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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227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06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227화

* * *

 

손우곤도 정도하가 본 서신과 똑같은 내용이 담긴 글을 읽고 있었다.

서신을 다 읽은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내용이 사실이라면 굉장한 정보였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누군가가 먹이처럼 던져준 정보에서 고약한 악취가 풍겼다.

‘누구냐? 누군데 이런 일을 꾸미는 거냐?’

더 기분 나쁜 것은 모른 척 지나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상대는 자신이 거부할 수 없다는 것까지 생각하고 정보를 건넸을 것이다.

‘무얼 원하는지 모르겠다만, 일단은 원하는 대로 해주마.’

 

* * *

 

자신의 거처로 돌아온 장천운은 흔들리는 등잔불을 바라보았다. 입가에 쓴웃음이 맺혔다.

‘이번 일 때문에 그렇게 가슴이 답답했었나?’

 

“날 위해서…… 한번만 죽어줘.”

 

사마경이, 소성주가 부탁이라며 한 말이었다.

그녀의 눈에는 물기가 가득 고여 있었고, 목소리는 한 겨울 찬바람에 맞선 문풍지처럼 떨렸다.

 

“아버지의 시신을 가져갔다는 자가 서신을 보냈어. 거짓은 아닌 것 같아. 그자가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아버지의 특징에 대해서 적어놓았거든. 시신을 세세히 살펴보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특징이야. 그런데 아버지를 찾으려면 천운을 보내래. 천운을 보내면 아버지가 있는 곳을 알려주겠데.”

 

그는 소성주의 말이 장난이 아님을 바로 깨달았다. 그녀가 자신에게 그 부탁을 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큰 용기를 내야 했는지 어렴풋이나마 알 듯했다.

자신이 가면 죽을 확률이 열에 아홉은 될 것이 분명했다. 자신을 죽이기 위해서 함정을 파놓고 기다릴 테니까.

그녀도 그걸 알기에 죽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그는 소성주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대신 건조하게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원하신다면 가죠. 죽어야만 한다면 죽어드리죠. 대신…… 그 이후부터 제 목숨은 제 것입니다.”

 

호위무사로서 한 맹서의 종결을 말함이다. 죽은 다음에야 맹서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마는 혼이라도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한 말이었다.

밑져야 본전이고, 운수가 억세게 좋아서 죽은 다음 다시 살아날 수 있다면야 뭐…….

소성주는 입술을 깨물었다. 얼마나 세게 깨물었는지 이가 파고들어서 입술이 찢어질 듯했다.

그러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

 

“알았어. 그렇게 해.”

 

막상 허락하는 대답을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왠지 모르게 서운한 느낌이랄까?

 

“서신을 보낸 자가 누군지 짐작 가는 바는 없습니까?”

“한 시진을 생각해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

“소성주님도 바보군요. 제가 죽기 싫어서 도망쳐버리면 어떻게 하시려고 사실대로 다 말씀하신 겁니까? 말하지 않고 무조건 가라고 했어도 따랐을 텐데.”

“그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내가 못 견딜 거 같아서.”

 

소성주는 그렇게 말하고 처연하게 웃었다. 겨우 버티고 있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녀가 아무리 천하제일세인 구천성의 임시성주라 해도, 복수를 위해 살모사보다 더한 독기를 가슴에 품고 있다 해도 아직은 나이 어린 여인이었다.

웃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서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확 잡아당겨서 끌어안았다.

소성주는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품에 안겼다.

그녀는 그 자세 그대로 가슴이 축축하게 젖을 때까지 눈물을 흘렸다.

소리 없이 훌쩍이는 모습이 마치, 어릴 적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고 자신의 품속에서 울먹대던 홍아 같았다.

‘원하신다면…… 죽어드리지요.’

 

흔들리던 등잔불이 고요해졌다. 마음도 무저의 심해처럼 깊이 가라앉았다.

장천운은 옷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허리띠처럼 차고 다니던 연검도 뽑아서 점검해 보았다.

연검은 검병 끝의 연결 부위에 이상이 없어야 한다. 위급 시 발검에 이상이 발생하면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다.

그는 흑룡이 새겨진 검병을 잡아당겼다. 검은 가죽으로 된 검집에서 검신이 부드럽게 빠져나왔다.

요사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은은한 청광이 흐르는 연검의 검신은 종잇장처럼 얇았다.

낭창거리는 연검에 공력을 주입하자, 뻣뻣하게 몸을 세운 검신이 웅웅거리는 검명을 토해냈다. 주입하는 공력이 강해질수록 검신의 광채도 점점 더 강해졌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푸르스름한 검신에서 기이한 문양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강한 공력을 주입하기 전에는 보이지 않던 문양.

