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22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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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95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226화
관철양은 백리우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대주고 자신은 조장이다. 어쨌든 상관인 그가 물은 이상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뒷문에 서신이 꽂힌 걸 유철 조장이 발견해서 가져왔소.”
“서신?”
“누군가가 소성주께 보낸 서신이오.”
순간적으로 백리우진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그래요? 이리 주시오. 내가 전해드리겠소.”
백리우진이 못미덥긴 해도 관철양으로선 달리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
“여기 있소. 봉인이 되어 있어서 안은 살펴보지 못했소.”
사마경은 백리우진에게 상황을 전해 듣고 이마를 찌푸렸다.
“서신이 뒷문에 꽂혀 있었는데, 누가 보냈는지도 모른다고?”
“위험할지 모르니 제가 뜯어보겠습니다.”
백리우진이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장천운 대신 내부 호위를 책임진 지금이 그로선 사마경에게 잘 보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사마경은 좌수를 내밀며 그의 제의를 거부했다.
“괜찮아. 서신 하나도 두려워서 못 보면 전쟁을 어떻게 치르겠어? 이리 줘.”
백리우진은 망설이는 표정으로 서신을 건넸다.
“소성주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드리긴 하겠습니다만, 위험할지 모르니 숨을 멈추고 뜯으셔야 합니다.”
“백리 대주, 의외네? 평상시에도 그래?”
“예?”
“항상 그렇게 남을 걱정하면서 살았어? 내가 듣기로는 그런 성격이 아니라고 하던데.”
백리우진은 한껏 고무되었다. 사마경이 자신에게 지금처럼 많은 말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표정을 보니 자신을 싫어하는 눈치도 아닌 듯했다.
그는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마경이 좋아할 만한 말만 골라서 했다.
“소성주께서는 구천성을 책임지고 있는 임시성주십니다. 다른 사람과 어찌 같겠습니까. 그리고 같은 일을 대하더라도 상대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는 법입니다. 저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부정적으로 말하겠지요.”
“결국 내가 소성주여서 다른 사람보다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군. 천운처럼 백리 대주를 싫어하는 사람은 백리 대주에 대해서 안 좋게 말하는 거고.”
“그렇습니다, 소성주.”
사람들은 대부분 누군가에게 특별대우를 받으면 좋아한다. 겉으로는 안 그런 척하는 도도한 여자도 속으로는 흐뭇해한다.
백리우진은 사마경 역시 싫어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아주 큰 착각이었다.
사마경은 감언이설을 좋아하지 않았다. 좋아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역겨워했다.
어릴 적, 사람들은 성주인 아버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자신을 터무니없이 칭찬하곤 했다. 그런 말을 옆에서 들을 때마다 구역질이 날 정도로 역겨웠다.
때문에 고의로 말썽이나 피우고 아버지에게 툭툭 쏘아댔다. 그런 나날이 자신의 일상사였다. 칭찬을 들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더구나 사마경은 앞에서 자신을 칭찬한 사람들이 안 보이는 곳에서 욕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자신을 막 대하는 장천운이 편했던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그만 가봐.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그리고 나도 다른 사람과 다를 것 없어. 앞으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냉랭한 목소리로 대답한 사마경은 밖으로 나가라는 듯 손을 저었다.
백리우진은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고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소성주. 제가 너무 주제넘게 말한 것 같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용서하고 말고 할 것도 없어. 백리 대주는 그저 본인의 생각을 말한 것뿐이니까. 그만 가보라니까?”
“예, 소성주. 그럼 이만…….”
백리우진은 사마경의 눈치를 보며 돌아섰다.
‘제기랄, 성격이 왜 저리 삐딱해? 데리고 살려면 저 성격부터 확실하게 고쳐 놓아야겠군.’
사마경은 백리우진이 방을 나선 후에야 봉인을 뜯었다.
옆에 있던 연송하도 그때만큼은 바짝 긴장했다.
백리우진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소성주에게 악감정을 품은 자가 보낸 것일지도 몰랐다. 그럴 경우 서신에 수작을 부렸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었다.
구천성을 다스릴 소성주 정도 되면 그러한 일에도 철저히 대비해야 하는데…….
‘후우우, 조심성이 너무 없으셔.’
하는 수 없다. 사마경에게서 조금이라도 이상 증세가 보이면 즉시 자신이 나서는 수밖에.
연송하가 눈에 잔뜩 힘을 주고 있을 때, 사마경이 태연하게 서신을 꺼냈다.
