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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236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04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236화

청산자는 분노를 씹고 있는 정도하를 칼날처럼 가느다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천재적인 자질을 지녀서 제자로 삼았다. 무공은 그럭저럭 쓸 만했다. 문제는 사고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시간이 갈수록 오만해지고 있었다.

이대로 놔두면 중요한 때 실수를 할지도 모른다.

“당분간은 시키는 일만 하고 개별행동을 자제하도록 해라.”

“사부님…….”

“놈들에 대해서 모든 게 밝혀지면, 그때 가서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늦지 않아.”

정도하는 일단 사부의 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부가 결정을 내리듯 말한 이상 반발은 용납되지 않았다.

“사부님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가서 몸부터 돌보도록 해라.”

“예, 사부님.”

청산자는 정도하가 방을 나가자 영산자에게 지시를 내렸다.

“영산, 일단 파천회부터 정리해야 할 것 같구나.”

“예, 사형.”

“전소가 어디까지 조사했는지 알아보도록 해라. 이번 일에는 노도가 직접 나설 것이니라.”

영산자가 번쩍 눈을 들었다.

“예?”

“이참에 세상구경 좀 하고 와야겠다. 오랫동안 산중에만 있었더니 도를 통달하기는커녕 머리만 둔해진 것 같다. 나가는 김에 여기저기 돌아다녀볼 생각이다.”

바깥일을 영산자에게 맡겨놓고 청산궁에 틀어박힌 세월이 십삼 년이었다. 나들이를 해도 기껏해야 백 리 안팎만 오갔을 뿐.

“상황이 재미있게 돌아가는데, 이야기로만 듣는 것보다 직접 보는 게 나을 것 같구나.”

“두 어르신도 만나보실 생각이십니까?”

“기회가 되면. 아마 두 늙은이도 곧 움직이기 시작할 거야. 누가 먼저 기선을 제압하느냐에 따라서 내기의 승자가 결정될 거다.”

말을 맺은 청산자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의 관심은 오직 내기에만 있는 듯했다.

영산자는 자신의 생각을 두어 가지 말하려다가 입을 닫았다.

자신이 말한다 해서 들을 청산자도 아니고, 장천운이 죽었다면 굳이 말할 것도 없었다.

‘놈이 죽지 않았다면 큰 위협이 되었을 텐데…… 그나마 다행이군.’

 

* * *

 

“끄응…….”

신음을 흘리며 눈을 뜬 장천운은 몸을 뒤틀어보았다.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는 듯했다.

좌우간 몸 하나는 철골이 따로 없었다.

서너 번 심호흡을 하며 정신을 가다듬은 그는 바닥을 짚고 힘겹게 상체를 세웠다.

동굴의 끝에는 매끈한 석벽이 있었다. 자신이 굴러 내려와서 부딪친 곳.

원한(?)에 사무친 눈으로 석벽을 째려보던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거무스름한 석벽은 높이가 상당히 높아서 열 자쯤 되었다. 그런데 자연동굴이라 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매끈했다.

단순히 매끈한 것만이 아니었다.

석벽 전체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사람이 있던 곳인가?’

장천운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고 보니 바닥도 매끈했다. 석벽 앞에는 높이와 지름이 석 자쯤 되는 커다란 돌이 있었는데, 상부가 평평했다.

‘완전 도 닦는 곳 같군.’

보진 못했지만, 도인들이 면벽수련하며 도를 닦는다는 곳이 이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싶었다.

어쨌든 사람이 오간 곳이라면 나갈 수 있는 길도 있다는 말이다.

설마 저 동굴 입구를 통해서 오간 건 아니겠지.

 

내심 안도한 장천운은 석벽으로 시선을 주었다.

석벽의 글자는 세 단락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모두 삼백 자쯤 될 듯했다.

동굴 입구에서 비치는 희미한 빛으로는 글자를 제대로 읽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장천운은 눈에 힘을 주고 글을 읽었다. 최소한 이곳이 어딘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닌가.

글자를 한 자, 한 자 읽어가던 장천운의 눈이 서서히 커졌다.

 

[만물은 하나에서 시작한다. 그 하나가 둘이 되고, 그 둘이 넷이 되고, 그 넷이 여덟이 되어 천변만화하니…….]

예사 글이 아니었다. 석벽의 글에는 도에 도통한 사람이 아니면 결코 쓸 수 없는 상승의 묘리가 담겨 있었다.

‘뭐야, 진짜 도인이 도를 닦던 곳인가 본데?’

