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210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098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210화
단숨에 십여 장을 날아간 장천운은 깃털처럼 가볍게 지붕 위에 내려서서 장원 안을 둘러보았다.
장원 안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일원장을 버리고 쫓겨나다시피 외곽으로 거처를 옮긴 자들이다. 자존심이 상했을 테니 분위기가 어두운 것도 당연했다.
‘어디 흔들어볼까?’
장천운은 두 발에 공력을 집중해서 아래쪽으로 쏟아냈다.
‘쥐새끼들아! 밖으로 나와 봐라!’
우르르릉.
지붕이 통째로 흔들리더니 무너져 내렸다.
“무슨 일이냐?”
건물 안에서 경악한 고함이 터져 나왔다.
“건물이 무너진다! 밖으로 나가!”
뒤이어 여기저기서 십여 명이 쏟아져 나왔다. 그 사이 지붕이 밑으로 꺼지면서 건물의 반쪽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콰르르릉, 콰광!
밖으로 나온 자들은 지붕 위를 올려다보았다.
반쯤 무너진 건물 지붕 위에서 한 사람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오연히 서 있었다.
“장천운이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손우곤도 장천운을 알아보고 눈을 부릅떴다.
“네놈이었구나, 장천운!”
구천성의 눈을 피해서 두 번째 안가로 이동한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다. 무사들의 출입을 최대한 자제했는데도 이렇게 빨리 드러날 줄이야.
“오늘은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놈!”
손우곤의 외침과 동시에 무사들이 건물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장천운은 다른 때와 달리 곧장 현월을 뽑았다. 달빛을 받은 현월이 묵광을 뿜어냈다.
“저번하고는 좀 다를 거다.”
잠깐 사이에 이십여 명이 완벽한 그물을 펼쳤다.
“여기도 있다!”
구양명이 일갈을 내지르며 담장을 넘어서 들어왔다.
무사 대여섯 명이 그를 향해 돌아섰다. 강호에서는 아는 이 없지만 나름대로 고수라는 자부심을 지닌 자들이었다. 그들은 상대가 천한마검일 줄은 생각도 못하고 조소를 지으며 달려들었다.
구양명은 이십여 년 강호를 종횡한 고수답게 노련했다.
장원 안으로 들어선 그는 상대가 경각심을 갖고 대처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검을 빼든 그는 곧장 천외의 무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콰아아아아!
가공할 검기의 폭풍이 회오리치며 전면의 무사 셋을 향해 밀려갔다.
“조심해라!”
이적문이 구양명의 강함을 눈치 채고 벼락같이 소리쳤다.
때늦은 외침이었다. 그가 외침과 동시에 회오리치던 검기가 무사들을 덮쳤다.
천외의 무사들도 전력을 다해서 맞섰다. 하지만 그들의 상대는 천한마검이었다. 천하 마도무사들의 최정점에 올라 있는 천중십마 중 일인.
쩌저정!
상대의 검을 휘감아서 부러뜨린 검기는 충격으로 경직된 천외 무사의 신체를 마저 휩쓸고 지나갔다.
부러진 검신이 허공으로 비산하고, 비명이 뒤를 이었다.
“크억!”
“끄으으으.”
뒤늦게 무사들의 갈라진 몸에서 피분수가 뿜어졌다.
한 사람은 팔이 잘리고, 한 사람은 복부가 쩍 갈라진 상태였다. 겨우 검기의 폭풍에서 벗어난 자도 허공을 격한 충격으로 혈맥이 파괴되어서 안색이 창백해진 채 비틀거리다 주저앉았다.
“네놈은 누구냐?”
눈을 부릅뜬 이적상이 경악성을 내질렀다. 나름대로 구천성의 고수들을 파악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디에도 저런 고수는 없었다.
구양명은 대답 대신 또 다른 먹이를 향해서 검을 뻗었다.
한눈을 팔면 인정사정없이 검을 들이대는 흑월대원들을 숱하게 상대해본 그였다.
기회가 왔을 때 때려잡지 못하면 역으로 당할 수도 있다는 걸 온몸으로 깨우친 터였다.
츠츠츠츠!
그가 뻗은 검에서 시퍼런 강기가 형성되었다.
쩡!
검날 두 개가 중동에서 부러져 나갔다. 한 사람은 검과 함께 얼굴이 갈라지고, 다른 하나는 안색이 해쓱해진 채 뒤로 물러섰다.
구양명은 멈추지 않고 검을 사선으로 그었다.
채찍처럼 쭉 뻗어나간 검기가 뒤로 물러서는 무사의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옷자락과 가슴살이 쩍 벌어지고 뼈가 갈라졌다. 무사가 눈을 부릅뜬 순간, 심장어림에서 핏줄기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이놈!”
