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238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06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238화
왕칠은 조심스럽게 말한 후 장천운의 눈치를 살폈다. 돈이 없다고 하면 요리접시를 그대로 들고 갈 작정이었다.
“먹고 주지.”
“저희 풍원객잔은 음식값을 선불로 받습니다.”
“그럼 치우게. 나도 기분 나빠서 먹기가 싫군.”
‘흥! 기분 나쁜 게 아니라 돈이 없는 거겠지.’
왕칠은 속으로 코웃음 치며 장천운을 째려보았다.
그때 장천운이 젓가락을 들어서 탁자를 콕콕 찍었다.
“다른 곳에 가서 먹어야 하나…….”
대나무로 된 젓가락이 단단한 나무탁자에 푹푹 박히며 구멍을 냈다.
그 광경을 본 왕칠은 즉시 순발력을 발휘했다. 열일곱 꽃다운 나이에 인생을 종칠 순 없는 일 아닌가.
“그럼 이번만 봐드리죠. 대신 드신 후 꼭 음식값을 주고 가시기 바랍니다.”
“나도 공짜는 싫네.”
“맛있게 드십시오. 헤헤헤.”
장천운은 음식을 먹고 그 대가로 장작을 패주었다.
왕칠과 객잔주인의 입이 찢어지도록 많이 패주었는데, 그 덕분에 그날 밤은 풍원객잔에서 잘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장천운은 아침식사까지 얻어먹은 후 객잔을 나섰다.
철기보에는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간다 한들 지금의 몸 상태로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을 테니까. 도움은커녕 짐만 될 뿐.
자신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알리지도 않을 생각이었다.
아직은 아무도 모르는 게 나았다.
객잔을 나선 장천운은 곧장 동백산을 넘었다.
그가 대홍산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이틀이 더 지났을 때였다.
대홍산에 간 이유는 당연히 독왕 남사명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남사명은 독뿐만 아니라 의술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 점이 바로 귀독마종과 다른 점이었다.
‘독왕 노선배라면 내 몸의 회복기간을 앞당길 수 있을지 모른다.’
그것이 남사명을 만나려는 첫 번째 이유였다.
두 번째 이유는 그를 끌어내기 위해서였다. 남초초만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강호의 전쟁에서는 무공만이 전부가 아니다. 누군가가 독을 쓴다면 한순간에 전세가 뒤바뀔 수 있었다.
‘독왕 노선배만 합류하면 독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텐데…….’
* * *
장천운은 수주의 외곽에서 밤을 보낸 후 대홍산으로 들어갔다.
왕규와 함께 갈 때는 오래 걸리지 않았었다. 힘든 줄도 몰랐다. 그때는 무공이 온전했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절반도 가기 전에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대홍산이 이렇게 험준했나?’ 오죽하면 그런 생각마저 들 정도.
과거 도둑들의 단체인 녹림이 대홍산에서 발원한 것도 이해가 되었다. 오죽하면 녹림산이라 불렀을까.
힘겹게 남사명이 사는 계곡에 들어선 장천운은 커다란 바위가 형제처럼 나란히 서 있는 곳에 서서 안쪽의 통나무집을 향해 소리쳤다.
“남노선배니이이임!”
부르고 한참이 지났는데도 대답이 없었다.
이후로 몇 번 더 불러봤지만, 남사명이 나타나지도,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혹시 떠나신 것 아냐?’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남사명이 이곳을 떠나기라도 했다면 찾아온 의미가 없었다.
“남 노선배니이이임! 초초야아아아아!”
다시 한 번 불러보았다. 이번에는 초초도 함께 불렀다.
이번에도 대답이 없으면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만 좀 불러라, 이놈아!”
남사명이 버럭 소리치며 바로 옆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장천운이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도 대답이 없으셔서…….”
“뒷간에 있어서 대답을 못했을 뿐이야.”
“제가 부른지 일각은 됐는데…….”
“요즘 변비가 심하니라.”
“초초는 어디 갔습니까?”
“너 때문에 나도 얼굴보기 힘들다.”
“예?”
“무공에 심취해서 요즘은 운기행공 하느라 저쪽 봉우리 사이의 폭포 앞에서 하루의 반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왜 저 때문입니까?”
“몰라서 물어? 밖에 나가면 자신의 몸은 자신이 지켜야한다고 했다면서?”
“그거야 강호가 험하다는 이야기하던 중에 지나가듯이 말한 것뿐인데…….”
“초초는 네가 한 말 다 기억하고 있다. 하나에서 열까지. 혹시라도 이상한 말 안했는지 잘 생각해 봐. 나중에 가서 엉뚱한 소리 말고.”
“…….”
“그런데…… 몸이 왜 그러냐?”
