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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224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95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224화

장천운은 사마경과 우문각을 번갈아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저런 반응이지?

‘묵조? 그런 조직도 있었나?’

우문각은 더 이상 숨겨놓은 힘이 없다고 자신의 입으로 말했었다. 만약 거짓이라면 한 입으로 두 말한 셈이 된다.

졸지에 ‘일구이언 이부지자’가 된 우문각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어떻게…… 아셨소?”

“아버지가 남긴 일기에 적혀 있었어요.”

절반은 진실이고, 절반은 거짓이었다.

사마경이 우문각을 믿지 못하게 된 이유도 사실은 묵조 때문이라 할 수 있었다.

존재유무조차 확실치 않은 극비 조직.

그녀는 그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은 마음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어설픈 상황에서 물어본다 한들 순순히 알려주겠는가. 빠져나갈 구멍이 없을 때, 대답하지 않을 수 없을 때, 보다 더 극적인 상황에서 물어보아도 솔직한 대답을 들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거늘.

오늘 마침 그런 기회가 왔다. 그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곧장 우문각의 심장을 강타했다.

“총사에게는 아버지조차, 구천성의 성주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불가해한 힘이 있다고 하더군요. 물론 총사의 신안공을 말하신 것이 아니었어요.”

“성주께서 아시고 계실 줄은 몰랐구려.”

우문각의 가라앉았던 눈빛이 서서히 제 상태를 찾아갔다.

“아버지는 친구를 의심하고 싶어 하지 않으셨죠. 당신이 다치는 한이 있어도.”

담담함 속에서 도도함이 느껴지는 사마경의 목소리에 우문각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랬나? 알고도 놔두었단 말이지?’

그의 입가에 고졸한 미소가 매달렸다.

“나도 얼마 전에야 알았소만, 소성주는 정말 성주를 많이 닮으셨소.”

“제가요?”

“성주는 천부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흔들 줄 알았소. 내가 가장 부러워했던 점이었소.”

“그런 분이 가족의 마음은 아프게 하셨죠.”

“아마…… 어쩔 수 없었을 거요, 성주도.”

사마경은 붉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아버지 이야기는 그만해요.”

아직 잃어버린 시신도 찾지 못했다. 아버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만 답답하고 울컥거렸다.

“묵조는 인원이 몇이나 되나요?”

우문각의 표정도 본래대로 돌아갔다. 사마경이 알고 있다면 더 이상의 부정은 의미가 없었다.

“모두 열둘이오.”

“이곳에 있나요?”

“여섯은 이곳에 있고, 여섯은 오지 않았소.”

“언제쯤 움직이는 게 좋을까요?”

“밤에 움직이는 게 낫지 않을까 싶소. 단, 지휘는 장 대주가 맡아야만 하오.”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장천운의 눈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눈에서 뇌전처럼 쏘아진 눈빛이 우문각의 옆통수에 꽂혔다.

우문각은 모른 척, 눈동자도 흔들리지 않고 몇 마디 덧붙였다.

“그들도 장 대주에 대해서 매우 궁금해 하고 있소. 어차피 알게 된 이상 자주 일하게 될 텐데, 상견례 하는 셈치고 함께 일을 처리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요.”

 

 

91장: 부탁 하나 해도 될까?

 

 

살을 에는 긴장감이 이창 일대를 짓눌렀다.

양민들은 나들이를 자제하고 집안에 틀어박혔다. 황군도 전열을 정비한 채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강호세력 간의 전쟁이 임박해오고 있었다. 자기들끼리 개싸움을 벌이는 거야 신경 쓸 것도 없었다. 죽든 말든 무슨 상관인가.

그러나 싸움이 커지면 양민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컸다. 그럼 황군 역시 개입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반면, 이창의 객잔은 때 아닌 호황을 누렸다. 강호의 무인들이 이창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구문팔가의 무사들이 모두 머물기에는 철기보가 비좁았다. 그 바람에 상당수 무사들이 객잔에 머물고 있었다.

이창 동쪽 거리의 용원객잔도 이틀 전부터 몰려드는 손님들 때문에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오늘도 오시가 되자 많은 손님들이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서 몰려들었다. 한쪽 구석에 앉아 있는 청년도 조금만 늦었다면 자리를 차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색 바랜 검은색 낡은 무복을 걸치고 등에 검을 맨 청년은 이십대 후반쯤으로 보였다.

