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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261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02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261화

강련곡의 수련을 거친 사람 중 좋은 추억을 간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강련곡을 바라보고는 오줌도 누지 않겠다고 할 정도였다.

장천운도 다르지 않았다.

연송하를 동생으로 둔 것과 유진생에게 혼천수라권을 배운 것이 아니라면 이름조차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강련곡을 눈앞에 두자 고향에 온 기분이 들었다.

 

강련곡은 삼면이 깎아지른 절벽이고 입구는 경비무사 십여 명이 지키고 있다.

절벽 위에도 경비가 있어서 몰래 들어가는 것은 절정고수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장천운에게는 경비무사가 허수아비나 다름없었지만.

환신술을 펼쳐서 유유히 입구를 통과한 장천운은 유진생의 거처로 갔다.

이삼 년 사이 강련곡의 교관 중 절반이 바뀌어 있었다.

그러나 유진생과 양태악 교관은 아직도 강련곡에 있었다. 특히 유진생은 수석교관이었다.

유진생은 방문 쪽에서 바람이 들어오자 고개를 돌렸다.

처음 보는 자가 방문을 닫고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냐?”

덥수룩한 수염과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얼굴의 대부분을 덮고 있어 나이를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강련곡에 저런 수련생이 있던가?

현재 수련생 숫자는 모두 이백여 명. 아무리 뇌리를 뒤져봐도 앞에 있는 자는 기억에 없었다.

물론 교관은 더더욱 아니었고.

“누군데 허락도 없이 내 방에 들어온 거냐?”

유진생은 차갑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늘게 뜬 눈에서 한광이 번뜩였다.

수련생도 아니고 교관도 아니라면 침입자라는 뜻.

그런데 방에 들어온 자가 뜬금없이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응?”

“하나 뿐인 제자를 몰라보다니, 서운하군요.”

제자?

‘저 새끼가 지금 무슨 소리하는 거야? 나는 제자가 없는……?’

아니다. 없는 게 아니라 사제지연을 맺지 않았을 뿐이다.

방문 쪽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유진생의 눈이 점점 커졌다.

“너…… 혹시……?”

“이제 혼천수라권으로 대결해도 제가 이길 겁니다.”

순간, 유진생의 눈매가 잘게 떨렸다.

독하기로 유명한 그의 눈에 물기가 맺힌 듯했다.

장천운은 ‘잘못 봤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분명 물기였다.

유마두가 눈물을 짓다니.

“설마 지금 우시는 건 아니겠죠?”

“울긴 누가 울어, 인마? 그냥 밤늦은 시간이어서 졸렸던 것뿐이야.”

유진생은 대충 둘러댔다.

자존심이 있지, 다 큰 어른이 울었다고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말이다.

“차라도 한잔 주시죠.”

“차? 그래, 주지 뭐.”

그러다 흠칫하며 장천운을 귀신 보듯 쳐다보았다.

“가만? 너…… 죽었다던데…….”

“어떻게 아셨습니까?”

장천운이 목소리를 낮게 깔고 음산하게 말했다.

때맞춰서 등잔불이 금방이라도 꺼질 듯이 흔들렸다.

유진생이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설마…… 귀신? 아니지, 내가 지금 꿈을 꾸는 건가?”

피식, 실소를 지은 장천운이 혀라도 찰 것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차 달라는 귀신 봤습니까? 장난도 못 치겠네.”

그제야 귀신이 아니라는 걸 안 유진생의 표정이 활짝 펴졌다.

“살아 있었구나, 천운! 그런데 얼굴이 왜 그 모양이냐?”

“쉿. 다른 사람들이 알면 안 됩니다. 목소리 낮추고 차나 주세요. 얼굴도 다른 사람이 알까봐 역용을 한 겁니다.”

“응? 그래, 알았다.”

 

따듯하게 데워진 차를 한 모금 마신 장천운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말썽 피우는 사람이 없나보군요. 혈색이 좋은데요?”

“자식…….”

“그런데 언제까지 이곳에 계실 생각입니까?”

“잘 됐지 뭐. 나가봐야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가 뒈지기밖에 더하겠냐?”

“하긴 구천성이야 망하면 망하는 거고, 일단 살고 봐야죠.”

유진생이 눈을 껌벅였다.

구천성이 망해? 왜?

“무림맹에게 밀리고 있냐?”

“그게 아니라…….”

