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23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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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90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231화
손우곤이 막힌 시간은 잠깐이었다. 숫자를 세어도 다섯을 셀 시간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장천운에게는 천금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동굴 안으로 뛰어든 장천운은 시력을 최대한 돋구고서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온몸의 뼈마디가 부서진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내장이 정말 토막이라도 났는지 핏물이 계속 목구멍을 치고 올라왔다.
혈맥은 곳곳이 막혔고, 다리가 후들거려서 걷는 것조차 힘들었다.
게다가 동굴광장에서 멀어질수록 어둠이 점점 짙어지더니 이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바닥의 상황도 거칠어졌다.
한 걸음 내딛기 힘든 상황.
하지만 그는 현월을 앞으로 뻗어서 동굴 벽과 부딪치는 것을 방지하며 멈추지 않고 걸었다.
어두컴컴한 동굴은 자신이 살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어두컴컴한 동굴처럼 자신의 정신도 아득해졌다.
‘그래도 동굴 안쪽까지 추적해오는 것 같지는 않군.’
그나마 다행이었다.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긴 했지만, 당장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숨이 붙어 있는 이상 빠져나갈 기회 또한 남아 있었다.
‘이제는 무창의 점쟁이들 말이 맞기만 바라는 수밖에.’
명이 길다고 했잖아?
그때였다. 앞으로 내딛은 발이 밑으로 쑥 꺼졌다. 허공을 짚은 듯했다.
“헛!”
장천운은 혼신의 힘을 다해서 중심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발을 내딛기도 힘든 상태였다. 경공술을 펼친다는 건 더더욱 어림도 없는 일이었고.
순간적으로 그의 몸이 쑥 가라앉더니 밑으로 빠르게 떨어졌다.
장천운은 반사적으로 머리를 두 팔로 감싼 채 몸을 웅크렸다.
차라리 지금이 꿈이었으면…….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도 놀란다고 했다. 장천운에게 몇 번 데인 손우곤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앞에 두고 추적을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장천운이 마지막에 몸을 날린 신법은 당장 죽을 놈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날랬다.
만약 놈이 어둠 속에 숨어서 공격한다면?
더구나 놈은 천하에서 가장 신묘한 신법을 익힌 놈 아닌가?
어둠은 결코 자신의 편이 아니었다.
‘빌어먹을! 확실히 머리통을 터트렸어야 하는데…….’
정도하는 손우곤에게서 이 장 정도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그는 장천운보다 손우곤을 더 경계했다.
조금 전에 손우곤은 장천운의 등을 공격했다. 절대경지에 올랐다는 고수가 말이다.
‘비겁한 놈.’
자신이 앞장설 경우 자신의 등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놈이 살 수 있을 거라 보나?”
손우곤이 물었다.
정도하는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고 차갑게 대꾸했다.
“운이 좋으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놈은 내 장력에 내부 혈맥이 터지고 혈도가 막혔을 거네. 게다가 외상도 제법 심한 상태지.”
“그래도 어쨌든 도주하는 걸 보니 당장 죽을 정도는 아닌 모양이더군요.”
“마지막 남은 진기를 모두 소모해서 발악을 한 거겠지. 오래 버티지는 못할 거네.”
그 사이 손우곤과 함께 온 자들 중 둘이 횃불을 들고 들어왔다. 손우곤이 그들에게 물었다.
“십삼사는?”
“놈들의 저항이 제법 강합니다만 곧 제압될 것 같습니다.”
“그래?”
손우곤은 건성으로 대답했다. 어차피 장천운 외에는 관심 밖이었다.
“앞장서라.”
손우곤은 바닥에 흘린 피의 흔적을 쫓아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복잡했다.
좁은 틈바구니까지 합하면 갈림길이 워낙 많아서 흔적을 쫓기가 쉽지 않았다.
그로부터 반 시진. 그들은 바위틈 사이의 동공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수직으로 뻗은 동공은 횃불을 비춰도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동굴의 길은 그 앞에서 끊긴 상태.
결국 손우곤은 추적을 포기했다. 동굴이 워낙 복잡해서 이제는 밖으로 나가는 것이 걱정될 정도였다.
“그 상태로 여기서 떨어졌다면 살 수 없을 거네.”
정도하가 이마를 찌푸리며 답했다.
“목숨을 겨우 건진다 해도 밖으로 나오지 못할 겁니다.”