특히 세 번째 줄의 글을 읽는 순간, 장천운은 머릿속에서 환한 빛이 뿜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나 결국 그 모든 변화도 다시 하나로 되돌아가게 되고, 새로운 하나가 만들어지느니라. 그럼에도 인간들은 하나가 둘임을 알지 못하고, 하나가 넷임을 알지 못하고…… 새로운 하나는 처음의 하나와 같으면서 다르니…….]

 

그를 애태우게 했던 구륜심법의 마지막 부분 구결과, 천뢰구검의 미진했던 부분이 실타래 굴러가듯 절로 풀리는 듯했다.

장천운은 멍하니 앉아서 석벽의 글을 읽고, 또 읽었다. 시간의 흐름도 잊어버렸다. 자신의 처지도 잊어버렸다.

글자는 모두 삼백삼십 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 들어서 수십 번을 반복해 읽는 데도 지루하지가 않았다.

아니 지루하기는커녕 점점 더 빠져들었다.

그 사이 저 위쪽 동굴의 입구가 점점 어두워졌다.

어느새 밤이 오고 있는 듯했다.

장천운은 글자가 보이지 않을 때쯤에서야 자신이 아침부터 저녁이 될 때까지 글만 읽었다는 걸 알았다.

몸이 찌뿌둥하긴 해도 정신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맑았다.

‘전화위복이라는 게 이런 건가?’

아직 석벽에 적힌 내용을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아쉬워하지는 않았다. 수십 번을 반복해서 읽고 이해하려 애썼기에 머릿속에 화인처럼 박혀 있었다.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이해할 날이 오겠지.’

한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

그는 구륜심법과 천뢰구검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것으로 만족했다.

하루 만에 그걸 얻은 것만 해도 어디야?

만족한 장천운은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조심조심 움직이며 일어났다.

아침보다는 고통이 덜했다.

몸을 일으켜서 겨우 석벽에 등을 기대어 앉은 그는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입구의 넝쿨 사이로 별이 보였다.

꼬르르륵.

며칠 만에 처음으로 배가 고팠다.

‘후우, 열세 살 때 닷새 굶은 후 제일 오래 굶은 거 같네.’

 

* * *

 

언제부턴가 장천운이 죽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흑월대원들 사이에서도 암울한 분위기가 흘렀다.

“씨발, 대주가 안 보이니까 더 불안하네. 진짜 죽은 거 아냐?”

“시체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하잖수.”

“그 인간이 쉽게 죽겠습니까?”

“이러다 갑자기 나타나서 한판 뜨자고 하는 거 아닌지 몰라.”

막소광을 비롯한 은명객들이 주로 투덜거렸다.

반면 과거의 흑월조는 입을 꾹 다문 채 오로지 ‘믿습니다.’였다.

그들에게 장천운은 믿음, 그 자체였다.

불안한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죽었다는 생각은 아예 하고 싶지도 않았다.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이상 아직은 죽은 게 아니었다.

더구나 소성주도 장천운이 죽었다는 말을 하지 않았고 말이다.

그렇다면 어딘가에 살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양양은 그들처럼 편한 마음이 아니었다.

“한번 알아보는 게 어떻겠어요?”

사공명신은 두양양이 하자는 일이라면 무조건 찬성이었다. 그리고 앞장 설 준비도 되어 있었다.

“내가 소성주를 한번 만나보겠소.”

 

방을 나온 사공명신은 사마경의 거처로 향했다.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단지 두양양 때문만은 아니었다. 장천운은 강호의 청년고수 중 자신보다 위로 인정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이다.

평생 적수처럼 생각할 수 있는 사람.

어쩌면 영원히 적수가 못될지 몰라도 최소한 목표로 삼을 수는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 장천운이 정말로 죽었다면 이제 자신은 누굴 목표로 삼아야 한단 말인가.

‘아냐, 그는 그렇게 죽을 사람이 아니야. 어딘가에 살아 있을 거야.’

 

사마경은 사공명신을 피하지 않았다.

방으로 불러들인 그녀는 장천운에 대한 질문을 받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천운은 죽지 않았어.”

“정말입니까?”

“천운은 내 허락 없이는 죽을 수 없어.”

사공명신의 눈빛이 흔들렸다.

말투가 워낙 단호해서 그녀의 말이 사실인지, 단순한 집착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저 역시 대주가 사망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렇다 해도 어디에 갔는지는 알아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사마경이 뜻밖의 말을 했다.

