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225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04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225화
정문을 오가던 사람 중 두엇이 대운을 보고 말을 걸었다.
“어? 대운, 오랜만이군. 어딜 가시는가?”
그렇게 말한 삼십대 도인은 청성파의 제자인 영선도장이었고,
“몸이 안 좋다고 들었는데, 이제 괜찮은가?”
그렇게 물은 사람은 서문세가의 사람인 서문전이었다.
“아미타불, 손님이 찾아왔다고 해서 만나러 나왔습니다.”
담담히 그렇게 답한 대운은 청년을 향해 다가갔다. 그 사이 거리는 오 장 이내로 줄어들어 있었다.
대운은 청년과 여덟 자 정도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아미타불, 빈승이 대운이오. 무슨 일로 찾아오셨소?”
청년, 단승은 나무에서 어깨를 떼고 단도직입적으로 용건을 꺼냈다.
“그대와 비무하려고 왔지.”
비무?
대운은 뜬금없는 비무요청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빈승과 비무하고 싶어서 왔단 말씀이오?”
“맞아. 무림십룡 중 하나, 소림사의 대운이라면 내 적수로 부족하지 않을 것 같거든.”
황당한 말이었다. 지난 몇 년 사이 들은 말 중에서 가장 괴상한 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단승이란 자의 전신에서 은은한 기운이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었다. 절정고수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그런 기운.
상대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자였다.
“빈승을 너무 높게 봐주시는 것 아닌지 모르겠구려.”
“높게 봐준 것이 아니라 사실을 말한 거다. 자부심을 가져도 좋아.”
말투가 괴이하긴 해도 장난으로 하는 말은 아닌 듯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말을 듣고 피가 뜨거워졌다.
소림사의 제자가 되어 무공을 익힌 지 이십 년. 장천운과 싸우기 전에는 진정한 강자와의 대결, 생사를 건 격전이 주는 짜릿한 쾌감을 알지 못했다. 패배의 쓰라린 아픔도.
불과 이틀 사이, 이제는 사람들이 왜 호승심을 이기지 못하고 감정을 폭발시키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미타불. 진정 비무를 원한다면 빈승 역시 마다할 마음은 없소이다.”
장천운과의 대결에서 입은 내상이 아직 낫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 때문에 비무를 피하고 싶지는 않았다.
단승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여인 같은 그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자 대운조차 잠시잠깐 멍한 표정으로 눈을 떼지 못했다.
그 표정의 의미를 눈치 챈 단승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고 대신 입술이 씰룩거렸다.
“저쪽으로 갈까? 사람이 지켜보는 게 싫거든. 날 따라오는 게 두려우면 거부해도 돼.”
왠지 새침하게 느껴지는 말투.
대운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려하자 겨우 참고 답했다.
“험, 아미타불, 그렇게 하지요.”
단승의 거침없는 태도가 싫지 않았다.
단승은 대운을 백여 장 떨어진 한적한 풀숲 속 공터로 데려갔다. 철기보로 오면서 미리 봐두었던 장소였다.
사람이 자주 다니는 길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고, 한쪽에는 십여 장 폭의 내가 흐르고 있었다. 대결을 펼친 후 시원하게 얼굴과 손을 씻기에 그만이었다.
대운도 장소가 마음에 들었다.
공터를 둘러본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서 풀숲을 등에 지고 우뚝 섰다.
순간, 그의 전신에서 숭산의 웅장한 기세를 닮은 기운이 피어났다.
단승도 흐트러져서 눈을 가리는 머리카락을 단정히 정리한 후 검을 뽑았다.
검이 뽑히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그의 몸 자체가 한 자루 검이 된 듯했다.
산악과 같은 대운, 한 자루 검이 되어버린 단승.
두 사람은 상대의 기세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강하다는 걸 알고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확실히 무림십룡이라는 이름을 땅따먹기로 얻은 것은 아닌 것 같군.”
“시주 역시 이 대운의 피를 끓게 만들 만한 자격이 있소이다.”
“훗, 어차피 모든 건 결과가 말해주겠지, 시작해볼까?”
단승이 검을 사선으로 늘어뜨린 채 땅을 박찼다.
대운도 쌍장 가득 공력을 집중한 채 두 발을 역 팔자로 쓱쓱 내딛었다.
두 다리를 철기둥처럼 우뚝 세운 그가 쌍장을 내밀며 원을 그렸다.
