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234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908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234화
골목길을 빨리 지나갈 때는 길가의 돌담에 박힌 돌의 형태와 색깔, 특색, 상태를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다. 그러나 천천히 걸어가면 담에 박힌 돌을 하나, 하나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다.
지금 상태가 그와 비슷했다.
자신의 몸을 새롭게 관조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더구나 고통도 조금 전보다 심하지 않아서 참을 만했고, 시간여유도 많았다.
장천운은 새로운 세상을 마주한 듯 그 느낌을 마음껏 즐겼다. 진기가 느릿하게 움직이는 데도 고통스럽고 힘이 들었다. 그래도 속도를 더욱 늦추고 좀 더 많은 것을 느끼려고 했다.
그는 눈을 감고 있어서 모르고 있었지만, 입에서 흘러나왔던 검은 기체가 그의 전신 모공에서 뿌옇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마 공회가 봤다면 ‘드디어 저승길로 가는군.’ 하면서 혀를 찰만한 광경이었다.
* * *
장산이 떠난 지 두 시진. 공회는 잠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장천운을 살펴보려고 방을 나섰다.
통나무집 두 채 중 하나는 자신의 거처였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창고처럼 썼다.
장천운은 바로 그 창고처럼 쓰던 곳에 있었다.
천만다행이었다. 방이 하나뿐이었다면 고약한 냄새 때문에라도 진즉 죽여서 파묻고 나 몰라라 했을지 모르는데.
‘움직일 수 있으면 보내야지. 내가 계속 시중을 들 수는 없잖아?’
장산도 홀로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만 돌봐달라고 했지 않은가.
공회는 내심 그렇게 결심하고 장천운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그런데 마당 한가운데쯤 갔을 때 걸음을 멈춘 공회가 계곡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섬뜩한 느낌이 다가오고 있었다. 무척이나 기분 나쁜 느낌.
짐승은 결코 이런 느낌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이런 기분 더러운 느낌을 지닌 동물은 오직 인간뿐이었다.
‘뭐하는 새끼들이 이 늦은 밤에 계곡으로 들어온 거지?’
오래 기다릴 것도 없었다.
그가 속으로 욕하는 사이, 저만치 앞에서 그림자 몇 개가 소리도 없이 빠르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가 눈에 힘을 주었을 때, 그들이 몸을 날리더니 유령처럼 그의 앞에 내려섰다.
경공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잘 달려오다가 왜 날아와?
공회는 속으로 욕하며 그들을 째려보았다.
삼십대로 보이는 둘은 침침한 회색 무복을, 오십 대로 보이는 자는 핏빛처럼 붉은 무복을 입고 있었는데, 언뜻 보면 어둠 때문에 전부 검게 보였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 차이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매와 눈싸움을 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시력이 뛰어난 공회는 색깔을 확연하게 구분해냈다. 심지어 핏빛 혈포를 입은 자의 앞니가 하나 살짝 깨졌다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세 사람을 쓱 둘러본 공회가 해골처럼 생긴 얼굴에서 차가운 눈빛을 번뜩이며 물었다.
“너희들은 뭐야? 누군데 여길 찾아온 거지?”
핏빛 장포를 입은 자가 말했다.
“우리가 누군지는 알 것 없어, 늙은이. 그보다 혹시, 사흘 전에 은천동에 다녀오지 않았나?”
이 건방진 놈이!
감히 자신에게 그 따위로 묻다니!
공회는 분노가 끓었지만 꾹 참았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게 보이는 놈들이었다.
혹시라도 은천동에서 싸운 놈들과 일행이라면 승리를 자신할 수 없었다.
“은천동? 내가 은천동에 왜 가?”
“은천궁의 감곡이란 자가 그러더군. 이 계곡 안에 사는 해골처럼 생긴 노인네가 누군가를 어깨에 메고 가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이야.”
‘그 썩을 놈이!’
공회가 눈을 치켜떴다.
은천동에서 나왔을 때, 은천궁 건물 안에서 나오는 감곡을 보긴 했다. 하지만 재빨리 몸을 숨겨서 감곡이 자신을 보지 못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눈치 없는 놈이 자신을 봤나 보다.
그래도 일단은 버티는 데까지 버텨보았다.
“난 그런 적 없어.”
“혹시 어깨에 메고 온 자가 장천운이란 자 아닌가?”
“장 누구? 어디서 뭐하는 놈인데? 난 노루를 잡아서 메고 왔을 뿐이야. 저기 껍질이 널려 있는 거 안 보여?”