마치 푸른 불꽃이 연검을 휘감고 있는 듯했다.

‘쉽게 죽진 않을 거다. 소성주에게 그런 선택을 하게 만든 자가 누군지 몰라도 반드시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

스스로에게 맹서하듯 각오를 다진 그는 연검을 회수해서 허리에 찼다.

그가 장포를 걸치고 현월을 들었을 때 문 밖에서 연송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가도 돼요?”

장천운이 돌아서며 대답했다.

“들어와.”

문이 열리고 연송하가 들어왔다. 겉으로는 담담해 보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 걱정 가득한 표정이었다.

“왜 왔어?”

“알고 싶어서요.”

“뭘?”

“제가 뭘 알고 싶어 하는지 잘 아시잖아요.”

“너무 걱정 마. 별 거 아니니까.”

“저도 걱정하지 않아요. 저 따위가 어떻게 대령주조차 어찌하지 못할 정도로 대단한 흑월대주님을 감히 걱정하겠어요?”

입술이 툭 튀어나온 연송하가 쀼루퉁한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이 오빠한테 못마땅한 거 있냐?”

“있죠. 그것도 많이.”

“뭔데?”

“사실대로 말해줘야 저도 걱정하지 않죠. 말로만 동생이라고 하면 뭐해요? 정작 중요한 것은 말해주지도 않는데.”

“소성주께서 뭐 좀 알아봐달라고 하셨어. 그래서 조사해보려는 것뿐이야.”

“저 바보 아니거든요? 소성주님께서 그렇게 화가 난 것은 처음 봤어요. 그런 분이 지금 이 시간에 오빠를 불러서 시키는 일인데 별 거 아니라고요?”

“너, 나 못 믿냐?”

“그러니까 믿을 수 있게 사실을 말해주면 되잖아요.”

장천운은 바로 앞까지 다가와서 고개를 쳐든 연송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기다란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자신이 위험해질지 모른다는 걸 눈치 챈 듯했다.

“그냥 무조건 믿어. 내가 누구냐? 내가 바로 홍구로의 귀호야.”

“칫.”

“동생이 오빠를 못 믿으면 누가 믿겠냐?”

끝내 연송하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정말…… 괜찮은 거죠?”

장천운은 말 대신 손을 뻗어서 연송하의 어깨를 잡았다.

“송하야,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게 하나 있어. 뭔지 알아?”

갑자기 어깨를 잡힌 연송하는 손가락 하나도 꼼짝 못했다.

바로 코앞에 장천운의 얼굴이 있다. 숨결이 그대로 자신의 얼굴에 쏟아진다.

심장이 쿵쿵거렸다. 가슴이 들썩거리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내가 살고자 마음먹으면, 세상 누구도 나를 죽이지 못해.”

“저, 정말요?”

“공손백도 그래서 나를 어떻게 못한 거야.”

“정말 믿어도 돼요?”

끄덕끄덕.

“믿어. 무조건.”

“그럼 가기 전에…… 한번 안아줘요.”

연송하는 겨우 용기를 내서 말했다.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얼굴도 화끈거렸다. 그래도 빤히 쳐다보는 장천운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

“오빠가 동생 한번 안아주는 게 뭐 그렇게 어려워…….”

덥썩.

장천운이 연송하를 당겨서 가슴에 안았다.

“송하야, 이 오빠는 염라대왕도 무섭지 않아. 무슨 말인지 알지?”

장천운의 가슴에 얼굴이 묻힌 연송하는 가까스로 한마디 내뱉었다.

“알았……어요.”

장천운은 연송하의 등을 토닥였다. 뭉클한 연송하의 가슴이 자신의 심장 아래서 진동했다. 확실히 가슴은 연송하가 소성주나 류화보다 컸다.

‘송하야, 미안하다는 말은 않겠다. 그게 널 더 아프게 할지 모르니까.’

 

* * *

 

방을 나선 장천운은 우문각을 찾아갔다.

죽을 때 죽더라도 반드시 알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너무 깊이 묻어놓아서 거의 다 삭아버린 이야기지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만큼 답을 듣고 싶었다.

“하나 물어볼 게 있습니다.”

우문각은 평소와 다른 장천운의 말투에 찻잔을 내려놓고 허리를 세웠다.

“뭘 알고 싶은 거냐?”

“동방 노인. 제가 무 노인으로 알고 있는 그는 누굽니까?”