웅장한 반야신공을 바탕으로 나한금강장이 펼쳐졌다. 일순간, 대운을 중심으로 일장 반경이 진공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 안에서 찰나에 여덟 번의 변화가 일어났다. 허공이 부처의 거대한 손 그림자로 뒤덮였다. 그것이 바로 소림의 절기 중 절기라는 반야금강장이었다.
후우우웅.
땅을 박차고 몸을 날린 단승은 대운의 장세를 향해서 벼락처럼 검을 뻗었다.
번쩍! 하는가 싶더니 단승의 손에서 검이 사라졌다. 아니 워낙 빠른 변화여서 검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그와 동시에 대낮에 벼락이 떨어진 듯 눈부신 섬광이 터졌다.
진기의 폭발 여파로 인해서 한 사람은 땅에 고랑을 파며 밀려나고, 한 사람은 뒤로 날아갔다.
오 장의 거리로 벌어진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았다.
누가 더 큰 충격을 받았는지는 확실치 않았다. 겉모습만 봐서는 비슷하게 충격을 받은 듯했다.
누구보다 두 사람이 자신의 상태를 잘 알았다. 또한 상대의 몸 상태 역시 거의 정확하게 짐작하고 있었다.
기회를 잡았을 때 몰아붙여야 한다는 것 역시 두 사람 모두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짧은 시간에 충격을 가라앉힌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서로를 향해 재차 몸을 날렸다.
두 번째 격돌에서는 두 사람을 둘러싼 대지가 구덩이처럼 파이고, 바위는 모래가 되어 부서지고, 나무는 잘게 부서져서 바람에 흩날렸다.
세 번째 격돌에서는 주위가 처음과 완전히 다른, 을씨년스러운 풍경이 되어버렸다.
두 사람은 이제 오기도, 자존심도 잊고 네 번째 초식을 펼쳤다.
대운은 이를 악물고 천불수를 펼치기 위해서 반야신공을 십성 전력으로 끌어올렸다.
천불수는 십 년 전 달마동 천정의 그림을 보고 깨달은 무공이었다. 십 년 동안 익혔음에도 아직 칠성 경지에 머물러 있었다.
완벽하지 않은 천불수를 펼치면 자칫 심각한 내상을 입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승부를 포기할 마음은 없었다. 내상을 입더라도 단승이란 자에게 지고 싶지 않았다.
스승님께 수양이 부족하다고 혼나더라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기고 싶었다.
쿠르르르릉.
그의 몸에서 천둥이 울고, 장엄한 기운이 해일처럼 일어났다.
단승도 전 공력을 검에 집중했다. 푸르스름한 검강지기가 검신을 휘돌며 뻗어 나왔다.
대운의 무공은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강했다. 무림십룡이 왜 중원의 청년고수 중 첫손으로 꼽히는지 알 듯했다.
대운의 몸에서 웅장한 기운이 일어나는 것을 본 그는 검강이 발현된 검을 들어서 가슴 앞에 세웠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자세였다.
‘질순 없지!’
마지막 비무다. 상대를 이길 수 있는 무공이 없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승부에 몰입된 그는 절대절명의 경우가 아니면 펼쳐서는 안 되는 초식을 펼치기로 작정했다.
훗날 그로 인해서 큰 손해를 볼지도 모른다. 최후의 힘을 얻을 수 있는 자격을 상실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이 승부에서 패하면 어차피 끝장이었다. 내일 하늘이 무너지더라도 지금은 눈앞의 승부가 더 중요했다.
‘오냐, 어디 한번 해보자, 대운!’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서로를 향해 날아가며 네 번째 초식을 펼쳤다.
셀 수 없이 많은 부처의 손 그림자가 그물처럼 단승을 덮어갔다.
손 그림자는 허상이되 허상이 아니었다. 수백의 손 그림자 하나하나에 바위를 부술 수 있는 힘이 실려 있었다.
단승은 벼락같은 쾌검을 눈 깜짝할 새에 수십 번이나 뻗었다. 검강이 실린 검영이 폭발하듯 퍼져나가며 수백의 손 그림자에 맞섰다.
당사자에게는 억겁처럼 긴 시간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진이라도 난 줄 알고 쥐구멍에서 고개를 삐죽 내민 들쥐가 좌우를 한번 둘러본 순간, 격돌은 끝이 났다.
쏴아아아아아!
대운과 단승의 네 번째 격돌 여파가 주위 십 장 이내를 휩쓸었다.
말 그대로 거센 파도가 백사장을 쓸어내듯이 모든 것이 쓸려서 밀려났다.