공회가 거짓말로 얼버무렸다. 마침 어제 잡아서 벗긴 노루껍질이 통나무 위에 널려 있었다.
혈포인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내가 찾는 건 노루가 아니라 사람이다. 그것도 젊은 놈. 순순히 그를 내놓는다면 조용히 돌아가지. 뭐, 어차피 내놓을 수밖에 없겠지만.”
“그놈이 뭘 잘못 봤나 보군. 내가 무슨 사람을 메고 갔다는 거야? 만나면 주둥이를 그냥…….”
“아마 늙은이는 그를 혼낼 수 없을 거다. 다른 자들에게 말할까 봐 목을 잘랐거든.”
“뭐? 이 개새끼들이……!”
눈을 홉뜬 공회의 입에서 욕이 절로 튀어나왔다.
감곡을 욕하긴 했지만 미워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감곡이 그래도 은천궁에 있는 놈들 중 제일 정이 많았다.
원단에 혼자 청승맞게 있으면 술을 들고 찾아오는 사람도 그놈밖에 없었다.
그런 감곡을 죽여?
치켜뜬 공회의 눈에서 분노가 쏟아졌다. 진짜 해골처럼 이가 반쯤 드러난 입에서 으르렁거리는 노성이 흘러나왔다.
“정체를 밝혀라. 어디서 온 개새끼들이냐?”
“늙은이는 몰라도 된다니까.”
공회는 더 이상의 대화를 포기하고 튕기듯 몸을 날렸다.
“그럼 너도 죽어봐라, 이놈!”
목표는 붉은 놈.
그는 뼈만 남은 것처럼 보이는 손가락을 갈퀴처럼 구부린 채 혈포인을 향해 짓쳐들었다.
회의를 입은 자들 둘이 먼저 공회의 앞으로 나서며 검을 뺐다.
그들은 한 마디 말도 없이, 아무런 감정도 없는 눈으로 공회를 보며 검을 뻗었다.
어둠을 가르며 날아드는 검은 빠르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공회와 그들 사이의 어둠을 갈가리 찢어발길 정도로 강한 기운이 휘돌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의 합공은 둘이 하나처럼 느껴질 정도로 정교했다.
하지만 공회는 그들의 강력한 반격을 대하고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분노에 휩싸인 그는 처음부터 무쇠조차 부숴버릴 수 있는 철골마조를 펼쳤다.
따당!
독수리발톱처럼 구부러진 우수가 회의인들의 검을 쳐냈다.
회의인들은 검기어린 검이 맨손에 튕겨나가자 흠칫하며 눈을 부릅떴다.
검만 튕겨나간 것이 아니었다. 검을 통해서 밀려든 강력한 기운에 온몸이 저릿했다.
순간적으로 두 사람의 협공에 실낱같은 빈틈이 드러났다.
공회는 쇠갈고리보다 더 강력한 양손을 벼락처럼 휘둘러서 그 빈틈 사이를 찢어발기며 짓쳐들었다.
이를 악다문 회의인들은 양쪽으로 갈라지며 방어에 치중했다.
공회는 일단 좌측의 회의인을 먼저 노렸다.
쩌정!
비틀어 친 우수에 좌측 회의인의 검이 부러졌다.
뒤이어 좌수와 우수가 수십 개의 환영을 만들어내면서 부러진 검을 들고 있는 회의인을 덮쳤다.
회의인의 눈이 커졌다. 찢어질 듯 커진 눈이 공포에 젖었다.
공회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자의 목을 후려쳤다.
“끄엑!”
기괴한 비명과 함께 회의인의 몸이 한쪽으로 날아갔다. 반쯤 뜯겨진 그의 목에서 피분수가 뿜어졌다.
“흥! 누군가 했더니 백골귀마 공회였구나!”
혈포인이 냉랭히 코웃음 치며 발을 내딛었다.
한 걸음에 이 장을 죽 미끄러져간 그는 옆구리의 도를 잡아 빼면서 그대로 휘둘렀다.
상대는 천중십마 중 하나인 백골귀마 공회였다. 어설픈 초식으로 상대할 수 없는 고수. 그는 휘두르는 도에 구성 공력을 집중시켰다.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보이는 붉은 기운이 채찍처럼 쭉 뻗어왔다.
쉬아아앙!
공회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혈포인의 무공은 회의인들과 격이 달랐다.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있는 데도 어둠과 함께 자신의 몸이 두 동강 나는 기분이었다.
‘이 새끼는 뭐야?’
그는 남은 회의인 하나를 놔두고 혈포인을 상대했다.
혈포인은 그가 예상한 것보다 더 강했다.