우문각은 장천운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자신의 눈과 마주치고도 흔들림 한 점 없는 눈빛이다.

장천운이 가끔 얄밉게 느껴지는 것도 어쩌면 저놈의 눈빛 때문일지 모른다.

“잡혀서 죽게 생긴 너를 내팽개치고 혼자 도망간 자다. 왜 알고 싶은 거냐?”

어릴 적 장천운의 머릿속을 뒤져본 후 알았다. 정말로 별 관계가 아니라는 걸. 그저 물에 빠져서 죽어가던 노인을 구해줬을 뿐이라는 걸.

그래서 자신도 그 일에 대해서는 잊다시피 했었다.

“무 노인이 잡혔다면 저를 풀어줄 생각이셨습니까?”

“흐음, 아마 풀어주지 않았을 거다.”

우문각은 솔직히 말했다. 장천운이 욕심 난 그였다. 아마 무 노인이 잡혔다 해도 장천운의 운명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럼 딴 소리 그만하시고 말씀해주십시오. 어쨌든 일 년을 함께 지낸 분입니다. 어떤 분인지는 알고 싶습니다.”

우문각은 찻잔을 다시 들어서 입술을 축였다.

그 일의 핵심을 쥐고 있던 성주가 죽으면서 지나간 이야기가 되어버린 사건이었다. 알려준다 한들 문제될 것이 없을 듯했다.

“좋아, 알려주지.”

흔쾌히 대답한 그가 입을 열었다.

“동방 노인은 돌아가신 성주의 사숙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말에 장천운의 눈이 커졌다.

“성주님의 사숙? 그럼 소성주의 사숙조란 말입니까? 그런데 왜 소성주는 그분을 모르시는 겁니까?”

“그를 아는 사람은 강호를 통틀어도 대여섯 사람밖에 안 된다. 구천성에서도 나와 전대 성주의 사형제 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다. 그러니 어린 소성주는 모를 수밖에.”

“왜 그분을 잡으려 했던 겁니까?”

“그는 구천성이 강호에 해악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전전대 성주님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었지. 그래서 그는 구천성에 들어오지 않고 밖으로만 떠돌았다.”

그가 구천성에 들어온 것은 구천마종이 죽고 나서 십 년이 흐른 후였다.

당시만 해도 그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공손백과 사마중천, 백리호밖에 없었다.

우문각도 사마중천에게 듣지 못했다면 모르고 지냈을 것이었다.

―사실 동방 노인의 진정한 정체에 대해서는 그들도 몰랐지만.

동방 노인은 구석진 곳에서 정체를 숨기고 조용히 지냈다.

그런데 일 년쯤 지났을 때 그가 사라졌다.

“성주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그를 찾으라는 비밀명령을 내리셨다. 성주님의 방에서 오래된 책자를 훔쳐갔는데 반드시 회수해야 한다고 하셨다.”

“무슨 책인데……?”

“그건 나도 모른다. 오직 성주님만 알고 계셨지.”

결국 그 일 때문에 무창이 피로 젖었던 건가?

동방 노인, 무 노인이 뭔가를 훔쳐갔기 때문에?

“제가 구했을 당시 무 노인에게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나도 안다.”

“하긴 제가 그 말도 했겠지요.”

그럼 위기에 처해서 쫓길 때 책을 빼돌렸을까?

누구도 모를 일이다.

“혹시라도 사과를 바란다면 포기해라. 나는 사과할 생각이 없으니까.”

사과를 요구할 생각은 없었다. 우문각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자신도 없었을 테니까.

장천운도 사과를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정중하게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줘서 고맙습니다, 총사.”

오히려 우문각이 얼떨떨해졌다.

‘이 놈이 갑자기 왜 이래? 꼭 죽으러 가는 놈처럼.’

그는 생각도 못했다. 장천운이 진짜 죽으러 간다는 걸.

 

* * *

 

“출발했소, 소성주.”

구양명이 말했다. 오늘따라 목소리가 칼칼했다. 마음에 안 드는데 억지로 대답하는 아이처럼 뚱한 목소리 같기도 했다.

“그들도 함께 갔나요?”

“넷이 동행했소.”

구양명이 말하고 슬쩍 소연추의 눈치를 살폈다. 소연추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본래 그는 장천운을 따라가려 했다. 최근의 두 차례 임무로 내상은 입은 장천운 아닌가.

그는 자신의 뜻을 소연추에게 말했다. 소연추는 반대했다.

장천운에게도 말했다. 그러나 장천운 역시 “저 대신 소성주님이나 잘 지켜주세요.”라는 말만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뭔가 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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