장천운은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가 아는 유진생은 천외의 일원이 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오로지 혼천수라권을 위해서만 살아온 사람. 똥꼬집만 센 사람.

이 세상에서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

장천운은 그래서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그래서 몰래 들어온 거죠.”

유진생은 동그래진 눈으로 입을 반쯤 벌린 채 장천운의 말을 끝까지 듣고 나서야 겨우 한마디 던졌다.

“진짜냐?”

“저 아시잖습니까?”

그래, 안다. 장천운이 얼마나 끈질긴 놈인지. 말거머리도 진저리칠 놈이라는 걸.

그런 놈이 저리도 심각하게 말할 정도면 정말 심각한 일이 벌어졌다는 말이었다.

문제는 그 내용이다.

세상에! 구천성을 공깃돌처럼 손바닥 위에서 갖고 노는 놈들이 있다니!

두렵진 않았다. 오히려 화가 났다.

흑도출신으로 그동안 당한 서러움이 얼마나 많던가.

그 와중에도 오로지 구천성 강련곡의 교관이라는 자부심으로 살아온 그다.

그에게 구천성의 위엄은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었다.

그 자존심을 밟는 놈은 웬수고.

“내가 뭘 해주면 되냐?”

“뭘 해주길 바라고 온 게 아니라…….”

“시답잖은 소리 마라. 그 동안 코빼기도 안 보이던 놈이 내가 보고 싶어서 온 것은 아닐 거고, 그렇다면 바라는 게 있다는 소리 아니냐?”

유진생이 째려보았다.

만나서 반가운 것은 반가운 거고, 그 동안 많이 서운했나보다.

하긴 장천운으로선 입이 열 개여도 할 말이 없었다.

소성주와 돌아온 후 한 번도 들르지 않았으니까.

“저도 무지 만나고 싶었는데, 행여나 교관님께 해가 될까봐 안 찾아왔던 것뿐입니다. 저와 가까운 사이인 줄 알면 대령주가 가만 놔두겠어요?”

“…….”

“진짜라니까요?”

“정말……이냐?”

“나중에 유고원이랑 송하 만나면 물어보세요. 걔들은 제 마음을 다 아니까요.”

솔직히…… 모른다. 말한 적이 없으니까.

좋은 뜻으로 한 거짓말이니 나중에 알아도 봐주겠지.

‘후우, 먼저 만나서 말을 맞춰놓아야겠군.’

어쨌든 유진생도 그쯤에서 불만을 거두었다.

“뭐 그렇다면 나도 더 이상 그 일은 따지지 않으마.”

“따질 것도 없어요. 좌우간 그건 그렇고…… 교관님도 이제 강련곡에서 나가셔야죠. 자리는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꼭 밖으로 나가야만 하냐?”

“율검당이라면 교관님의 적성에 맞을 겁니다.”

장천운이 제대로 찍은 듯했다. 율검당이라는 말에 유진생의 얼굴이 펴졌다.

“뭐 율검당이라면야…….”

 

* * *

 

전무궁을 만나는 일은 모험이었다.

본래는 잠입해 있는 흑월회의 사람들만으로 조사하려고 했다.

문제는 간부들이었다. 그들을 조사하려면 흑월회 사람들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고심하던 장천운은 자신의 운에 승부를 걸었다.

전무궁을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그가 천외의 사람이 아니라면 승산이 조금 더 높아질 것이었다.

다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진 않을 생각이었다.

 

황촛불 아래에서 서류를 검토하던 전무궁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서 어스름한 창가를 노려보았다.

창가에 한 사람이 유령처럼 고요히 서 있었다.

정체불명의 사람이 갑작스럽게 나타나면 놀랄 만도 하건만 전무궁은 숨을 한번 몰아쉬는 것으로 감정을 다스렸다.

거기다 나직한 다그침까지.

“누군데 허락도 없이 이곳에 들어온 것이냐?”

간덩이가 쇠로 되어 있지 않고서야 정말 대단한 담력이 아닐 수 없었다.

“물어볼 것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장천운은 목소리를 변형해서 대답했다.

방안은 이미 그에 의해 음파가 차단된 상태였다. 천둥 같은 폭음만 아니라면 목소리가 새어나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전무궁은 차가운 눈초리로 장천운을 노려보았다.

율검당주의 거처는 호위무사 넷이 지키고 있었다.