철골마조로 혈포인의 도세를 상대한지 삼 초식 만에 손가락은 물론 팔 전체가 얼얼해졌다. 손가락이 잘려나가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
그뿐이 아니었다. 자신이 자랑하는 마영신법을 펼쳤는데도 옷자락 두어 군데가 찢겨졌다.
이를 악다문 공회의 눈빛이 거세게 흔들렸다.
도대체 저놈이 누군데 이리도 강하단 말인가!
‘제기랄, 이 공회의 체면이 말이 아니군.’
하지만 그는 오기를 부리지 않았다. 자존심도 구석에 처박아버렸다.
오래 전, 자존심 때문에 가족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그다. 지금 이 계곡에 처박혀서 지냈던 것도 그때의 일 때문이었다.
실수는 한 번이면 족했다.
자신의 실력으로는 혈포인을 막을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순간, 그는 즉시 방향을 틀어서 통나무집으로 몸을 날렸다.
천중십마 중 하나인 공회가 도주하듯 물러날 줄은 혈포인조차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멈칫한 사이, 공회는 통나무집의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갔다.
장천운을 저 개새끼들에게 넘겨줄 순 없었다.
그런데…… 꼼짝도 못하고 누워있을 거라 생각한 장천운이 보이지 않았다.
‘어? 어디 갔지?’
통나무집 뒤쪽으로 통하는 쪽문이 열려 있는 게 보였다.
그는 즉시 쪽문을 통해서 뒤로 나갔다. 동시에 혈포인과 회의인이 통나무집 안으로 들이닥쳤다.
공회가 뒤쪽으로 난 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는 본 혈포인은 신경질적으로 우수를 흔들었다.
쾅!
쪽문과 통나무집 벽이 폭발하듯 터져 나가고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혈포인은 밖으로 나가서 공회를 찾아보았다.
그 짧은 순간에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저쪽을 찾아봐라!”
회의인에게 명령을 내린 그는 이마를 찌푸렸다.
공회는 혼자 나갔다. 방 안에 아무도 없었다는 뜻.
‘정말 장천운을 데려온 것이 아니었나?’
아니면 싸우는 동안 장천운이 도망쳤을 수도 있었다.
‘확인해보면 알겠지.’
장천운이 은천동 안에서 죽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암천의 주인은 그 말을 아예 믿지 않았다. 그리 쉽게 죽을 놈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자신이 그 일을 조사하기 위해서 직접 나섰다. 금룡장과 청산궁에서도 손우곤과 정도하가 나섰으니 체면 상할 일도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은천동을 샅샅이 뒤져보았는데도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 대신 틈바구니에 있는 절벽 밑의 은밀한 구석에서 누군가가 쓰러져 있던 흔적을 찾아냈다.
땅으로 꺼지지 않은 이상 스스로 나갔던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밖으로 나간 듯했다.
그는 은천궁을 관리하는 자들을 닦달해보았다.
처음에만 해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뭐든 아는 자가 있었다면 진즉 알려졌을 테니까.
그런데 은천궁을 관리하는 자들 중 하나가 밤에 언뜻 뭔가를 봤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놈의 입을 막고 이 밤중에 몸소 찾아왔다. 그런데 해골처럼 생긴 괴상한 늙은이는 천중십마에 속한 백골귀마 공회였고, 다 죽어가는 상태일 거라 생각한 장천운이란 놈은 코빼기도 보지 못했다.
‘공연히 암천사자 하나만 잃었군.’
은근히 짜증이 났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직접 공회를 찾겠다고 밤중에 산을 뒤지고 다닐 생각은 없었다.
그로부터 반각쯤 지났을 때, 회의인이 돌아와서 보고했다.
“령주, 그 늙은이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돌아가자.”
혈포인, 암천문의 서열 오위인 혈마령주 모진태는 미련을 버리고 돌아섰다.
‘살아 있다면 어디서든 나타나겠지.’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구천성과 무림맹 간의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상 숨어서 지내지는 않을 테니까.
놈에 대한 처리는 그때 하는 수밖에.
* * *
장천운의 평정심이 깨진 것은 턱 밑의 염천혈을 지난 진기가 턱 앞쪽의 승장혈마저 통과했을 때였다.
밖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꿈속에서 들리는 환청일 거라 생각했다.
아니었다. 운기를 멈추자 더 확실하게 들렸다.
그런데 내용이 심상치 않았다. 불청객은 자신을 찾아온 듯했다. 누군가가 자신을 찾기 위해서 사람을 풀어놓았나보다.
장천운은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