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23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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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08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239화
“일단 셋을 찾아냈소.”
구양명이 침중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는 사마경의 밀명을 받고 천외의 하수인들을 조사하고 있었다.
대상은 조장급 이상의 간부들.
그 일은 흑월대가 비밀리에 진행했다. 모두 그 일에 투입된 것은 아니다. 본래 흑월조였던 사람과 사공명신, 두양양, 그리고 방호 일행만 나섰다.
구천성 무사였던 일조원, 그리고 이조원 중 은명객들은 제외되었다.
“감시를 붙여놓았다 하니 곧 그들과 연결된 고리를 찾을 수 있을 거요.”
“아마 우리가 예상하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을 거예요. 철저히, 최대한 찾아내라고 하세요.”
사마경의 목소리에서 짙은 피냄새를 느낀 구양명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 * *
사밀령 중 사령주 초광은 장천운의 죽음에 대한 조사를 맡았다.
그는 지난 십여 일 동안 은천동은 물론 은천궁 주위 수십 리를 이 잡듯이 뒤져보았다. 그러다 계곡 깊숙한 곳에서 수상한 통나무집을 찾아냈다.
통나무집 주위는 한눈에 평범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엄청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움푹움푹 파인 땅은 곡괭이나 삽으로 파낸 것이 아니었다. 근처의 바위와 나무도 망치나 깨부수고 도끼로 자른 것이 아니었다.
강력한 기운의 충돌. 그것도 절정고수들의 충돌이 있었다.
“누가 여기서 싸운 거지?”
침석산 외진 곳에 있는 깊은 계곡이다. 강호고수들이 싸울만한 곳이 아니었다.
게다가 최소 서너 명이 싸운듯했다.
“일대를 철저히 뒤져라! 작은 흔적도 놓치지 마라!”
초광은 사밀령 수하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통나무집으로 들어갔다.
통나무집 안쪽 방에는 단 하나의 흔적만 남아 있었다.
누군가가 문이 달린 곳의 벽을 부순 듯했다. 통나무로 된 문이 밖으로 떨어져 나갔고, 문틀 부근의 벽은 통째로 뭉개진 듯 깨끗하게 뚫려 있었다.
그 흔적을 살펴본 초광은 손에 땀이 찼다.
“무시무시한 장력에 맞았군.”
도대체 누가 싸웠기에 이런 흔적이 남아 있는 걸까?
“령주, 더 이상 다른 흔적은 찾지 못했습니다.”
수하 하나가 말했다.
“그래? 알았다.”
초광은 방을 나가려고 돌아서면서 나무침상을 대충 훑어보았다.
그때 침상 밑에 떨어져 있는, 솜처럼 부드러운 뭔가가 보였다. 그 물체는 나무 침상의 다리 뒤쪽에 있어서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지나쳤을지 몰랐다.
‘뭐지?’
허리를 숙이고 그 물체를 주워든 초광은 곧 물체의 정체를 깨달았다.
“꽤 좋은 솜 같은 걸?”
좋은 솜은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그 솜에서 은은한 냄새가 났다. 기분이 상쾌해지는 약향이.
“아하, 약을 감쌌던 거군.”
무심코 그렇게 말하던 초광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솜을 코에 대고 다시 냄새를 맡아보았다.
상당히 시일이 지난 것 같은데도 은은한 약향이 남아 있다. 게다가 단순한 약향이 아니다. 매우 고급스러운 향기다.
누군가 내상을 입은 사람이 있어서 약을 쓴 걸까?
그렇다면 내상을 입은 사람은 누구?
혹시…… 장천운?
‘한번 조사해볼 만하겠는데?’
실낱같은 단서지만, 꼬리를 잡고 끈질기게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는 몸통을 만날지 모른다.
그러한 단서나마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천양지차다.
‘좋아, 어디 누가 이기나 보자. 이 초광이 얼마나 끈질긴 놈인지 보여주마!’
빈손으로 돌아가면 말대가리 일령주가 닦달할 것은 뻔한 일. 무슨 수를 쓰더라도 확실한 뭔가를 찾아내야 했다.
그때 문득 든 생각.
‘장천운이 살아 있다면 어디로 갔을까?’
* * *
초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대홍산에서 수주로 향하는 길목에 세 사람이 나타났다.
노인 하나와 젊은 남녀 한 쌍.
거처를 떠나온 남사명 조손과 장천운이었다.
