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209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92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209화
잘생기고 서생처럼 순한 겉모습 때문에 많은 여무사들이 자신을 향해 추파를 던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장천운과 수련동기였다는 이유만으로 흑월대원이 된 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얼마나 독한 싸움꾼인지는 알지도 못하고.
‘어쩌면 그래서 저자도 나를 목표로 삼았는지 몰라.’
유고원은 검을 쥔 손에 힘을 주면서 입술 끝을 비틀었다.
그때 접근하던 자가 말을 건넸다.
“장천운 대주에게 전할 말이 있다.”
응? 자신이 아니라 장천운이 목적이었어?
유고원은 실망감과 안도감이 뒤섞인 표정을 지으며 돌아섰다.
평범한 얼굴, 처음으로 보는 자였다. 복장을 보니 새로 만들어진 오대에 속한 자인 듯했다.
나이는 삼십 대 중반쯤? 쳐다보는 눈빛은 차가웠고, 자세도 흔들림이 없었다.
“무슨 말을 전하겠다는 거요?”
“직접 전해야 하니 장천운 대주에게 나오라고 해라.”
“대주를 불러 달라? 대주가 뭐, 당신이 오라고하면 오고 가라고하면 가는 사람인 줄 아쇼?”
유고원의 말끝이 살짝 올라갔다. 장한도 조소를 지었다.
“중요한 일이니 빨리 가서 나오라고 해. 아마 약속한 일 때문에 왔다고 하면 달려 나올 거다.”
“약속? 무슨 약속? 뭘 알아야 말을 하든 말든 할 거 아뇨? 말하기 싫으면 직접 가서 만나든가.”
“생긴 건 순둥이 같은 친구가 입이 제법 거칠군.”
장한의 목소리에서 짜증이 묻어 나왔다.
그는 자신이 하찮은 일개 대원과 말다툼이나 벌이는 상황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흑월대원들이 일반 대원과 다르다는 건 알지만, 그래봐야 결국 ‘대원’ 아닌가 말이다.
“상관에게 말을 전하라는데 밑에 있는 사람이 자꾸 토를 달다니, 아랫사람 교육이 전혀 안 됐군.”
교육? 그 말만 들어도 솜털이 곤두선다.
아마 흑월대원 대부분이 자신과 같은 반응일 것이다.
“거 웃기는 사람이네. 당신이 뭔데 훈장질하는 거야?”
유고원은 툭 쏘아붙이고 공력을 끌어올렸다.
장한의 조소가 짙어졌다. 언뜻 살기가 번뜩였는데 그 이상 밖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내가 대신 교육을 시켜줘야 할 것 같군.”
“그것도 좋지. 어디 같잖은 교육 한 번 받아볼까?”
* * *
장천운은 방으로 들어온 유고원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옷자락이 엉망이고, 순하고 잘생긴 얼굴에 아침에만 해도 없던 멍이 두어 군데나 시퍼렇게 자리 잡고 있었다.
“누구하고 싸웠어?”
“아닙니다. 수련을 좀 심하게 했더니…….”
유고원은 대충 그렇게 둘러댔다. 그리고 장천운이 더 묻기 전에 본론을 꺼냈다.
“누가 대주를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장천운은 유고원의 말을 듣고 눈빛을 번뜩였다.
“……모용 성을 쓰는 아가씨가 보냈다고 하는데, 지금 무화원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말을 전한 유고원이 수상하다는 듯 가늘게 뜬 눈으로 장천운을 쳐다보았다.
장천운은 못 본 척하고 일어섰다.
“그래? 무슨 일이지?”
고개를 갸웃거린 그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방을 나섰다. 유고원은 장천운이 등을 보일 때까지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송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마쇼, 대주.’
장천운은 그의 의심을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아예 대놓고 사람을 보내는군. 너는 내 손 안에 있다, 이거지? 못생긴 게 머리를 제법 굴리네.’
무화원 입구로 나가자, 어둠 한쪽 구석에 삼십대 장한이 서 있었다.
어둠속에서 보이는 그 자의 모습도 유고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름대로 머리카락과 옷을 정리하긴 했지만 찢어져서 나풀거리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얼굴의 반을 차지할 정도로 두툼한 입술은 제법 큰 충격을 받아서 퉁퉁 부은 것이 분명했다.
그는 장천운이 다가가자 신분을 묻지도 않고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 내밀었다.