호리호리한 체구, 대충 뒤로 묶은 긴 머리, 여자처럼 갸름한 얼굴에 피부도 유난히 하얗고 눈썹마저 가늘었다. 아마 수염만 아니었다면 객잔의 사람 중 반은 남장여자라고 의심했을 것이다.

그는 혼자 앉아서 달랑 음식 한 접시를 반 시진에 걸쳐서 먹었다. 그가 식사를 하는 모습은 답답함을 넘어서 경건해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손님이 많다 보니 식사 시간에는 자리가 비좁았다. 네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자리를 혼자서 반 시진이나 차지하고 있으니 자리가 없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좋게 보일 리 없었다.

뒷골목에서 놀기 딱 좋은 덩치와 인상을 지닌 네 장한도 기분이 상했다. 다른 객잔으로 가자니 귀찮고, 기다리자니 짜증이 났다.

“저건 뭔데 혼자 앉아서 죽치는 거야?”

“뭔 남자새끼가 음식을 깨작깨작 먹어?”

장한들이 청년의 신경을 자극했다. 그 정도 말했으면 알아서 일어나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청년은 어디서 개가 짖느냐는 듯 눈길도 주지 않았다.

참다못한 장한 하나가 직설적으로 말했다.

“이봐, 다 먹었으면 그만 일어나지 그래?”

그제야 청년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가느다란 눈썹은 세필로 먹을 듬뿍 묻혀서 쭉 그은 듯 짙고도 섬세했다. 그 아래쪽 눈썹은 여인처럼 길었고, 흰자위가 티 하나 없이 맑은 눈에선 검은 눈동자가 더욱 선명하게 빛났다.

청년은 앞쪽에 서 있는 자들을 쭉 둘러보더니 오른손을 들었다. 검지를 삐죽 세운 그가 점소이를 향해 까닥거렸다.

“이봐, 여기 차 한 잔 줘.”

점소이는 서 있는 무사들의 눈치를 보면서 주방으로 갔다. 마음 같아서야 그도 흑의무복을 입은 청년을 쫓아내고 싶었다.

아마 이 각 전에 벌어진 일만 아니었다면 하다못해 합석이라도 청해봤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 각 전, 허락도 없이 청년 앞에 앉아서 무력시위를 하던 무사 둘이 눈 깜짝할 새에 나뒹굴었다.

점소이는 그 광경을 본 후로 합석의 ‘합’자도 꺼내지 않았다.

‘씨바, 저러다 또 피 보지.’

그때 네 장한 중 하나가 흑의청년에게 다가갔다.

“귀가 막혔나?”

“하여간 이런 놈들은 두들겨 패야 말을 듣는다니까.”

“얼굴은 계집처럼 곱상하게 생긴 놈이 말귀를 못 알아먹네.”

그에 대한 청년의 대응은 짧고도 간단명료했다.

“꺼져.”

 

우당탕탕!

“윽!”

“이 개…… 컥!”

잠깐 요란한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객잔 전체가 조용해졌다.

차를 들고 주방을 나온 점소이는 청년에게 가지도 못하고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어휴, 그럼 그렇지.’

네 장한이 쓰러져서 바닥을 기고 있었다. 그들을 눈 깜짝할 순간에 쓰러뜨린 청년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점소이를 돌아다보았다.

“차 달라니까?”

점소이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진정시키고 차를 가져갔다.

청년은 언제 싸웠냐는 듯 태연히 자리에 앉더니 차를 마셨다.

그 사이 쓰러져 있던 장한 중 둘이 겨우 몸을 일으켰다.

“이 개자식이!”

“죽여버리겠어!”

챙!

눈을 치켜뜨고 욕을 퍼부은 장한 둘이 칼을 빼들고는 청년에게 달려들며 휘둘렀다.

청년이 등 뒤로 손을 가져갔다.

순간, 번쩍하는 광채와 함께 ‘쩡!’하는 소리가 나더니, 두 장한의 칼이 손을 벗어나서 허공으로 튕겨나갔다.

뒤이어 다시 한 번 광채가 허공을 갈랐다.

쉬아악!

안색이 하얗게 질린 두 장한은 몸이 굳어버렸다. 두 다리가 사시나무처럼 달달 떨렸다. 저러다 오줌을 지리는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공포에 질린 모습.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숨을 멈춘 채 두 장한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목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목이 갈라졌나? 뒈진 거 아냐?

사람들이 목소리를 죽인 채 수군거렸다.

