 당할 즈음 정파의 주력이 이십 리 근처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들은 청화장이 무너졌다는 보고를 받자마자 척마멸사의 기치를 높이 쳐들고 청화장으로 달려갔다.

동료의 시신을 추려내고 부상자를 치료하던 구천성 무사들은 전열을 정비하기도 전에 강력한 반격을 받아야만 했다.

결국 이백 무사 중 오십여 명만이 청화장을 빠져나와서 육안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의 전투는 그렇게 양패구상의 결과를 남긴 채 끝이 났다.

하지만 전쟁은 이제 시작이었다.

 

“치고 빠지라고 했더니 왜 남아서 머뭇거렸는가?”

대노한 공손백은 공격대를 이끈 오종을 엄중히 다그쳤다.

사백오십 대 백오십. 피해숫자만 생각하면 이긴 듯 보였다. 그러나 사망자 중 정파세력은 대부분 이삼류 무사들인 반면, 구천성은 일류고수들이었다. 심지어 절정 수준에 이른 고수도 셋이나 희생되었다.

하지만 오종도 할 말이 있었다.

“대령주의 명령대로 부상자만 추스르면 후퇴하려고 했소이다. 그런데 놈들의 지원군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가까이 와 있어서 대응할 시간조차 없었소이다.”

“놈들이 가까이 있었다고?”

“그렇소이다. 놈들이 코앞까지 다가오는 동안 우린 아무런 보고도 받지 못했소이다.”

공손백의 이마에 주름이 파였다.

시신과 부상자를 팽개치고 후퇴하라는 말을 할 수는 없다. 사실이 그렇다면 오종의 잘못만도 아니다.

공손백은 적에 대한 감시를 책임지고 있는 경혼당주 동태국을 노려보았다.

“동 당주, 어찌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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