“너는 우리가 상대해주마!”
이적상과 이적문이 노성을 내지르며 날아들었다.
바로 그때, 장천운이 지붕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수하들이 죽어가는 데도 눈길을 주지 않고 장천운만 쳐다보고 있던 손우곤 역시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는 내심 자신이 있었다.
며칠 전 장천운은 부상을 당한 채 도주했다. 외상뿐만 아니라 내상까지 당했다. 고수들의 대결에서 당한 내상은 쉽게 낫지 않는 법.
아무리 장천운이 젊고, 좋은 약으로 치료했다 해도 아직 완벽하진 않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손우곤이 쳐든 쌍장에서 웅혼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며 용권풍처럼 휘 돌았다.
콰아아아아.
고막을 먹먹케 하는 기음과 함께 어둠이 그를 중심으로 휘 돌며 점점 범위를 넓혀갔다.
십 장 허공으로 떠올랐던 장천운도 현월을 머리 위로 쳐든 채 떨어져 내렸다.
솟구치던 손우곤과의 거리가 순식간에 이 장으로 줄어들었다.
장천운은 냉소를 지으며 현월을 내리쳤다.
공력이 집중된 현월에서 다섯 자 검강이 쭉 뻗는가 싶더니, 천지를 쪼개는 벼락이 손우곤을 향해 떨어졌다.
천뢰만파(天雷萬破). 그가 각고의 노력으로 최근에 완성한 천뢰구검 중 제 팔검의 초현이었다.
쩌저저적!
어둠을 두 쪽으로 가르며 떨어진 벼락은 손우곤의 장력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콰아아앙!
일성 굉음이 천지를 뒤흔들었다.
충돌의 여파가 두 사람을 중심으로 파문처럼 퍼지더니, 반쯤 무너졌던 건물의 나머지 부분마저 주저앉혔다.
절대 경지에 도달한 두 사람의 정면 대결은 속된 말로 무시무시했다.
부서진 기왓장이 사방으로 날아가고, 먼지구름이 어둠을 뚫고 뭉게구름처럼 피어났다.
충돌 직후 튕겨나가듯 십여 장을 뒤로 날아가서 지상에 내려선 손우곤은 얼굴이 일그러졌다.
치켜뜬 그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가슴이 콱 막혀서 숨조차 쉬기 힘들었고, 진기조차 토막 난 듯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예상치 못했던 결과, 머릿속마저 뒤엉켰다.
장천운 역시 충격이 작지 않았다. 검을 쥔 손의 감각이 사라진 듯했고, 목구멍에서는 핏물이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어차피 대화를 하려고 찾아온 것이 아니지 않는가.
현월을 움켜쥔 그는 구륜심법으로 진기를 휘돌리며 땅을 박찼다.
‘다시 한 번 받아봐라!’
그는 일직선으로 쭉 날아가며 현월로 허공을 찍었다.
삼전뇌격(三電飛擊). 현월의 검첨에서 생성된 세 줄기 벼락이 손우곤을 향해 뻗어나갔다.
“오냐, 이놈! 어디 한번 해보자!”
쌍장을 쳐든 손우곤의 키가 세 치쯤 줄어들었다. 두 발이 바위처럼 단단하게 다져진 땅을 파고든 것이다.
사생결단을 내고야 말겠다는 자세.
어떻게 보면 오기였다. 잘못된 판단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 자신만의 오기.
정(丁)자로 두 다리를 철주(鐵柱)처럼 땅에 박은 그는 쌍장을 엇갈려서 쳐내며 혼신의 공력을 쏟아냈다.
태천금룡공(太天金龍功). 그가 오십 평생을 익힌 천하제일의 공부다.
비록 팔성 경지에 도달한 후 십여 년 째 진전이 지지부진하지만, 천하에 그의 적수라 할 만한 자는 열 명이 채 안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악다문 그가 쌍장을 쳐낸 순간, 어둠이 절대의 기운을 품은 해일이 되어서 장천운을 향해 밀려갔다.
손우곤 주위에 있던 건물의 잔재들도 산더미 같은 파도에 떠밀리듯 쓸려갔다.
콰르르르릉! 콰광! 콰아아아아!
뭉게구름 속에서 천둥번개가 치고, 태풍이 불었다.
근처에 있던 천외의 무사 중 서넛이 그 여파에 휩쓸려서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뒤로 날아갔다.
절대고수들의 생사를 건 정면대결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더욱 무시무시했다.
가히 인간의 한계를 넘은 초인들의 대결!