입구를 봉인한 봉투였다. 얇은 것으로 봐서 서신이 들어 있는 듯했다.
“답은 필요 없다고 하셨소.”
봉투를 받아든 장천운은 장한의 두툼한 입술을 빤히 바라본 후 그 자리에서 봉인을 뜯었다. 생각했던 대로 봉투 안에는 서신이 들어 있었다.
달랑 한 장. 내용도 길지 않았다.
장천운은 서신의 내용을 쓱 훑어보았다.
어둠이 짙긴 하지만 그의 시야를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다.
잠시 서신을 내려다본 그가 고개를 들었다.
“알았다고 하시오.”
장한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섰다. 그는 그저 빨리 그 자리를 뜨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빌어먹을. 생긴 것은 곱상한 놈이 그렇게 독할 줄 누가 알았나?’
장천운은 그가 사라질 때까지 바라본 후 몸을 돌렸다.
서신의 내용은 간단했다.
[동생, 구천성에서 동쪽으로 오십 리 정도 떨어진 거양진 좌측 한적한 곳의 장원에 그가 있다. 인원은 이십여 명 정도…….]
장천운은 서신을 움켜쥐어서 가루로 만든 후 허공에 날렸다.
‘흥, 내가 그를 제거해주면 너는 편하겠지? 좋아, 일단은 나도 아쉬운 게 많으니 원하는 대로 해주마.’
출정하기 전에 가시 하나 뽑아내는 셈 치면 되는 일이다.
그런데 뭐? 동생?
“웃기고 있네.”
* * *
차를 마시고 있던 우곡은 촛불이 흔들리자 허리를 세웠다.
“오셨소?”
나직한 그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 눈앞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장천운이었다.
전면을 빤히 바라보던 우곡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흔적도 없던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는 거야 놀랄 것도 없다. 자신도 그 정도는 할 줄 알았으니까.
문제는 그의 시선을 완벽하게 속였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기척을 눈치 챈 것도 장천운이 배려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 동안 소득이 있었던 모양이구려.”
“운이 좋았습니다.”
정말이다. 지독한 독에 중독되었던 사람이 독의 칠팔 할은 해독했고, 덤으로 공력까지 늘었다. 덕분에 환술법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었지 않은가 말이다.
진짜 대박이었다.
하지만 우곡은 장천운의 말이 마음에 안 들었다.
수십 년간 목숨을 걸고 노력한 자신도 못 이룬 단계에 도달한 장천운이다.
그런데 거기에서 한 단계 더 오르는 걸 단지 운으로 이루었다고?
약 올리는 것 같으니 화가 날 수밖에.
“그런 운, 언제 이 늙은이도 한번 겪어봤으면 좋겠구려.”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기분 나쁜 일은? 아무 일도 없었소이다.”
장천운이 와서 ‘운’ 운운한 것만 빼면.
“그런데 어쩐 일로 이 제자를 다 찾아오셨소?”
다른 사람의 의심을 사지 않으려고 한 동안 만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찾아왔다면 그저 차나 마시려고 온 것은 아닐 것이다.
“논의할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뭘……?”
“혹시 하늘 밖에 또 다른 하늘이 있다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장천운은 미끼를 던지고 우곡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미세한 의문점만 있어도 우곡과의 관계는 오늘로써 끝이었다.
다행히(?) 우곡은 홀쭉한 얼굴로 눈만 멀뚱멀뚱 깜박였다.
“그게 어디요?”
더 물어본들 시간만 아까울 듯했다. 그래서 질문을 바꾸어보았다.
“금룡신군이나 청산자, 암천신마라는 이름은 들어보셨습니까?”
우곡의 멀뚱하던 표정이 서서히 이지러졌다. 아주 오래 전의 기억이 가물가물 떠올랐다. 이제는 잊히다시피 해서 저 구석에 처박혔던 기억이.
“정말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구려.”
“저도 얼마 전에야 들어봤습니다.”
“하긴 그들에 대한 전설이 사실이라면 하늘 밖의 하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거요.”
“그들에 대해서 얼마나 아십니까?”
“한참 젊을 때 언뜻 들어보았소. 전부 거짓말 같은 이야기여서 듣고 코웃음 쳤지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말을 조심했다.
그 이야기와 관련된 사람들 모두 강호에서 내로라하는 고수들이어서, 함부로 떠들어댔다가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한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그 바람에 그 이야기는 입 밖으로 꺼내서는 안 되는 강호의 금언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는 그 이야기가 사실일지 모른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다.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몰라도 그들에 대해선 신경 끄시구려. 허황된 이야기만큼이나 허황된 사람들이니까.”