“이 동굴에서 바깥으로 나가는 다른 길이 있는지 모르겠군.”
“제가 살펴본 바가 의하면, 은천동을 나갈 수 있는 길은 들어온 입구와 동굴광장 좌측의 비상통로 뿐입니다.”
“입구만 막으면 나갈 길은 없다?”
“그렇다고 할 수 있지요.”
“우리의 내기는 이쯤에서 끝내는 게 좋겠군. 아직 상대해야 할 자들이 많으니까.”
단순히 내기만 끝내자는 게 아니다. 싸움도 중단하자는 뜻이다.
“저 역시 동감입니다.”
정도하는 순순히 손우곤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들의 적은 장천운만이 아니었다. 자신들로 하여금 은천동으로 가게끔 만든 자, 그 자는 지금쯤 자기가 세운 계획에서 수족 노릇을 한 자신들을 비웃고 있을 것이었다.
문제는 비웃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점이었다. 지금쯤 밖에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장천운과 싸우며 내상을 입은 그들로서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 * *
차디찬 물방울이 얼굴에 떨어졌다.
‘흡!’
곪아서 부은 상처 위에 쇠구슬이 떨어진 것만 같았다.
그나마 그 고통으로 인해서 정신을 차린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힘겹게 눈을 뜬 장천운은 한참 동안 어둠을 쳐다보았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완벽한 어둠 속. 자신이 눈을 뜬 것인지 아닌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문득 어렴풋이나마 자신이 어디론가 떨어졌다는 게 떠올랐다.
‘그래, 갑자기 발을 헛딛고 밑으로 떨어졌지.’
수직에 가까운 절벽 밑으로 떨어졌다. 벽에 몸이 간간이 부딪치는 걸로 봐서 완벽한 직벽은 아닌 듯했다.
그러다 강한 충격을 받는가 싶더니 떼굴떼굴 굴러갔다. 정신을 완전히 잃은 것은 그때쯤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걸까?
얼마나 높은 곳에서 떨어진 걸까?
죽지 않은 걸 보면 자신의 운도 아주 나쁜 편은 아닌 것 같다. 그래봐야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알 수도 없지만.
‘여기서 이대로 죽나?’
이곳에서 죽으면 누구도 자신의 시신을 발견하지 못할 텐데…….
장천운은 손을 움직여보았다.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손가락 하나도 제대로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근육은 근육대로, 핏줄은 핏줄대로, 내장은 내장대로 찢어지고 비틀어지고 뒤집어진 듯 온몸 여기저기서 고통이 밀려들었다.
‘끄으으윽!’
적이 듣든 말든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악이라도 써대고 싶었다.
절독곡에서 극한의 고통을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참아내지 못하고 비명을 내질렀을 것이었다.
가까스로 고통을 씹어 삼킨 그는 숨을 천천히 들이쉬었다.
숨을 쉴 때마다 폐가 찢어질 듯했다. 그나마 서너 번 숨을 쉬고 나니 그럭저럭 살 것 같았다.
그는 꼼짝도 못하는 상태에서 구륜심법을 운용해보았다.
벼락이 기해혈에서 머리끝까지 순간적으로 관통했다.
“크억!”
참았던 비명이 절로 터져 나왔다.
동시에 머릿속이 하얗게 비면서 정신이 아득해졌다.
* * *
사마경이 은천동의 일을 자세히 보고 받은 것은 그날 미시 무렵이었다.
“장 대주와 묵조는 은천동에서 나오지 못했습니다.”
정유는 보고를 하면서 사마경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녀는 의자에 앉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얼굴에는 서리가 낀 듯했다. 자칫 눈빛이 마주치면 심장이 얼어붙을 듯했다.
분노가 어느 정도 쌓여야 저런 표정이 나올 수 있을까.
정유는 심호흡을 해서 긴장을 억누르고 마저 보고를 올렸다.
“은천동에서 나온 자들은 모두 열아홉이었습니다. 그들은 은천동에서 나오자마자 제삼자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은천동에서 나온 자들 중 십여 명이 그 싸움에서 죽었다.
공격을 한 자들도 수십 명이 쓰러졌다.
정유와 비령각 비조들은 접근을 최대한 자제하고 멀리 숨어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은천동으로 들어가 보려 했습니다만, 경계가 워낙 삼엄해서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입을 꾹 다물고 듣기만 하던 우문각이 부연설명을 했다.