남사명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장천운의 몸을 훑어보았다. 한눈에 제 상태가 아닌 것을 알아본 것이다.
“그래서 찾아왔습니다.”
“흠, 그래? 들어가자.”
남사명은 두 번 놀랐다.
첫 번째는 장천운이 복용한 약 때문이었다.
“뭐야? 독령귀혼단을 복용했다고?”
“예, 노선배.”
“허어, 그게 정말로 실제 했단 말이지?”
“아십니까?”
“알지. 독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전설이나 다름없는 약이니까. 그런데 그 약을 먹고 살아났다면, 정말 다 죽어갔다가 살아났다는 말이군.”
“아마 죽을 정도가 아니었다면 복용하지도 못했을 겁니다.”
“왜, 냄새가 독해서?”
“예. 정말 잘 아시는군요.”
“독령귀혼단이 왜 냄새가 심한 줄 아나? 살아 있는 사람이 복용하면 안 되기 때문에 억지로 냄새나게 만든 거야.”
독한 냄새에 그런 심오한 뜻이!
“어디 좀 자세히 보자.”
남사명은 장천운의 몸을 살펴본 후 두 번째로 놀랐다.
“엇? 상당한 기운이 곳곳에 웅크리고 있는데? 내가 아는 한 이건 독령귀혼단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는데…….”
“저를 구해주신 분의 말씀에 의하면, 노선배님이 주신 해독단도 함께 복용시켰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강해.”
“제가 모르는 약도 복용했는데, 정확한 이름은 알지 못합니다.”
“그 약의 특징에 대해서 기억나는 건 없느냐? 가령 맛이라든가…….”
“정신이 맑아질 정도로 약향이 무척 맑았는데…… 아! 절이나 도관에서 피우는 향내가 조금 섞여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절이나 도관에서 쓰는 그런 향냄새가 섞여 있었다고?”
“예.”
남사명은 장천운을 빤히 쳐다보았다.
왠지 부럽다는 표정처럼 보이기도 했고 ‘뭐 이런 놈이 다 있어?’라고 소리치고 싶은 걸 참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뭔지 아십니까?”
“내가 아는 한, 이 정도 강한 기운을 지니고, 맑은 약향에 향냄새마저 섞인 단약은 하나밖에 없다.”
“……?”
“혹시 대환단이라고 들어봤느냐?”
“소림사의 대환단 말입니까?”
끄덕끄덕.
남사명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장천운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당연히 들어봤죠. 그걸 모르는 무인이 어디 있습니까?”
“무인치고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 하지만 보거나 복용해본 사람은 하늘 아래 몇 사람 없을 거다.”
장천운의 눈이 점점 커졌다.
“설마 제가 복용한 약이……?”
“그래서 의문이다. 도대체 누가 너에게 대환단을 복용시켰단 말이냐? 내가 강호를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소림사에 한두 개밖에 남지 않았다고 알려진 영단인데.”
“그 사이 대환단을 더 만들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흥, 대환단 만들기가 그리 쉬운 줄 아느냐? 만들고 싶다고 해서 만들 수 있는 약이었다면 천하에서 가장 귀한 영단이라고 하지도 않았을 거다. 돈만 많으면 얼마든지 살 수 있을 테니까.”
대환단은 무가지보다. 그 약효가 천하제일을 다투는데다가 남아있는 개수마저 워낙 적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살 수 없는 영단 중의 영단.
심지어 언젠가는 황제가 대환단을 요구했는데도 거부했다가 소림사의 산문이 박살날 뻔한 적도 있었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장천운도 의문이었다.
그가 누군데 자신에게 그런 영단을 복용시킨 걸까? 자신과 무슨 사이기에?
문득 그날 느꼈던 기이한 감정이 다시 떠올랐다. 그런 감정은 난생 처음 느껴보았었다.
먹먹함, 울적함, 절실함. 아련함…… 그 어떤 단어로도 설명하기가 힘든 감정이었다.
그때를 떠올리자 또 다시 가슴이 답답해졌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야! 누군데 나를 구하고, 나에게 그런 혜택을 베푼 거야!’
뭐라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가슴 저 깊은 곳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가슴 어느 한 구석이 바늘로 찌른 듯 찌릿찌릿해지며 답답해졌다.
그때 방문이 열렸다.
“오빠 왔어요?”
남초초의 가녀린 목소리가 열기를 띠고 들렸다.
덕분에 거센 풍랑에 휘말렸던 감정이 서서히 잠잠해졌다. 가슴의 통증도 사라졌다.
장천운에게는 천만다행이었다.
하마터면 엉뚱한 감정의 격화로 심기가 상할 뻔했거늘.