장천운이 대홍산에 도착한지 보름 만에 세 사람이 함께 대홍산을 나선 것이다.
남사명과 남초초는 작은 괴나리봇짐을 하나씩 둘러매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대처로 나갈 작정을 하고 거처를 떠나온 것이다.
장천운은 두 사람보다 훨씬 큰 봇짐을 메고 있었다.
자청해서 멘 봇짐에는 남사명 조손이 사용할 자잘한 물건이 들어 있었다.
그는 제법 무겁게 보이는 봇짐을 메고도 날 듯이 가볍게 걸음을 옮겼다.
남사명 덕분에 내상도 치료하고 내공의 칠팔 할을 되찾은 그였다. 그 대가로 피 두 사발을 내놓았는데, 전에 것보다 사발의 크기가 배는 더 컸다.
그래도 어쨌든 내상도 낫고 공력도 늘었으니 손해 본 것은 없었다.
대홍산을 떠난 지 사흘 후, 장천운 일행은 마침내 무창에 도착했다.
무창에 들어오면서 얼굴을 변용한 장천운은 일단 객잔에 들어가서 흑월회의 상황을 먼저 알아보았다.
점소이 말에 의하면, 얼마 전 봄에 흑월회의 주인이 바뀌었다고 했다.
신임 흑월회 회주의 성은 왕씨였다.
왕씨 신임 회주는 단 열흘 만에 무창의 뒷골목을 평정해서 점소이조차 경외의 표정을 짓게 만들었다.
“정말 놀라운 분입죠. 게다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잘해 주시니 무창에 생불이 오신 것 아니겠습니까요?”
왕규가 생불?
그 냉혹한 정보장사꾼이?
장천운은 어이가 없었지만 반박하지는 않았다. 반박하면 점소이가 음식에 돌 부스러기를 한 주먹 넣을 것 같았다.
‘좌우간 생각보다 잘 처리한 것 같군.’
만족한 장천운은 곧장 홍구로의 흑월회로 향했다.
남초초는 무창의 모든 것이 신기한 듯 한시도 눈을 가만두지 않았다.
청초한 그녀가 쉴 새 없이 두리번거리자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허름한 옷으로는 그녀의 아름다움이 다 감춰지지 않았다. 약간 절룩거리는 다리도 그녀에게는 흠이 되지 않았다.
길거리를 걷던 남자들은 그녀를 보고 넋이 빠져서 침이 흐르는 줄도 모르고 입을 헤 벌렸다.
아마 그녀 옆에 사람을 흠칫하게 만드는 남사명과 장천운이 없었다면 몇 명쯤은 어떻게든 수작을 부려봤을 것이었다.
흑월회 총단은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랬다.
그러나 장천운의 눈에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우선 흑월회 정문 앞을 지키는 자들부터 이전과 전혀 달랐다.
건들거리는 건달이 아니라 강호의 무사였으니까.
장천운 일행이 곧장 정문으로 다가가자 정문 앞에 서 있던 위사 중 하나가 예리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회주님을 만나려고 왔소.”
“회주님을?”
“대홍산에서 남 선배가 오셨다고 하면 아실 거요.”
위사는 장천운이 왠지 모르게 께름칙하게 느껴졌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시골청년 같았다. 아마 눈만 마주치지 않았어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평범해 보이는 시골청년의 눈과 마주친 순간 숨이 멈추어졌다. 마치 호랑이와 마주친 어린 양처럼.
그러한 기분을 느낀 시간은 순간적이었지만 그 기분만큼은 금방 사라지지 않았다.
더구나 한쪽에 묵묵히 서 있는 노인은 눈이 마주치는 것조차 겁이 날 정도로 눈빛이 매서웠다.
아마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아름다운 아가씨가 없었다면 잔뜩 긴장해서 검을 먼저 뽑았을지 몰랐다.
‘뭐하는 자들이지?’
그때 남초초가 말했다.
“이곳 회주님을 할아버지와 오빠가 잘 아세요. 그러니 빨리 가서 말씀드려 봐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위사는 그녀의 말이 떨어지자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시골청년의 말과 노인의 표정보다 그녀의 말 몇 마디가 훨씬 더 믿음이 갔다.
“알겠습니다.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잠시 후. 왕규가 헐레벌떡 뛰어나왔다.
“아이고, 오셨습니까, 선배님! 어이구, 남 소저도 함께 오셨구려.”
그는 남사명과 남초초에게 인사를 건널 때만 해도 변용한 장천운을 알아보지 못했다.