봉인 된 봉투 안에는 한 장짜리 간략한 내용의 서신이 들어 있었다.
“누가 보낸 거지?”
그녀는 호기심과 의아함과 긴장감이 뒤섞인 표정으로 서신을 펼쳤다.
필체는 용사비등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멋졌다. 글자는 많지 않았다. 보낸 사람의 이름도 적혀 있지 않았다.
그런데 서신을 읽어가던 그녀의 표정이 서서히 변했다.
믿을 수 없는 일과 마주쳤을 때의 표정, 혹은 말도 안 된다는 표정, 또는 극한의 분노!
그 모든 표정이 찰나에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구천성 임시성주 사마경 전.
부친을 찾고 싶으시오? 그렇다면 본인이 하라는 대로 하시오. 따르지 않으면 소성주는 평생 후회하게 될 것이니…….]
아버지의 시신이 사라진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당시 마신총에 들어갔던 사람들이 사방팔방에 소문을 퍼뜨렸다면 또 몰라도.
하지만 사람들이 소문을 퍼뜨렸다면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귀에 들어왔을 것이었다. 첩밀각과 비령각의 대원들이 귀머거리가 아닌 이상.
아버지의 시신을 훔쳐간 놈들일까? 아니면 아버지의 시신이 사라진 것을 알고 이용해 먹으려는 사기꾼?
그 어느 쪽이든 절대 용서하지 않으리라!
더구나 그들이 건넨 정보와 내건 조건은 그녀의 인내심마저 붕괴시켰다.
“말도 안 되는…… 절대 그럴 수 없어…… 그럴 수는…….”
웅얼거리는 그녀의 몸 전체가 부들부들 떨렸다.
연송하가 다급히 말을 건넸다.
“소성주님, 진정하세요.”
사마경은 서신을 와락 움켜쥐었다.
서신이 그녀의 손 안에서 가루가 되어 흘러내렸다.
허공을 노려보는 그녀의 두 눈에 서리가 내렸다.
그녀는 그 자세 그대로, 얼음을 깎아 만든 조각상처럼 한기를 뿜어내면서 움직이지 않았다.
일 각, 이각…….
연송하는 초조한 마음으로 사마경을 지켜보았다.
질식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누군가가 칼로 허공을 찌르면 먹물이 주르륵 흘러내릴 듯했다.
분위기가 워낙 무겁다 보니 말도 붙일 수 없었다.
무슨 일일까. 서신에 무슨 내용이 적혀 있었기에 저런 표정일까. 무림맹과의 전쟁을 코앞에 둔 지금, 어떤 내용이 소성주를 분노의 화신으로 만든 걸까.
그렇게 한시진이 막 넘어갔을 때였다. 사마경의 눈빛이 무채색으로 가라앉았다. 그리고 영원히 달라붙을 것 같던 입술이 열렸다.
“송하야, 가서 천운을 데려와.”
* * *
운공을 하다 불려온 장천운은 얼음을 깎아 만든 인형처럼 앉아 있는 사마경을 보고 눈이 가늘어졌다.
자시쯤 묵조와 함께 출발하기로 했다. 밤새 쉬지 않고 달려서 동이 트기 전에 무림맹 주력고수들을 제거하려면 공력을 최대한 회복해야 했다.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아는 사마경이 갑자기 부른 것도 이상한데 표정은 더 괴이했다.
‘서신에 무슨 내용이 적혀 있어서 저러지?’
연송하에게 대략적인 이야기를 듣긴 했다.
누군가가 서신을 별원의 뒷문에 꽂고 사라졌다고 했다. 소성주에게 전하는 서신이었다. 그 서신을 본 소성주는 분노에 치를 떨면서 서신을 가루로 만들어버렸다고 했다. 그 바람에 연송하도 서신의 내용을 알지 못했다.
그 후 소성주는 자신을 불러들였고, 지금은 연송하조차 밖으로 내보내고 단 둘만 남았다.
“무슨 일입니까, 소성주.”
“몸은 좀 어때?”
“지금 기분 같아서는 공손백도 때려잡을 것 같습니다.”
다른 때였다면 흘겨보며 핀잔을 주거나 피식 실소를 지었을 것이다.
사실 그러라고 한 말이었다. 지금처럼 굳어 있는 모습을 보는 건 옷 속에 가시가 들어간 것처럼 불편했다.
하지만 소성주의 얼어붙은 얼굴은 펴질 줄 몰랐다.