“천운은 죽으러 갔어. 내가 부탁했거든.”

“예?”

“하지만 살아서 돌아올 거야.”

“…….”

“무창의 점쟁이가 그랬데. 오래 살 거라고. 지금 죽으면 오래 산 건 아니잖아?”

사공명신은 입을 살짝 벌리고 사마경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녀의 말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지금까지 그녀가 한 말을 뭉뚱그리면 하나로 귀결되었다.

—장천운은 나 때문에 죽었어.

제정신으로 한 이야기일까? 장천운에게 이상이 생겨서 어떻게 된 거 아냐?

그런데 따지고 들 수도 없었다. 기다란 속눈썹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얼음공주처럼 변해서 너무나 차갑게 느껴지던 그녀가.

“소성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가 알면 안 됩니까?”

“좋아, 말해줄게.”

기대치 못한 흔쾌한 대답에 사공명신이 오히려 얼떨떨해졌다.

“감사합니다.”

“고마워할 것 없어. 어차피 저들이 움직인 이상 머지않아서 다들 알게 될 테니까.”

“예? 누굴 말씀하시는 건지……?”

무림맹을 저들이라 표현할 리는 없다. 그래서 더 의아했다.

“사공 조장은 하늘 밖에 하늘이 또 있다는 걸 알아?”

 

잠시 후.

사마경의 방을 나선 사공명신은 혼란스런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소성주 말을 믿어야 돼, 말아야 돼?’

믿기 싫어도 장천운이 부상을 당해서 돌아왔던 상황을 생각해보면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순순히 믿자니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세상에 강자가 그렇게 많다니.

세상을 농락하는 자들이 있다니.

소성주는 장천운을 그들의 우리 안에 밀어 넣었다. 장천운은 알면서 들어갔고.

혼자 보낸 이유에 대해선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대들은 가봐야 천운의 움직임에 방해물만 되거든.”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그녀의 말이 옳았다. 자존심이야 조각조각 깨졌지만.

좌우간 장천운이 그들의 우리 안에 들어갔는데, 흔적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졌단다.

사마경이 살아있다고 자신하는 이유다.

그런데 자신은 장천운이 살아있기를 바라고 있을까, 아니면 죽었기를 바라고 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살아있어도 좋고, 죽었어도 좋고…….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래서 더 짜증이 났다.

‘제길, 누구 술 마시러 갈 사람 없나?’

오늘따라 술 한 잔 생각이 절실했다.

 

* * *

 

동굴 구석에는 벽을 타고 흐른 물이 고이는 웅덩이가 있었다. 덕분에 물로라도 배를 채울 수 있었다.

장천운은 물배만 채우면서 몸을 다스렸다.

내상의 회복속도는 생각보다 빨랐다. 독왕의 해독단도 영약이 섞여있긴 하지만 죽어가는 목숨을 살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 독령귀혼단인가 뭔가 하는 약이 정말로 효과를 보인 걸까?’

독령귀혼단은 숨이 끊어지고 혼이 저승의 경계에 한쪽 발을 딛었을 때 복용해야 한다고 했다.

자신의 상태가 딱 그 정도였다. 죽음의 문턱에서 저승에 한 발을 딛고 있던 상태.

공 노인은 그런 자신에게 독령귀혼단을 복용시켰다고 했다. 썩은 약도 약은 약이니까.

게다가 불안해서 독왕의 해독단도 함께 복용시켰다고 했다. 해독단이 독령귀혼단의 독기를 눌러서 약효가 제대로 작용한 것일 수도 있다.

나중에 나타난 자가 복용시킨 약이 효과를 보인 것일 수도 있고.

어쨌든 그때 공 노인이 독령귀혼단과 해독단을 복용시키지 않았다면, 자신은 진짜로 저승에서 염라대왕을 대면했을 것이었다.

더구나 독령귀혼단은 독으로 만든 약답게 약기운이 엄청나게 강했다.

막힌 기경팔맥을 강제로 뚫을 수 있을 만큼. 뒤틀린 혈맥을 바로 펼 수 있을 정도로.

장천운은 이틀 만에 그 사실을 짐작했다. 그래서 온몸이 찢어질 것 같은 극한의 고통을 꾹 참고 구륜심법을 운용했다.

천천히, 천천히…….

한 번, 두 번, 세 번…….

소주천을 행할수록 고통도 서서히 줄어들었다. 그리고 고여 있던 세 가지 약의 약효가 몸 전체로 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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