“파천회 무사로 보이는 자들이 은천동 입구에서 그들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오.”
그제야 영원히 달라붙은 것이 아닌가 싶었던 사마경의 입이 열렸다.
“죽었을까?”
누구를 말하는지는 굳이 물어볼 것도 없었다. 지금 그녀의 머릿속은 장천운으로 가득 차 있을 테니까.
정유가 사마경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조금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뭐가 이상하다는 거죠?”
“장 대주가 죽었다면 은천동에서 나온 자들의 표정이 밝았어야 합니다.”
그런데 밝기는커녕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게다가 제삼자의 공격을 받았을 때 한 사람이 ‘제기랄, 그놈을 그냥 놔두고 바로 나올걸 그랬어.’라며 투덜거렸다.
죽은 사람에게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조금 더 가까이 가서 자세히 들으려고 했지만 너무 위험해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마경은 분처럼 하얀 이마를 찌푸리고 눈을 내리깐 채 초점 없이 눈앞을 응시했다.
정유는 그녀가 입을 열 때까지 초조한 표정으로 기다렸다.
우문각은 뭔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별 다른 말이 없었고, 구양명은 착잡함을 얼굴에 그대로 드러낸 채 고개를 들고 허공을 바라보았다.
기다리다 지친 정유가 막 입을 열려고 할 때 사마경이 눈을 들었다.
“은천동에서 나온 자들의 정체는 알아냈나요?”
“꼬리를 붙였으니 곧 알아낼 겁니다.”
“조금 전에 제삼자가 파천회인 것 같다 했죠?”
“예, 소성주. 최소 칠 할은 된다고 봅니다.”
“은천동에서 나온 자들과 파천회가 어떤 관계인지 알아냈나요?”
“적인 것은 분명한 것으로 보였습니다만, 그 외에 특별한 연결점은 찾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대답하는 정유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사마경은 더 묻지 않았다.
은천동에서 나온 자들은 천외의 고수들일 가능성이 컸다. 그들에 대해서 사실대로 말할 수 없는 이상 굳이 더 파고들 이유가 없었다. 자칫하면 불필요한 의심만 살 테니까.
“파천회에 대한 조사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죠?”
가슴을 쓸어내린 정유는 우문각의 표정을 자연스럽게 살펴보았다.
아무런 표정변화도 없었다.
정유는 그 표정을 말해도 상관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내일까지 연결고리 정도는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반드시 찾아내세요. 최대한 빨리.”
“예, 소성주.”
“총사께선 그들을 발견하는 즉시 무사들을 집결시키세요.”
“소성주?”
흠칫한 우문각이 굳은 표정으로 사마경을 바라보았다.
그녀에게서 다시 한기가 흘러나왔다. 그 한기에는 짙은 살기마저 배어 있었다.
“철저히 갚아줄 거예요. 아주 철저히! 구천성이 왜 구천성인지 천하가 모두 알 수 있도록!”
파천회든, 무림맹이든, 아니면 또 다른 자들이든. 장천운을 사지로 몰아넣은 자들은 열배, 백배의 대가를 내놓아야만 하리라.
‘미안해, 천운.’
* * *
무 노인은 장산의 보고가 다 끝난 다음에야 말문을 열었다.
“천운의 죽음을 확인하지는 못했단 말이지?”
“예, 노야. 그들이 빠져나간 후 은천동 안으로 들어가서 찾아보았습니다만,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부상을 입고 어딘가에 깊숙이 숨어 있을 확률은?”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은 모두 살펴봤는데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저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지류가 있다면 또 모르겠습니다만…….”
“그렇다면 어떻게 되었을 거라 보느냐?”
“아직 죽음을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만, 최소한 중상을 입고 어디론가 사라진 것만큼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대답하는 장산의 목소리가 탁하고 힘이 없었다. 마음고생을 적잖이 한 듯했다. 목소리뿐만이 아니라 표정마저도 사막처럼 메말라 있었다.
“나를 원망하느냐?”
“저에게는 노야를 원망할 자격이 없습니다.”
자격이 없어서 원망하지 않는 것뿐, 원망의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말처럼 들렸다.
무 노인도 장산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그 아이는 쉽게 죽을 아이가 아니다. 은천동에서 발견되지 않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니라.”
“저도 살아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렇다면 살아 있을 거라 생각해라.”
“예…… 노야.”
장산이 나직한 목소리로 대답하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노야. 이번만큼은 제 의지대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