“어, 초초 왔구나.”
“예, 오빠.”
남초초가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얼굴에는 홍조가 가득했다.
남사명이 두 사람을 번갈아보더니, 못마땅한 듯 헛기침을 해댔다.
“험, 험. 이제 할애비는 보이지도 않는 모양이구나.”
“피이, 할아버지는 점심때도 봤잖아요.”
남사명은 한편으로 서운한 마음이면서도 남초초의 마음을 이해했다.
‘허어, 그래, 초초가 이제 내 곁을 벗어날 때가 되긴 됐나 보구나.’
남초초는 남사명의 마음도 모르고 장천운만 바라보았다.
“근데 어쩐 일이세요?”
“응, 몸이 좀 안 좋아서 노선배님께 치료 좀 받으려고.”
“예? 많이 안 좋아요?”
남초초가 깜짝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무 걱정 마. 좋아지고 있으니까.”
“어디 봐요.”
남초초가 손을 뻗어서 장천운의 팔을 잡으려했다.
“괜찮다니까.”
장천운이 멋쩍은 표정으로 사양했지만, 남초초는 포기하지 않고 그의 팔을 잡더니 맥을 살펴보았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남사명이 퉁명스럽게 한마디 했다.
“진맥은 초초가 나보다 나으니 가만있어.”
“그래요?”
“난 나가서 너에게 쓸 독이 있나 찾아봐야겠다.”
“독이요?”
“내가 누군지 모르고 왔어? 치료든 뭐든, 난 약보다 독을 쓰는 게 더 편해.”
카랑카랑하게 쏘아붙인 남사명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일어났다.
그러다 갑자기 뭔가가 생각난 듯 멈칫하더니 장천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눈빛이 조금 전과 판이하게 달라져 있었다. 마치 보물을 앞에 둔 사람의 흥분한 눈빛이랄까?
“치료해주는 대신 피 두 사발만 뽑자.”
독령귀혼단과 자신의 해독단은 물론이고 대환단까지 복용한 장천운이다. 시간도 얼마 안 흘렀다. 남사명에게 그의 피는 보물이나 다름없었다.
장천운도 그 정도는 각오하고 온 터였다.
저번처럼 작은 사발이라면야 뭐…….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잠시 후.
남사명이 사발과 대롱을 들고 왔다. 그런데 한눈에 봐도 저번에 피를 받았던 사발보다 훨씬 컸다.
남사명도 그 점을 의식한 듯 별 것 아니라는 투로 얼버무렸다.
“저번하고 큰 차이는 안 날 걸? 오늘 두 사발을 모두 뽑지는 않을 것이니 너무 걱정할 것 없다.”
94장 무창의 생불(生佛)
구천성이 철기보를 되찾은 지 열흘이 지났다.
그 동안 비가 두 번이나 내렸는데도 피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사람들은 가슴에 아직도 그때의 살벌함이 여운처럼 남아 있는지 긴장을 풀지 못했다.
그날 사마경의 방에 모인 사람들도 표정이 무거웠다.
허창까지 후퇴한 무림맹은 반격을 위해서 전력을 정비하며 움직이지 않았다.
비록 피해가 크긴 했지만, 구천성으로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었다.
그러나 파천회에 대한 탐문은 오리무중이고, 사방에서 국지적인 싸움이 벌어지면서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었다.
탁.
사마경은 찻잔을 소리 나게 내려놓고 차가운 눈빛으로 전면을 노려보았다.
그녀의 앞에는 우문각과 구양명이 앉아 있었다.
“총사, 파천회의 거점을 아직도 찾아냈지 못했나요?”
“수백 명이 모여 있다면 첩밀각과 사밀령이 발견하지 못했을 리 없소. 그런데도 찾아내지 못했다면 아무래도 한 곳에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흩어져 있는 것 같소. 해서 숫자와 상관없이 수상한 무리가 있는지 찾아보라고 했소.”
“그들도 우리의 움직임을 모르진 않을 거예요.”
“씁쓸한 이야기지만, 아마 우리 상황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고 있을 거요.”
“우리가 자신들을 찾고 있다는 것도 알겠군요.”
“분명 그럴 거요. 그래서 더 깊숙이 숨은 것 같소.”
이마를 찌푸린 사마경의 표정이 더욱 차가워졌다.
“정말 교활한 자들이군요. 총사는 최선을 다해서 그들을 찾아내세요. 그들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항상 뒷문이 열려 있는 상황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알겠소, 소성주.”
우문각은 그 후로도 몇 가지 사항에 대해서 의논한 후 방을 나갔다.
사마경은 우문각이 방을 나가자 마저 차를 마신 후 고개를 돌려서 구양명을 바라보았다.
“찾아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