두 사람은 그 가운데 서서 이 장 거리를 둔 채 서로를 노려보았다.
대운이 단승보다 조금이나마 나아 보였다. 단승도 그 차이를 모르지 않았다.
‘제기랄. 이게 무슨 꼴이야?’
창백한 얼굴, 푸르스름하게 질린 입술. 옷은 걸레쪽처럼 찢어졌고, 다리는 바람도 없는데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아미……타……불, 세상은 확실히 넓은 것 같구려.”
단승은 대운의 말에 입술을 씰룩였다.
“십룡이 천하의 거산준봉 위에 올라서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군.”
대운은 그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빈승은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없소이다.”
“내 말을 비웃는 거냐? 소림의 대운에게 그럴 자격이 없다면 누구에게 있단 말이냐?”
“빈승보다 젊은 시주의 삼 초식도 못 받아낸 주제에 거산준봉 운운한다면 세상이 비웃지 않겠소이까.”
단승은 그 말뜻을 정확히 숨을 두 번 쉬고 나서 깨달았다.
“……뭐?”
“아마 그가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면 빈승은 지금 시주의 앞이 아니라 염라대왕 앞에 있었을 거요, 아미타불.”
“대체 그가 누군데……?”
“구천성의 장천운이란 시주요. 시주도 아마 그를 볼 날이 있을 거요.”
“구천성의 장천운?”
순간, 단승은 묘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썩 좋은 예감은 아니었다. 좋기는커녕 불길함이 더 진했다.
‘어떤 자식이 대운을 이겼다는 거지?’
삼 초식 만에 졌다는 말은 흘려들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니까.
그 말을 믿는 놈이 멍청한 놈이지.
‘좋아, 그럼 마지막 비무를 다음으로 미루어야겠군.’
무공은 상대적인 면이 많다. 대운이 패했다고 해서 자신도 패하라는 법은 없었다. 특히 자신과 같은 쾌검사는 자신보다 훨씬 강한 무사도 종종 이긴다.
장천운이란 놈을 이긴다면 대운에게 눈곱만큼 밀린 아쉬움을 털어버릴 수 있지 않을까?
단승은 훗날 머리를 쥐어뜯으며 후회할 결정을 그렇게 별 생각 없이 내렸다.
* * *
별원을 순찰하던 수혼대 삼조장 관철양은 서쪽 지평선에 걸쳐져 있는 석양을 바라보았다.
진홍색으로 물든 석양이 오늘따라 유난히 요사하게 느껴졌다.
이제 곧 어둠이 점령군처럼 진군해 올 것이었다.
어둠을 막기 위해 방어막이라도 치려는 듯 무사들이 화톳불을 피우느라 분주했다.
관철양은 무사들의 움직임을 둘러보고는 별원의 뒤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바로 그때 외곽을 경비하던 무사 하나가 안으로 뛰어 들어오는 게 보였다. 일전에 수혼대를 보강할 때 오조장이 된 유철이었다.
걸음을 멈춘 관철양은 유철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다.
“무슨 일인가, 유 조장?”
유철은 품속에서 하얀 서신봉투를 하나 꺼냈다.
“순찰 중에 이걸 발견했네.”
서신봉투는 입구가 봉인되어 있었다.
“소성주님께 보낸 서신인데, 보낸 자의 이름이 없어.”
관철양은 이마를 찌푸리며 서신봉투를 받았다.
봉인된 서신의 전면에 ‘구천성 소성주 친전(親傳)’이라고 쓰여 있고, 입구는 봉인이 된 상태였다.
“어디서 발견한 거지?”
“별원 뒷문 바깥쪽의 모란꽃 문양 한가운데에 꽂혀 있었네.”
“누가 꽂아놓았는지 아무도 못 봤단 말인가?”
“경비가 끊임없이 돌고 있었는데 본 사람이 없네. 귀신이 곡할 노릇이야.”
동마보에는 여러 세력의 무사들이 집결해서 북적거렸다. 모르는 사람이 오가더라도 수상한 짓만 하지 않으면 제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어스름이 밀려드는 시각, 고수가 다가와서 서신을 뒷문에 꽂았다면 놓칠 가능성이 컸다.
“알았네. 일단 소성주께 전해드리도록 하지.”
관철양은 서신을 들고 건물의 입구 쪽으로 향했다.
그때 건물 안에서 몇 사람이 나왔다. 개중에는 장천운을 대신해서 내부 경비를 책임지고 있는 백리우진도 있었다.
“무슨 일이오, 관 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