“저도 신경을 끄고 싶습니다만, 그럴 수 없어서 문제입니다.”
“왜……?”
의아한 표정으로 장천운을 바라보던 그의 눈이 다시 커졌다.
“설마?”
“그들과 전쟁을 한판 벌여야할지 모르거든요.”
“맙소사……!”
우곡의 입에서 헛바람 빠지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어쩌다 그런 사람 같지도 않은 괴물들과 엮여서…….”
그는 말끝을 흐렸다. 그러고 보니 눈앞에 있는 젊은 어른도 같은 괴물과 아닌가 말이다.
끼리끼리 논다더니 옛말이 딱 맞다.
“옛날부터 꿈속에서 매일 싸웠죠. 항상 제가 죽는 역할이었지만요.”
“예?”
장천운은 간략하게 사정을 설명했다.
자신이 꿈속에서 얼마나 많이, 얼마나 비참하게 죽었는지. 나중에서야 자신을 죽인 자들의 이름을 알아냈다는 것도.
우곡은 그 이야기만으로도 눈이 한껏 커지고 입이 딱 벌어졌다. 얼굴에 살이 없어서 눈이 튀어나오고 턱뼈가 분리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살다 보니 그런 경우도 있더군요.”
장천운은 남의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태연히 이야기를 맺고 피식 실소를 지었다.
우곡은 꾸민 이야기가 아님을 깨닫고 소름이 끼쳤다.
“그럼 그 괴물들이 활동을 다시 시작하기라도 했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그것도 바로 여기, 구천성 근처에서 얼쩡거리고 있더군요.”
“……!”
“그 일 때문에 우 노선배님께 부탁할 것이 있습니다.”
* * *
우곡을 만나고 온 장천운은 구양명을 찾아갔다.
구양명은 밤늦게 찾아온 장천운이 야속했다.
소연추를 만나러 갈 것인지 고민 중이었거늘. 지금 찾아가면 못이긴 척 문을 열어줄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곧 마음이 바뀌었다.
“일원장의 잔당들이 숨어 있는 곳을 알아냈다고?”
“그렇습니다. 지금 가볼 생각인데, 함께 가실 겁니까?”
구양명은 피가 끓었다.
장천운을 도망치게 만든 자들 아닌가. 한번 붙어보고 싶었다.
소연추와의 즐거운 밤이야 다음에 또 기회를 노려보면 될 것 아닌가.
“그런 일이라면 당연히 가야지. 그런데 몇 사람이 가는가?”
“저와 구양 대협만 갈 겁니다.”
구양명의 눈이 휘둥그러니 커졌다.
“우리 둘만? 사람들을 더 데리고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장천운도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누가 천외 사람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마 사람들을 동원해서 움직이기만 해도 저들의 귀에 들어갈 것이었다.
“일단 가서 살펴보고, 안 되겠다 싶으면 물러나서 다른 방법을 찾아볼 겁니다.”
“소성주께 말씀은 드렸나?”
“상황을 봐서 보고를 드릴 겁니다.”
장천운은 구양명과 함께 구천성을 나섰다.
그들 같은 고수에게 오십 리는 먼 거리가 아니었다. 어둠도 그들의 앞을 막지 못했다.
이각 후, 거양진에 도착한 장천운은 모용예가 전해준 서신을 떠올리며 손우곤의 거처를 찾아냈다.
손우곤이 기거하는 장원은 외진 곳에 떨어져 있어서 찾기가 어렵지 않았다.
건물 서너 채의 지붕이 맞닿아 있는 장원은 일원장보다도 더 작은 듯했다.
“다행히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모용예는 삼십 명쯤 된다고 했다. 그 정도라면 해볼 만했다.
“일단 쳐보고 안 되겠다 싶으면 물러날 겁니다. 너무 무리하진 마십시오.”
구양명은 물러날 생각부터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상대는 장천운을 개 쫓듯 몰아낸 자들 아닌가.
“알았네. 좌우간 오랜만에 힘 좀 써볼 수 있겠군.”
이전의 그가 아니었다. 흑월대와 드잡이질을 하면서 그 역시 강해졌다.
“제가 먼저 들어가보죠.”
장천운이 짧게 말하고는 신형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