“설마 진짜로 공손백을 잡아오라는 명령을 내리려는 건 아니겠죠?”
농담을 한 번 더 던져보았다.
그래도 변화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조금 심하게 찔러보았다.
“혹시 백리우진이 못된 짓이라도…….”
그제야 반응을 보였다.
소성주가 일어나더니 자신을 향해 다가온다.
딱 한 걸음 앞에서 멈춘 그녀가 고개를 쳐들고 자신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본다.
그제야 소성주의 눈이 약간 충혈 되어 있다는 걸 알았다. 여태껏 그녀의 눈이 저토록 충혈된 것을 본 적은 단 두 번뿐이었다.
절독곡에서 실험체가 된 자신이 독을 복용하고 죽기 직전일 때.
그리고 천궁마신의 시신이 사라진 그날.
“무슨 일입니까? 말씀해 보십시오.”
“천운.”
옥구슬처럼 맑던 음성이 쩍쩍 갈라져서 흘러나왔다. 전이었다면 ‘옥에 금이라도 갔나 보다.’라고 농담처럼 생각했겠지만 오늘은 농담할 기분도 나지 않았다.
“예, 소성주.”
“천운은 내 호위무사, 맞지?”
당연한 것을 이상하게 묻는 사마경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그녀의 태도가 왠지 이상했지만, 장천운은 힘을 주어 대답했다.
“당연하죠.”
“시키는 일은 뭐든 해야 하지?”
“물론이죠.”
사마경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러고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더니 힘들게 말했다.
“그럼…… 부탁 하나 해도 될까?”
부탁?
갑자기 그렇게 무서운(?) 말을 하다니.
소성주는 명령을 내리는 존재다. 부탁을 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리고 자신은 명령이 떨어지면 이행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맹서를 했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웬 부탁?
더구나 지금처럼 미묘한 분위기에서 부탁이라니.
오늘따라 그 말이 명령보다 더 무섭게 들렸다.
“명령이 아니라…… 부탁입니까?”
“어. 날 대신해서 죽어줄 수는 없다고 했잖아.”
분명히 그렇게 말했었다. 살아서 끝까지 지키겠다고 했었다.
이제야 부탁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어떤 부탁입니까?”
“날 위해서…… 한번만 죽어줘.”
92장: 원한다면…….
이창 외곽에 있는 작은 사찰에는 방 두 개짜리 객당이 있었다. 평소에는 사람이 찾지 않아서 비워두다시피 했는데, 그날은 방 두 개가 비좁을 정도로 손님이 꽉 차 있었다.
그 중 담장 쪽 방은 자정이 다 되어가는 데도 불이 켜져 있었다.
불이 켜진 방에는 두 사람이 있었는데, 그 중 서신을 읽고 있는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청산자의 제자, 정도하였다.
서신을 다 읽은 정도하는 천천히 눈을 들었다.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번지면서 눈가의 잔주름이 부챗살처럼 퍼졌다.
“훗, 재미있는 일이군.”
그의 앞에 서 있던 사십대 후반의 중년인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은당 수하가 발견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우리의 정체를 알고서 보낸 것 같습니다.”
수하의 말에도 정도하는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누가 이런 정보를 우리에게 보냈을 거라 보느냐?”
“저희의 정체를 아는 강호인은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서신을 보낼 만한 자들은 더욱 적지요.”
“물론 그렇지. 그래도 금룡이나 암천이 보낸 것은 아닐 거다.”
금룡과 암천에 속한 세력이나 인물들에 대해서는 정도하조차도 모르는 것이 많다. 그들 역시 자신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미미하겠지만.
“누구든 구천성이 이번 전쟁에서 이기는 것을 싫어하는 자일 겁니다.”
“구천성을 싫어하는 곳은 많다. 아마 천하의 반은 싫어할 거야.”
“굳이 꼽는다면 아무래도 파천회가 의심스럽습니다.”
“파천회라…… 그들이 우리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전소 호법이 파고들어가는 시기에 맞춰서 서신을 전했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움직임을 모두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정도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숙은 파천회를 배후에서 움직이는 자가 있을지 모른다고 했지. 그 추측이 사실이고, 그가 우리의 움직임을 알고 있다면 지금까지의 계획을 전면적으로 수정해야 할 거다.”
“이 서신에 대해서는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이십니까?”
정도하는 서신을 잠시 쳐다보고는 냉소를 지었다.
“이걸 던져준 놈들의 정체가 뭐든, 고기를 손에 쥐어주는데 마다할 필요는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