장천운도 그러려니 하고는 넌지시 말을 건넸다.
“신수가 좋으신 것 같군요.”
왕규는 의아한 표정으로 장천운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아나? 누군데 독왕 남사명과 함께 온 거지?
남초초가 웃음을 지으며 한마디 했다.
“오빠에요.”
오빠? 남초초에게 오빠가 있었던가? 그녀가 오빠라고 부를 만한 사람은 하나밖에 없는 걸로 아는데?
그제야 왕규는 시골청년의 눈이 누군가의 눈을 닮았다는 걸 깨달았다. 목소리도 거의 같았고.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혹시 자네……?”
“요즘 생불 소리 듣는다고 하던데, 보정루 사람들이 알면 턱이 빠지겠는데요?”
‘보정루’라는 말로 확신을 가진 왕규는 헤어졌다가 십 년 만에 만난 가족처럼 들뜬 표정으로 장천운을 반겼다.
“드디어 왔구먼! 으허허허허, 잘 왔네, 잘 왔어.”
장천운의 눈에는 그런 왕규가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사람이 달라졌다 해도 정도가 지나쳤다.
사람의 본성은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거늘.
그래서 넌지시 물어보았다.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환하게 웃던 왕규가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하세. 뭐, 조금 심각한 문제가 있긴 했는데, 자네가 왔으니 이제 다 해결된 거나 마찬가지네.”
장천운 일행이 왕규를 따라서 흑월전에 들어갔을 때, 그 안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궁천도 곽교진과 호양청.
장강을 건너며 왕규와 헤어질 때 호양청을 찾아보라고 했는데 다행히 제대로 이행한 듯했다.
반면 곽교진과 호양청은 방안으로 들어서는 장천운 일행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항상 능글능글하던 왕규가 정신없이 뛰어나가기에 대단한 사람이라도 온 줄 알았다.
아니라면 죽은 부친이 저승에서 돌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그리 방정을 떨었을 리 없었다.
그런데 강퍅한 인상의 빼빼마른 약초꾼 노인과 아름다운 여인, 그리고 커다란 보따리를 맨 신체 좋은 시골청년을 데려오는 것 아닌가.
더 이상한 것은 왕규의 표정이 무척 밝다는 것이다. 조금 전만 해도 죽을상이었거늘.
골치가 지끈거린다며 하루 종일 온갖 인상을 써대더니, 혹시나 머리에 이상이 생긴 거라도?
“인사 하시지요.”
그래도 어쨌든 왕규가 웃으며 그렇게 말하자, 곽교진과 호양청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왕규는 먼저 곽교진을 남사명에게 소개했다.
“남 선배님, 여기 이분이 궁천도 곽 대협이십니다.”
“곽교진이오.”
곽교진이 건성으로 포권을 취했다.
그는 들뜬 표정을 짓고 있는 왕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이 어떤 상황인데 저런 표정이란 말인가?
그래도 자신보다 나이를 더 먹은 노인과 인사를 나누는 터라 당장 다그치지는 않았다.
“남사명이네.”
남사명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마주 인사했다.
곽교진의 미간 사이가 꿈틀거렸다.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 같은데 기억이 가물거렸다.
‘어디서 들었더라?’
친구네 큰 형도 아니고…… 동네 뒷집 아저씨도 아니고…….
그런데 호양청이 먼저 남사명의 이름을 기억해내고 대경한 표정으로 말했다.
“헛! 혹시 독왕 남사명 대협……?”
그제야 기억을 떠올린 곽교진이 황급히 포권을 다시 취했다.
“곽교진이 미처 남 선배를 몰라 뵙고 실수를 범했습니다.”
남사명은 그의 실수를 신경 쓰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십 몇 년 만에 나온 사람이니 몰라보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 너무 신경 쓰지 말게나.”
때마침 남초초가 인사를 건네서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었다.
“할아버지와 함께 온 초초에요.”
곽교진처럼 나이 먹은 사람도 그녀의 아름다움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물며 젊은 호양청은 몸이 굳어버렸다. 천은방의 소방주로서 숱한 여인을 만나본 그조차도 남초초 같은 느낌의 여인은 처음이었다.
‘하늘 아래에 저렇게 청초한 여인이 있다니!’
그 바람에 인사 건네는 것도 잊고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결국 왕규가 그를 소개했다.
“저 입을 벌리고 서 있는 청년은 천은방의 신임 방주인 호 방주네, 남 소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