그럼에도 누군가의 침입이 알려지지 않았다면 이유는 하나뿐.

“이곳을 지키는 아이들을 어떻게 했느냐?”

“잠도 못자고 고생하는 것 같아서 재웠지요. 한 시진 정도 푹 자고나면 아무 이상 없이 일어날 겁니다.”

전무궁은 안도하는 한편으로 등골이 서늘해졌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일류고수인 호위들이 당했다.

도대체 어떻게?

하지만 그는 최대한 흔들림 없는 표정을 유지하며 말했다.

“뭘 물어보려는지 몰라도, 내일 아침에 정식으로 찾아와라.”

“그럴 수 없다는 걸 당주도 잘 아시잖습니까?”

“흥! 나는 몰래 찾아와서 뒷구멍으로 수작부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냥 보내줄 때 순순히 돌아가라.”

그 말에 돌아갈 것이면 오지도 않았다.

장천운은 곧바로 본론을 꺼내서 전무궁을 시험해보았다.

“천외와 관련된 일이라면 어떻습니까?”

“무슨 헛소리냐? 천외라니?”

“하늘 밖의 하늘에 대한 이야기 말입니다.”

“헛소리 할 거면 돌아가라. 마지막 기회니라.”

찌푸린 전무궁의 표정에 흔들림이 없었다. 눈빛 역시 짜증만 가득했다.

거짓이 아니라는 뜻.

“정말 그들을 모르십니까?”

“나를 모욕하지 마라. 나는 아는 걸 모른다고 할 정도로 거짓을 일삼는 사람이 아니니라.”

전무궁의 목소리가 냉랭해졌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공력을 일으켰다.

“허튼 소리나 지껄이는 걸 보니 결코 좋은 뜻으로 찾아온 놈은 아닐 터, 내 손을 원망치 마라.”

“율검당주라는 분이 그들을 모르다니. 한편으로는 다행이고, 한편으로는 실망스럽군요.”

전무궁이 멈칫했다. 말속에 담긴 뜻이 묘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구천성을 집어삼키려는 자들에 대해서 모르는 분이 어떻게 율검당을 이끌어간단 말입니까?”

“뭐야? 훗, 이제 보니 미친놈이군. 누가 감히 구천성을 집어삼킬 수 있단 말이냐?”

“제가 아는 바로는 이미 반 이상 그들에게 넘어간 것 같습니다만.”

“…….”

전무궁도 둔한 사람은 아니었다.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태연하게 말하는 상대의 눈빛은 거짓과 거리가 멀었다.

더구나 최근 들어서 벌어지고 있는 수상한 일들이 그의 말과 겹쳐지자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일단 분노부터 가라앉힌 그는 상대를 떠보았다.

“나는 네 말을 눈곱만큼도 믿을 수 없다.내가 네 말을 믿게 하려면 증거를 대봐라.”

“일원장을 조사해서 무엇을 건졌습니까?”

“뭐?”

“그곳의 주인 이름이 손우곤이라는 건 아십니까?”

“…….”

“그자가 금룡신군의 명령을 따른다는 것은?”

“…….”

“그럼 죽은 용평 장로가 천외의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아십니까?”

“…….”

“모릅니까? 그것도 모른다면…… 대령주 공손백이 천외와 손을 잡고 있다는 것도 모르겠군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내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으냐?”

“제 말이 헛소리처럼 들립니까? 그럼 하나 더 묻지요. 소성주께서 천외의 암습을 받아서 하마터면 당할 뻔했다는 건 아십니까?”

그건 안다. 급보로 소식이 전해져서 모두가 긴장하고 있던 터였다.

“그 이야기는 나도 들었다. 하지만 암습자들의 정체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을 뿐…….”

“그들이 무림맹 사람들일 거라고 보십니까? 아니면 검왕문이나 다른 마도방파의 고수들?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그렇다. 그들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보고받기로는 구절신마 여홍마저 나타났다고 했다. 검왕문이나 마도방파의 힘으로는 여홍을 움직일 수 없다.

더구나 암습자 역할이라면 더더욱 불가능하다.

장천운이 그 점을 짚어주었다.

“천하의 어느 방파가 구절신마 여홍을 그런 식으로 움직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으으으음…….”

전무궁의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나직한 침음이 흘러나왔다.

그때였다.

장천운이 손을 흔들자, 번쩍이는 뭔가가 전무궁을 향해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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