장천운은 삼전비격에 이어서 천뢰회공과 전륜폭을 펼치며 손우곤의 철벽같은 장세를 두들겼다.
그러던 어느 순간,
떵-!
천공이 터지는 듯한 공명음이 울리고, 두 사람의 공세가 멈추었다.
건물의 잔재가 허공으로 붕 뜨는가 싶더니, 두 사람을 중심으로 방원 십 장 크기의 원을 그리며 밀려났다.
두 사람은 그 원의 중심에서 삼 장 거리를 둔 채 서서 마주보았다.
손우곤은 키가 반 자쯤 더 작아져 있었고, 장천운이 들고 있는 현월의 검강도 길이가 반쯤 줄어든 듯했다.
쏴아아아아.
대기가 회류하며 모래 쓸리는 소리가 사람들의 심장을 할퀴었다.
“참으로…… 어이가 없구나. 너 같은 애송이에게 이런 꼴을 당하다니.”
손우곤이 먼저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의 입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올 때마다 실 같은 핏줄기가 주르륵 흘렀다.
“가끔 이런 맛도 있어야 사는 재미가 있지 않겠수?”
장천운이 입술 끝을 비틀며 마치 살만큼 산 노인네처럼 말을 받았다.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는데, 주위를 휘도는 먼지바람 때문인지, 내상 때문인지 알기가 힘들었다.
손우곤은 미간을 꿈틀거리며 장천운을 노려보았다.
놈도 자신 못지않게 심한 내상을 입은 것은 확실했다. 다만 어느 정도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만약 자신보다 나은 상태라면?
그거야말로 최악이었다.
짧은 시간에 생각을 정리한 그는 미련을 두지 않았다.
“오늘은 이쯤에서 멈추는 게 서로에게 좋을 것 같구나.”
그때였다.
“크윽!”
이적상이 한쪽 가슴을 움켜쥐며 뒤로 몸을 날렸다. 이적문도 이를 악물고 비틀거리며 서너 걸음 물러섰다.
기다렸다는 듯 손우곤의 신형이 쑥 암천으로 솟구쳤다.
“다음에 만나면 반드시 네 머리를 따서 무게를 재볼 것이다, 장천운!”
장천운은 어둠 속으로 빨려들 듯 사라지는 손우곤을 바라만 보았다.
“누구 머리가 떨어질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
그의 말대로 오늘은 더 싸우고 싶어도 참아야 했다. 손우곤을 잡는다 해도 내상이 더 커지면 남는 게 없다.
그 사이 이적문이 이적상을 옆구리에 끼고 천외의 무사 십여 명과 함께 도주했다.
구양명도 그들을 쫓아가지 않았다.
이적상, 이적문 형제는 전력을 다하기에 적당한 상대였다. 덕분에 몸속 깊이 잠들어 있던 패기를 마음껏 발산했다.
그 정도만으로도 만족했다.
‘내가 손우곤이라는 자와 싸웠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문득 조금 전 본 광경이 떠오르자, 북풍한설 같은 냉기가 등골을 타고 꼬리뼈까지 내려갔다. 몸이 으스스 떨렸다.
‘정말 하늘 밖에 또 하늘이 있었구나. 어떤 자들이지?’
한편으로는 그런 고수를 도망치게 만든 장천운이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웩!
허리를 굽힌 장천운이 피를 한 모금 토해냈다. 입가에 묻은 피를 쓱 닦은 그가 고개를 쳐들고 실소를 지었다.
“훗, 이거 소성주한테 또 한 소리 듣겠는데요?”
구양명은 그런 장천운이 더 편하게 느껴졌다. 괴물처럼 보인 장천운도 사람은 사람인 듯했다.
‘하긴 사람인 이상 그런 대결을 벌이며 무사하면 이상하지.’
그때 장천운이 그에게 물었다.
“몸은 괜찮습니까?”
그제야 현실로 돌아온 구양명이 갑자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윽!’
이적상, 이적문 형제를 이긴 대가로 그 역시 세 군데 이상 상처를 입은 것이었다. 다른 생각만 하느라 그 상처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끄응, 선자가 잔소리깨나 하겠군.”
그는 사마경보다 소연추의 잔소리가 더 걱정이었다. 어차피 사마경은 장천운에게 신경 쓰느라 자신은 걱정할 틈도 없을 것이었다.
피식, 실소를 지은 장천운은 들끓는 진기를 가라앉히며 어둠 속을 쳐다보았다. 손우곤이 사라진 곳을 향한 그의 눈에서 싸늘한 한광이 번개처럼 스쳐갔다.
‘우곡 노선배께서 제대로만 해주신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