하지만 목에서 피가 흘러나올 뿐 그 이상의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두 장한은 자신들이 죽지 않는다는 걸 알고 나서야 목을 움켜쥔 채 허겁지겁 물러섰다.

그제야 탁자를 잡고 몸을 일으킨 다른 장한 하나가 사신을 앞에 둔 표정으로 청년을 바라보았다. 당하고 나서야 청년의 정체를 알아낸 듯했다.

“호, 혹시…… 흑, 흑성혈검?”

이 년 전쯤 흑의를 걸친 한 청년이 산서성 일대와 하남성 북부 무림을 종횡하며 내로라하는 고수들과 비무를 치렀다.

개중에는 일류고수도 있었고, 심지어 절정경지에 도달한 고수도 몇 명이나 있었다. 그들은 여자처럼 곱게 생긴 청년을 얕보았다가 죽거나 중상을 입고 강호에서 사라졌다.

근 이 년에 걸쳐서 이십여 번의 비무가 벌어졌고, 어느 누구도 청년의 삼검을 받아내지 못했다.

청년의 쾌검은 눈으로 쫓을 수 없을 만큼 빨랐다.

비무를 지켜봤던 사람들은 별빛처럼 번쩍이는 광채가 지나가고 나면 반드시 피가 튀었다고 했다. 실제 그와 싸운 고수들 중 열두 명이 목에서 피를 흘렸다.

작년에는 산서성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거라 소문난 검의 고수, 일광검 정추도 청년의 검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 소문을 듣고 강호의 어떤 말쟁이가 그의 별호를 지었다.

흑성혈검.

최소한 산서성에서만큼은 그 이름이 무림십룡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죽고 싶으면 말만 해, 지금이라도 죽여줄 테니까. 그럴 거 아니면 꺼져.”

청년은 무뚝뚝한 어조로 축객령을 내리고 찻잔을 잡았다. 장한들은 청년이 말을 바꾸기 전에 도망치듯 객잔을 빠져나갔다.

사람들은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끝난 듯하자 힐끔거리며 시선을 돌렸다.

청년은 차를 마지막 한 모금까지 다 마셨다.

그에게 식사는 매우 중요한 행사였다. 항상 식사를 할 때마다 이번 식사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강적을 만나서 쓰러진다면 두 번 다시 식사를 할 수 없을 테니까.

그런 식사를 대충 배나 채우는 식으로 하고 싶지 않았다.

청년은 빈 찻잔을 내려놓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그를 만나러 가볼까?’

그가 이창에 온 이유 중 하나는 무림십룡에 속한 소림사의 대운이 이창으로 갔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무림맹이 구천성과 전쟁을 벌인다고 했던가?

그는 대운을 상대로 천일에 걸친 강호비무행의 대미를 장식한 후 원수 같은 친구들을 만나러갈 생각이었다.

한때 무림의 태산북두였던 소림사, 그리고 청년무사 중 최강이라는 무림십룡. 어느 모로 보나 대미를 장식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대운,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좋겠군.’

 

* * *

 

대운은 누군가가 자신을 찾아왔다는 말을 전해 듣고 의아해했다.

이창에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 강호의 무사 역시 무림맹 사람 외에는 아는 자가 거의 없었다.

무림맹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을 시켜서 자신을 찾지도 않았겠지.

‘단승이란 자가 누군데 나를 찾아온 거지?’

어쨌든 자신을 찾아왔다고 하니 모른 척할 수도 없는 일. 그는 철기보의 정문으로 나가보았다.

“아미타불, 소림의 대운이라 하오. 빈승을 찾아온 분이 있다고 들었소만…….”

젊은 정문위사들이 대운을 알아보고 황급히 포권을 취했다. 그들로서는 무림십룡의 하나인 대운과 말을 섞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다.

“예, 대운스님. 찾아온 손님은 저쪽에 계십니다.”

정문위사 중 삼십대로 보이는 무사가 손을 들어서 한쪽을 가리켰다.

정문에서 십여 장 떨어진 곳에 둘레가 한 아름 정도 되는 나무 십여 그루가 서 있었다. 나무 아래에 말고삐를 묶어두는 시설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외부인들이 말을 타고 오면 그곳에 세워두는 듯했다.

그 십여 그루 나무 중 제일 굵은 나무에 호리호리한 청년이 어깨를 기대고 비스듬히 서 있었다.

처음 보는 자였다.

‘잘생긴 시주군.’

대운은 청년을 주시하며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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